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문학동네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소설
- 저자/역자
- 이승우 지음
- 펴낸곳
- 문학동네
- 발행년도
- 2017
- 형태사항
- 245p.; 21cm
- 총서사항
- 문학동네 소설집
- 원서명
- 이승우 소설
- ISBN
- 9788954646727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13.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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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 JG000000432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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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JG0000004328
-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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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카페
책 소개
“그러니까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나를 견딘다는 뜻이기도 했다”
소설로 인생에 복무하는 작가 이승우, 그의 열번째 소설집
‘쓴다’는 동사의 힘을 믿는 사람. ‘매일 쓴다’는 것으로 인생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 그것이 작가이고, 이승우 작가가 그렇다. 스물셋에 등단해 올해로 36년, ‘소설가로 산다는 것’을 흔들림 없는 작품들로 몸소 보여주는 사람. 그의 열번째 소설집을 묶는다.
책을 만들기 위해 소설들을 다시 읽으면서, 내 문장들 속으로 들어와 있는 세상의 기운들을 감지한다. 놀랄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각각의 소설들에 그 소설을 쓸 때의 시대의 간섭이 선명하다. 어떤 소설은 그 간섭에 대한 토로이다. 세상이 요동칠 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없다. 가장 자율적인 것도 자율적이지 않다. _‘작가의 말’에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인생의 원리,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도 피할 수 없는 오해와 충돌, 나를 쥐고 흔드는 알 수 없는 시선… 작가가 바라본 세상과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는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지난 몇 년간의 ‘시대의 간섭’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이 현실의 부조리와 기이함을 넘어설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으리라. 일종의 무력함과 ‘자율적이지 않음’ 속에서 작가가 그려낸 작품 속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덟 편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내적 갈등과 자기비판을 통해 집요하게 변주되는 이승우 작가 특유의 문장은, 인물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딛게 한다. 그 나아감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마주한 사실 혹은 비밀은 진실인가. 재구성된 기억과 진술 속에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가.
보이지 않았으면 보지 않았을-그러나 보였으므로 보지 않을 수 없는
‘지금-여기’의 나를 만든 과거의 진실
안다고 믿었던 관계들에 물음표가 붙으며
타인을 향한 전혀 다른 첫걸음이 시작된다
십일 년 전 아버지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라고 말한 아버지였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점에서는 누구보다 잘 듣고 가장 잘 듣는 사람”이란 것을 생각하면, 견딘다는 것이 ‘떼어내다’가 아니라 ‘붙어 있다’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가족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떼어낸’ 아버지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어머니는 비논리적인 이유를 붙여 아버지의 부재를 설명한다. 결국 아버지가 회사 광고모델과 해외로 몰래 떠났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논리적인 귀결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위험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이것은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 (…) 서둘러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된 이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한다. 예컨대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아야 한다. 내면 같은 것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_21쪽, 「모르는 사람」에서
아버지의 부고는 십일 년 만에, 뜻밖의 장소인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들려왔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듣는 아버지의 지난 십일 년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로 가득하다. “살면서 자주 내가 참으로 살기를 갈망했던, 살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삶을 그리워했”던 아버지, “평생 동안 다른 삶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남자와 한집에 살아야 했던,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리워할 다른 삶이 없었던, 그래서 자기가 붙어 있는 곳에서 자기를 떼어낼 생각을 할 수 없었던, (…)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고 버둥거렸을 어머니의 삶”, 그러므로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자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된다.(「모르는 사람」)
또다른 ‘나’의 이야기. 유복자인 나는 자신의 고향 M시에서 근무하게 된다. 아버지를 잃고 떠나온 곳이므로, 어머니가 M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말해져야 할 시간에 말해지고 어떤 이야기는 말해지지 않아야 할 시간에 말해진다. (…) 어떤 이야기는 살고 살리기 위해 말해질 시간을 기다린다.” M시를 찾은 나에게 외삼촌이 전해주는 내 부모의 만남부터 나의 출생에 이르기까지 그들 역사의 전모는 참혹하고 비통하다.
그 모든 것이, 그러니까 다 거짓이었을까요? 하고 묻고 나서 나는 움찔했는데, 그 순간 그 질문이 내 존재가 거짓에 기반하고 있느냐는 것으로 치환되어 들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존재가 거짓에 기반하고 있다는 선고를 받을까봐 두려웠다.
_59쪽, 「복숭아 향기」에서
“아, 사람의 운명이란 게 이렇게 정해지는가보구나” 하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어머니를, 내 인생을 이제 와 이런 식으로 뒤흔드는 무덤 속 아버지를, 나는 이제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까.(「복숭아 향기」)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믿음이 문제일 때는 믿음을 표면에 내세우기가 어렵다. 능력의 있고 없음은 ‘나의’ 문제지만, 믿음의 있고 없음은 ‘그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의 무능은 나를 향하지만, 나의 불신은 그를 향한다. 그에 대한 불신이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너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보다 쉽다. 나는,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고 면전에서 말하기가 어려워서 나는 그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요컨대 특색이라곤 없는 인간이다. 특색이라곤 없는 평범한 인간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인과관계를 벗어난 사건의 전개를 불편해하는 것이다.
_71쪽, 「윔블던, 김태호」에서
‘내’가 불신하고 있는 사람은 자수성가한 의류업체의 회장이다. 나는 그의 회고록을 쓰는 중이다.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 칠순의 회장은, 나에게 윔블던에서의 유학 시절과 그때 만난 김태호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만을 되풀이하며, 김태호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회장의 아들 말에 따르면 회장은 윔블던에서 유학한 적도 없다. 구체적인 기록 없이 기억과 진술에만 의존할 때 왜곡과 과장이 의심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자신의 지난날 허물과 오욕을 뒤늦게라도 인정하며 바로잡고자 애쓰는 회장의 모습에 나는 점점 마음이 움직인다.(「윔블던, 김태호」)
“가장 단순하고 가장 투명해 보이던 아버지야말로 우리가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고” 그가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나’는 전혀 몰랐던가. 요컨대 아버지가 나에게 ‘평탄한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꾸려온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었는지 나는 정말 몰랐는가, 알 수 있었으나 모르고자 했는가.(「강의」)
내 이름 ‘김철수’와 한국 이름이 같은 말레이시아인 ‘찰스’, “그의 이름이 철수이기 때문에 그와 엮이고, 그의 존재를 거부하지 못할까봐” 나는 신경이 쓰인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나로 변신하고 나를 대신할지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불합리한 줄 알지만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같은 이름이라는 외피 아래 전혀 다른 삶의 조건을 가진 두 사람, ‘철수’에게 ‘찰스’는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가.(「찰스」)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매일 밤 집 근처를 배회한 거라는 외국인 노동자 틴 카우, “넘어가지 않습니다. 나는 여기로 있습니다. 당신은 용서합시다”라는 부정확한 문장을 반복하며, 와이파이를 계속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그녀에게 간청한다.
“당신들이 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녀는 입을 열었지만 곧 닫고 말았다. 그녀가 하려고 한 말은,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들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무엇인가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 무엇인가가 당신들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내 안의 두려움이 내 밖의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한다, 그래서 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문제다, 라는 것이었다.
_179쪽, 「넘어가지 않습니다」에서
그녀는 굳게 걸어 잠근 문을 열고 낯선 얼굴들을 대면할 수 있을까.(「넘어가지 않습니다」)
규칙적이고 안온하며 예상외의 일이란 무엇 하나 없는 안정한 하루는 얼마나 어렵게 이루어진 것인가.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죄책감은, ‘장필수씨’ 삶의 디테일을 모두 없애고 가장 단순한 일과만을 남긴 채 그것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동생 ‘장철수씨’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의 집에 들이닥쳐 “하필 오늘, 저런 짓”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전까지는 그 반복이 가능했다.(「안정한 하루」) 불편한 과거와 대면한 것은 국립대학 교수 ‘김승종’도 마찬가지다. 과거 내가 한 일이 지금의 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끼는 김승종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과거의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신의 말을 듣다」)
나는 왜 수철을 원망할 수 없는가? 그렇게 자문하다가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하나의 문장이 화살처럼 날아와 그의 가슴팍에 박혔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철의 말이 신의 말이기 때문이다. 말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은, 언제든 말해질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수철이 그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신이 된 수철이 그를 지배했다. 너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신이 된 수철이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생각을 묶고 행동을 통제했다. 수철의 통치 아래 들어간 그는 더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_205쪽, 「신의 말을 듣다」에서
“말해질 시간에 말해진 이야기는 살지만, 혹은 살리지만, 삶으로써 살리지만, 말해지지 않을 시간에 말해진 이야기는 죽는다, 혹은 죽인다, 죽임으로써 죽는다.”(「복숭아 향기」) 이번 소설집 편편에 등장하는 누군가 말하고, 누군가 듣는 행위, “그는 말했고, 나는 들었다”로 인해 우리는 삶의 진실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아이러니와 모순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터, ‘지금-여기’의 나를 만든 과거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시작점으로 행할 수 있는 관계의 윤리, 삶을 마주하는 윤리를 회복, 재구축해나가는 것, 요동치는 세상에서 자율성을 놓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 어쩌면 여기서 시작될지 모른다.
소설로 인생에 복무하는 작가 이승우, 그의 열번째 소설집
‘쓴다’는 동사의 힘을 믿는 사람. ‘매일 쓴다’는 것으로 인생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 그것이 작가이고, 이승우 작가가 그렇다. 스물셋에 등단해 올해로 36년, ‘소설가로 산다는 것’을 흔들림 없는 작품들로 몸소 보여주는 사람. 그의 열번째 소설집을 묶는다.
책을 만들기 위해 소설들을 다시 읽으면서, 내 문장들 속으로 들어와 있는 세상의 기운들을 감지한다. 놀랄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각각의 소설들에 그 소설을 쓸 때의 시대의 간섭이 선명하다. 어떤 소설은 그 간섭에 대한 토로이다. 세상이 요동칠 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없다. 가장 자율적인 것도 자율적이지 않다. _‘작가의 말’에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인생의 원리,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도 피할 수 없는 오해와 충돌, 나를 쥐고 흔드는 알 수 없는 시선… 작가가 바라본 세상과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는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지난 몇 년간의 ‘시대의 간섭’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이 현실의 부조리와 기이함을 넘어설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으리라. 일종의 무력함과 ‘자율적이지 않음’ 속에서 작가가 그려낸 작품 속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덟 편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내적 갈등과 자기비판을 통해 집요하게 변주되는 이승우 작가 특유의 문장은, 인물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딛게 한다. 그 나아감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마주한 사실 혹은 비밀은 진실인가. 재구성된 기억과 진술 속에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가.
보이지 않았으면 보지 않았을-그러나 보였으므로 보지 않을 수 없는
‘지금-여기’의 나를 만든 과거의 진실
안다고 믿었던 관계들에 물음표가 붙으며
타인을 향한 전혀 다른 첫걸음이 시작된다
십일 년 전 아버지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라고 말한 아버지였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점에서는 누구보다 잘 듣고 가장 잘 듣는 사람”이란 것을 생각하면, 견딘다는 것이 ‘떼어내다’가 아니라 ‘붙어 있다’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가족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떼어낸’ 아버지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어머니는 비논리적인 이유를 붙여 아버지의 부재를 설명한다. 결국 아버지가 회사 광고모델과 해외로 몰래 떠났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논리적인 귀결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위험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이것은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 (…) 서둘러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된 이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한다. 예컨대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아야 한다. 내면 같은 것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_21쪽, 「모르는 사람」에서
아버지의 부고는 십일 년 만에, 뜻밖의 장소인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들려왔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듣는 아버지의 지난 십일 년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로 가득하다. “살면서 자주 내가 참으로 살기를 갈망했던, 살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삶을 그리워했”던 아버지, “평생 동안 다른 삶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남자와 한집에 살아야 했던,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리워할 다른 삶이 없었던, 그래서 자기가 붙어 있는 곳에서 자기를 떼어낼 생각을 할 수 없었던, (…)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고 버둥거렸을 어머니의 삶”, 그러므로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자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된다.(「모르는 사람」)
또다른 ‘나’의 이야기. 유복자인 나는 자신의 고향 M시에서 근무하게 된다. 아버지를 잃고 떠나온 곳이므로, 어머니가 M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말해져야 할 시간에 말해지고 어떤 이야기는 말해지지 않아야 할 시간에 말해진다. (…) 어떤 이야기는 살고 살리기 위해 말해질 시간을 기다린다.” M시를 찾은 나에게 외삼촌이 전해주는 내 부모의 만남부터 나의 출생에 이르기까지 그들 역사의 전모는 참혹하고 비통하다.
그 모든 것이, 그러니까 다 거짓이었을까요? 하고 묻고 나서 나는 움찔했는데, 그 순간 그 질문이 내 존재가 거짓에 기반하고 있느냐는 것으로 치환되어 들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존재가 거짓에 기반하고 있다는 선고를 받을까봐 두려웠다.
_59쪽, 「복숭아 향기」에서
“아, 사람의 운명이란 게 이렇게 정해지는가보구나” 하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어머니를, 내 인생을 이제 와 이런 식으로 뒤흔드는 무덤 속 아버지를, 나는 이제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까.(「복숭아 향기」)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믿음이 문제일 때는 믿음을 표면에 내세우기가 어렵다. 능력의 있고 없음은 ‘나의’ 문제지만, 믿음의 있고 없음은 ‘그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의 무능은 나를 향하지만, 나의 불신은 그를 향한다. 그에 대한 불신이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너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보다 쉽다. 나는,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고 면전에서 말하기가 어려워서 나는 그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요컨대 특색이라곤 없는 인간이다. 특색이라곤 없는 평범한 인간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인과관계를 벗어난 사건의 전개를 불편해하는 것이다.
_71쪽, 「윔블던, 김태호」에서
‘내’가 불신하고 있는 사람은 자수성가한 의류업체의 회장이다. 나는 그의 회고록을 쓰는 중이다.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 칠순의 회장은, 나에게 윔블던에서의 유학 시절과 그때 만난 김태호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만을 되풀이하며, 김태호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회장의 아들 말에 따르면 회장은 윔블던에서 유학한 적도 없다. 구체적인 기록 없이 기억과 진술에만 의존할 때 왜곡과 과장이 의심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자신의 지난날 허물과 오욕을 뒤늦게라도 인정하며 바로잡고자 애쓰는 회장의 모습에 나는 점점 마음이 움직인다.(「윔블던, 김태호」)
“가장 단순하고 가장 투명해 보이던 아버지야말로 우리가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고” 그가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나’는 전혀 몰랐던가. 요컨대 아버지가 나에게 ‘평탄한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꾸려온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었는지 나는 정말 몰랐는가, 알 수 있었으나 모르고자 했는가.(「강의」)
내 이름 ‘김철수’와 한국 이름이 같은 말레이시아인 ‘찰스’, “그의 이름이 철수이기 때문에 그와 엮이고, 그의 존재를 거부하지 못할까봐” 나는 신경이 쓰인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나로 변신하고 나를 대신할지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불합리한 줄 알지만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같은 이름이라는 외피 아래 전혀 다른 삶의 조건을 가진 두 사람, ‘철수’에게 ‘찰스’는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가.(「찰스」)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매일 밤 집 근처를 배회한 거라는 외국인 노동자 틴 카우, “넘어가지 않습니다. 나는 여기로 있습니다. 당신은 용서합시다”라는 부정확한 문장을 반복하며, 와이파이를 계속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그녀에게 간청한다.
“당신들이 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녀는 입을 열었지만 곧 닫고 말았다. 그녀가 하려고 한 말은,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들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무엇인가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 무엇인가가 당신들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내 안의 두려움이 내 밖의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한다, 그래서 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문제다, 라는 것이었다.
_179쪽, 「넘어가지 않습니다」에서
그녀는 굳게 걸어 잠근 문을 열고 낯선 얼굴들을 대면할 수 있을까.(「넘어가지 않습니다」)
규칙적이고 안온하며 예상외의 일이란 무엇 하나 없는 안정한 하루는 얼마나 어렵게 이루어진 것인가.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죄책감은, ‘장필수씨’ 삶의 디테일을 모두 없애고 가장 단순한 일과만을 남긴 채 그것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동생 ‘장철수씨’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의 집에 들이닥쳐 “하필 오늘, 저런 짓”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전까지는 그 반복이 가능했다.(「안정한 하루」) 불편한 과거와 대면한 것은 국립대학 교수 ‘김승종’도 마찬가지다. 과거 내가 한 일이 지금의 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끼는 김승종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과거의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신의 말을 듣다」)
나는 왜 수철을 원망할 수 없는가? 그렇게 자문하다가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하나의 문장이 화살처럼 날아와 그의 가슴팍에 박혔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철의 말이 신의 말이기 때문이다. 말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은, 언제든 말해질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수철이 그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신이 된 수철이 그를 지배했다. 너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신이 된 수철이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생각을 묶고 행동을 통제했다. 수철의 통치 아래 들어간 그는 더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_205쪽, 「신의 말을 듣다」에서
“말해질 시간에 말해진 이야기는 살지만, 혹은 살리지만, 삶으로써 살리지만, 말해지지 않을 시간에 말해진 이야기는 죽는다, 혹은 죽인다, 죽임으로써 죽는다.”(「복숭아 향기」) 이번 소설집 편편에 등장하는 누군가 말하고, 누군가 듣는 행위, “그는 말했고, 나는 들었다”로 인해 우리는 삶의 진실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아이러니와 모순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터, ‘지금-여기’의 나를 만든 과거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시작점으로 행할 수 있는 관계의 윤리, 삶을 마주하는 윤리를 회복, 재구축해나가는 것, 요동치는 세상에서 자율성을 놓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 어쩌면 여기서 시작될지 모른다.
목차
모르는 사람
복숭아 향기
윔블던, 김태호
강의
찰스
넘어가지 않습니다
신의 말을 듣다
안정한 하루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