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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김숨의 거침없는 문학적 행보가 놀랍다.”_전성태(소설가)
인간 존엄의 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하는 탁월한 힘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김숨 신작 장편소설 《떠도는 땅》 출간
읽는 이의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 작가 김숨. 그의 집요함과 세심함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힘과 서사의 밀도는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많은 에너지와 감정 소모를 필요로 하는 작품을 써내며 쉼표 하나, 말줄임표 하나에도 온 마음을 쏟는 그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써내려간 문학의 자리엔 숭고함이 남는다. 일본군 위안부, 입양아, 철거민 등 소외된 약자와 뿌리 들린 사람들을 보듬어왔던 그가 이번 작품에선 ‘디아스포라’를 노래한다. 집필 기간 4년, 소설가 김숨이 1년 9개월 만에 장편 《떠도는 땅》을 내보인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숨의 장편소설 《떠도는 땅》이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23주년을 맞은 김숨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존엄성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문단과 독자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인간 존엄의 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해온 그가 한국문학장(場)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 신작은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응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떠도는 땅》은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17만 명이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화물칸이라는 열악한 공간을 배경으로 열차에 실린 사람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 디아스포라적 운명을 이야기로 확장시킨 이 소설은 슬픔과 그리움이 고인 시간을 걸어온 고려인들의 비극적 삶, 그리고 오랜 시간 ‘뿌리내림’을 갈망했던 그들의 역사를 핍진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총 4년이 걸린 작품으로 격월간 문학잡지 《Axt》에 연재했던 소설을 2년 6개월 동안 개고하였다.
그리움이 삶의 전부인, 떠도는 땅 위에 부유하는 사람들
시리고 날 선 어둠 새로 스며드는 그들의 이야기
1937년 가을. 소비에트 경찰은 금실이 살고 있는 신한촌으로 몰려와 집집을 돌아다니며 일주일 치 식량과 당장 입을 옷가지만 챙겨 사흘 뒤 혁명 광장에 모일 것을 명령한다. 날벼락처럼 떨어진 갑작스런 통보에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묻지만 경찰들은 그저 “너희 조선인들에게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라고 말할 뿐이다. 금실은 보따리장사꾼인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함께 출발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남편도 곧 뒤따라올 것이라며 금실을 다그친다.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짧은 편지를 남기고 준비해둔 비상식량과 당도할 땅에 심을 씨앗들을 챙겨 열차에 몸을 싣는다.
“떠나라는 통보를 받고 아버지 무덤을 찾아갔지요. 그 앞에 넙죽 엎드려 시든 엉겅퀴를 쥐어뜯으며 아버지를 원망했지요. 죽으나 사나 고향땅에서 살 것이지, 남의 땅에 와서 자식이 집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게 하느냐고요.”_본문에서
사람들은 제대로 된 화장실도, 마음 편히 누울 자리도, 밖을 제대로 볼 수도 없는 동굴 같은 화물칸 바닥에 앉아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가족끼리 모여 있다. 양쪽 벽면에 널빤지를 가로놓아 2층을 만들어 그곳에도 사람들을 태웠다. 그들이 탄 열차는 사람이 아닌 가축을 실어나르는 화물열차. 금실과 같은 칸에 실린 사람들은 모두 스물일곱 명이다. 그중엔 몸이 불편한 노인, 배가 제법 부른 임신부, 호기심 많은 아이들,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도 있다. 참담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막막하고 커다란 두려움에 휩싸여 실의에 빠져 있다. 밖을 내다볼 창문조차 없어 어디쯤 왔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괘종시계를 들고 탄 남자는 아내의 재촉을 듣고 계속해서 태엽을 감는다. 그간 며칠이 흘렀는지 알 수 있게,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가늠할 수 있게. 질긴 소시지, 절인 돼지고기, 누룽지, 말린 빵…….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식량을 조금씩 아껴 먹으며 서로를 의지해 막막하고 어두운 시간을 그저 견디고 또 견딘다. 임신 7개월 차에 접어든 금실은 어딘지 모를 낯선 땅에서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 직감한다.
어둠 저편에서 열병을 앓는 듯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우린 들개가 되는 건가요?”_본문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온 그들의 사연이 금실, 따냐, 들숙, 인설, 오순 등의 목소리를 타고 차례차례 들려온다. 병원 간호사로 일하다 강제 이주로 인해 갑작스레 해고된 사람, 러시아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매몰차게 이혼당한 후 아이와 단 둘이 열차에 실린 사람,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젖먹이 아이를 안고 열차에 오른 사람……. 그때 누군가 입을 연다. 우리는 지금 ‘카자흐스탄’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고.
뿌리를 찾아 떠도는 이들을 그리는 섬세한 시선
그들을 호명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다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땅은 ‘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심고, 작물이 자라나고, 황무지가 비옥해지고, 그렇게 다시 정착하여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지만 그들은 몇 대에 걸쳐 일궈온 그 희망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만다. 고려인연구센터 소장 윤상원 교수는 《떠도는 땅》을 읽고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응축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민족인 고려인이 겪은 비극을 잊지 않게 하는 비망록”이라고 말했다. 김숨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꼼꼼하게 살피고 정리하여 고려인의 디아스포라적 운명을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시켰고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해 차례로 그들을 호명한다. 특히 소설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밀도 높은 대화에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부드러운 힘이 느껴지는 한편 각각의 인물에 빈틈없는 입체성을 부여한다. 뿌리내릴 땅을 애타게 갈망했지만 끝내 빼앗기고 그 땅 위에 하염없이 부유하는 사람들. 김숨은 《떠도는 땅》을 통해 암흑처럼 드리워진 어둠을 거두고 다시 대지의 녹진한 빛을 향해 나아갈 그들의 단단한 걸음과 굳은 결심을 글로써 피워냈다.
소설가 전성태는 《떠도는 땅》을 두고 “한 번도 개인의 발화를 박탈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주인 없는 목소리가 되어 인간의 운명을, 여성의 수난을 울림 있게 노래한다”고 평했다. 김숨은 비극적인 역사에 매몰된 인간의 숭고함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며 “뿌리를 잃고 떠도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이 소설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 주변, 경계에 놓인 사람들의 떠도는 삶까지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인간 존엄의 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하는 탁월한 힘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김숨 신작 장편소설 《떠도는 땅》 출간
읽는 이의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 작가 김숨. 그의 집요함과 세심함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힘과 서사의 밀도는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많은 에너지와 감정 소모를 필요로 하는 작품을 써내며 쉼표 하나, 말줄임표 하나에도 온 마음을 쏟는 그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써내려간 문학의 자리엔 숭고함이 남는다. 일본군 위안부, 입양아, 철거민 등 소외된 약자와 뿌리 들린 사람들을 보듬어왔던 그가 이번 작품에선 ‘디아스포라’를 노래한다. 집필 기간 4년, 소설가 김숨이 1년 9개월 만에 장편 《떠도는 땅》을 내보인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숨의 장편소설 《떠도는 땅》이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23주년을 맞은 김숨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존엄성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문단과 독자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인간 존엄의 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해온 그가 한국문학장(場)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 신작은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응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떠도는 땅》은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17만 명이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화물칸이라는 열악한 공간을 배경으로 열차에 실린 사람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 디아스포라적 운명을 이야기로 확장시킨 이 소설은 슬픔과 그리움이 고인 시간을 걸어온 고려인들의 비극적 삶, 그리고 오랜 시간 ‘뿌리내림’을 갈망했던 그들의 역사를 핍진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총 4년이 걸린 작품으로 격월간 문학잡지 《Axt》에 연재했던 소설을 2년 6개월 동안 개고하였다.
그리움이 삶의 전부인, 떠도는 땅 위에 부유하는 사람들
시리고 날 선 어둠 새로 스며드는 그들의 이야기
1937년 가을. 소비에트 경찰은 금실이 살고 있는 신한촌으로 몰려와 집집을 돌아다니며 일주일 치 식량과 당장 입을 옷가지만 챙겨 사흘 뒤 혁명 광장에 모일 것을 명령한다. 날벼락처럼 떨어진 갑작스런 통보에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묻지만 경찰들은 그저 “너희 조선인들에게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라고 말할 뿐이다. 금실은 보따리장사꾼인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함께 출발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남편도 곧 뒤따라올 것이라며 금실을 다그친다.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짧은 편지를 남기고 준비해둔 비상식량과 당도할 땅에 심을 씨앗들을 챙겨 열차에 몸을 싣는다.
“떠나라는 통보를 받고 아버지 무덤을 찾아갔지요. 그 앞에 넙죽 엎드려 시든 엉겅퀴를 쥐어뜯으며 아버지를 원망했지요. 죽으나 사나 고향땅에서 살 것이지, 남의 땅에 와서 자식이 집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게 하느냐고요.”_본문에서
사람들은 제대로 된 화장실도, 마음 편히 누울 자리도, 밖을 제대로 볼 수도 없는 동굴 같은 화물칸 바닥에 앉아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가족끼리 모여 있다. 양쪽 벽면에 널빤지를 가로놓아 2층을 만들어 그곳에도 사람들을 태웠다. 그들이 탄 열차는 사람이 아닌 가축을 실어나르는 화물열차. 금실과 같은 칸에 실린 사람들은 모두 스물일곱 명이다. 그중엔 몸이 불편한 노인, 배가 제법 부른 임신부, 호기심 많은 아이들,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도 있다. 참담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막막하고 커다란 두려움에 휩싸여 실의에 빠져 있다. 밖을 내다볼 창문조차 없어 어디쯤 왔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괘종시계를 들고 탄 남자는 아내의 재촉을 듣고 계속해서 태엽을 감는다. 그간 며칠이 흘렀는지 알 수 있게,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가늠할 수 있게. 질긴 소시지, 절인 돼지고기, 누룽지, 말린 빵…….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식량을 조금씩 아껴 먹으며 서로를 의지해 막막하고 어두운 시간을 그저 견디고 또 견딘다. 임신 7개월 차에 접어든 금실은 어딘지 모를 낯선 땅에서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 직감한다.
어둠 저편에서 열병을 앓는 듯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우린 들개가 되는 건가요?”_본문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온 그들의 사연이 금실, 따냐, 들숙, 인설, 오순 등의 목소리를 타고 차례차례 들려온다. 병원 간호사로 일하다 강제 이주로 인해 갑작스레 해고된 사람, 러시아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매몰차게 이혼당한 후 아이와 단 둘이 열차에 실린 사람,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젖먹이 아이를 안고 열차에 오른 사람……. 그때 누군가 입을 연다. 우리는 지금 ‘카자흐스탄’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고.
뿌리를 찾아 떠도는 이들을 그리는 섬세한 시선
그들을 호명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다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땅은 ‘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심고, 작물이 자라나고, 황무지가 비옥해지고, 그렇게 다시 정착하여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지만 그들은 몇 대에 걸쳐 일궈온 그 희망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만다. 고려인연구센터 소장 윤상원 교수는 《떠도는 땅》을 읽고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응축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민족인 고려인이 겪은 비극을 잊지 않게 하는 비망록”이라고 말했다. 김숨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꼼꼼하게 살피고 정리하여 고려인의 디아스포라적 운명을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시켰고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해 차례로 그들을 호명한다. 특히 소설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밀도 높은 대화에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부드러운 힘이 느껴지는 한편 각각의 인물에 빈틈없는 입체성을 부여한다. 뿌리내릴 땅을 애타게 갈망했지만 끝내 빼앗기고 그 땅 위에 하염없이 부유하는 사람들. 김숨은 《떠도는 땅》을 통해 암흑처럼 드리워진 어둠을 거두고 다시 대지의 녹진한 빛을 향해 나아갈 그들의 단단한 걸음과 굳은 결심을 글로써 피워냈다.
소설가 전성태는 《떠도는 땅》을 두고 “한 번도 개인의 발화를 박탈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주인 없는 목소리가 되어 인간의 운명을, 여성의 수난을 울림 있게 노래한다”고 평했다. 김숨은 비극적인 역사에 매몰된 인간의 숭고함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며 “뿌리를 잃고 떠도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이 소설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 주변, 경계에 놓인 사람들의 떠도는 삶까지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목차
1부
2부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