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일상이 고고학 04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제주 여행: 고고학으로 제주도 여행하는 법
- 저자/역자
- 황윤 지음
- 발행년도
- 2021
- 형태사항
- 415p.: 18cm
- 총서사항
- 일상이 고고학; 04
- ISBN
- 9791186274873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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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관광 지도에는 없는 제주 여행
고고학으로 만나는 전혀 새로운 제주
이 책은 기존 제주 여행의 관념을 뚫고, 고고학의 눈으로 제주와 만나는 역사 여행 에세이다.
현지인은 ‘탐라’라 했지만, 육지인들에겐 단지 물 건너 고을이었던 곳 ‘제주(濟州)’. 이 명칭의 거리만큼이나 느낌과 입장의 차이가 존재했던 곳. 그렇다면 오늘날 제주는 어떤 곳일까? 제주 하면 흔히 이국적인 휴양지를 떠올리는 우리에게 저자 황윤은 흥미진진한 역사 속 한 장면을 내민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의 병사로 징집, 제주로 떠나는 입장이 되어 비행기가 아닌 일부러 배를 타고서…. 덕후 출신 소장 역사학자인 저자의 편견 없는 가설과 다양한 문헌 해설, 그리고 부지런한 발품으로 만나는 제주 탐사 여행은 흥미진진함을 넘어 모험에 가까운 쾌감을 전한다.
호남지방통계청에 의하면 제주도는 이미 한해 관광객이 1500만 명이 넘었고(2019년 기준), 올해 4월부터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여행 도서 및 역사 여행 상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가 찾던 전혀 새로운 제주도 여행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자연체험과 문화유산 관광에만 국한되었던 제주도가 최근에는 맛집, 여행지, 카페 등 감성 여행으로 이어졌지만 이 책은 의외로 제외되어 있던 제주도의 역사를 개괄한다. 특히 전혀 접해보지 못한 고대사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제주를 들여다봄으로써 제주에 말이 많은 까닭, 제주의 심벌 돌하르방의 기원, 옛날 사람들은 배 타고 어떻게 제주에 갔는지, 탐라 및 제주도 명칭의 유래라든지, 제주의 정체성 등등을 현재 남아 있는 유물유적과 문헌 속에 존재하는 실제 역사를 통해 고증함으로써 알게 해준다.
1374년 제주
원명 교체기의 영향 속에 벌어진 참혹한 사건
<삼국사기>, <고려사>를 비롯해 <후한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일본서기>, <당회요> 등 주변국 사서에 언급된 ‘탐라국’을 문헌적으로 개괄하며 신석기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살펴본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유독 1374년 당대 최고 명장인 최영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314척의 배에 2만 5,605명의 병력을 제주도로 파견하여 소위 ‘목호의 난’을 진압한 사건에 주목한다. 목호의 난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 고려가 복속된 후 제주를 탐라총관부(耽羅總管府)라는 몽골의 자치령으로 운영하다가, 원나라가 무너지고 고려가 제주도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고자 할 때, 원나라 정부에 의해 제주도로 파견되어 말을 키우며 살다 현지화가 된 몽골인들이 크게 저항한 사건이다.
최영의 2만 5천 대군이 제주로 출병한 까닭은
고려의 병사가 되어 배를 타고 떠나보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3만 명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최영 장군의 병력은 엄청난 대군이었다. 그렇다면 최영 장군의 병사력은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숫자였을까? 공민왕(재위 1351~1374) 시절 몽골의 원나라를 쫓아내고 중국을 확보한 명나라에서 황제 주원장이 직접 고려 공민왕을 힐난하는 글을 보내온다. 그 글에는 고려가 외구들이 마음대로 침범하는데도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을 언급하며 명나라는 이번에 왜선 13척을 잡았다고 자랑하고, 왜구와 제주도 목호가 손잡고 대항하기 전에 고려가 이들을 빨리 처리해줄 것을 닦달하고 있다. 또 황제 주원장은 침범한 왜구를 제대로 막지 못한 명나라 장교의 목을 엄벌로 베고 반대로 왜선을 나포하여 본보기로 죽이니 바다가 잠잠해졌다면서 고려 왕도 이처럼 하라며 깐죽대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에 화가 난 공민왕이 1374년 최영에게 계책을 준비하도록 명하자 최영이 발끈하여 무려 배 2,000척을 건조하여 왜구를 잡고자 하였다. 이때 만든 배 314척을 이용하여 최영은 제주도에서 벌어진 목호의 난을 제압하였던 것이다. 당시 말 한 마리는 장정 3명의 가격이었다. 제주에는 총 1만여 마리의 말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최영이 2만 5천의 군대를 파병할 가치로 충분했던 것이다.
이에 저자 황윤은 최영 장군 부대에 징집된 안양쯤에 사는 고려 시대 사람이 되어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보기로 했고, 목포까지 가서 배를 타고 추자도에 들른 뒤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에 도착해서는 최영 장군과 목호의 흔적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생생한 내용들을 수집하였고, 그 과정에서 몽골이 제주도에 미친 영향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마친 저자는 집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탐방하며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 소설을 쓴다. 제목은 <갑인의 변>. 그래서 이 책은 책 속 책의 형태를 띤 아주 독특한 책이기도 하다.
고고학으로 만나는 전혀 새로운 제주
이 책은 기존 제주 여행의 관념을 뚫고, 고고학의 눈으로 제주와 만나는 역사 여행 에세이다.
현지인은 ‘탐라’라 했지만, 육지인들에겐 단지 물 건너 고을이었던 곳 ‘제주(濟州)’. 이 명칭의 거리만큼이나 느낌과 입장의 차이가 존재했던 곳. 그렇다면 오늘날 제주는 어떤 곳일까? 제주 하면 흔히 이국적인 휴양지를 떠올리는 우리에게 저자 황윤은 흥미진진한 역사 속 한 장면을 내민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의 병사로 징집, 제주로 떠나는 입장이 되어 비행기가 아닌 일부러 배를 타고서…. 덕후 출신 소장 역사학자인 저자의 편견 없는 가설과 다양한 문헌 해설, 그리고 부지런한 발품으로 만나는 제주 탐사 여행은 흥미진진함을 넘어 모험에 가까운 쾌감을 전한다.
호남지방통계청에 의하면 제주도는 이미 한해 관광객이 1500만 명이 넘었고(2019년 기준), 올해 4월부터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여행 도서 및 역사 여행 상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가 찾던 전혀 새로운 제주도 여행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자연체험과 문화유산 관광에만 국한되었던 제주도가 최근에는 맛집, 여행지, 카페 등 감성 여행으로 이어졌지만 이 책은 의외로 제외되어 있던 제주도의 역사를 개괄한다. 특히 전혀 접해보지 못한 고대사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제주를 들여다봄으로써 제주에 말이 많은 까닭, 제주의 심벌 돌하르방의 기원, 옛날 사람들은 배 타고 어떻게 제주에 갔는지, 탐라 및 제주도 명칭의 유래라든지, 제주의 정체성 등등을 현재 남아 있는 유물유적과 문헌 속에 존재하는 실제 역사를 통해 고증함으로써 알게 해준다.
1374년 제주
원명 교체기의 영향 속에 벌어진 참혹한 사건
<삼국사기>, <고려사>를 비롯해 <후한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일본서기>, <당회요> 등 주변국 사서에 언급된 ‘탐라국’을 문헌적으로 개괄하며 신석기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살펴본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유독 1374년 당대 최고 명장인 최영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314척의 배에 2만 5,605명의 병력을 제주도로 파견하여 소위 ‘목호의 난’을 진압한 사건에 주목한다. 목호의 난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 고려가 복속된 후 제주를 탐라총관부(耽羅總管府)라는 몽골의 자치령으로 운영하다가, 원나라가 무너지고 고려가 제주도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고자 할 때, 원나라 정부에 의해 제주도로 파견되어 말을 키우며 살다 현지화가 된 몽골인들이 크게 저항한 사건이다.
최영의 2만 5천 대군이 제주로 출병한 까닭은
고려의 병사가 되어 배를 타고 떠나보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3만 명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최영 장군의 병력은 엄청난 대군이었다. 그렇다면 최영 장군의 병사력은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숫자였을까? 공민왕(재위 1351~1374) 시절 몽골의 원나라를 쫓아내고 중국을 확보한 명나라에서 황제 주원장이 직접 고려 공민왕을 힐난하는 글을 보내온다. 그 글에는 고려가 외구들이 마음대로 침범하는데도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을 언급하며 명나라는 이번에 왜선 13척을 잡았다고 자랑하고, 왜구와 제주도 목호가 손잡고 대항하기 전에 고려가 이들을 빨리 처리해줄 것을 닦달하고 있다. 또 황제 주원장은 침범한 왜구를 제대로 막지 못한 명나라 장교의 목을 엄벌로 베고 반대로 왜선을 나포하여 본보기로 죽이니 바다가 잠잠해졌다면서 고려 왕도 이처럼 하라며 깐죽대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에 화가 난 공민왕이 1374년 최영에게 계책을 준비하도록 명하자 최영이 발끈하여 무려 배 2,000척을 건조하여 왜구를 잡고자 하였다. 이때 만든 배 314척을 이용하여 최영은 제주도에서 벌어진 목호의 난을 제압하였던 것이다. 당시 말 한 마리는 장정 3명의 가격이었다. 제주에는 총 1만여 마리의 말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최영이 2만 5천의 군대를 파병할 가치로 충분했던 것이다.
이에 저자 황윤은 최영 장군 부대에 징집된 안양쯤에 사는 고려 시대 사람이 되어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보기로 했고, 목포까지 가서 배를 타고 추자도에 들른 뒤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에 도착해서는 최영 장군과 목호의 흔적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생생한 내용들을 수집하였고, 그 과정에서 몽골이 제주도에 미친 영향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마친 저자는 집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탐방하며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 소설을 쓴다. 제목은 <갑인의 변>. 그래서 이 책은 책 속 책의 형태를 띤 아주 독특한 책이기도 하다.
목차
프롤로그
1. 여행의 시작
KTX 광명역
KTX를 타고
삼국 시대 탐라국
목포역 도착
통일신라 시대 탐라국
2.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박물관 소개
최영이 지휘한 선박 314척
중국 배, 고려 배
튼튼한 고려 배가 탄생한 배경
3. 배를 타고 제주로
목포항 국제여객터미널
고려 시대 제주도
중국 남부와 일본 사이의 제주도
해남우수영 여객선 터미널
퀸스타 2호
4. 추자도의 전설
삼별초의 난
제주도로 간 삼별초
추자도의 최영 사당
제주도에 도착
5. 제주도에서 하루 숙박
제주읍성
동문재래시장
제주목 관아 관덕정
6. 국립제주박물관
아침을 먹고
박물관 소개
쿠빌라이를 만난 성주 양호
고려 전시실
불탑사로 가는 길
7. 제주도 돌로 만든 상징들
불탑사 오층석탑
공민왕의 대반격
돌하르방 유래
복신미륵의 모자
제주도로 이주한 몽골인들
8. 상륙한 최영 부대와의 치열한 전투
항파두리성
최영의 이력
명월포와 명월성
목호의 저항
새별오름
9. 몽골이 남긴 제주도 남부 유적
제주진미마돈가
추사 유배지
한때 제주도 최대 사찰이었던 법화사
몽골 사람들이 주로 살던 지역
하원동 탐라 왕자 묘
강정동 대궐 터
범섬
에필로그
《갑인의 변》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