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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작가 최인호가 40년간 적어 내려간
딸의 이야기 그리고 그 딸의 딸에 대한
12년 사랑의 기록!
『나의 딸의 딸』이 나오기까지
작가는 작고하기 4년 전에 이미 책의 제목을 “나의 딸의 딸”이라 지어 두고 손녀 정원이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나가고 있었다. 병이 깊은 중에도 작가는 소중한 책이 곧 탄생하리라는 기쁨에 충만해 있었다. 사랑하는 딸 다혜와, 그 딸의 딸, 정원을 위한 책.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하는 ‘임’께 바치는 애틋한 사랑의 노래. 하지만 그러는 동안 작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불같은 열정으로 전작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와 아픈 이들을 위한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최인호의 인생』을 잇달아 써내게 된다. 자연히 그토록 바라던 『나의 딸의 딸』의 출간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작가 최인호는 그토록 고대하던 책의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하고 그렇게 별들의 고향으로 훌쩍 떠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작가의 타계 이후 여백출판사는 작가의 유고집 발행을 준비한다. 작가의 책상 원고지 더미에서 새로이 발견된 200매 가량의 미공개 원고와 기존에 작가가 교정을 보았던 글들을 엮은 『눈물』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그토록 소망했던 『나의 딸의 딸』은 작가의 1주기에 맞춰 2014년 9월 25일에 출간하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이 책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보다 뜻 깊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이라는 작은 믿음 때문이었다.
다혜가 그린 그림, 아빠가 그린 그림
『나의 딸의 딸』을 위해 작가의 딸 다혜도 나섰다. 그녀는 이 책의 표지와 내지에 들어갈 그림으로 아빠가 평소에 좋아했던 자신의 그림들을 넣었고 아빠의 책과 원고 위에 그림을 그려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작가의 『타인의 방』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와 같은 작품들, 불어판 『깊고 푸른 밤』 『개미의 탑』 표지와 내지 등에 그려진 다혜의 그림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함, 그리고 그리움이 선연히 묻어난다.
다혜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화가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빠가 쓴 수많은 책들 중 그 어느 것에도 표지를 그린 적이 없다. 작가 최인호는 “다혜가 그린색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색이야” 버릇처럼 말하며 언제나 딸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고 자랑스러워했다. 작가의 말처럼 다혜가 그림 속에서 빚어내는 빛깔은 개성적이고 힘차며 조화롭다. 하지만 생전에 작가는 딸 다혜에게 자신의 책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혹시 딸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다혜 역시 아빠의 책에 동참하고자 한 적이 없다. 아버지의 후광을 얻어 덕을 보려 한다거나 가족끼리 북 치고 장구 친다는 식의 주변의 시기 어린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예술과 자신의 예술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그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순수한 바람이 그 어떤 이유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더욱더 그녀를 적극적으로 이번 작업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더하여 책에는 손녀 정원이에 대한 작가의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사진들이 담겼다. 작가 최인호가 손녀를 위해 손수 만든 보물쪽지, 그리움이 듬뿍 묻어나는 편지,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들이다.
특히 또박또박한 글씨로 정성껏 쓴 손녀에게 보내는 작가의 편지가 이채롭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작가 최인호는 최고의 악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웬만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가 쓴 글을 해독할 수 없다. 신문사에서는 그의 원고 ‘해독’만을 전담하는 문학기자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는 떠오르는 순간의 영감을 채집망으로 낚아채기 위해 신 내림 받는 무당처럼 미친 듯이 손을 움직인다. 그의 글자들은 춤추듯 꿈틀대며 신을 부른다. 작가 본인도 글을 마친 후 자신의 글자를 해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유일하게 손녀에 게 편지를 쓸 때만은 이 같은 내림굿도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딸, 그리고 딸의 딸에게 전하는 가슴 벅찬 사랑의 고백
1970년 11월 28일. 내가 아내와 결혼할 때 황순원 선생님이 주례를 서주셨다.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싫어하셔서 강연 같은 것을 한사코 사양하시던 선생님은 내가 부탁하자 서슴지 않고 이를 수락해주셨다. 첫 딸을 낳았을 때 선생님께 작명을 부탁드렸더니 선생님은 자신의 소설 <일월日月>에 나오는 다혜多惠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소설의 여주인공 중에서 내가 다혜를 가장 좋아하거든.” 그리고 2000년 10월 25일. 나의 딸 다혜가 자신을 닮은 딸 정원이를 낳았다. 정원이는 나의 딸의 딸이다.
― 본문 중에서
『나의 딸의 딸』은 1부 작가의 딸 다혜의 이야기와 2부 그 딸의 딸, 즉 작가의 외손녀 정원이의 이야기로 나뉜다. 1부는 작가의 딸 다혜의 탄생에서부터 유치원 입학, 초·중·고 시절, 대학교 입학과 졸업, 결혼, 신혼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무려 40년에 이르는 세월을 사랑과 경이로움의 시선으로 기록해나간 이야기이다. 또한 2부는 다혜가 딸 정원이를 낳으면서 시작해 손녀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는 12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픈 딸을 들쳐 업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는 아버지가 있고, 밤새워 시험 공부하는 딸을 몰래 훔쳐보며 홀로 한숨짓는 아버지, 신혼여행 떠난 딸의 빈방에 앉아 이별을 실감하며 눈물짓는 아버지가 있다. 또 거기엔 유아원을 ‘땡땡이’ 치고 손녀를 데리고 백화점에 놀러갔다가 딸에게 들켜 혼이 나는 할아버지가 있으며, 손녀 앞에서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춤추고 노래하는 할아버지,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드 공주처럼 하루에 한 가지씩 손녀에게 들려줄 재밌는 이야기를 지어내느라 진땀을 흘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큰 작가 최인호의 모습이 아닌, 소박한 일상의 생활 속에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우리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내게 온 너는 누구인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우리는 누구인가.”
“네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그 딸은 너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그 엄마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단다. 이제 네 딸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어 또 다른 딸을 낳게 될 것이다. 네 엄마의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 본문 중에서
『나의 딸의 딸』은 작가이기에 앞서 한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인 최인호가 딸과 손녀에게 전하는 가슴 벅찬 사랑과 감사의 고백이다. 그것은 또한 딸과 손녀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아 한 가족의 40년 세월을 기록한 장려한 가족연대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면 『나의 딸의 딸』은 그저 그런 개인의 회고담이나 추억담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아,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들은 누구이길래 이렇게 서로 가족을 이루고
한때 만났다 헤어져 어디로 돌아가는가.
참으로 알 수가 없구나.
― 본문 중에서
작가는 수시로 묻는다. ‘내게 온 너는 누구인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참으로 알 수가 없구나.’ 그 물음은 삶의 불가해성을 향한다. 그것은 딸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삶의 지속,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만난 너와 나의 인연의 신비에 대한 경탄이자 찬미이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울고 웃고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네 일상의 풍경이지만, 때로 돌아보면 그것은 그대로 생명의 경이로움으로 반짝이며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삶의 강물이 아닐 것인가. 그 삶의 물줄기는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신神이 내려준 최고의 위대한 유산, ‘가족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박목월 시인의 시 ‘가정家庭’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후략)”
시인인 가장家長은 가장 큰 문수의 신발을 신고 있고, 막내둥이는 코가 납작한 가장 작은 신발을 신고 있지만 현관으로 비유되는 가정에서는 모두 정다운 하나의 가족이다. 가장은 나날을 눈과 얼음의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더러워진 신발을 벗는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들판을 달리는 전사로서의 무장해제를 뜻하며, 지친 신발을 벗음으로써 가정 속에서 평화와 위안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우리 집 현관은 내 신발과 아내의 신발만이 놓여 있던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다혜의 꼬까신이 놓이고 어느 날 도단이의 운동화가 그 곁에 놓였다. 아이들의 신발 문수가 점점 더 커지더니 어느 날엔가 우리 집에 새로운 신발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사위 민석이의 것이었다. 소도둑처럼 크나큰 신발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가 나의 딸이 낳은 정원이가 가족의 뉴 페이스로 등장하였다.
정원이의 신발은 그야말로 ‘꽃신’이었다. 사랑하는 며늘아기 세실이의 비단구두와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하고 시인이 노래하였던 것처럼 막내 윤정이의 또 다른 꽃신도 현관에 놓여졌다. 아직 시인의 가족처럼 아홉 켤레의 신발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집 현관에는 여덟 켤레의 신발이 차곡차곡 놓이게 된 것이다. 세월이 더 흘러가면 또 다른 꽃신이 현관에 놓이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시인의 가족 수를 추월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 집안은 종류가 다른 갖가지 신발로 꽃밭처럼 만발하게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렇다, 작가가 노래한 것처럼 가족은, 이 만발한 생명의 꽃밭은,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가장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나의 딸의 딸』은 궁극적으로 이 땅의 모든 ‘가족’에게 바치는 찬미이며,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이 지상의 삶에게 작가가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이다. 지금쯤 작가는 그토록 소망하던 당신의 책을 보며 기뻐하고 있지 않을까, 생生의 강이 흘러들어가는 바다, 아득한 저 너머 어딘가에서, 꽃에 취한 듯 현관에 놓인 갖가지 신발을 내려다보며, ‘가장家長’의 흐뭇한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말이다.
딸의 이야기 그리고 그 딸의 딸에 대한
12년 사랑의 기록!
『나의 딸의 딸』이 나오기까지
작가는 작고하기 4년 전에 이미 책의 제목을 “나의 딸의 딸”이라 지어 두고 손녀 정원이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나가고 있었다. 병이 깊은 중에도 작가는 소중한 책이 곧 탄생하리라는 기쁨에 충만해 있었다. 사랑하는 딸 다혜와, 그 딸의 딸, 정원을 위한 책.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하는 ‘임’께 바치는 애틋한 사랑의 노래. 하지만 그러는 동안 작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불같은 열정으로 전작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와 아픈 이들을 위한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최인호의 인생』을 잇달아 써내게 된다. 자연히 그토록 바라던 『나의 딸의 딸』의 출간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작가 최인호는 그토록 고대하던 책의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하고 그렇게 별들의 고향으로 훌쩍 떠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작가의 타계 이후 여백출판사는 작가의 유고집 발행을 준비한다. 작가의 책상 원고지 더미에서 새로이 발견된 200매 가량의 미공개 원고와 기존에 작가가 교정을 보았던 글들을 엮은 『눈물』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그토록 소망했던 『나의 딸의 딸』은 작가의 1주기에 맞춰 2014년 9월 25일에 출간하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이 책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보다 뜻 깊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이라는 작은 믿음 때문이었다.
다혜가 그린 그림, 아빠가 그린 그림
『나의 딸의 딸』을 위해 작가의 딸 다혜도 나섰다. 그녀는 이 책의 표지와 내지에 들어갈 그림으로 아빠가 평소에 좋아했던 자신의 그림들을 넣었고 아빠의 책과 원고 위에 그림을 그려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작가의 『타인의 방』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와 같은 작품들, 불어판 『깊고 푸른 밤』 『개미의 탑』 표지와 내지 등에 그려진 다혜의 그림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함, 그리고 그리움이 선연히 묻어난다.
다혜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화가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빠가 쓴 수많은 책들 중 그 어느 것에도 표지를 그린 적이 없다. 작가 최인호는 “다혜가 그린색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색이야” 버릇처럼 말하며 언제나 딸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고 자랑스러워했다. 작가의 말처럼 다혜가 그림 속에서 빚어내는 빛깔은 개성적이고 힘차며 조화롭다. 하지만 생전에 작가는 딸 다혜에게 자신의 책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혹시 딸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다혜 역시 아빠의 책에 동참하고자 한 적이 없다. 아버지의 후광을 얻어 덕을 보려 한다거나 가족끼리 북 치고 장구 친다는 식의 주변의 시기 어린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예술과 자신의 예술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그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순수한 바람이 그 어떤 이유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더욱더 그녀를 적극적으로 이번 작업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더하여 책에는 손녀 정원이에 대한 작가의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사진들이 담겼다. 작가 최인호가 손녀를 위해 손수 만든 보물쪽지, 그리움이 듬뿍 묻어나는 편지,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들이다.
특히 또박또박한 글씨로 정성껏 쓴 손녀에게 보내는 작가의 편지가 이채롭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작가 최인호는 최고의 악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웬만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가 쓴 글을 해독할 수 없다. 신문사에서는 그의 원고 ‘해독’만을 전담하는 문학기자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는 떠오르는 순간의 영감을 채집망으로 낚아채기 위해 신 내림 받는 무당처럼 미친 듯이 손을 움직인다. 그의 글자들은 춤추듯 꿈틀대며 신을 부른다. 작가 본인도 글을 마친 후 자신의 글자를 해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유일하게 손녀에 게 편지를 쓸 때만은 이 같은 내림굿도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딸, 그리고 딸의 딸에게 전하는 가슴 벅찬 사랑의 고백
1970년 11월 28일. 내가 아내와 결혼할 때 황순원 선생님이 주례를 서주셨다.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싫어하셔서 강연 같은 것을 한사코 사양하시던 선생님은 내가 부탁하자 서슴지 않고 이를 수락해주셨다. 첫 딸을 낳았을 때 선생님께 작명을 부탁드렸더니 선생님은 자신의 소설 <일월日月>에 나오는 다혜多惠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소설의 여주인공 중에서 내가 다혜를 가장 좋아하거든.” 그리고 2000년 10월 25일. 나의 딸 다혜가 자신을 닮은 딸 정원이를 낳았다. 정원이는 나의 딸의 딸이다.
― 본문 중에서
『나의 딸의 딸』은 1부 작가의 딸 다혜의 이야기와 2부 그 딸의 딸, 즉 작가의 외손녀 정원이의 이야기로 나뉜다. 1부는 작가의 딸 다혜의 탄생에서부터 유치원 입학, 초·중·고 시절, 대학교 입학과 졸업, 결혼, 신혼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무려 40년에 이르는 세월을 사랑과 경이로움의 시선으로 기록해나간 이야기이다. 또한 2부는 다혜가 딸 정원이를 낳으면서 시작해 손녀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는 12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픈 딸을 들쳐 업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는 아버지가 있고, 밤새워 시험 공부하는 딸을 몰래 훔쳐보며 홀로 한숨짓는 아버지, 신혼여행 떠난 딸의 빈방에 앉아 이별을 실감하며 눈물짓는 아버지가 있다. 또 거기엔 유아원을 ‘땡땡이’ 치고 손녀를 데리고 백화점에 놀러갔다가 딸에게 들켜 혼이 나는 할아버지가 있으며, 손녀 앞에서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춤추고 노래하는 할아버지,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드 공주처럼 하루에 한 가지씩 손녀에게 들려줄 재밌는 이야기를 지어내느라 진땀을 흘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큰 작가 최인호의 모습이 아닌, 소박한 일상의 생활 속에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우리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내게 온 너는 누구인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우리는 누구인가.”
“네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그 딸은 너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그 엄마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단다. 이제 네 딸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어 또 다른 딸을 낳게 될 것이다. 네 엄마의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 본문 중에서
『나의 딸의 딸』은 작가이기에 앞서 한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인 최인호가 딸과 손녀에게 전하는 가슴 벅찬 사랑과 감사의 고백이다. 그것은 또한 딸과 손녀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아 한 가족의 40년 세월을 기록한 장려한 가족연대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면 『나의 딸의 딸』은 그저 그런 개인의 회고담이나 추억담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아,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들은 누구이길래 이렇게 서로 가족을 이루고
한때 만났다 헤어져 어디로 돌아가는가.
참으로 알 수가 없구나.
― 본문 중에서
작가는 수시로 묻는다. ‘내게 온 너는 누구인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참으로 알 수가 없구나.’ 그 물음은 삶의 불가해성을 향한다. 그것은 딸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삶의 지속,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만난 너와 나의 인연의 신비에 대한 경탄이자 찬미이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울고 웃고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네 일상의 풍경이지만, 때로 돌아보면 그것은 그대로 생명의 경이로움으로 반짝이며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삶의 강물이 아닐 것인가. 그 삶의 물줄기는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신神이 내려준 최고의 위대한 유산, ‘가족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박목월 시인의 시 ‘가정家庭’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후략)”
시인인 가장家長은 가장 큰 문수의 신발을 신고 있고, 막내둥이는 코가 납작한 가장 작은 신발을 신고 있지만 현관으로 비유되는 가정에서는 모두 정다운 하나의 가족이다. 가장은 나날을 눈과 얼음의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더러워진 신발을 벗는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들판을 달리는 전사로서의 무장해제를 뜻하며, 지친 신발을 벗음으로써 가정 속에서 평화와 위안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우리 집 현관은 내 신발과 아내의 신발만이 놓여 있던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다혜의 꼬까신이 놓이고 어느 날 도단이의 운동화가 그 곁에 놓였다. 아이들의 신발 문수가 점점 더 커지더니 어느 날엔가 우리 집에 새로운 신발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사위 민석이의 것이었다. 소도둑처럼 크나큰 신발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가 나의 딸이 낳은 정원이가 가족의 뉴 페이스로 등장하였다.
정원이의 신발은 그야말로 ‘꽃신’이었다. 사랑하는 며늘아기 세실이의 비단구두와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하고 시인이 노래하였던 것처럼 막내 윤정이의 또 다른 꽃신도 현관에 놓여졌다. 아직 시인의 가족처럼 아홉 켤레의 신발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집 현관에는 여덟 켤레의 신발이 차곡차곡 놓이게 된 것이다. 세월이 더 흘러가면 또 다른 꽃신이 현관에 놓이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시인의 가족 수를 추월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 집안은 종류가 다른 갖가지 신발로 꽃밭처럼 만발하게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렇다, 작가가 노래한 것처럼 가족은, 이 만발한 생명의 꽃밭은,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가장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나의 딸의 딸』은 궁극적으로 이 땅의 모든 ‘가족’에게 바치는 찬미이며,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이 지상의 삶에게 작가가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이다. 지금쯤 작가는 그토록 소망하던 당신의 책을 보며 기뻐하고 있지 않을까, 생生의 강이 흘러들어가는 바다, 아득한 저 너머 어딘가에서, 꽃에 취한 듯 현관에 놓인 갖가지 신발을 내려다보며, ‘가장家長’의 흐뭇한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말이다.
목차
1부 나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