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제주기행: 키워드로 읽는 탐라학 개론
- 저자/역자
- 주강현 지음
- 펴낸곳
- 각
- 발행년도
- 2021
- 형태사항
- 471p.; 21cm
- 원서명
- 돌담의 역사부터 감귤밭의 눈물까지 제주와 교감하는 첫 번째 입문서
- ISBN
- 9791188339723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911.99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북카페 | JG0000006742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JG0000006742
- 상태/반납예정일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올레길을 걸으며 바람에 실려 온 신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제주도에 대한 ‘지식’이 ‘교양’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가 알아야 할 제주의 모든 것!
청년 시절부터 제주도와 인연을 맺어온 주강현 교수가 그 사랑의 결실로서 처음으로 제주에 관한 책을 내게 되었다. 그의 시선은 바람, 돌, 곶자왈 등 모질지만 특이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제주의 자연과 그 배후에 숨 쉬고 있는 험하고 고단했던 역사에 날카롭게 꽂혀 있다. 놀랍다. 제주도 곳곳을 누비며 착실히 발품을 판 내력이 여실히 나타나고 잇다. 기왕에 그가 쓴 글에서 발휘되었던 예의 박람강기가 이 제주기행에서 비로소 진품으로 출현한 것이다. - 현기영(소설가)
주강현 박사는 척박한 한국 해양인문학 풍토에서 독보적인 해양문화학자이자 이미 40종 이상의 저서를 상재한 필력 있는 저술가이기도 하다. 2011년 웅진출판사에서 《제주기행》을 낸 바 있다. 발간 10년만에 대대적인 개정증보를 통해 《제주기행》 결정판본을 출간했다. 출판사 역시 제주의 토종 출판사인 도서출판 각으로 옮겼다.
그는 제주와 40년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제주의 민속학자들과의 교류나 제주 민속현장조사를 위한 발걸음을 자주 옮겼다. 이러한 그의 제주행은 제주섬의 ‘삼춘들’과의 오랜 인연을 쌓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제주에 대해 알게 모르게 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생지식의 선생이 되어 주었고 그는 이러한 삼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소위 ‘육짓것’의 시선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진기하게 그 가치를 인식하는 제주전문가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이런 제주 편력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이자,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소위 ‘육짓것’의 시선 또는 경계인의 시선으로 제주의 제대로 된 인문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주 박람강기의 교양안내서다.
제주의 표피가 아니라 원형질에 근접되길 희망하는 이가 있다면, 마중물 역할을 감내할 저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멜은 주변을 편안하게 느끼고 자기 땅이라 생각하는 토착민보다 이방인이(고통은 더따르겠지만) 더욱 면밀히 탐색하면서 적응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방인은 자신이 들어가는 사회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제주라는 섬을 이방인, 혹은 경계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에서 밝힌 그의 글처럼 이 책의 장점은 토착민보다 더욱 면밀히 살피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데 있다. 그의 글 곳곳에서 드러내는 인문적 시선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이 집필 목적이 ‘어디 가면 제주의 무엇을 볼 수 있다’는 관광안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제주문화의 표피를 걷어낸 제주의 역사와 문화사에 얽힌 다양한 배면사를 드러낸다. 진실은 장막 뒤에 있는 것처럼, 현상으로 보이던 제주문화의 그 속살을 드러내는 데그의 필력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제주 해녀에 대한 그의 글을 보자. 제주 해녀 하면 우리는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떠올린다. 또한 제주 해녀는 척박한 제주섬의 강인한 여성상을 표상하기도 한다. 그런 해녀의 이미지 또는 인식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은 교정을 요구한다.
제주도에는 여성을 찬미하는 다양한 속담이 전해온다. ‘한 집이 부재(딸 많은 집이 부자).’ 딸이 많으면 시집갈 때까지 물질을 해서 억척스럽게 벌어서 집안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비슷한 속담이 많다. 단순한 여성 찬미가 아니라 고통까지 포함한 양가성을 띤 속담이며, 남성을 대신하여 온몸으로 집안을 지켜나갔던 제주 여성의 엄중했던 현실을 말해준다.
17세기 전반만 해도 전복을 따서 관아에 바치는 것은 여자들만의 의무가 아니었다. 《제주풍토기》에 ‘남녀가 서로 섞여 있다(相雜)’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남녀가 함께 하던 물질(물일의 제주 방언)이 어느 순간 남자는 빠지고 여성들만의 물질로 전화되었다.
그리고 전 근대시대 제주 해녀, 즉 역사적으로 존재해 온 제주 해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현대에 소비되고 있는 해녀의 표상 그 이면을 파고들어 간다. 그는 강인한 제주 해녀 이면의 제주 여성 잔혹사까지 함께 볼 때 비로소 제주 여인-해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가 얘기했던 제주 해녀의 양가성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제주를 지칭할 때 앞에 붙는 ‘국제관광지’인 제주의 생태와 문화는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제주문화의 내력사를 알아야만 비로소 오늘의 원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문화의 어디에나 겹쳐 있는 이 양가성의 이해가 비로소 제주를 이해하 는 기행의 본질임을 그는 시종일관, 아시아와 세계적 차원의 박람강기의 지식을 동원해, 오랜 저술 활동에서 오는 뱀 발 없는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가려 뽑은 17개의 테마들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인문시선으로 포착해 자칫 놓치게 될 제주문화상의 본질을 탐구하고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눈에 보이는 제주 너머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탐라-제주의 문화상, 그 현재형의 진실을 마주하고 싶다면, 그가 안내하는 제주문화의 정수를 그의 시선과 글발을 통해 경험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이번에 대대적으로 손질을 가한 문장과 반 이상을 교체한 발굴 사진들은 이 책의 또 다른 볼거리이기도 하다. 10년 만에 새롭게 태어난 《제주기행》. 그는 이 책이 잠깐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제주를 제대로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언제나 길벗처럼 함께하는 스테디셀러가 되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붙인 판본의 이름이 결정판본인 것이다. 저자의 소망대로 이 책이 오래도록 세대를 넘어 읽히는 스테디셀러로 살아남기를 고대해본다.
왜 ‘탐라학 개론’인가?
‘제주기행’이라는 대중적 제목을 달았지만, 이 책은 ‘키워드로 읽는 탐라학 개론’ 혹은 ‘탐라 인문교양서’다. 제주를 알려주는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탐라’의 내재적 관점에서 기술된 책은 드물다. 제주와 탐라의 차이는 무엇인가. 역사적 아이덴티티의 문제다. 육지에 딸린 ‘복속된 섬’이냐, 아니면 ‘바다로 진출한 섬’이냐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변방으로 바라보는 육지부·중심부 시각과 반대되는 탐라적 정체성이 요구된다. 엄밀히 말해 제주도 역사는 있으되 기록은 제한적인 ‘유사무서(有史無書)’다. 이 책은 현실로서의 제주도를 기반으로 하되, 오랜 역사적 적층물인 탐라라는 망탈리테(심성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
탐라는 그 자체가 ‘잊힌 왕국’이 되고 말았으니, 제주인의 심성 어딘가에 남아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제주를 돌아다녔다. 수십 년의 경험과 정보, 가르치고 조사 다니면서 축적된 모든 것을 모아서 이 책을 탄생시켰다. 2011년,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초판본이 나왔다. 판권 만료와 동시에 제주 출판사 ‘각’으로 옮긴다. 제주 문화예술운동의 상징이기도 한 박경훈 대표와의 오랜 우정을 기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제주를 제대로 알리는 ‘결정본’을 만들자는 도원결의를 통해 출간에 이르렀다. 제주에서, 제주 이야기를, 제주 출판인의 손으로 펴내는 소감이 감개무량이다. ‘경계인’으로서 제주 사랑은 계속될 것이고, 제주 관련 연구도 그러할 것이다. 오래전 ‘한 권으로 탐라를 품을 수 있는’ 책이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책을 준비했다. 제주대 석좌교수로 10여 년 한국학을 가르치면서 특히 제주 해양문명사에 주력했다. 그 와중에 아라동 감귤밭에서 살면서 초판본을 펴냈다. 이번 책은 가능한 초판본을 살리되 두 꼭지를 추가하고, 새로운 자료도 덧붙였다. 글은 압축했고, 사진은 옛 사진을 적잖게 발굴해 대대적으로 교체했다.
흑백사진의 ‘어제 같은 옛날’이 던져주는 무게감은 역사 그 자체다. 40여 년 전인 1982년 여름, 제주에 처음 왔다. 출장길에 여행 일정을 넣어서 성산포와 함덕, 화순에서 묵었다. 일출봉 아래는 고즈넉한 초가집 동네였으며, 함덕은 해변도로가 뚫리기 전이라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화순 금모래 해변도 발전소가 들어오기 전이라 전형적 시골 마을이었다. 1985년, 민중문화운동 맥락에서 전국 단위로 추진한 강연회의 강사로서 굿 연구가 문무병 선생, 김수열 시인 등과 함께하던 기억이 난다. 이후의 시절인연은 겹겹이 쌓여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애월 납읍리에 김석윤 건축가의 도움으로 돌건축을 올리고,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의 본거지 겸 삶의 터전으로 10여 년 살았다. 주머니 털어서 ‘인문의 바다’ 강좌를 열고 제주 삼춘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이끌었다. 인연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현재는 애월 곽지의 웃뜨르에서 글도 쓰고 작은 정원을 가꾸는 중이다. 애월 농부와 어민들과 제주 막걸리 한잔하면서 그들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얻고 있다. 25년 전. ‘섶지코지 가는 길’이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부제는 ‘관광지에서 방황하지 말 것’이었다. “나는 지금 섶지코지를 걷고 있다. 부서지는 파도가 바위에 물보라를 만들고, 시원스럽게 펼쳐진 제주도 동해의 수평선쯤에 어선 한 척 떠 있다. 물이 맑고 파랗다. 파란 하늘과 파란 물이 맞닿아 수평선 분간이 애매할 정도다. 굳이 따진다면 물색이 더욱 짙고 하늘은 조금 연하다.
북쪽으로 일출봉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성산읍내의 높고 낮은 건물들이 흡사 아드리아해의 고대 그리이스 건축군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다. 그때에 ‘통통배’가 여러 척 줄지어 성산포를 떠나 섶지코지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 양옆으로 바다가 펼쳐진 자그마한 반도로 이루어진 섶지코지 해안길의 고즈넉함이란. 섶지코지 해변은 나의 잃어버렸던 시심(詩心) 같은 그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 몸을 달구게 한다. 풍부한 바다풍광이 햇볕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나그네의 마음은 ‘느낌의 바다’로 빠져든다. 섶지코지 가는 길은 아마도 제주 해변 길을 걷는 최고의 여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경고하곤 한다. 관광지에서 공연한 미련 갖고 방황하지 말 것! 그대도 공항에 도착하거든, 번잡스런 관광지를 벗어나 그대로 섶지코지로 떠나라. 그리고 말없이 걸어라. 차를 타고 부지런히 달려가는 그런 멍청한 짓은 관두는 게 좋은 것이다.”
25년 전에 쓴 이 글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섶지코지는 ‘테마파크의 여로’가 되고 말았다. 그사이 엄청나게 변했고, 더 변해갈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라는 독특한 시각의 책을 펴낸 오하이오주 톨레도대학 데이비드 네메스 지리학 교수는 제주도에서도 살아보았고, 제주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이런 글을 썼다. “현재 제주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유목민적 소비주의로 들끓고 있는 중이다. (……) 이 시점에서 누군가가 산업경제전략이라는 실패한 유럽사상을 넘어선 사상을 ‘펼쳐보여’ 주어야만 한다. 한라산은 나에게 ‘각성한 저개발’이라는 사상의 영감을 안겨주었다. (……) 전 지구적 규모의 혁명의 바람을 불고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주문을 외자!”
네메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유목민적 소비주의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각성한 저개발을 꿈꾸어 본다. 세상의 어디나 섬은 제한적 공간이며, 연약한 피부처럼 조그마한 침범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조금 느리게, 천천히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도는 섬이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왕왕 ‘島’가 아닌 ‘道’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道知事’가 아니라 ‘島知事’로서 섬을 섬답게 고려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제주도라는 섬의 바람, 돌, 여자, 잠녀, 귤, 돌담, 곶자왈, 테우리, 화산, 삼촌, 우영팟, 돌챙이, 신, 표류, 해금과 유배, 탐라와 몽골, 장두 등을 주제로 섬 DNA를 압축한다. 그러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홉스봄의 표현처럼, 오늘의 제주도는 ‘만들어진 섬’이 되었다. 상징과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가공되어 테마파크의 섬으로 진화 중이다.
유채꽃밭의 신혼부부들이 눈에 들어온다. 실상 그 유채꽃은 1950년대 말에야 시작되었다. 유채꽃 사례처럼 신전통이 테마파크식으로 속속 만들어진다. 생활노동자로서의 해녀는 내리막길이고 ‘바다의 신비’라고 하면서 관광홍보의 징표로 부각되고 있다. 제주의 표피가 아니라 원형질에 근접되길 희망하는 이가 있다면, 마중물 역할을 감내할 저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멜은 주변을 편안하게 느끼고 자기 땅이라 생각하는 토착민보다 이방인이(고통은 더 따르겠지만) 더욱 면밀히 탐색하면서 적응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방인은 자신이 들어가는 사회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제주라는 섬을 이방인, 혹은 경계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어디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다는 식의 기행은 이 책과 상관 없다. 에코의 《연어와 여행하는 법》처럼 혹시나 ‘제주도 여행하는 법’을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런 ‘교양인’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길 희망하는 이들에게 ‘탐라학 개론서’로 읽혀지길 희망한다. 책이 나오기까지, 제주도 ‘삼춘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사 인사를 드린다.
2021년, 애월바당의 웃뜨르에서
주강현
제주도에 대한 ‘지식’이 ‘교양’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가 알아야 할 제주의 모든 것!
청년 시절부터 제주도와 인연을 맺어온 주강현 교수가 그 사랑의 결실로서 처음으로 제주에 관한 책을 내게 되었다. 그의 시선은 바람, 돌, 곶자왈 등 모질지만 특이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제주의 자연과 그 배후에 숨 쉬고 있는 험하고 고단했던 역사에 날카롭게 꽂혀 있다. 놀랍다. 제주도 곳곳을 누비며 착실히 발품을 판 내력이 여실히 나타나고 잇다. 기왕에 그가 쓴 글에서 발휘되었던 예의 박람강기가 이 제주기행에서 비로소 진품으로 출현한 것이다. - 현기영(소설가)
주강현 박사는 척박한 한국 해양인문학 풍토에서 독보적인 해양문화학자이자 이미 40종 이상의 저서를 상재한 필력 있는 저술가이기도 하다. 2011년 웅진출판사에서 《제주기행》을 낸 바 있다. 발간 10년만에 대대적인 개정증보를 통해 《제주기행》 결정판본을 출간했다. 출판사 역시 제주의 토종 출판사인 도서출판 각으로 옮겼다.
그는 제주와 40년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제주의 민속학자들과의 교류나 제주 민속현장조사를 위한 발걸음을 자주 옮겼다. 이러한 그의 제주행은 제주섬의 ‘삼춘들’과의 오랜 인연을 쌓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제주에 대해 알게 모르게 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생지식의 선생이 되어 주었고 그는 이러한 삼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소위 ‘육짓것’의 시선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진기하게 그 가치를 인식하는 제주전문가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이런 제주 편력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이자,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소위 ‘육짓것’의 시선 또는 경계인의 시선으로 제주의 제대로 된 인문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주 박람강기의 교양안내서다.
제주의 표피가 아니라 원형질에 근접되길 희망하는 이가 있다면, 마중물 역할을 감내할 저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멜은 주변을 편안하게 느끼고 자기 땅이라 생각하는 토착민보다 이방인이(고통은 더따르겠지만) 더욱 면밀히 탐색하면서 적응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방인은 자신이 들어가는 사회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제주라는 섬을 이방인, 혹은 경계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에서 밝힌 그의 글처럼 이 책의 장점은 토착민보다 더욱 면밀히 살피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데 있다. 그의 글 곳곳에서 드러내는 인문적 시선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이 집필 목적이 ‘어디 가면 제주의 무엇을 볼 수 있다’는 관광안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제주문화의 표피를 걷어낸 제주의 역사와 문화사에 얽힌 다양한 배면사를 드러낸다. 진실은 장막 뒤에 있는 것처럼, 현상으로 보이던 제주문화의 그 속살을 드러내는 데그의 필력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제주 해녀에 대한 그의 글을 보자. 제주 해녀 하면 우리는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떠올린다. 또한 제주 해녀는 척박한 제주섬의 강인한 여성상을 표상하기도 한다. 그런 해녀의 이미지 또는 인식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은 교정을 요구한다.
제주도에는 여성을 찬미하는 다양한 속담이 전해온다. ‘한 집이 부재(딸 많은 집이 부자).’ 딸이 많으면 시집갈 때까지 물질을 해서 억척스럽게 벌어서 집안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비슷한 속담이 많다. 단순한 여성 찬미가 아니라 고통까지 포함한 양가성을 띤 속담이며, 남성을 대신하여 온몸으로 집안을 지켜나갔던 제주 여성의 엄중했던 현실을 말해준다.
17세기 전반만 해도 전복을 따서 관아에 바치는 것은 여자들만의 의무가 아니었다. 《제주풍토기》에 ‘남녀가 서로 섞여 있다(相雜)’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남녀가 함께 하던 물질(물일의 제주 방언)이 어느 순간 남자는 빠지고 여성들만의 물질로 전화되었다.
그리고 전 근대시대 제주 해녀, 즉 역사적으로 존재해 온 제주 해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현대에 소비되고 있는 해녀의 표상 그 이면을 파고들어 간다. 그는 강인한 제주 해녀 이면의 제주 여성 잔혹사까지 함께 볼 때 비로소 제주 여인-해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가 얘기했던 제주 해녀의 양가성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제주를 지칭할 때 앞에 붙는 ‘국제관광지’인 제주의 생태와 문화는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제주문화의 내력사를 알아야만 비로소 오늘의 원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문화의 어디에나 겹쳐 있는 이 양가성의 이해가 비로소 제주를 이해하 는 기행의 본질임을 그는 시종일관, 아시아와 세계적 차원의 박람강기의 지식을 동원해, 오랜 저술 활동에서 오는 뱀 발 없는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가려 뽑은 17개의 테마들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인문시선으로 포착해 자칫 놓치게 될 제주문화상의 본질을 탐구하고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눈에 보이는 제주 너머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탐라-제주의 문화상, 그 현재형의 진실을 마주하고 싶다면, 그가 안내하는 제주문화의 정수를 그의 시선과 글발을 통해 경험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이번에 대대적으로 손질을 가한 문장과 반 이상을 교체한 발굴 사진들은 이 책의 또 다른 볼거리이기도 하다. 10년 만에 새롭게 태어난 《제주기행》. 그는 이 책이 잠깐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제주를 제대로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언제나 길벗처럼 함께하는 스테디셀러가 되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붙인 판본의 이름이 결정판본인 것이다. 저자의 소망대로 이 책이 오래도록 세대를 넘어 읽히는 스테디셀러로 살아남기를 고대해본다.
왜 ‘탐라학 개론’인가?
‘제주기행’이라는 대중적 제목을 달았지만, 이 책은 ‘키워드로 읽는 탐라학 개론’ 혹은 ‘탐라 인문교양서’다. 제주를 알려주는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탐라’의 내재적 관점에서 기술된 책은 드물다. 제주와 탐라의 차이는 무엇인가. 역사적 아이덴티티의 문제다. 육지에 딸린 ‘복속된 섬’이냐, 아니면 ‘바다로 진출한 섬’이냐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변방으로 바라보는 육지부·중심부 시각과 반대되는 탐라적 정체성이 요구된다. 엄밀히 말해 제주도 역사는 있으되 기록은 제한적인 ‘유사무서(有史無書)’다. 이 책은 현실로서의 제주도를 기반으로 하되, 오랜 역사적 적층물인 탐라라는 망탈리테(심성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
탐라는 그 자체가 ‘잊힌 왕국’이 되고 말았으니, 제주인의 심성 어딘가에 남아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제주를 돌아다녔다. 수십 년의 경험과 정보, 가르치고 조사 다니면서 축적된 모든 것을 모아서 이 책을 탄생시켰다. 2011년,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초판본이 나왔다. 판권 만료와 동시에 제주 출판사 ‘각’으로 옮긴다. 제주 문화예술운동의 상징이기도 한 박경훈 대표와의 오랜 우정을 기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제주를 제대로 알리는 ‘결정본’을 만들자는 도원결의를 통해 출간에 이르렀다. 제주에서, 제주 이야기를, 제주 출판인의 손으로 펴내는 소감이 감개무량이다. ‘경계인’으로서 제주 사랑은 계속될 것이고, 제주 관련 연구도 그러할 것이다. 오래전 ‘한 권으로 탐라를 품을 수 있는’ 책이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책을 준비했다. 제주대 석좌교수로 10여 년 한국학을 가르치면서 특히 제주 해양문명사에 주력했다. 그 와중에 아라동 감귤밭에서 살면서 초판본을 펴냈다. 이번 책은 가능한 초판본을 살리되 두 꼭지를 추가하고, 새로운 자료도 덧붙였다. 글은 압축했고, 사진은 옛 사진을 적잖게 발굴해 대대적으로 교체했다.
흑백사진의 ‘어제 같은 옛날’이 던져주는 무게감은 역사 그 자체다. 40여 년 전인 1982년 여름, 제주에 처음 왔다. 출장길에 여행 일정을 넣어서 성산포와 함덕, 화순에서 묵었다. 일출봉 아래는 고즈넉한 초가집 동네였으며, 함덕은 해변도로가 뚫리기 전이라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화순 금모래 해변도 발전소가 들어오기 전이라 전형적 시골 마을이었다. 1985년, 민중문화운동 맥락에서 전국 단위로 추진한 강연회의 강사로서 굿 연구가 문무병 선생, 김수열 시인 등과 함께하던 기억이 난다. 이후의 시절인연은 겹겹이 쌓여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애월 납읍리에 김석윤 건축가의 도움으로 돌건축을 올리고,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의 본거지 겸 삶의 터전으로 10여 년 살았다. 주머니 털어서 ‘인문의 바다’ 강좌를 열고 제주 삼춘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이끌었다. 인연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현재는 애월 곽지의 웃뜨르에서 글도 쓰고 작은 정원을 가꾸는 중이다. 애월 농부와 어민들과 제주 막걸리 한잔하면서 그들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얻고 있다. 25년 전. ‘섶지코지 가는 길’이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부제는 ‘관광지에서 방황하지 말 것’이었다. “나는 지금 섶지코지를 걷고 있다. 부서지는 파도가 바위에 물보라를 만들고, 시원스럽게 펼쳐진 제주도 동해의 수평선쯤에 어선 한 척 떠 있다. 물이 맑고 파랗다. 파란 하늘과 파란 물이 맞닿아 수평선 분간이 애매할 정도다. 굳이 따진다면 물색이 더욱 짙고 하늘은 조금 연하다.
북쪽으로 일출봉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성산읍내의 높고 낮은 건물들이 흡사 아드리아해의 고대 그리이스 건축군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다. 그때에 ‘통통배’가 여러 척 줄지어 성산포를 떠나 섶지코지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 양옆으로 바다가 펼쳐진 자그마한 반도로 이루어진 섶지코지 해안길의 고즈넉함이란. 섶지코지 해변은 나의 잃어버렸던 시심(詩心) 같은 그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 몸을 달구게 한다. 풍부한 바다풍광이 햇볕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나그네의 마음은 ‘느낌의 바다’로 빠져든다. 섶지코지 가는 길은 아마도 제주 해변 길을 걷는 최고의 여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경고하곤 한다. 관광지에서 공연한 미련 갖고 방황하지 말 것! 그대도 공항에 도착하거든, 번잡스런 관광지를 벗어나 그대로 섶지코지로 떠나라. 그리고 말없이 걸어라. 차를 타고 부지런히 달려가는 그런 멍청한 짓은 관두는 게 좋은 것이다.”
25년 전에 쓴 이 글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섶지코지는 ‘테마파크의 여로’가 되고 말았다. 그사이 엄청나게 변했고, 더 변해갈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라는 독특한 시각의 책을 펴낸 오하이오주 톨레도대학 데이비드 네메스 지리학 교수는 제주도에서도 살아보았고, 제주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이런 글을 썼다. “현재 제주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유목민적 소비주의로 들끓고 있는 중이다. (……) 이 시점에서 누군가가 산업경제전략이라는 실패한 유럽사상을 넘어선 사상을 ‘펼쳐보여’ 주어야만 한다. 한라산은 나에게 ‘각성한 저개발’이라는 사상의 영감을 안겨주었다. (……) 전 지구적 규모의 혁명의 바람을 불고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주문을 외자!”
네메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유목민적 소비주의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각성한 저개발을 꿈꾸어 본다. 세상의 어디나 섬은 제한적 공간이며, 연약한 피부처럼 조그마한 침범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조금 느리게, 천천히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도는 섬이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왕왕 ‘島’가 아닌 ‘道’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道知事’가 아니라 ‘島知事’로서 섬을 섬답게 고려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제주도라는 섬의 바람, 돌, 여자, 잠녀, 귤, 돌담, 곶자왈, 테우리, 화산, 삼촌, 우영팟, 돌챙이, 신, 표류, 해금과 유배, 탐라와 몽골, 장두 등을 주제로 섬 DNA를 압축한다. 그러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홉스봄의 표현처럼, 오늘의 제주도는 ‘만들어진 섬’이 되었다. 상징과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가공되어 테마파크의 섬으로 진화 중이다.
유채꽃밭의 신혼부부들이 눈에 들어온다. 실상 그 유채꽃은 1950년대 말에야 시작되었다. 유채꽃 사례처럼 신전통이 테마파크식으로 속속 만들어진다. 생활노동자로서의 해녀는 내리막길이고 ‘바다의 신비’라고 하면서 관광홍보의 징표로 부각되고 있다. 제주의 표피가 아니라 원형질에 근접되길 희망하는 이가 있다면, 마중물 역할을 감내할 저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멜은 주변을 편안하게 느끼고 자기 땅이라 생각하는 토착민보다 이방인이(고통은 더 따르겠지만) 더욱 면밀히 탐색하면서 적응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방인은 자신이 들어가는 사회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제주라는 섬을 이방인, 혹은 경계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어디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다는 식의 기행은 이 책과 상관 없다. 에코의 《연어와 여행하는 법》처럼 혹시나 ‘제주도 여행하는 법’을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런 ‘교양인’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길 희망하는 이들에게 ‘탐라학 개론서’로 읽혀지길 희망한다. 책이 나오기까지, 제주도 ‘삼춘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사 인사를 드린다.
2021년, 애월바당의 웃뜨르에서
주강현
목차
바람의 섬 • 물마루 너머 바람 타는 섬
화산의 섬 • 하로산또를 모독하지 마라
돌담의 섬 • 세계 농업유산에 빛나는 돌담
여자의 섬 • 정말 남자보다 여자가 많을까
귤의 섬 • 원한의 과일에서 꿈의 과일로
곶자왈과 숲과 물의 섬 • 곶과 자왈이 만나 숲을 이루다
녀의 섬 • 해녀 한명이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
흑조의 섬 • 쿠로시오가 가져온 자연과 문명의 선물들
돌챙이의 섬 • 제주의 혼이 깃든 미학의 압권은 돌문화
테우리의 섬 • 조랑말은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다
표류의 섬 • 조선시대에 베트남에 간 사연은
신들의 섬 • 에게해에는 올림포스, 제주도에는 본향당
해금과 유배의 섬 • 바다에 뜬 감옥을 만들지니
삼춘의 섬 • 이 당 저당 궨당이최고
우영팟의 섬 • 장수를 원하는 이들, 제주도로 가라
탐라와 몽골의 섬 •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장두의 섬 • 탐라의 독립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