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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 저자/역자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 김명남 엮고옮김
- 펴낸곳
- 바다출판사
- 발행년도
- 2018
- 형태사항
- 469p.; 22cm
- 원서명
- David Foster Wallace essays
- ISBN
- 9788955614909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44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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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카페
책 소개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제라도 소개돼야 마땅한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그의 경이로운 문학 세계
“이 책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어떤 것에 대해 쓰더라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집요한 글쓰기는 다시없을 장관을 펼쳐놓는다.”―신형철 문학평론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장대하고 야심찬 소설들과 단편들, 에세이들을 썼는데, 이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의미 있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데 바친 것들이다.”―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 《모든 것은 빛난다》 저자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1962~2008)는 미국 소설가다. 그는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3편의 장편소설(마지막 소설은 미완성 유작), 3권의 소설집, 3권의 산문집을 남기고 2008년 4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학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졸업한 월리스는 졸업논문으로 썼던 장편소설 《시스템의 빗자루The Broom of the System》가 1987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에게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안겨준 두 번째 소설 《무한한 재미Infinite Jest》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각주만 300개가 넘는 형식 과잉의 작품으로, 20세기 말 미국 문학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이다. 《타임》은 현대 미국의 자화상을 세밀하고도 깊이 있게 묘파한 이 소설을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 소설’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11년 출간된 세 번째 소설 《창백한 왕The Pale King》은 월리스가 죽기 전까지 십여 년간 집필한 미완성 유작으로, 그는 죽기 마지막 날까지 원고를 정리하고 유서를 썼다.
십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았던 월리스는 스무 살 무렵 첫 자살 충동을 겪은 후 거의 20년 동안이나 항우울제 나르딜을 처방받았다. 약이 듣지 않을 때는 전기충격요법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고 후유증으로 기억력 상실 등을 겪다가 회복되고는 했다. 그의 자살은 나르딜의 부작용으로 이 약을 단호히 끊으려고 했을 무렵 일어났다.
월리스의 재능은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픽션 작가 못지않게 문학비평가로서의 기질로 주목받았고,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일에 열의를 쏟았다. 그리고 미국적 소비주의, 대중문화, 문학, 스포츠, 정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위트와 성찰이 빛나는 에세이(르포, 서평, 비평 등의 형식)로 이목을 끌었다.
이 책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에세이 선집이다. 그가 집필한 세 권의 산문집에서 9편을 골라 엮었다. 이 책은 월리스의 문학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것으로, 그의 작품이 번역되기를 손꼽아 기다린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현대적 실존의 단면들에 관한 집요한 글쓰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와 에세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조로 노래한다.”
―로버트 매크럼 《가디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덕분에 에세이라는 형식은 과거와는 다른 것이 되었다.”
―마이클 로빈스 《시카고 트리뷴》
“대수롭지 않은 손짓 한두 번만으로 사물의 물리적 진실이나 감정적 진실을 전달할 줄 아는 능력, 엄청난 속도와 열의로 평범한 것에서 단숨에 철학적인 것으로 도약하는 재주.”―미치코 가쿠타니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비범한 통찰력, 현대적 실존에 대한 진지한 성찰, 방대한 어휘력과 문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발함, 각주와 미주의 과도한 활용 등 포스트모던한 작법 때문에 토머스 핀천의 후예로 불리며 미국 문학계에 떠오르는 별이었다. 동세대와 후배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도 적지 않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편집장 미치코 가쿠타니는 “그 작가들은 월리스에게서 규칙을 깨는 법과, 높은 것과 낮은 것 곧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결합하는 법, 그리고 자신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무한한 재미》의 성공과 함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1997년 첫 산문집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출간했고, 2006년 두 번째 산문집 《랍스터를 생각해봐》를 출간했다. 세 번째 산문집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은 2012년 그가 죽고 난 후 추모의 의미에서 나왔다.
이 세 권의 산문집에서 9개의 글을 골라 엮은 국역본에는 우선 각 표제작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랍스터를 생각해봐〉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을 담았다. 문학비평가적 기질이 돋보이는 글로는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을, 서평가로도 활약이 대단했던 월리스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글로는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과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를 골랐다. ‘9?11’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그날의 참사를 제유법적으로 풀어내는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깊이 꿰뚫는 사유의 예리함은 물론이고, 글의 형식 자체가 어떤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글로 엄청난 여운을 남긴다.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 마디 말〉과 〈재미의 본질〉은 글쓰기와 창작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글로, 여러 해 강단에서 문예창작 수업을 했던 월리스가 얼마나 훌륭한 선생이었을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표제작으로 삼았다.
“그의 글은 주제가 무엇이든 읽는 재미가 엄청나다”
과다활동증에 걸린 듯한 언어와 이야기꾼으로서 타고난 재능
[수록 글 상세 소개]
○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절망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나의 본질적이고 새삼 불쾌한 미국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일부 비롯한다.”_106쪽
여러모로 월리스의 에세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월리스는 1996년 카리브해 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고 거기서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해달라는 잡지사의 의뢰로 이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 권태와 절망, 중산층 미국인을 향한 환멸의 감정을 훌륭하게 묘사한다. 그는 이 한 편의 에세이에 137개나 되는 각주를 덧붙여가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과잉된 열정을 펼쳐 보인다. 월리스의 문체적 특징 중 하나인 각주는 그 자체가 작품 속에서 하나의 독립체로 존재한다. 그의 각주를 모두 따라갈 수만 있다면 재미라는 측면은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지만, 몇몇 비평가들은 지적인 통찰이라기보다는 난잡한 유희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글은 “현대인의 자기의식을 문체미학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무한한 재미》의 에세이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소설과 비슷한 주제와 철학을 다루고 있다(둘 다 1996년에 완성되었다). 그의 천재성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글이다.
○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 마디 말
“농담을 오락으로 여기고 오락을 안심되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자란 학생들에게는 카프카의 위트가 접근 불가능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카프카의 유머를 ‘해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유머란 ‘획득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온 것이 문제입니다. 자아란 ‘갖는’ 것이라고 가르쳐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카프카의 농담에서 진정한 핵심을 음미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_179~180쪽
월리스는 카프카를 좋아했다. 자신의 몇몇 단편소설은 카프카의 작품과 비슷한 글로 읽히기를 바랐다. 이 글은 1998년 어느 문학 행사의 강연을 위한 원고로 작성되었다. 월리스는 일리노이 주립 대학과 퍼모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쳤는데, 그때 학생들과 카프카를 강독하면서 느꼈던 극심한 좌절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글에서 월리스는 카프카가 발휘한 특별한 형태의 ‘웃김’을 ‘미국적 신경 회로’를 갖춘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를 말한다. 월리스는 카프카의 유머와 위트를 토머스 핀천, 필립 로스, 존 바스, 우디 앨런와 비교하며, 철저히 현대적인 복잡성에 기반한 카프카 문학의 정수가 무엇인지 자신만의 독법과 이해로 설파한다.
○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
“우리는 어떤 단어가 사전에 들어가야 할지, 어떤 단어와 철자와 발음은 함량 미달이거나 부정확한지 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좀처럼 생각해보지 않는다. 무엇은 괜찮고 무엇은 아닌지를 결정하는 사전 편찬자의 권위는 어디서 나올까?”_197쪽
이 글은 서평이다. 서평의 대상이 되는 책은 ‘영어 어법 사전’(브라이언 A. 가너의 《현대 미국 영어 어법 사전A Dictionary of Modern American Usage》)이다. 1997년 말 월리스는 잡지 《뉴 리퍼블릭》의 의뢰로 이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1999년에야 마무리했다. 그러나 너무 길고 방대하다는 이유로 잡지에 실리지 못했다. 월리스는 이 글에서 현재 미국에서의 어법 논쟁과 계급 및 권력의 상관관계를 다루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조지 오웰의 에세이 〈정치와 영어〉를 떠올리게 한다. 월리스의 어머니는 어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쓴 국어 선생이었으며, 그 영향으로 그는 엄격한 문법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월리스는 철저한 문법 규범주의자였으나 구어체 언어에 본능적이고 탁월한 감각을 발휘했고, 자신의 글에서 스스로 어휘를 만들거나 일부러 약자를 고안해서 쓰기를 즐겼다. 이 글에서는 ‘스누트S.N.O.O.T’라는 약자를 발명하여 자신에게 종교와도 같았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
“블루밍턴과 그 참사에 관한 이야기에서 한 가지 당연하지만 중요하게 명심해야 할 점은, 이곳에서 현실은?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감각이라는 의미에서 현실은?주로 텔레비전적이라는 것이다.”_291쪽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월리스는 일리노이 주 블루밍턴에 살았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던 그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이웃 톰프슨 아주머니 집에서 텔레비전 속보로 참사를 접한다. 이 글은 미국 중서부 블루밍턴의 지역적 특징과 그곳에서 사는 ‘순수’한 사람들, 그리고 톰프슨 아주머니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9?11 참사를 이웃 사람들과 함께 목격했던 그 순간의 초현실적 풍경이 월리스의 뇌 속에서 어떻게 상실과 소외의 감정으로 환기되는지 보여준다. 9?11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9?11을 말한다. 월리스는 이 글을 사건이 발생하고 사흘 만에 써서 《롤링 스톤》에 기고했다.
○ 랍스터를 생각해봐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랍스터가 무엇인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랍스터에 대해서도 알려고만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다. 어떤 측면에 관심을 쏟느냐의 문제일 뿐이다.”_307쪽
월리스는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그 어떤 주제라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글에서는 랍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월리스는 미식 잡지 《고메》의 요청으로 2004년 여름, 메인 주 미드코스트 지역에서 열리는 랍스터 축제를 취재하고 이 글을 썼다. 축제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그는 신선한 요리를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 있는 랍스터를 끓는 물에 넣는 요리법에 문제를 제기한다. 월리스의 문제의식은 동물권, 윤리적 선택이라는 논의로 확대되고 랍스터가 통증을 느끼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까지 다룬다. 월리스는 랍스터를 생각해보라고 말하지만, 읽고 난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다.
○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우리의 진지한 소설들의 진지하지 못함을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 문화? 비웃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만약 도덕적으로 열정적이고 열정적으로 도덕적인 소설이 그와 동시에 독창적이면서도 아름답도록 인간적이기까지 하다면, 감히 비웃지 않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_369쪽
프린스턴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친 조지프 프랭크는 도스토옙스키의 삶과 시대와 문학을 논하는 책을(총 5권) 썼다. 이 글은 그 책에 대한 서평이다. 월리스는 평소 도스토옙스키를 흠모했는데, 프랭크의 이 작업을 매우 가치 있게 평가했다. 그 이유는 프랭크가 형식적 독법과 이데올로기적 독법을 결합하는 데 있어서 전혀 다른 방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월리스의 표현대로라면 “프랭크의 접근법은 여느 문예 이론처럼 난해하지도, 환원적이지도, 재미를 죽이지도 않는다”. 월리스는 도스토옙스키의 전기를 통해서 우리 시대 문학의 주제적 빈곤을 개탄하고, 미학을 윤리학 수준으로 격상시켰던 옛 시절의 모더니스트 문학가들의 용기와 성취를 곱씹는다. 이 서평은 소설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문자답 같기도 하다.
○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로저 페더러는 일류의,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파워 베이스라인 선수다. 다만 그는 오로지 그것만은 아닐 뿐이다. 그에 더해서 그에게는 지성이 있고, 오컬트로 느껴질 만큼 공에 잘 대비하는 능력, 코트 감각, 상대를 읽고 조종하는 능력, 스핀과 속도를 섞는 능력, 엉뚱한 방향으로 보내고 가장하는 능력, 속도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전략적 선견지명과 주변 시야와 폭넓은 운동감각적 범위를 활용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은 오늘날 남자 테니스가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드러내 보여준다.”_406쪽
월리스는 주니어 시절에 테니스 선수로도 활동했을 만큼 테니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테니스에 관한 에세이를 총 5편 썼는데, 그중에서 이 글은 파워 베이스라인 테니스가 지배하는 현재에도 여전히 우아한 경기를 선보이는 로저 페더러에 대한 이야기다. 월리스는 페더러와 그의 경기를 “완전 종교에 가까운 경험”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월리스는 글에서 “뛰어난 운동선수의 아름다움은 직접적으로 묘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환기시키는 것조차 어렵다”고 그 불가능함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그 말을 거리낌 없이 전복시킨다. 그는 인간의 육체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종류의 아름다움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해가고, 마침내 세상의 물리적 혹은 형이상학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지점으로 도약한다. 테니스를 좋아한다면, 로저 페더러를 좋아한다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글이다.
○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
“내 불평은 쓰레기 소설이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런 소설의 부상에 딱히 관심이 없고, 이 현상을 불가피하게 이끈 장본인이 역사에 도사린 산업주의적 자유주의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내 불평은 쓰레기 소설이 저속한 예술 혹은 짜증나게 아둔한 예술이라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예술로 만들어주는 조건에 비추어볼 때, 쓰레기 소설은 진실되지 않고 공허하다는 것이 내 불평이다.”_431쪽
1988년 월리스가 처음으로 발표한 문학비평이다. 월리스는 첫 소설 《시스템의 빗자루》를 출간한 직후에 이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자기 세대의 새로운 소설가들(데이비드 레빗, 제이 매키너니, 브렛 엘리스 등)을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이라 칭하고, 현대 미국 고유의 현상 속에서 그들 작품의 특징과 경향을 분석한다. 월리스는 텔레비전이 미국 소설에 미치는 영향, 학계의 창작 프로그램이 미치는 영향, 교육받은 사람들이 문학적 내러티브의 기능과 가능성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 현실의 영향을 언급하며, 이 세 가지 영향 안에서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이 쏟아내는 “진실되지 않고 공허한”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 재미의 본질
“하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여전히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_456쪽
글쓰기와 창작의 고통에 대해, 그러나 그 재미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글이다. 월리스는 돈 드릴로가 소설을 “작가를 쫓아다니는 추악한 기형 아기”로 묘사했던 것을 들면서, 픽션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과 사랑이라는 역설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문예창작 선생으로서 글을 쓰는 후배들이 겪을 내적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글처럼 보이기도 한다. 픽션 작가가 찾아야 할 최고의 재미는 픽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월리스는 그것이 선물이고 기적이며, 이에 비하면 낯선 대중의 애정은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명남의 번역으로 되살아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언어들
“이 번역 덕분에 월리스가 최상의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여기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듯 월리스의 경련하는 수사학만이 아니라 정신의 전압까지 복원하는 데 성공한 이 작업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과장이 아닌데, 이 역서의 완성도는 거의 기적적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라는 존재의 명성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작가의 작품을 ‘누가 번역 좀 해줬으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월리스는 다른 영미 작가들 책에 자주 인용되는 이름이었고, 《모든 것은 빛난다》 같은 책에서는 한 챕터가 오롯이 그의 문학을 이야기하는 데 바쳐졌다. 월리스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국내 출판 전문가와 문학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위해 몇 차례 기획과 번역을 시도했으나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월리스의 작품이 번역의 과정을 거치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방증하는 것일 텐데, 방대한 분량은 물론이거니와 신의 수준에 가까운 폭발적인 언어유희의 문장 스타일이 아무래도 가장 큰 난관이었다. 국내에 번역된 월리스의 작품은 그가 케니언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축사를 바탕으로 꾸려진 《이것은 물이다》가 유일한데, 이 작은 책은 월리스의 정신을 잘 담고 있지만 그의 문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소략한 게 사실이다.
이 에세이 선집은 번역가 김명남의 빛나는 재능과 성실한 노력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명남은 책에 담기면 좋을 글을 고르고, 월리스의 문학 세계를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소화해냈다. 번역뿐 아니라 월리스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한 ‘엮고 옮긴이의 말’은 월리스 문학 세계를 안내하는 최선의 가이드가 될 것이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연보’는 인간 월리스를 이해하기 위한 작지만 강한 연대기처럼 읽힐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김명남 번역의 완성도가 “거의 기적적”이라고 말하며, 그 덕분에 “월리스가 최상의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여기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고 찬사를 보냈다.
김명남은 그동안 과학책을 주로 번역했으며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뿐 아니라 문학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데, 특히 범죄소설에 조예가 깊어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번역하고 있다.
이제라도 소개돼야 마땅한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그의 경이로운 문학 세계
“이 책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어떤 것에 대해 쓰더라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집요한 글쓰기는 다시없을 장관을 펼쳐놓는다.”―신형철 문학평론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장대하고 야심찬 소설들과 단편들, 에세이들을 썼는데, 이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의미 있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데 바친 것들이다.”―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 《모든 것은 빛난다》 저자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1962~2008)는 미국 소설가다. 그는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3편의 장편소설(마지막 소설은 미완성 유작), 3권의 소설집, 3권의 산문집을 남기고 2008년 4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학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졸업한 월리스는 졸업논문으로 썼던 장편소설 《시스템의 빗자루The Broom of the System》가 1987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에게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안겨준 두 번째 소설 《무한한 재미Infinite Jest》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각주만 300개가 넘는 형식 과잉의 작품으로, 20세기 말 미국 문학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이다. 《타임》은 현대 미국의 자화상을 세밀하고도 깊이 있게 묘파한 이 소설을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 소설’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11년 출간된 세 번째 소설 《창백한 왕The Pale King》은 월리스가 죽기 전까지 십여 년간 집필한 미완성 유작으로, 그는 죽기 마지막 날까지 원고를 정리하고 유서를 썼다.
십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았던 월리스는 스무 살 무렵 첫 자살 충동을 겪은 후 거의 20년 동안이나 항우울제 나르딜을 처방받았다. 약이 듣지 않을 때는 전기충격요법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고 후유증으로 기억력 상실 등을 겪다가 회복되고는 했다. 그의 자살은 나르딜의 부작용으로 이 약을 단호히 끊으려고 했을 무렵 일어났다.
월리스의 재능은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픽션 작가 못지않게 문학비평가로서의 기질로 주목받았고,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일에 열의를 쏟았다. 그리고 미국적 소비주의, 대중문화, 문학, 스포츠, 정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위트와 성찰이 빛나는 에세이(르포, 서평, 비평 등의 형식)로 이목을 끌었다.
이 책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에세이 선집이다. 그가 집필한 세 권의 산문집에서 9편을 골라 엮었다. 이 책은 월리스의 문학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것으로, 그의 작품이 번역되기를 손꼽아 기다린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현대적 실존의 단면들에 관한 집요한 글쓰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와 에세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조로 노래한다.”
―로버트 매크럼 《가디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덕분에 에세이라는 형식은 과거와는 다른 것이 되었다.”
―마이클 로빈스 《시카고 트리뷴》
“대수롭지 않은 손짓 한두 번만으로 사물의 물리적 진실이나 감정적 진실을 전달할 줄 아는 능력, 엄청난 속도와 열의로 평범한 것에서 단숨에 철학적인 것으로 도약하는 재주.”―미치코 가쿠타니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비범한 통찰력, 현대적 실존에 대한 진지한 성찰, 방대한 어휘력과 문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발함, 각주와 미주의 과도한 활용 등 포스트모던한 작법 때문에 토머스 핀천의 후예로 불리며 미국 문학계에 떠오르는 별이었다. 동세대와 후배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도 적지 않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편집장 미치코 가쿠타니는 “그 작가들은 월리스에게서 규칙을 깨는 법과, 높은 것과 낮은 것 곧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결합하는 법, 그리고 자신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무한한 재미》의 성공과 함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1997년 첫 산문집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출간했고, 2006년 두 번째 산문집 《랍스터를 생각해봐》를 출간했다. 세 번째 산문집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은 2012년 그가 죽고 난 후 추모의 의미에서 나왔다.
이 세 권의 산문집에서 9개의 글을 골라 엮은 국역본에는 우선 각 표제작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랍스터를 생각해봐〉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을 담았다. 문학비평가적 기질이 돋보이는 글로는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을, 서평가로도 활약이 대단했던 월리스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글로는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과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를 골랐다. ‘9?11’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그날의 참사를 제유법적으로 풀어내는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깊이 꿰뚫는 사유의 예리함은 물론이고, 글의 형식 자체가 어떤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글로 엄청난 여운을 남긴다.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 마디 말〉과 〈재미의 본질〉은 글쓰기와 창작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글로, 여러 해 강단에서 문예창작 수업을 했던 월리스가 얼마나 훌륭한 선생이었을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표제작으로 삼았다.
“그의 글은 주제가 무엇이든 읽는 재미가 엄청나다”
과다활동증에 걸린 듯한 언어와 이야기꾼으로서 타고난 재능
[수록 글 상세 소개]
○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절망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나의 본질적이고 새삼 불쾌한 미국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일부 비롯한다.”_106쪽
여러모로 월리스의 에세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월리스는 1996년 카리브해 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고 거기서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해달라는 잡지사의 의뢰로 이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 권태와 절망, 중산층 미국인을 향한 환멸의 감정을 훌륭하게 묘사한다. 그는 이 한 편의 에세이에 137개나 되는 각주를 덧붙여가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과잉된 열정을 펼쳐 보인다. 월리스의 문체적 특징 중 하나인 각주는 그 자체가 작품 속에서 하나의 독립체로 존재한다. 그의 각주를 모두 따라갈 수만 있다면 재미라는 측면은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지만, 몇몇 비평가들은 지적인 통찰이라기보다는 난잡한 유희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글은 “현대인의 자기의식을 문체미학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무한한 재미》의 에세이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소설과 비슷한 주제와 철학을 다루고 있다(둘 다 1996년에 완성되었다). 그의 천재성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글이다.
○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 마디 말
“농담을 오락으로 여기고 오락을 안심되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자란 학생들에게는 카프카의 위트가 접근 불가능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카프카의 유머를 ‘해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유머란 ‘획득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온 것이 문제입니다. 자아란 ‘갖는’ 것이라고 가르쳐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카프카의 농담에서 진정한 핵심을 음미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_179~180쪽
월리스는 카프카를 좋아했다. 자신의 몇몇 단편소설은 카프카의 작품과 비슷한 글로 읽히기를 바랐다. 이 글은 1998년 어느 문학 행사의 강연을 위한 원고로 작성되었다. 월리스는 일리노이 주립 대학과 퍼모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쳤는데, 그때 학생들과 카프카를 강독하면서 느꼈던 극심한 좌절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글에서 월리스는 카프카가 발휘한 특별한 형태의 ‘웃김’을 ‘미국적 신경 회로’를 갖춘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를 말한다. 월리스는 카프카의 유머와 위트를 토머스 핀천, 필립 로스, 존 바스, 우디 앨런와 비교하며, 철저히 현대적인 복잡성에 기반한 카프카 문학의 정수가 무엇인지 자신만의 독법과 이해로 설파한다.
○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
“우리는 어떤 단어가 사전에 들어가야 할지, 어떤 단어와 철자와 발음은 함량 미달이거나 부정확한지 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좀처럼 생각해보지 않는다. 무엇은 괜찮고 무엇은 아닌지를 결정하는 사전 편찬자의 권위는 어디서 나올까?”_197쪽
이 글은 서평이다. 서평의 대상이 되는 책은 ‘영어 어법 사전’(브라이언 A. 가너의 《현대 미국 영어 어법 사전A Dictionary of Modern American Usage》)이다. 1997년 말 월리스는 잡지 《뉴 리퍼블릭》의 의뢰로 이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1999년에야 마무리했다. 그러나 너무 길고 방대하다는 이유로 잡지에 실리지 못했다. 월리스는 이 글에서 현재 미국에서의 어법 논쟁과 계급 및 권력의 상관관계를 다루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조지 오웰의 에세이 〈정치와 영어〉를 떠올리게 한다. 월리스의 어머니는 어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쓴 국어 선생이었으며, 그 영향으로 그는 엄격한 문법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월리스는 철저한 문법 규범주의자였으나 구어체 언어에 본능적이고 탁월한 감각을 발휘했고, 자신의 글에서 스스로 어휘를 만들거나 일부러 약자를 고안해서 쓰기를 즐겼다. 이 글에서는 ‘스누트S.N.O.O.T’라는 약자를 발명하여 자신에게 종교와도 같았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
“블루밍턴과 그 참사에 관한 이야기에서 한 가지 당연하지만 중요하게 명심해야 할 점은, 이곳에서 현실은?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감각이라는 의미에서 현실은?주로 텔레비전적이라는 것이다.”_291쪽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월리스는 일리노이 주 블루밍턴에 살았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던 그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이웃 톰프슨 아주머니 집에서 텔레비전 속보로 참사를 접한다. 이 글은 미국 중서부 블루밍턴의 지역적 특징과 그곳에서 사는 ‘순수’한 사람들, 그리고 톰프슨 아주머니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9?11 참사를 이웃 사람들과 함께 목격했던 그 순간의 초현실적 풍경이 월리스의 뇌 속에서 어떻게 상실과 소외의 감정으로 환기되는지 보여준다. 9?11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9?11을 말한다. 월리스는 이 글을 사건이 발생하고 사흘 만에 써서 《롤링 스톤》에 기고했다.
○ 랍스터를 생각해봐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랍스터가 무엇인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랍스터에 대해서도 알려고만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다. 어떤 측면에 관심을 쏟느냐의 문제일 뿐이다.”_307쪽
월리스는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그 어떤 주제라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글에서는 랍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월리스는 미식 잡지 《고메》의 요청으로 2004년 여름, 메인 주 미드코스트 지역에서 열리는 랍스터 축제를 취재하고 이 글을 썼다. 축제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그는 신선한 요리를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 있는 랍스터를 끓는 물에 넣는 요리법에 문제를 제기한다. 월리스의 문제의식은 동물권, 윤리적 선택이라는 논의로 확대되고 랍스터가 통증을 느끼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까지 다룬다. 월리스는 랍스터를 생각해보라고 말하지만, 읽고 난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다.
○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우리의 진지한 소설들의 진지하지 못함을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 문화? 비웃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만약 도덕적으로 열정적이고 열정적으로 도덕적인 소설이 그와 동시에 독창적이면서도 아름답도록 인간적이기까지 하다면, 감히 비웃지 않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_369쪽
프린스턴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친 조지프 프랭크는 도스토옙스키의 삶과 시대와 문학을 논하는 책을(총 5권) 썼다. 이 글은 그 책에 대한 서평이다. 월리스는 평소 도스토옙스키를 흠모했는데, 프랭크의 이 작업을 매우 가치 있게 평가했다. 그 이유는 프랭크가 형식적 독법과 이데올로기적 독법을 결합하는 데 있어서 전혀 다른 방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월리스의 표현대로라면 “프랭크의 접근법은 여느 문예 이론처럼 난해하지도, 환원적이지도, 재미를 죽이지도 않는다”. 월리스는 도스토옙스키의 전기를 통해서 우리 시대 문학의 주제적 빈곤을 개탄하고, 미학을 윤리학 수준으로 격상시켰던 옛 시절의 모더니스트 문학가들의 용기와 성취를 곱씹는다. 이 서평은 소설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문자답 같기도 하다.
○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로저 페더러는 일류의,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파워 베이스라인 선수다. 다만 그는 오로지 그것만은 아닐 뿐이다. 그에 더해서 그에게는 지성이 있고, 오컬트로 느껴질 만큼 공에 잘 대비하는 능력, 코트 감각, 상대를 읽고 조종하는 능력, 스핀과 속도를 섞는 능력, 엉뚱한 방향으로 보내고 가장하는 능력, 속도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전략적 선견지명과 주변 시야와 폭넓은 운동감각적 범위를 활용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은 오늘날 남자 테니스가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드러내 보여준다.”_406쪽
월리스는 주니어 시절에 테니스 선수로도 활동했을 만큼 테니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테니스에 관한 에세이를 총 5편 썼는데, 그중에서 이 글은 파워 베이스라인 테니스가 지배하는 현재에도 여전히 우아한 경기를 선보이는 로저 페더러에 대한 이야기다. 월리스는 페더러와 그의 경기를 “완전 종교에 가까운 경험”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월리스는 글에서 “뛰어난 운동선수의 아름다움은 직접적으로 묘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환기시키는 것조차 어렵다”고 그 불가능함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그 말을 거리낌 없이 전복시킨다. 그는 인간의 육체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종류의 아름다움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해가고, 마침내 세상의 물리적 혹은 형이상학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지점으로 도약한다. 테니스를 좋아한다면, 로저 페더러를 좋아한다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글이다.
○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
“내 불평은 쓰레기 소설이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런 소설의 부상에 딱히 관심이 없고, 이 현상을 불가피하게 이끈 장본인이 역사에 도사린 산업주의적 자유주의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내 불평은 쓰레기 소설이 저속한 예술 혹은 짜증나게 아둔한 예술이라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예술로 만들어주는 조건에 비추어볼 때, 쓰레기 소설은 진실되지 않고 공허하다는 것이 내 불평이다.”_431쪽
1988년 월리스가 처음으로 발표한 문학비평이다. 월리스는 첫 소설 《시스템의 빗자루》를 출간한 직후에 이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자기 세대의 새로운 소설가들(데이비드 레빗, 제이 매키너니, 브렛 엘리스 등)을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이라 칭하고, 현대 미국 고유의 현상 속에서 그들 작품의 특징과 경향을 분석한다. 월리스는 텔레비전이 미국 소설에 미치는 영향, 학계의 창작 프로그램이 미치는 영향, 교육받은 사람들이 문학적 내러티브의 기능과 가능성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 현실의 영향을 언급하며, 이 세 가지 영향 안에서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이 쏟아내는 “진실되지 않고 공허한”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 재미의 본질
“하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여전히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_456쪽
글쓰기와 창작의 고통에 대해, 그러나 그 재미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글이다. 월리스는 돈 드릴로가 소설을 “작가를 쫓아다니는 추악한 기형 아기”로 묘사했던 것을 들면서, 픽션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과 사랑이라는 역설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문예창작 선생으로서 글을 쓰는 후배들이 겪을 내적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글처럼 보이기도 한다. 픽션 작가가 찾아야 할 최고의 재미는 픽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월리스는 그것이 선물이고 기적이며, 이에 비하면 낯선 대중의 애정은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명남의 번역으로 되살아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언어들
“이 번역 덕분에 월리스가 최상의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여기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듯 월리스의 경련하는 수사학만이 아니라 정신의 전압까지 복원하는 데 성공한 이 작업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과장이 아닌데, 이 역서의 완성도는 거의 기적적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라는 존재의 명성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작가의 작품을 ‘누가 번역 좀 해줬으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월리스는 다른 영미 작가들 책에 자주 인용되는 이름이었고, 《모든 것은 빛난다》 같은 책에서는 한 챕터가 오롯이 그의 문학을 이야기하는 데 바쳐졌다. 월리스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국내 출판 전문가와 문학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위해 몇 차례 기획과 번역을 시도했으나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월리스의 작품이 번역의 과정을 거치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방증하는 것일 텐데, 방대한 분량은 물론이거니와 신의 수준에 가까운 폭발적인 언어유희의 문장 스타일이 아무래도 가장 큰 난관이었다. 국내에 번역된 월리스의 작품은 그가 케니언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축사를 바탕으로 꾸려진 《이것은 물이다》가 유일한데, 이 작은 책은 월리스의 정신을 잘 담고 있지만 그의 문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소략한 게 사실이다.
이 에세이 선집은 번역가 김명남의 빛나는 재능과 성실한 노력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명남은 책에 담기면 좋을 글을 고르고, 월리스의 문학 세계를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소화해냈다. 번역뿐 아니라 월리스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한 ‘엮고 옮긴이의 말’은 월리스 문학 세계를 안내하는 최선의 가이드가 될 것이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연보’는 인간 월리스를 이해하기 위한 작지만 강한 연대기처럼 읽힐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김명남 번역의 완성도가 “거의 기적적”이라고 말하며, 그 덕분에 “월리스가 최상의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여기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고 찬사를 보냈다.
김명남은 그동안 과학책을 주로 번역했으며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뿐 아니라 문학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데, 특히 범죄소설에 조예가 깊어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번역하고 있다.
목차
엮고 옮긴이의 말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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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017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 마디 말 171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 183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 281
랍스터를 생각해봐 303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337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371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 409
재미의 본질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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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연보 462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저작 목록 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