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종합자료센터

로그인회원가입

제주시 종합자료센터

자료찾기

  1. 메인
  2. 자료찾기
  3. 한국십진분류검색

한국십진분류검색

일반자료NEW

백비가 일어서는 날: 김순선 시집

저자/역자
김순선 지음
발행년도
2018
형태사항
141 p.; 21 cm
ISBN
9788961432054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북카페JG0000008363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JG0000008363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북카페
책 소개
┃작품해설┃

삶의 진실을 이루는 삶의 생동감
- 김순선 시집 『백비가 일어서는 날』


고 명 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1. ‘백비’를 세우기 위한 4·3의 정명正名

에돌아갈 필요 없이, 김순선의 시집 제목을 보고 순간 멈칫하였다. 4·3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백비白碑’의 존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절로 몸과 마음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올해는 4·3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범국민 차원으로 4·3의 역사적 진실을 널리 확산할 뿐만 아니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정부도 적극 나설 것을 대통령이 4·3의 영령 앞에서 힘주어 강조한 터라 김순선 시인의 시집 『백비가 일어서는 날』의 제목이 함의하는 시적 울림이 한층 명료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심연에 얼어붙은 기억들이 깨어나고
관덕정 광장에 울려 퍼지던
그날의 함성으로
누워 있던 백비들이
일어서리

― 「백비가 일어서는 날」 부분

4·3평화공원에 누워있는 ‘백비’를 세우기 위해 해결할 과제 중 가장 큰 것은 4·3에 대한 정명正名이다. 4·3의 역사적 진실은 결국 4·3에 대한 올바른 이름을 명명하는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심연에 얼어붙은 기억들이 깨어나”는 것으로부터 겸손히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덕정 광장에 울려 퍼지던/그날의 함성” 속에서 솟구치던 제주 민중의 염원을 진솔히 만나야 한다. 그동안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꽃으로 피어나는 섬”(「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서 “지울 수 없는 어두운 상처/노을 지는 슬픔 위로/까마귀들만/까악까악”(「돌아갈 수 없는」), 하는 저주받은 울음에 기댄 채 제주를 휘몰아친 4·3의 대참상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자족할 게 아니라 4·3의 정명을 향한 고통스런 기억투쟁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시편에서 우리가 탐구해야 할 4·3의 과제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부슬부슬 비 오는 그믐밤에
소년은 가파른 오름을 오른다
바람에 떠밀리듯
대숲 궤(바위굴)에서 신음하는 삼촌을 생각하며
두 손 불끈 쥐고
무엇에 홀린 듯
오름을 오른다

― 「봉홧불」 부분

옛날, 우리 집
통시로 가는 모퉁이에
분꽃나무 하나 있어
어둑한 저녁이면
가지가 미어지게 피어
통시길 훤하였다

(중략)

분꽃같이 어우러져
잘사는 사람도 없고 못사는 사람도 없는
돌담위로 음식 나누어 먹으며
척박한 땅이라도 함께 수눌며
다 같이 잘 살아보고 싶었던 삼촌들

― 「분꽃 같은 삼촌들」 부분

소년이 “무엇에 홀린 듯” “가파른 오름을”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시의 맥락으로 볼 때, 소년은 “대숲 궤(바위굴)에서 신음하는 삼촌을 생각하며/두 손 불끈 쥐고” 숨이 턱에 찬 채 오름을 올랐다. 삼촌과 소년 사이에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소년이 오름을 오르는 이유는 봉홧불을 지피기 위해서이며, 봉홧불은 오름마다 타올라 삼촌들이 맞서 싸우는 역사적 소명을 제주의 민중에게 알린다. 말하자면, 이 봉홧불은 제주 공동체의 절멸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항거이면서 제주 공동체가 아름답게 지켜온 제주의 생활감각과 정치윤리가 훼손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투쟁의 표현이다. 「분꽃 같은 삼촌들」에서 시인은 주목한다. 통시길을 훤하게 비춰주는 분꽃의 무리에서, 시인은 “잘사는 사람도 없고 못사는 사람도 없는/돌담위로 음식 나누어 먹으며/척박한 땅이라도 함께 수눌며/다 같이 잘 살아보고 싶었던 삼촌들”의 일상으로부터 오랫동안 제주 공동체를 평화롭게 지탱해온 생활감각과 정치윤리를 상기한다. 이러한 삼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제 집과 마을을 떠나, 제주 공동체의 평화로운 삶과 유리된 채 제주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협하는 세력들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삼촌들의 이 같은 모습은 4·3의 정명을 위해 가볍게 넘겨볼 수 없는 것으로, 4·3무장대에 대한 문학적 탐구를 하는 데 새로운 성찰의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4·3의 정명은 관념과 추상을 넘은 제주 민중과 제주 공동체의 삶의 현실로부터 겸허히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4·3의 또 다른 역사적 풍경을 살펴보자.

바람 앞에 촛불
신촌리 사람들은 다 폭도다!
기관총 앞에서 사시나무 떨 듯
한마디 변명도 꿀꺽 삼켜버린
초긴장 속에서

두 팔 벌려
기관총 앞에 딱 막아선 육지사람
나부터 죽여 놓고 이 사람들 죽이게
총을 든 순경들도 무장대에게 대항 못했는데
어찌 집에서 잠자던 주민들이 그 사람들을 대항할 수 있겠는가
통 사정하는
서북청년으로 왔다가 순경이 된
지미둥이 순경

― 「한 알의 밀알」 부분

4·3의 진실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 장면 또한 엄연히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한 풍경이다. 물론, 국가권력을 참칭하여 맹목적 반공주의로 무장된 서북청년단이 제주 공동체를 파괴하고 유린했던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범죄다. 그런데, 시인은 이 같은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재현하지 않고 신촌리 사람들을 살린 ‘지미둥이 순경’의 선행을 드러낸다. 물론, 이 ‘지미둥이 순경’의 선행이 서북청년단의 폭력과 언어절言語絶의 악행 자체에 조금이라도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미둥이 순경’과 같은 서북청년단의 선행 자체를 시인이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북청년단 안에도 예외적으로 선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보다 시인이 주목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입장에서 “죽을 각오로 목숨을 내려놓을 때/한 알 밀알”로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신촌리 사람들을 살려낸 ‘지미둥이 순경’의 생명을 향한 숭고한 용기가 아닐까. ‘지미둥이 순경’의 상식적 판단에서는, 잠을 자고 있는 무고한 양민들이 무장대에 저항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총을 든 순경들도 무장대에게 대항 못”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따라서 이것 또한 4·3의 정명을 향한 도정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기존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의 정치적 구도 속에서 4·3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자칫 간과할 수 있는, 가령 ‘지미둥이 순경’과 신촌리 사람들 사이에 있던 삶의 진실을 새롭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삶의 진실’과 시인의 품성

이렇듯이 4·3을 노래한 김순선 시인의 시편들을 곰곰 음미하고 있노라면, 새삼 ‘삶의 진실’처럼 소중하고 긴요한 시적 주제가 달리 있을까. 결국 4·3의 정명도 ‘삶의 진실’을 넘어설 수 없다면, ‘삶의 진실’을 소박하면서도 집요하게 탐문하는 것만큼 새롭게 정진해야 할 시작詩作도 없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물허벅」을 음미해보자.

어머니의 삶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생명의 젖줄 같은
그 많은 식구들 먹이고 입히고 씻기려고
어머니의 등짐으로
수없이 물을 길어 나르셨네

언니가 시집가던 날엔
물허벅이 장구되어
허벅 장단에 동네 삼촌들 어깨
들썩들썩 절로 흥을 돋우었다네

사돈님 부고 소식엔
제일 먼저 팥죽을 쒀 허벅에 담고
한걸음에 달려가셨네

― 「물허벅」 부분

제주 공동체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물허벅은 시에서 노래되고 있듯, “어머니의 삶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생명의 젖줄”이다. 가족의 삶을 위해 어머니는 십중팔구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물허벅을 등에 지고 “수없이 물을 길어 나르셨”다. 물을 길어 나르실 때마다 어머니의 허리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삶의 신산고초를 견디며 점점 굽어졌을 것이고, 물허벅에 가득 찬 물을 길어 나르면서 가족의 행복을 기원했으리라. 이런 물허벅은 가족의 생존에만 쓰임새 있는 효용가치로서 기능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생활 악기로서 손색이 없는 기능을 맡기도 하고, 때로는 삶과 이별하는 자리에 걸맞는 용기로서 기능을 맡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위 시에서 재현되고 있듯, 언니의 혼례를 치르는 날 물허벅은 타악기 장구로 변신하여 “허벅 장단에 동네 삼촌들 어깨/들썩들썩 절로 흥을 돋우”는 노릇을 한다. 훌륭한 타악기가 아닐 수 없다. 제주 공동체의 삶의 리듬은 물허벅 장단이 절로 자아내는 제주 민중의 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흥을 끄집어내고 동네 삼촌들은 물허벅 장단이 순간 만들어놓는 축제의 놀이 한바탕에 온몸을 맡긴다. 이 순간, 혼례의 형식을 빈 놀이 한바탕에서 제주 민중의 삶의 고통은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사돈님 부고 소식”을 받자 어머니는 “제일 먼저 팥죽을 쒀 허벅에 담고” 문상길을 재촉한다. 생의 감각을 붇돋우는 데 삶의 악기로서 기능을 맡은 물허벅은 한 생명의 소멸을 맞이한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문상을 위한 운반 도구로서 그 역할이 바뀐다. 말하자면, 삶의 기능에서 죽음의 기능으로 변환한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전해주고 싶은 물허벅의 내력이며, 기실 이것은 특정한 개별 사례가 아니라 제주 공동체의 ‘삶의 진실’과 깊숙이 연루된 제주의 삶의 내력이다.
시인이 웅숭깊게 이해하고 있는 제주의 삶의 내력은 자연스레 제주가 지닌 아름다움의 진경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하가리 연못 연꽃들
멱 감고 놀던 자리에 슬며시
야자수나무 물구나무서고
꿈꾸던 가로등도 풍덩
물위에 상현달로 떠오르고
고즈넉한 육각정도 하늘 딛고
집을 지었다

연꽃이 되고 싶은 풍경들
하나 둘
하가리 연못 위로
달뜬다

― 「하가리 연못」 부분

멀리서부터 발길 재촉하는
물미역 냄새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둥굴둥굴 모나지 않은 성격
포효하며 달려오는 너의 기상

자글자글
변함없는 다독거림에
허물어져 가는 빈농가 같은 쓸쓸한 가슴이
열리는 곳

바다의 속살 매끄러운 몽돌
그리운
알작지

― 「그리운 몽돌 바다」 부분

「하가리 연못」은 제주 애월 중산간 마을에 있는 연못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그리운 몽돌 바다」는 제주시 내도동 주변에 산재한 몽돌해안가, 속칭 알작지왓을 대상으로 씌어진 시편이다. 시인은 제주의 아름다운 진경을 드러내기 위해 중산간 마을의 연못과 바닷가의 몽돌해안가를 포착한다. 중산간 하가리 마을 연못 안에는 야자수나무, 가로등, 상현달, 육각정 등이 한데 어우러져 “연꽃이 되고 싶은 풍경들”을 연출한다. 연못의 으뜸이 연꽃이라는 것을 아는 듯, 연못 주변에서 연꽃의 들러리로서 존재하던 것들이 밤이 되자 연꽃의 자리를 탐낸다. 이 모든 모습들에 하나하나 담담히 애정어린 시선을 두고 있는 시인의 아름다움을 향한 자연스러운 태도가 잔잔히 번져온다. 대상을 향한 시인의 시적 태도는 이렇게 아주 자연스레 소박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알작지를 사랑하는 시인의 미의식과 이것의 안팎을 이루는 시인의 품성을 짐작하도록 한다. 알작지에 놓여 있는 크고 작은 몽돌들이 갖고 있는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성격” 그렇지만 물러터진 게 아니라 “포효하며 달려오는 너의 기상”을 두루 겸비하고 있는 몽돌은, 감히 말하건대 김순선 시인과 동일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몽돌 해안가를 시인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데에는, “자글자글/변함없는 다독거림에/허물어져 가는 빈농가 같은 쓸쓸한 가슴이/열리는 곳”이 바로 이곳 알작지왓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알작지에서 몽돌이 건네는 그 온몸의 대화를 들으며, 몽돌이 혹시 건네고 있을지 모르는 ‘삶의 진실’을 겸허히 수용한다.

고만고만한 무리 속에서
고만고만 살아가는 것이
행운이란 걸

― 「행운」 부분

“고만고만 살아가는 것”,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고만고만한 무리 속에서” 사는 것도 결단코 쉽지 않다. 삶의 욕망을 모두 내려놓은 것, 자포자기이면 모를까, 아니면, 시쳇말로 도인처럼 삶의 욕망을 초월하면 모를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삶의 욕망을 제껴놓은 채 “고만고만” 삶을 사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앞서 제주의 미의식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 속에서 시인의 품성과 연관된 ‘삶의 진실’을 탐문하고 있듯, 시인이 ‘고만고만 살고 싶은 것’은 삶의 욕망에 대한 자포자기도 아니고, 삶의 욕망을 초월한 것도 아닌, 적절한 만큼의 삶의 욕망에 만족하는 삶을 살겠다는 시인의 ‘삶철학’에 대한 간결한 시적 표현이다. 여기에는 시인이 득의한 ‘삶의 진실’이 오롯이 녹아 있다. 즉 삶이란 부산스레 호들갑을 떨었다고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함의한 삶의 내밀한 충일감이 곧 ‘삶의 진실’을 이루는 바탕이다. 그래서 가령,

축제는 끝났지만
벚꽃 안주삼아
자꾸만 소주잔을 돌리며
불콰하게 벚꽃처럼 물들고 있다

벚꽃식당 축제는
지금부터다

― 「벚꽃식당」 부분

에서처럼 화려한 벚꽃축제는 끝났지만, 또 다른 “벚꽃식당 축제는/지금부터”라는, 시적 인식의 전회가 생긴다. ‘벚꽃축제’가 끝나고 ‘벚꽃식당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시적 인식의 전회는 시인의 ‘삶철학’을 말해준다. ‘벚꽃축제’가 펼쳐지는 동안 벚꽃식당은 축제를 즐기는 상춘객들의 놀이 마당이었다. 왁자지껄한 상춘객들의 한바탕 축제가 끝난 후 고요가 찾아든 벚꽃식당은 지금부터 또 다른 축제의 한바탕을 연출한다. 상춘객이 빠져나간 그 텅 빈 공허한 식당 안은 아직 남아 있는 축제의 기운으로 식당 안 축제의 에너지를 소멸시킨다. 상춘객이 없다고 축제가 종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춘객이 떠나간 벚꽃식당 안은 상춘객의 축제 한바탕으로 뿜어낸 축제의 생생한 삶의 생동감으로 또 다른 축제가 펼쳐진다.

3. 삶의 생동감과 시적 정동情動

여기서, 김순선 시인의 이번 시집을 통독하면서 ‘삶의 생동감’은 곳곳에서 번뜩인다. 이것 역시 ‘삶의 진실’을 탐구하는 도정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시인의 시적 정동情動이다.

눈 감으면
둥근 보름달 두둥실 떠오르고
늦은 저녁 먹은 아이들이
골목에서 하나 둘
올래 동산에 모여든다
대낮보다 더 밝은 달빛아래
술래잡기 하고 방칠락 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뛰어 놀던
순옥이, 영자, 영주, 옥선이……
재잘재잘 새소리와 함께 말을 걸어온다
나무 사이사이 그림자처럼 숨어 있던
솔방울 같은 친구들
친구야! 이름 부르며 튀어나올 것 같다

― 「달맞이 길」 부분

유년 시절처럼 삶의 생동감을 생생히 간직한 시절이 있을까. 이것은 시인의 유년 시절을 향한 노스탤지어 감정의 표백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이 시를 접하면서, 문득 우리들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파노라마로 스쳐지나간다. 지금 그때, 그곳을 뛰놀던 “순옥이, 영자, 영주, 옥선이……”처럼 우리의 유년 시절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술래잡기 하고 방칠락 하고/시간가는 줄 모르게 뛰어 놀던” “솔방울 같은 친구들”의 애꿎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쩌면, 우리들은 유년 시절의 이토록 아름다운 기억들을 현실의 차가운 일들에 애오라지 망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곳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명분을 자기합리화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키워낸 유년 시절의 소중한 그 무엇을 한갓 과거의 쓰잘데없는 기억의 풍경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무리 현실이 “외출도, 가출도 아닌/버려진 존재”(「버려진 인형」)들 투성이로 우리의 미래가 암울하게 전개될지 모르더라도, 우리의 삶을 추스를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 유년 시절의 삶의 생동감을 쉽게 폐기처분해서 곤란하다.
물론, 그렇다고 김순선 시인이 유년 시절의 삶의 생동감에만 편중된 것은 아니다. 그는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요배 화가로부터 예술과 삶의 생동감을 새롭게 발견한다. 예술과 삶의 흥취를 만끽하면서 자유를 구가하되, 이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그의 예술적 품격은 방종과 거리가 멀다. 모든 구속에서 자유롭게 풀려나 무한 자유를 추구하되, 그것은 시인에게 자기를 무작정 해체시켜버리는 탈자아脫自我가 아니라 제주의 자연에 겸손히 대하면서 모든 대상을 배려하는 도정에서 참자아를 절로 만나고 싶어하는 예술가로서 다가온다. 물론, 강요배 화가로부터 시인은 소년의 정동情動을 눈여겨 본다. 민중 화가로서 거목인 그로부터 시인은 소년의 눈을 훔쳐본 것이다. 그렇다면, 조심스레 추정해볼 수 있으리라. 김순선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진실’과 그것을 이루는 ‘삶의 생동감’은, 그가 존경하고 있는 강요배 화가의 그것을 감히 넘어서고 싶은 시적 욕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대해봄직하다. 김순선 시인의 다음 시집이 무척 기대된다.

내가 만난 사람은
흥을 아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막걸리 한잔에
덩실덩실 춤사위가 이어지고
절제된 몸짓 뒤로
삶의 파장이 따라온다
애기동백 가락에 흠뻑 취해
제주의 얼을 곡선으로 풀어낸다

― 「거목」 부분
목차

자서 / 5

제1부
백비가 일어서는 날 _12
믿을 수 없는 이야기 _14
설마 _16
산 증인 큰넓궤 _18
돌아갈 수 없는 _20
분꽃 같은 삼촌들 _22
거기 있었네 _24
봉홧불 _26
행불자 _28
진실 _30
한 알의 밀알 _32
삘기 꽃이 피었다 _34
산전 가는 길 _35
동참 _37
알뜨르 비행장 가는 길 _39
폭도새끼 _41
누각에 오르면 _43

제2부
삶을 위하여 _46
리모델링 _48
그네의자 _50
버려진 인형 _52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 _54
내가 설 자리 _55
도두봉을 오르는 사람들 _56
물허벅 _58
메뚜기 한 마리 _60
신발장 _62
일상의 기적 _64
조리사의 망사리 _66
피난처 _68
형광등 _70

제3부
벚꽃공인중개사무소 개업일이 궁금하다 _74
변산 바람꽃 _76
사람꽃 구경 _77
벚꽃 식당 _79
입춘 _80
봄비 _81
봄의 향연 _83
산책 _85
수선화 꽃다발 _86
여름비 _88
우산 속 여인 _89
하가리 연못 _90
행운 _92
암석 _93
그리운 몽돌 바다 _94

제4부
물을 끓이며 _98
개 짖는 소리 _100
눈 위를 걷는다 _102
하염없이 _103
눈 오는 날 _104
미포철길 _106
달맞이 길 _108
전시실 속 똥파리 한 마리 _110
감천 문화마을 _112
고분 _114
안압지의 밤 _115
첨성대 앞에서 한 컷 _117
청라언덕 _119
김광석 길 _120
코고는 소리 _121
거목 _123

작품해설┃고명철·삶의 진실을 이루는 삶의 생동감 _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