- 광무 8년(1904) '삼군호구가간총책(三郡戶口家間摠冊)'에는 봉개라 하여 연가(燃家) 230호 인구는 617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 봉개악리 또는 상봉개악리와 하봉개악리로 불리어 오다가 1709년 봉개악리 또는 봉개리로 표기되었다.
-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개리라 칭하고, 1931년에는 제주읍에 속했으며, 1955년 9월 제주읍의 제주시 승격에 따라 봉개동에 편입되었다.
- 1962년 1월 1일 말단 행정구역의 정비강화에 따른 임시조치로 봉개동이 되었다.
- '명도암(明道岩)' 은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 '제주삼읍도총지도(濟州三邑都摠地圖)'. '제주삼읍전도(濟州三邑全圖)' 에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김진용의 호인 '명도암' 을 따 붙인 이름이다.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 의 명도악(明道岳)'은 '바위암(岩)' 대신에 '악(岳)'으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Contents
설촌유래
설촌유래
봉개동, 회천동, 용강동 등 3개의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개동
회천동(回泉洞)
- 회천동을 세은쇄리, 세은촌리로 표기되어 오다가
- 1914년 4월 1일 군면폐합에 따라 제주면에 속하게 되고
- 1955년 9월 1일 제주읍의 제주시 승격에 따라 회천동이 되었다.
- 1962년 1월 1일 말단구역의 정비강화에 따른 임시조치로 봉개동회의 관할이 되었다.
용강동(龍崗洞)
- 보통 웃무드내라고 부르는 마을로써 상무등천리, 상무등천촌 등으로 표기하여 오다가
- 광무 8년(1904)의 삼군호구가간총책에는 용강이라 하였다.
- 1914년 제주면에 속했으며, 1931년 제주읍에 속했고, 1955년에는 시관할구역이 되었다.
- 1962년 1월 동제실시에 따라 봉개동회 관할이 되었다.
- 콘텐츠 관리부서:봉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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