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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촌유래

아라1동(我羅1洞)

아라1동은 보통 아라위 또는 인다라라 불렀는데『탐라순력도』(1702년)에는 ' 아라호' (我羅好)『제주읍지』(1783년)에는 ' 아라호리' (我羅好里)라 표기되었고 ' 아라리' (我羅里)는 『제주삼읍전도』(1872년)에 표기된 이름으로 지금의 아라1.2동을 말하였고

아라위는 아라호의 변음으로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고 다만 ' 호' 는 지명뒤에 붙는 특수한 접미사로 ' 마을' 의 뜻을 지닌 듯하고 후대에 호를 생략하여 ' 我羅' 라 표기하였고, 仁多羅는 군위오씨,담양전씨, 경주김씨가 이주하여 거주하는 곳을 인다마을이라 하였는데 인다라의 뜻은 확실하지 않음

아라2동(我羅2洞)

아라2동은 보통 ' 걸머리' 라 불렀는데 『탐라순력도』에 ' 거마로(巨馬路), 『탐라지도』에 ' 걸마로촌(巨乙馬路村)' 등으로 나타나는데 모두 ' 걸머리' 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걸머리는 ' 개울이 있는 마루' 의 뜻으로 1904년『삼군호구가간총책』에는 ' 영남(寧南)' 이라 기록되었고 1905년 이후에 ' 영남리' 가 ' 아라리' 에 통합되어 1955년에 행정상 아라2동이라 하다가 1962년에 행정상 아라동에 속하고 법정상 아라2동이라 함

오등동(梧登洞)

오등동은 옛 이름인 ' 오드싱' 과 ' 다시' 마을로 이루어졌는데 오드싱은 『제주읍지』(1783년)에 ' 오등생리' (吾登生里)라 표기되었는데 ' 오드싱' 이라 불리운 것이 후에 한자표기에 의하여 ' 오등' 이라 칭하게 되어 『삼군호구가간총책』(1904년)에는 ' 오등' (梧登)이라 기록되어 있음

다시는 『탐라순력도』(1702년)에 ' 간다시' (艮多時)라 표기되었는데 이는 '다시'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다시'는 ' (같이)' 에서 온 말로 추측되며 오등의 한 마을인 죽성(竹城)은 대나무가 많다는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음

월평동(月坪洞)

월평동의 옛 이름은 ' 다라쿳' 으로 ' 다라' 는 높다는 뜻을 가진 고구려어로 ' 높은 곳에 있는 숲 또는 덤불' 이란 뜻으로 『탐라순력도』(1702년)에는 ' 별라화(別羅花)' 로 『탐라지도』(1709년)에는 ' 별라화리(別羅花里)' 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다라쿳의 한자 표기이며 『삼군호구가간총책』(1904년)에는 ' 월평(月坪)' 으로 기록되어 있음

영평동(寧坪洞)

영평동은 영평상동(寧坪上洞)과 영평하동(寧坪下洞)으로 나뉘는데 영평상동의 옛 지명은 '가시나물' 이라 칭하였고, 영평하동은 원래 전못(前池:앞못)이라 불리우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알무드내' 라 칭하였는데 1904년 『삼군호구가간총책』에는 ' 영평(寧坪)' 이라 기록되어 있음

※ 마을 명칭유래 참고문헌
  • 『제주시 옛 지명』, 제주시, 제주문화원(1996년)
  •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 오창명(2003년)
  • 『다라쿳 월평동지』, 월평동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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