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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원전으로 읽는 순수 고전 세계

역사

저자/역자
헤로도토스 지음 / 천병희 옮김
펴낸곳
발행년도
2009
형태사항
994p.: 23cm
원서명
Histories apodexis
ISBN
9788991290266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북카페JG0000004944-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JG0000004944
    상태/반납예정일
    -
    위치/청구기호(출력)
    북카페
책 소개
기원전 5세기에 집필된 인류 최초의 역사서 헤로도토스의<역사>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원전 그대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스 라틴 문학 번역에서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의 번역이다. 40여 년 동안 그가 한국어로 옮긴 대부분의 책은 ‘국내 첫 원전번역’이다. 정년퇴직 후 천교수의 작업 집중도나 속도는 노익장이라고 하기에도 믿기지 않는 정도다. 젊음의 짐을 훌훌 털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노년의 자유와, 작업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스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는 애착과 열정의 산물로, 우리는 또 한 권의 원전번역 고전 목록을 갖게 되었다.

헤로도토스에 관한 오해_ 서울 가본 사람하고 안 가본 사람하고 싸우면...
여기<역사>의 저자 헤로도토스에게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 그는 당시 알려진 세계의 동서남북을 두루 여행하며 웅대한 구상으로 각종 자료를 모아<역사>를 집필했는데, 민속학 및 지리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후대 역사가들은 그의 여행을 거짓으로 여겼으며 그를 허풍쟁이 ‘설화작가’ 정도로 치부했다. 그래서 그는 고대 역사학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고 18세기에 와서야 “역사의 아버지”라는 명예를 회복했다. 그 이유는 헤로도토스가 다루는<역사>의 시공간에는 동시대인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 믿어지지 않는 미지의 땅에 대한 기록이 많아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먼 나라 옛 시대의 왕들, 서민들, 그들의 관습과 습관, 지형과 기후, 전설과 유적들... 그의 저술은 인류의 생활사 그 자체로, 여담(餘談) 형식의 지리학적, 인종학적, 민속학적, 역사적 자료들이 대량으로 제시된다. 이 책에는 참으로 많은 나라와 민족이 나오며 그 나라들의 성립에서 패망에 이르기까지를 누가 믿거나 말거나 기술하고 있다. “나는 들은 대로 전할 의무는 있지만, 그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다.” 이것은 그의 역사 기술의 원칙이었고, 기록할 수 있는 최대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기술했다. 이제 학문과 과학의 발달로 헤로도토스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위대한 여행가였고 지리학자였음이 밝혀졌다. 그는 인간의 관습과 과거 역사에 지칠 줄 모르는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실증적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그리스인이었다.

그가 뚫고 지나온 시대
헤로도토스는 그리스 세계의 정신 활동에서 역사서술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이지만, 역사적 성격의 작품을 쓴 최초의 저작자는 아니다. 그는 그 이전의 저술가들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계승하면서 한 발은 전통에, 그러나 다른 한 발은 혁신에 두고 있었다. 헤로도토스 이전의 호메로스 시절, 역사는 사실뿐 아니라 신화와 전설들이 혼재되어 있었고, 산문이 아니라 서사시와 같은 운문 형태였다. 그는 산문체로 서술하면서 문학에서 역사를 분리시켰다. 그는 호메로스적인 신화적 전통으로부터 지적 혁명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중간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 시대의 진지한 역사란, 멀리 떨어진 나라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 그곳 사람들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지나간 사실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을 동시대인의 관점에서 기술해야 했다. 이러한 지배적 견해가 헤로도토스의 선구자적 역사서술을 미숙한 것으로 보이게 했다.
선배들은 어느 한 도시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국지적인 사건에 대해 연대기를 쓰거나 이미 알려진 세계의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기술했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유기적 관계를 가진 완전한 통일체, 즉 전체적 일관성을 가진 하나의 단일체를 창조하지는 않았다. 헤로도토스의 전무후무한 학문적 업적은 이렇다 할 문헌이 없던 불모지에서 여러 도시,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끌어 모은 다양하고도 때로는 상반된 구전의 잡동사니들 속에서 페르시아 전쟁사를<역사>와 같은 하나의 통일체로 빚어냈다는 데 있다.

역사가로 산다는 것과 본다는 것
그는 동양의 사마천과 흡사했다. 역사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러하며 그의 불우한 삶이 그러하다. 그는 그리스 본토 출신이 아니며, 소아시아 남부의 식민 도시 할리카르낫소스에서 태어났다. 페르시아에 의해 그곳 참주가 된 자에게 반란을 꾀한 사건과 관련해 추방되었으며 그의 탐사여행은 이때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사상과 저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아테네에 오랫동안 머물게 된다.
당시 아테네는 다른 분야에서처럼 지적인 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수많은 사상가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를 만나 지속적인 교류를 주고받으며 시야를 넓혔으며, 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아테네인들이 자부심으로 이야기하는 페르시아 전쟁에 주목해<역사>를 집필한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작은 도시국가의 승리에 도취되어 지역적 애국정신, 민족적 정신 등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그 이상을 보았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방대한 크기에 놀랐으며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병사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성격의 군대이면서도 단일 지휘 체계를 갖춘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스군은 공통된 언어, 종교, 사고방식, 전쟁 목적에 대한 의견일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사령관들은 논쟁을 일삼았다. 페르시아군과 그리스군은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전제정치 즉, 절대 권력을 가진 페르시아 왕과 입헌정치 즉,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그리스의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보았다. 더 나아가 이민족의 노예화에 대한 그리스의 자유를 향한 도전을 보았다.

<역사>의 모티브는 자유
대제국 페르시아에 맞선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인들의 가슴은 어떠한 구속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자유의지로 충만했다. 때문에 이들은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페르시아에 맞서 싸웠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자유를 향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과 몸부림을 보았다. 또한 역사에는 어떤 법칙이 있어 전제적 세력은 결국에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자유를 향한 그리스의 투쟁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보았다.
그러므로 헤로도토스는 단순히 역사서술을 창시했다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자유를 위한 인간의 투쟁”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점에서 “歷史의 아버지”인 것이다.

<역사>의 구성
<역사>는 전쟁사를 다루면서도 결코 전쟁 이야기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원래의 관심사인 페르시아 전쟁을 다루기 전에 그 이전 근동(近東) 역사를 요약해가는 것도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며 일화들과 전체 사건의 큰 흐름을 조화롭게 짜나가는 방식은 감탄을 자아낸다. 책 곳곳에 삽입된 옛이야기나 설화에서도 이야기체 역사에 대한 그만의 매력과 타고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제1권 서언에서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 뒤 그리스인이든 비그리스인이든 인간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이 망각되지 않고, 동-서가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고자 이 책을 쓴다고 밝힌다. 제1~6권에서는 페르시아 전쟁의 배경을 설명한다. 뤼디아는 크로이소스 치세 때 신흥국 페르시아에게 패권을 빼앗긴다. 동방의 대표 세력으로 페르시아 왕국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페르시아 전쟁 이전에 있었던 동-서 갈등을 서술한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를 복속시키려던 비그리스인, 즉 크로이소스로부터 퀴로스, 캄뷔세스, 다레이오스 등이 사건 전개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그 사이사이 페르시아와 부딪쳤거나 복속된 개별 민족과 나라의 소개가 나온다. 한편 서방에서는 페르시아와 대결할 그리스 본토,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역사가 여러 단계로 나뉘어 기술된다. 이오니아 반란에 아테네가 가담해 사르데이스를 파괴한 시점부터,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적대관계는 결정적인 단계로 접어든다.
제7~9권에서 전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마라톤에서 좌초한 다레이오스의 원정에 이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의 전쟁 결의, 군대의 사열, 영화<300>으로 널리 알려진 테르모퓔라이 전투, 아르테미시온 전투에 이어 살라미스, 플라타이아이, 뮈칼레에서 거둔 그리스의 대승을 묘사하는 장면에서<역사>는 절정을 이룬다. 서술 속도도 빨라지고 주제에 어긋나는 설명도 줄어든다. 헤로도토스가 가진 역사가로서의 눈, 서술방식, 역사에 대한 평가 등이 등장한다. 살라미스, 플라타이아이 전투로 페르시아 전쟁은 실질적으로 종결되지만, 그 뒤에도 몇 번의 교전이 벌어진다.

헤로도토스의 한계...
그의 기술을 보면 역사적 사건들에 때때로 신적 요소들이 작용하는데, 전조나 신탁 혹은 꿈이 개인으로하여금 역사적인 행위를 하도록 충동하거나 혹은 하지 못하도록 만류한다. 반면 실제적인 차원에서는 전략과 정치적 고려에 의해 역사적 결단이 내려지는데, 그러한 것에는 인간의 탐욕과 질투, 복수심과 야망, 정욕 혹은 고귀한 품성 등이 작용한다. 물론 헤로도토스의 <역사> 전체를 볼 때 기원전 5세기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종교적 요소는 빼놓을 수 없는 코드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인간은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숙명적 존재가 아니라 신에 의해 제한된 한계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능력을 가진 존재다. 더 나아가서는 신적 요소의 개입에도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활동을 추구하고, 신적 존재에 의해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세기는 초기 그리스 사상에 대한 이해의 증대로 헤로도토스의 기본 사상을 새롭게 평가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고, 그 결과 그가 처했던 시대적 사조와 사회적 배경에서 해로도토스를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6세기 그리스의 역사뿐 아니라 일찌이 트로이를 발굴할 수 있도록 슐리만을 인도한 유일한 길라잡이 호메로스처럼 오리엔트 연구가들에게 서아시아 및 이집트 역사의 대부분을 알려주는 최초의중요한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역사>의 폭넓은 역사관과 지리학적, 인류학적, 민속학적 분야에 대한 세심하고 다양한 정보 등은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최초의 출전이 되고 있다.
목차

옮긴이 서문 최초의 역사가이자 최초의 이야기꾼, 헤로도토스 / 5
일러두기 / 22


1권>
1-5장 서언.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의 불화의 발단: 이오, 에우로페, 메데이아, 헬레네의 납치
6-94장 뤼디아 왕 크로이소스 이야기
6-28장 크로이소스의 가계(家系)
29-92장 크로이소스의 치세
29-33장: 솔론과 크로이소스
34-45장: 크로이소스의 아들 아튀스가 죽다
46-74장: 크로이소스의 페르시아 침공 준비와 배경. 아테나이와 스파르테에 대한 고찰 (56-68장)
75-86장: 페르시아 침공과 크로이소스의 패배
86-92장: 그 여파
93-94장 뤼디아인들의 관습
95-216장 퀴로스 이야기
95-107장 메디아 세력의 융성
108-130장 퀴로스의 탄생과 즉위
131-140장 페르시아인들의 관습
141-200장 퀴로스의 이오니아, 소아시아, 바뷜론 정복. 바뷜론인들의 관습(192-200장)
201-214장 퀴로스의 맛사게타이족 원정과 전사
215-216장 맛사게타이족의 관습

2권>
1장 캄뷔세스의 즉위와 아이귑토스 침공 결심
2-182장 아이귑토스
5-34장 아이귑토스의 지리와 나일 강
35-98장 아이귑토스인들의 관습과 종교
99-182장 아이귑토스의 역사

3권>
1-38장 캄뷔세스의 치세
1-3장 캄뷔세스가 아이귑토스를 공격한 이유
4-13장 캄뷔세스가 아이귑토스 정복에 성공하다
14-16장 캄뷔세스가 패배한 아이귑토스 왕과 아피스 성우(聖牛)를 모욕하다
17-26장 카르타고인들, 아이티오피아인들, 암몬인들에 대한 원정 실패
27-38장 캄뷔세스가 아이귑토스에서 가족(27-33장)과 다른 페르시아 요인들(34-38장)을 학대하다
39-60장 사모스 이야기. 스파르테인들이 사모스를 공격한 이유
39-43장 폴뤼크라테스의 행운과 반지 이야기
44-47장 망명한 사모스인들이 스파르테에 도움을 요청하다
48-53장 코린토스인들이 사모스 공격에 가담한 이유. 페리안드로스의 가족 문제
54-59장 스파르테인들의 사모스 공격이 실패로 끝나다
60장 사모스의 경이로운 건조물들: 터널, 방파제, 신전
61-87장 캄뷔세스가 죽고 다레이오스가 즉위하다
61-73장 마고스들의 왕위 찬탈. 7인의 공모
74-79장 프락사스페스와 마고스들의 죽음
80-87장 정체(政體)에 관한 토론. 다레이오스의 계략
88-116장 다레이오스의 치세
88장 다레이오스의 아시아 장악과 결혼
89-97장 태수(太守) 통치 구역들과 조공 바치는 구역들의 목록
98-105장 인디아인들과 그들의 관습
106-116장 대지의 끝에 있는 나라들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
117-160 다레이오스의 통치
117-119장 다레이오스가 7인 중 한 명을 처형하다
120-125장 폴뤼크라테스가 오로이테스의 손에 비참하게 죽다
126-128장 다레이오스가 오로이테스를 제거하게 하다
129-138장 헬라스인 의사 데모케데스의 영향으로 다레이오스가 헬라스에 관심을 갖게 되다
139-160장 다레이오스의 원정
139-149장: 사모스를 정복하게 하다
150-160장: 반기를 든 바뷜론을 다레이오스가 재정복하다

4권>
1-144장 스퀴티스와 다레이오스의 원정
1-82장 스퀴타이족의 관습
1-4장: 원정의 원인: 스퀴타이족의 아시아 침공
5-16장: 스퀴타이족의 기원
17-36장: 스퀴튀스의 여러 부족들과 지리. 북쪽에 사는 부족들
37-45장: 세계지도
46장: 유목민으로서의 스퀴타이족
47-75장: 스퀴티스 지방의 강들(47-58장). 스퀴타이족의 관습(59-75장)
76-80장: 스퀴타이족과 이방인들. 아나카르시스와 스퀼레스
81-82장: 스퀴타이족의 인구수
83-142장 다레이오스의 스퀴티스 원정
83-98장: 수사에서 이스트로스 강으로 행군하다
99-101장: 스퀴티스 땅의 생김새
102-120장: 스퀴타이족이 이웃 부족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다
121-142장: 다레이오스가 스퀴티스 원정에 실패하다
143-144장 다레이오스가 아시아로 퇴각하며 헬레스폰토스 일대를 정복하도록 메가바조스를 뒤에 남겨두다
145-205장 페르시아가 리뷔에에 원정군을 파견하다
145-167장 퀴레네 시 건설과 초기 역사
168-199장 리뷔에 부족들과 그들의 관습
168-180장: 트리토니스 호 동쪽에 사는 리뷔에인들
181-190장: 아이귑토스의 테바이에서 아틀라스까지의 오아시스들. 그곳의 관습들
191-196장: 트리토니스 호 서쪽에 사는 리뷔에인들
197-199장: 리뷔에의 토양, 특히 퀴레네의 삼모작
200-205장 페르시아인들이 퀴레네를 함락하려다 실패하다

5권>
1-22장 페르시아인 메가바조스가 트라케와 마케도니아를 정복하다
1-22장 마케도니아
1-2장: 파이오니아인들이 페린토스인들에게 승리하다
3-10장: 트라케인들의 관습
11장: 뮈르키노스
12-16장: 파이오니아인들을 아시아로 이주시키다
17-22장: 페르시아인들이 마케도니아로 사절단을 보내다
23-126장 이오니아 반란
23-35장 히스티아이오스와 아리스타고라스
36-38장 이오니아가 봉기하여 참주들을 축출하다
39-96장 아리스타고라스가 도움을 청하고자 스파르테와 아테나이를 방문하다
39-51장: 스파르테에서의 아리스타고라스
52-54장: 사르데이스에서 수사로 가는 도로
55-96장: 아테나이에 간 아리스타고라스
55-65장: 아테나이의 참주정이 종식되다
66장: 클레이스테네스와 그의 정적 이사고라스
67-69장: 시퀴온의 참주 클레이스테네스
70-73장: 스파르테의 클레오메네스가 아테나이의 이사고라스를 도우러 오지만 격퇴되다
74-76장: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앗티케로 쳐들어가지만 성공하지 못하다
77-81장: 아테나이가 칼키스, 보이오티, 테바이, 아이기나와 전쟁을 하다
82-89장: 아테나이와 아이기나가 대립하게 된 원인
90-96장: 스파르테가 힙피아스를 복권시키려다 실패하다
97장 아테나이가 아리스타고라스에게 함선 20척을 내주다
98-103장 이오니아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이 진격하여 사르데이스에 불을 지르다
104-116장 퀴프로스가 반기를 들다가 예속되다
117-123장 페르시아가 공세를 취하다: 헬레스폰토스, 카리아, 아이올리스, 이오니아
124-126장 아리스타고라스가 트라케에서 죽다

6권>
1-33장 이오니아 반란의 분쇄
1-5장 히스티아이오스가 반란에 가담하다
6-21장 라데에서 페르시아 함대가 승리하고 밀레토스가 함락되다
22-25장 사모스인들이 시켈리아로 이주하다
26-30장 히스티아이오스가 죽다
31-33장 페르시아인들과 포이니케인들이 이오니아인들을 정복하고 벌주다
34-42장 밀티아데스와 트라케의 케르소네소스
43-45장 마르도니오스가 헬라스 원정에 실패하다
46-131장 다티스와 아르타프레네스의 헬라스 원정
46-47장 타소스가 굴복하다
48-49장 다레이오스가 헬라스 도시들에게 흙과 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다. 아이기나인들이 이에 응하다
50장 스파르테의 두 왕 클레오메네스와 데마라토스의 반목
51-60장 스파르테의 왕이 두 명이 된 내력과 왕들의 특권들
61-66장 클레오메네스가 데마라토스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다
67-72장 데마라토스가 페르시아로 망명하다
73-84장 클레오메네스의 뒷이야기
85-93장 아테나이와 아이기나의 적대 관계
94-101장 페르시아인들이 에게 해의 섬들과 에레트리아를 정복하다
102장 페르시아인들이 마라톤에 상륙하다
103-117장 마라톤 전투와 밀티아데스
118-120장 페르시아인들이 아시아로 돌아가다
121-131장 알크메오니다이 가(家)
132-140장 밀티아데스의 에게 해 섬들 원정과 죽음

7권>
1-19장 다레이오스가 죽고 크세르크세스가 즉위하다. 헬라스 원정에 관한 논의
20-25장 원정 준비. 아토스 운하 건설. 헬레스폰토스의 선교(船橋)들
26-131장 크세르크세스가 텟살리아로 진격하다
26-32장 크세르크세스가 캅파도키아를 출발하여 사르데이스로 행군하다. 퓌티오스의 헌신적인 제안
33-37장 선교들이 폭풍에 파괴되자, 크세르크세스가 헬레스폰토스를 태형으로 다스리게 하고 새로운 선교들을 건설하게 하다
38-39장 퓌티오스에 대한 잔혹 행위
40-43장 사르데이스에서 아뷔도스로 행군하다
44-53장 아뷔도스에서의 함대 사열. 크세르크세스와 아르타바노스의 대화
54-58장 페르시아군이 다리를 건너다
59-60장 도리스코스에서의 군 사열
61-88장 페르시아 육군의 규모와 편제
89-100장 페르시아 해군의 규모와 편제
101-104장 크세르크세스와 데마라토스의 대화
105-127장 페르시아 육군이 도리스코스를 출발하여 트라케와 마케도니아를 지나 테르메까지 진출하다
128-131장 페네이오스 강변에서의 크세르크세스
132-178장 헬라스인들의 전쟁 준비
132-137장 크세르크세스가 헬라스의 여러 도시들에게 흙과 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다
138-142장 헬라스인들의 자유를 지켜준 것은 아테나이인들이다
143-144장 테미스토클레스가 함대 건설을 주장하다
145-171장 헬라스인들이 동맹을 결성하고 새로운 동맹군들을 찾는 한편 아시아로 첩자들을 보내다. 아르고스, 쉬라쿠사이, 케르퀴라, 크레테가 헬라스 동맹에 가입하지 않다
172-174장 텟살리아인들이 페르시아인들 편에 가담하다
175-177장 헬라스인들이 테르모퓔라이 고갯길을 지키고 아르테미시온으로 함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다
178장 델포이인들이 바람의 신들을 위해 제단을 설치하다
179-183장 페르시아 함대가 테르메에서 마그네시아 반도로 진출하다
184-187장 당시 페르시아 육군과 해군의 규모
188-191장 페르시아 함대가 폭풍으로 큰 피해를 입다
192-201장 페르시아 육군이 테르모퓔라이까지 진출하다
202-239장 테르모퓔라이 전투.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스파르테 300인 결사대의 최후. 크세르크세스의 작전 토론

8권>
1-20장 아르테미시온 해전
21-26장 테르모퓔라이에서 패한 헬라스 함대가 남쪽으로 철수하다
27-39장 페르시아군이 보이오티아 지방을 지나 델포이까지 진격하다가 격퇴되다
40-125장 살라미스 해전
40-49장 살라미스의 헬라스 함대
50-55장 페르시아인들이 앗티케로 진격하여 아테나이를 파괴하다
56-65장 살라미스에서 이스트모스로 회항하려던 헬라스 장군들의 작전 계획이 테미스토클레스에 의해 좌절되다
66-69장 페르시아인들의 작전회의와 아르테미시아의 조언
70-83장 헬라스인들이 이스트모스 방벽을 강화하다. 테미스토클레스의 계략
84-96장 살라미스 해전
97-107장 크세르크세스가 마르도니오스를 남겨두고 철군하기로 결정하다
108-112장 승리한 뒤의 헬라스인들
113-120장 크세르크세스의 도주
121-125장 헬라스인들이 테미스토클레스에게 경의를 표하다
126-135장 아르타바조스가 마르도니오스에게 돌아오다. 마르도니오스가 텟살리아에서 겨울을 나다
136장 마르도니오스가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를 사절로 보내 페르시아 편이 되도록 아테나이인들을 설득하려 하다
137-139장 마케도니아 왕가의 역사
140-144장 아테나이인들이 마르도니오스의 제의를 거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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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장 마르도니오스가 텟살리아에서 앗티케로 남하하여 다시 동맹을 제의하다가 거절당하자 아테나이에 불을 지르다. 마침내 스파르테인들이 이스트모스로 진출하다
12-16장 마르도니오스가 아테나이에서 보이오티아로 철수하다
17-18장 페르시아 편에 가담한 포키스인들
19-24장 헬라스인들이 키타이론 산으로 진출하다. 페르시아 기병대장 마시스티오스의 죽음
25-89장 플라타이아이 전투
25-30장 헬라스군의 규모와 배치
31-32장 페르시아군의 규모와 배치
33-38장 양군이 제물을 바치고 받은 신탁
39-43장 마르도니오스가 싸우기로 결정하다
44-45장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마르도니오스의 결정을 아테나이인들에게 알려주다
46-48장 스파르테인들이 전투 위치를 바꾸려 하다
49-57장 전 헬라스군이 군영을 옮기다
58-79장 플라타이아이 전투. 마르도니오스가 전사하다
80-85장 전리품의 분배
86-88장 페르시아에 적극 부역한 테바이인들을 응징하다
89장 아르타바조스가 페르시아로 도주하다
90-107장 뮈칼레 전투
90-98장 헬라스인들이 사모스인들과 동맹을 맺다. 헬라스 함대가 소아시아 뮈칼레로 진출하다
99-105장 뮈칼레 전투
106장 에게 해의 섬들을 헬라스 동맹에 받아들이다
107장 페르시아인들이 도주하다
108-113장 크세르크세스가 아우 마시스테스의 아내와 딸을 사랑하다
114-121장 아테나이인들이 세스토스를 함락하고 아르타윅테스를 책형에 처하다
122장 아르타윅테스의 선조와 다른 페르시아인들에게 준 퀴로스 대왕의 현명한 조언에 대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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