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문학동네 소설집
각각의 계절: 권여선 소설
- 저자/역자
- 권여선 지음
- 펴낸곳
- 문학동네
- 발행년도
- 2023
- 형태사항
- 271p.; 20cm
- 총서사항
- 문학동네 소설집
- ISBN
- 9788954692526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13.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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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 JG000000758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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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JG0000007584
-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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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한끗이 만들어내는 차이,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 권여선 신작 소설집
2021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기억의 왈츠」,
2020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실버들 천만사」,
2019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하늘 높이 아름답게」 수록
유려하고도 엄정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며 한국문학이 신뢰하는 이름이 된 작가 권여선이 삼 년 만에 신작 소설집 『각각의 계절』을 펴낸다. 술과 인생이 결합할 때 터져나오는 애틋한 삶의 목소리를 담아낸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 에두르지 않는 정공법으로 현실을 촘촘하게 새긴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 이후 일곱번째 소설집으로, 책으로 묶이기 전부터 호평받은 일곱 편의 작품이 봄날의 종합 선물 세트처럼 한데 모였다. 1996년에 등단해 사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하며 많은 사람의 인생작으로 남은 작품들을 선보여온 권여선은 이번 소설집에서 기억, 감정, 관계의 중핵으로 파고들며 한 시절을, 한 인물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 직시의 과정을 거쳐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결코 화사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과정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하는 곳으로 향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나는 원래 생겨먹은 데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권여선의 깊고 집요한 물음
소설집의 처음과 끝에는 ‘기억’을 주된 키워드로 하는 「사슴벌레식 문답」과 「기억의 왈츠」가 한 쌍처럼 나란히 놓여 있어 『각각의 계절』을 둥그렇게 감싸안는다. 오랫동안 외면해온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아연함과 서글픔을 그려낸 「사슴벌레식 문답」은 권여선의 오랜 주제인 기억의 문제를 한 발짝 더 밀고 나간 빛나는 수작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대학 신입생들은 낯선 공간에 던져진 새끼 오리들처럼 초창기에 대학가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11쪽)하듯 ‘준희’와 ‘부영’, ‘경애’, 그리고 ‘정원’ 역시 그랬다. 대학교에 입학해 같은 하숙집에서 살게 된 이들 넷은 함께 술을 마시고 일상을 공유하며 친밀하게 지낸다. 모임의 리더 격인 시원시원한 부영과 규칙적이고 예의바른 경애, 상냥하고 조심성이 많은 정원, 그리고 술을 좋아하고 즉흥적인 소설의 화자 준희는 해가 바뀌고 거주 환경이 달라진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려 하고 서로의 생일을 결사적으로 챙긴다. 네 사람이 아름답게 그려나가던 궤적은 그러나 정원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경애의 배반으로 엉클어지고 만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뿐이라는 사실만이 선명한 지금, 준희는 지난 세월을 엄격하고 절박하게 돌이켜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억의 중추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사슴벌레식 문답’이다. 오래전 네 사람이 함께 떠난 여행에서 정원은 숙소에 사슴벌레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방충망도 있는데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오느냐고. 주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윽고 이렇게 답한다.
어디로든 들어와.
그리고 가버렸다. 사슴벌레를 대변하는 듯한 그 말에 나는 실로 감탄했다.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의젓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21쪽)
어디로 들어왔느냐는 물음에 어디로든 들어왔다고 대답하기. 준희와 정원은 상대의 질문을 그대로 받아서 따라 하는 이 대화의 방식을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이름 붙이며 ‘마법의 버튼’이라도 생긴 듯 여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준희는 소설을 쓰고 싶어하고 정원은 연극을 하길 바라는, 다시 말해 두 사람 모두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어떤 연극을 하고 싶은지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어떤 소설이든 쓰고 싶고 어떤 연극이든 하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이 사슴벌레식 문답을 통해 두 사람은 어떤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산뜻하고 명료한 사슴벌레식 문답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준희의 시선 속에서 점차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뀌어간다. 그 대답에는 당시에는 읽어내지 못한 ‘무서운 뉘앙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29쪽)
하지만 권여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슴벌레식 문답에 담겨 있을 또다른 의미를 헤아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비록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다치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하더라도.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40쪽)는 소설 속 말을 빌린다면, 직시함으로써 스스로가 과녁이 되는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잿빛 수의의 기억을 은빛 베일의 기억으로 변환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찾아냄으로써 잊힌 시간과의 감동적인 소설적 조우에 성공했다”는 평과 함께 2021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기억의 왈츠」에도 과거를 또렷이 직시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는 동생 부부와 교외에 있는 숲속 식당에 찾아갔다가 오래전, 그러니까 삼십여 년 전의 기억과 마주한다. 대학생이던 그 시기 “내 손에 쥔 확실한 패는 오늘밖에 없고 그 하루를 땔감 삼아 시간을 활활 태워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211쪽)하며 살아가던 ‘나’ 앞에 ‘경서’라는 또래의 남자가 등장한다. 우연히 도서관 통로를 걸어가다가 술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구선배’가 ‘나’를 불렀고, 그 옆에 앉아 있던 경서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을 계기로 경서는 ‘나’에게 살갑게 대하고, 그러던 어느 가을날 ‘나’는 경서, 구선배 등과 함께 짧은 소풍으로 교외에 있는 식당에 가게 된다. 그 식당이 바로 현재의 ‘나’가 동생 부부와 함께 다녀온 그 숲속 식당이었던 것이다. 그간 ‘나’는 자신이 경서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고, 그건 “연애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애매한 연애”(209쪽)였다고, 소풍을 다녀온 뒤 서로 멀어지게 된 데에는 경서의 책임이 크다고 여겨왔지만 숲속 식당에 다녀온 지금, 삼십여 년 전의 기억은 오류와 회피의 더께를 걷어내고 ‘나’의 앞에 새롭게 떠오른다.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왜곡과 미화가 끼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권여선의 인물들은 마치 불순물을 제거하듯 자기 합리화의 욕망을 누르고 자신이 저질렀을지도 모를 실수와 과오를 천천히, 깊고 집요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친 끝에 바라보게 된 기억은 뜻밖에 인물들에게 선물처럼 다른 무언가를 쥐여준다. 「기억의 왈츠」에서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삶을 죽음으로 바꾸며 살아가던”(241쪽), 결코 되새기고 싶지 않던 이십대를 돌아본 후 ‘나’가 그 시절 경서에게 건네받은 위안의 손짓도 함께 떠올리게 된 것처럼. 그럼으로써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같은 쪽)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리고 그건 ‘기억을 하면서 두 번 (다르게) 살고, 기억을 쓰면서 세 번 (다르게) 사는’(권여선, 특별 소책자 ‘어텐션북’에서) 일일 것이다.
기억의 속수무책, 감정의 속수무책, 관계의 속수무책
우리를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권여선의 계절 소설
소설집의 제목인 ‘각각의 계절’은 「하늘 높이 아름답게」의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114쪽)라는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일흔두 살에 병으로 죽은 ‘마리아’를 회상하는 성당 신도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마리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재구성한다. 신도들은 각자가 기억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앞다투어 이야기하며 마리아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 시선에는 마리아를 자신들보다 아래에 놓는 은근한 배타성이 담겨 있다. ‘베르타’ 또한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91쪽) 하고 생각하며 그들의 위선을 예민하게 느낀다. 그렇다면 의문은 “자신이 왜 이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91쪽). 그에 대한 답변이 소설 마지막에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베르타는 마리아가 죽기 전 그녀와 함께 동행했다가 어떤 여자의 양산에 눈가가 찔리고 주저앉는데, 황급히 자신에게 다가와 눈가를 살피려는 마리아에게서 구취를 맡고 그녀를 밀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린 베르타는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114쪽)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같은 쪽) 하지만 ‘고귀함’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그 가차없고 엄격한 눈으로 자기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마리아는 성당 신도들이 퍼즐을 맞추듯 조각조각 이어붙여 완성된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는 그 계절에 맞는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읽히는 소설집의 제목은 계절뿐만 아니라 인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특히 다른 어떤 관계보다 질기고 단단하게 엮여 있는 모녀를 ‘각각의 계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실버들 천만사」의 ‘반희’는 코로나19로 일하던 체육관이 휴관에 들어간 어느 날 딸 ‘채운’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가까운 곳으로 함께 1박 2일 여행을 다녀오자고. 이혼을 한 후 채운과 따로 살고 있는 반희는 그 제안에 다소 놀란다.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어서,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50쪽)어서, 채운과 자신을 끈끈한 모녀 관계로 묶기보다 고유한 개인으로 지켜주고 싶어서 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왔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반희에게 채운은 “갑자기 말이 빨라”지면서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자기가 아는 펜션이 있다고, 차 몰고 갔다 차 몰고 오면 된다고, 거기서는 밥도 해먹을 수 있어서 밖에 나갈 일이 없다고, 거기 꼭꼭 숨어서 아무도 안 만나고 그 근처만 산책하고 그렇게 딱 하루만 지내다 오면 괜찮지 않겠느냐며”(49~50쪽), 마치 반희가 거절하리라는 걸 예상하기라도 한 듯 말을 쏟아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고, 서로를 엄마나 딸이 아니라 ‘반희씨’와 ‘채운씨’라고 부르기로 한다. 가정 내 역할이 아닌 한 개인으로 서로를 지켜주려는 이 행동은 여행의 산뜻한 시작을 알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행을 통해 그것이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한순간 깨닫게 된다. 반희에게 있어 채운은 자꾸 살피고 점검해야 하는 딸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채운에게 있어 반희 또한 어린 시절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반희는 담배를 끄고 두 손을 맞잡았다. 바람이 휙 지나가면서 진한 흙내와 풀 향이 스쳤다.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뇌를 젤리화하고 마음에 전족을 하고 기형의 꿈을 꾸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 밑도 끝도 없이 샘솟았고 반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뛰었다.(79쪽)
서로를 이어주는 수천수만 가닥의 실을 끊는 것이 아니라 밧줄로 꼬아 더 단단하게 연결하기. 뜻밖이면서 자연스러운 이 전환은 계절의 변화를 닮아 있는 듯하다. 계절이 달라지면 필요한 힘도 달라지듯이 두 사람은 이제 그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자신들 앞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계절이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의 연결된 흐름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구분함으로써 현재의 계절을 마무리하고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권여선이 우리에게 건네는 건 지금 필요한 새로운 계절, 그러니깐 ‘각각의 계절’인 듯하다.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 권여선 신작 소설집
2021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기억의 왈츠」,
2020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실버들 천만사」,
2019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하늘 높이 아름답게」 수록
유려하고도 엄정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며 한국문학이 신뢰하는 이름이 된 작가 권여선이 삼 년 만에 신작 소설집 『각각의 계절』을 펴낸다. 술과 인생이 결합할 때 터져나오는 애틋한 삶의 목소리를 담아낸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 에두르지 않는 정공법으로 현실을 촘촘하게 새긴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 이후 일곱번째 소설집으로, 책으로 묶이기 전부터 호평받은 일곱 편의 작품이 봄날의 종합 선물 세트처럼 한데 모였다. 1996년에 등단해 사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하며 많은 사람의 인생작으로 남은 작품들을 선보여온 권여선은 이번 소설집에서 기억, 감정, 관계의 중핵으로 파고들며 한 시절을, 한 인물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 직시의 과정을 거쳐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결코 화사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과정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하는 곳으로 향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나는 원래 생겨먹은 데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권여선의 깊고 집요한 물음
소설집의 처음과 끝에는 ‘기억’을 주된 키워드로 하는 「사슴벌레식 문답」과 「기억의 왈츠」가 한 쌍처럼 나란히 놓여 있어 『각각의 계절』을 둥그렇게 감싸안는다. 오랫동안 외면해온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아연함과 서글픔을 그려낸 「사슴벌레식 문답」은 권여선의 오랜 주제인 기억의 문제를 한 발짝 더 밀고 나간 빛나는 수작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대학 신입생들은 낯선 공간에 던져진 새끼 오리들처럼 초창기에 대학가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11쪽)하듯 ‘준희’와 ‘부영’, ‘경애’, 그리고 ‘정원’ 역시 그랬다. 대학교에 입학해 같은 하숙집에서 살게 된 이들 넷은 함께 술을 마시고 일상을 공유하며 친밀하게 지낸다. 모임의 리더 격인 시원시원한 부영과 규칙적이고 예의바른 경애, 상냥하고 조심성이 많은 정원, 그리고 술을 좋아하고 즉흥적인 소설의 화자 준희는 해가 바뀌고 거주 환경이 달라진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려 하고 서로의 생일을 결사적으로 챙긴다. 네 사람이 아름답게 그려나가던 궤적은 그러나 정원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경애의 배반으로 엉클어지고 만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뿐이라는 사실만이 선명한 지금, 준희는 지난 세월을 엄격하고 절박하게 돌이켜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억의 중추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사슴벌레식 문답’이다. 오래전 네 사람이 함께 떠난 여행에서 정원은 숙소에 사슴벌레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방충망도 있는데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오느냐고. 주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윽고 이렇게 답한다.
어디로든 들어와.
그리고 가버렸다. 사슴벌레를 대변하는 듯한 그 말에 나는 실로 감탄했다.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의젓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21쪽)
어디로 들어왔느냐는 물음에 어디로든 들어왔다고 대답하기. 준희와 정원은 상대의 질문을 그대로 받아서 따라 하는 이 대화의 방식을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이름 붙이며 ‘마법의 버튼’이라도 생긴 듯 여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준희는 소설을 쓰고 싶어하고 정원은 연극을 하길 바라는, 다시 말해 두 사람 모두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어떤 연극을 하고 싶은지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어떤 소설이든 쓰고 싶고 어떤 연극이든 하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이 사슴벌레식 문답을 통해 두 사람은 어떤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산뜻하고 명료한 사슴벌레식 문답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준희의 시선 속에서 점차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뀌어간다. 그 대답에는 당시에는 읽어내지 못한 ‘무서운 뉘앙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29쪽)
하지만 권여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슴벌레식 문답에 담겨 있을 또다른 의미를 헤아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비록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다치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하더라도.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40쪽)는 소설 속 말을 빌린다면, 직시함으로써 스스로가 과녁이 되는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잿빛 수의의 기억을 은빛 베일의 기억으로 변환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찾아냄으로써 잊힌 시간과의 감동적인 소설적 조우에 성공했다”는 평과 함께 2021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기억의 왈츠」에도 과거를 또렷이 직시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는 동생 부부와 교외에 있는 숲속 식당에 찾아갔다가 오래전, 그러니까 삼십여 년 전의 기억과 마주한다. 대학생이던 그 시기 “내 손에 쥔 확실한 패는 오늘밖에 없고 그 하루를 땔감 삼아 시간을 활활 태워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211쪽)하며 살아가던 ‘나’ 앞에 ‘경서’라는 또래의 남자가 등장한다. 우연히 도서관 통로를 걸어가다가 술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구선배’가 ‘나’를 불렀고, 그 옆에 앉아 있던 경서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을 계기로 경서는 ‘나’에게 살갑게 대하고, 그러던 어느 가을날 ‘나’는 경서, 구선배 등과 함께 짧은 소풍으로 교외에 있는 식당에 가게 된다. 그 식당이 바로 현재의 ‘나’가 동생 부부와 함께 다녀온 그 숲속 식당이었던 것이다. 그간 ‘나’는 자신이 경서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고, 그건 “연애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애매한 연애”(209쪽)였다고, 소풍을 다녀온 뒤 서로 멀어지게 된 데에는 경서의 책임이 크다고 여겨왔지만 숲속 식당에 다녀온 지금, 삼십여 년 전의 기억은 오류와 회피의 더께를 걷어내고 ‘나’의 앞에 새롭게 떠오른다.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왜곡과 미화가 끼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권여선의 인물들은 마치 불순물을 제거하듯 자기 합리화의 욕망을 누르고 자신이 저질렀을지도 모를 실수와 과오를 천천히, 깊고 집요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친 끝에 바라보게 된 기억은 뜻밖에 인물들에게 선물처럼 다른 무언가를 쥐여준다. 「기억의 왈츠」에서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삶을 죽음으로 바꾸며 살아가던”(241쪽), 결코 되새기고 싶지 않던 이십대를 돌아본 후 ‘나’가 그 시절 경서에게 건네받은 위안의 손짓도 함께 떠올리게 된 것처럼. 그럼으로써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같은 쪽)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리고 그건 ‘기억을 하면서 두 번 (다르게) 살고, 기억을 쓰면서 세 번 (다르게) 사는’(권여선, 특별 소책자 ‘어텐션북’에서) 일일 것이다.
기억의 속수무책, 감정의 속수무책, 관계의 속수무책
우리를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권여선의 계절 소설
소설집의 제목인 ‘각각의 계절’은 「하늘 높이 아름답게」의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114쪽)라는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일흔두 살에 병으로 죽은 ‘마리아’를 회상하는 성당 신도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마리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재구성한다. 신도들은 각자가 기억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앞다투어 이야기하며 마리아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 시선에는 마리아를 자신들보다 아래에 놓는 은근한 배타성이 담겨 있다. ‘베르타’ 또한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91쪽) 하고 생각하며 그들의 위선을 예민하게 느낀다. 그렇다면 의문은 “자신이 왜 이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91쪽). 그에 대한 답변이 소설 마지막에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베르타는 마리아가 죽기 전 그녀와 함께 동행했다가 어떤 여자의 양산에 눈가가 찔리고 주저앉는데, 황급히 자신에게 다가와 눈가를 살피려는 마리아에게서 구취를 맡고 그녀를 밀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린 베르타는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114쪽)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같은 쪽) 하지만 ‘고귀함’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그 가차없고 엄격한 눈으로 자기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마리아는 성당 신도들이 퍼즐을 맞추듯 조각조각 이어붙여 완성된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는 그 계절에 맞는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읽히는 소설집의 제목은 계절뿐만 아니라 인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특히 다른 어떤 관계보다 질기고 단단하게 엮여 있는 모녀를 ‘각각의 계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실버들 천만사」의 ‘반희’는 코로나19로 일하던 체육관이 휴관에 들어간 어느 날 딸 ‘채운’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가까운 곳으로 함께 1박 2일 여행을 다녀오자고. 이혼을 한 후 채운과 따로 살고 있는 반희는 그 제안에 다소 놀란다.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어서,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50쪽)어서, 채운과 자신을 끈끈한 모녀 관계로 묶기보다 고유한 개인으로 지켜주고 싶어서 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왔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반희에게 채운은 “갑자기 말이 빨라”지면서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자기가 아는 펜션이 있다고, 차 몰고 갔다 차 몰고 오면 된다고, 거기서는 밥도 해먹을 수 있어서 밖에 나갈 일이 없다고, 거기 꼭꼭 숨어서 아무도 안 만나고 그 근처만 산책하고 그렇게 딱 하루만 지내다 오면 괜찮지 않겠느냐며”(49~50쪽), 마치 반희가 거절하리라는 걸 예상하기라도 한 듯 말을 쏟아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고, 서로를 엄마나 딸이 아니라 ‘반희씨’와 ‘채운씨’라고 부르기로 한다. 가정 내 역할이 아닌 한 개인으로 서로를 지켜주려는 이 행동은 여행의 산뜻한 시작을 알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행을 통해 그것이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한순간 깨닫게 된다. 반희에게 있어 채운은 자꾸 살피고 점검해야 하는 딸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채운에게 있어 반희 또한 어린 시절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반희는 담배를 끄고 두 손을 맞잡았다. 바람이 휙 지나가면서 진한 흙내와 풀 향이 스쳤다.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뇌를 젤리화하고 마음에 전족을 하고 기형의 꿈을 꾸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 밑도 끝도 없이 샘솟았고 반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뛰었다.(79쪽)
서로를 이어주는 수천수만 가닥의 실을 끊는 것이 아니라 밧줄로 꼬아 더 단단하게 연결하기. 뜻밖이면서 자연스러운 이 전환은 계절의 변화를 닮아 있는 듯하다. 계절이 달라지면 필요한 힘도 달라지듯이 두 사람은 이제 그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자신들 앞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계절이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의 연결된 흐름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구분함으로써 현재의 계절을 마무리하고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권여선이 우리에게 건네는 건 지금 필요한 새로운 계절, 그러니깐 ‘각각의 계절’인 듯하다.
목차
사슴벌레식 문답--실버들 천만사--하늘 높이 아름답게--무구--깜빡이--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기억의 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