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심장을 켜는 사람: 제14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 저자/역자
- 나희덕 외 지음
- 발행년도
- 2014
- 형태사항
- 235p.: 22cm
- ISBN
- 9788927805878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11.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북카페 | JG0000003042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JG0000003042
- 상태/반납예정일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제14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펴내며
미당문학상이 올해로 14회를 맞이했다. 우리 현대문학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미당(未堂) 서정주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미당문학상은 지난 1년간 창작, 발표된 모든 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삼천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2014년 미당문학상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주요 문예지 30여 종에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예심심사(강동호, 고봉준, 장석남, 조용미, 조재룡)를 거쳐 추려진 시인 열 명의 작품을 대상으로 본심 심사위원들(김정환, 오생근, 이광호, 천양희, 최승호)의 심사숙고 끝에 나희덕 시인의 「심장을 켜는 사람」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시 속의 통증이 세계와 나의 부딪침에서 나온다는 것을 특별하게 표현했다”라며 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제14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수상작 「심장을 켜는 사람」을 비롯해 수상시인 나희덕이 직접 고른 자선시 「탄센의 노래」 외 28편이 실려 있다. 자선시는 나희덕 시인의 최근 발표작 및 그간 펴낸 시집 중 네 권에서 엄선한 시들로, 나희덕 시인의 시 세계 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수상시인이 쓴 연보 「어떤 말들을 기다리는 시간」, 동료 시인 문태준의 수상시인 인터뷰 「심장을 휘돌아 나가는 피처럼 저장할 수도 재생할 수도 없는 만나처럼」 등을 통해 수상시인을 다각도로 조명하여 나희덕 시인의 작품세계를 보다 세밀하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최종후보에 오른 아홉 명의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여 점점 진화하고 있는 한국 시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해당 시인들은 김이듬, 김행숙, 손택수, 이문재, 이수명, 이원, 이제니, 이준규, 최정례 시인으로, 예심을 맡은 심사위원들의 추천평과 함께 시인별로 각각 6편의 시를 소개한다.
제14회 수상작, 나희덕 「심장을 켜는 사람」
2014년 미당문학상 수상작은 나희덕 시인의 「심장을 켜는 사람」이다. 수상작 「심장을 켜는 사람」은 거리의 뮤지션, 버스커를 소재로 시가 가진 노래의 성격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특히 음악을 묘사하는 언어의 리듬과 질감이 돋보인다. 본심 심사를 맡은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심사평을 통해 “지금의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의 시가 자연의 정숙함이 아니라, 거리의 죽음과 거리의 음악으로부터 시적 모티브를 발견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밝혔다.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들이 들어 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심장을 켜는 사람」 부분
나희덕 시인은 수상시인 인터뷰를 통해 “심장을 휘돌아 나가는 피처럼, 몸의 구석구석을 통과한 시에는 저마다 고유한 심장박동수나 울음소리가 있”다며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울음이 형식을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을 우리는 시 또는 노래라고 부”른다고 자신의 시론을 밝히기도 했다.
최종 후보작 … 김이듬, 김행숙, 손택수, 이문재, 이수명, 이원, 이제니, 이준규, 최정례
김이듬 「여파」 외 5편
흘러가다가 멈추고, 흘러가다가 멈춘다. 두리번거린다. 여기가 어디지? 뭘 하고 있지? 거리를 바꾸고 싶고 때로는 얼굴을 바꾸고 싶다. 꿈을 꺼내 바라보며 시무룩하다.“자두나무는 자두를 열심히 사랑하여 익히고 떨어뜨리고/나는 사랑을 붉히고 보내야 한다/사람이니까/그리고 망설일 줄 아는 능력이 있다”(「다소 이상한 사랑」 중에서). 이렇게 노을 녘 자두나무 곁에서 자두처럼 붉어지는 영혼을, 혹은 사랑을 김이듬은 망설이며 망설이며 보고 만진다. 그 망설임이 간절하여, 아름답다. ―장석남(시인)
김행숙 「존재의 집」 외 5편
낯설고 섬세한 감각으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온 김행숙 시인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일까? 독창적인 목소리로 감각을 재현해내며, 우리 앞에 끊임없이 토해냈던 그의 물음은 이제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언저리에 자주 제 닻을 내린다. 크로키처럼, 일순간을 포착할 때의 느낌을 존중하여 세밀하게 담아낸 그의 시 마디마디에는 이렇게 소중한 삶의 결들이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다. 신체의 어느 한 부위에 찾아든 느낌을 살려내고 김행숙이 후차적으로 그 감각에 부응하는 언어를 고안하려는 것은, 다시 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지금-여기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삶의 굴곡진 모퉁이를 돌아 나오고 인간이 뱉어낸 시간을 방문하면서 그가 거기서 울려 나오는 “에코의 초상”을 우리에게 선보일 때, 누군가를 받아낸 저 메아리의 운명과도 같은 그의 시는 차츰 닳아 없어지는 삶의 자락을 비끄러매면서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그에게 시는 차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도덕률이 아니라,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되물을 언어이자 삶의 공통지대를 새로운 감각으로 횡단하고 “타인의 창”에 나를 내비추고자 내딛은 발걸음이며, “꿈이 아니라면 이제부터 진짜 악몽”인 세계에 대한 비판이다. 타자, 타자와의 차이, 그간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해왔던 존재들조차 자기 동일성에 기대어 판단할 수 없다는 사유에서 그의 시적 이행의 의지가 솟아난 것은 아닐까? 삶의 지극한 슬픔과 고통이 뿜어내는 경이로움의 미광 하나로 그가 의식의 밑바닥을 훑으며 삶의 절망을 노래할 때, 그의 시는 벌써 조용한 함성이며, 자기 자신이 조금만 존재해도 좋다고 믿어야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몸짓이다. ―조재룡(문학평론가)
손택수 「시집의 쓸모」 외 5편
우리는 지금 정체가 불분명한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서정시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심에 올라온 지난 한 해 동안 손택수의 시를 보면 그간 조금은 메말라 있던 서정적 자아가 다시 살아난 듯하다. 「물로 쓰는 왕희지체」는 그 중 가편이었다. 그것은 물이 말라가면서 한 획, 한 획이 지워져 가는 “소멸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글씨다. 바닥의 열기를 제 몸으로 식히며 허공으로 날아올라 사라짐으로써 완성되는 글씨다. 노인이 길바닥에서 쓰는 물 글씨를 보고 이런 사유를 펼칠 수 있는 것은 현실인식과 함께 삶에 대한 성찰이 한층 깊어져서일 것이다. 손택수 시의 화자들은, 한밤 “아파트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누군가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이며 “빨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흙을 뭉쳤다 푸는 동안”의 우주적 시간을 들여다볼 줄 아는 자이다. ―조용미(시인)
이문재 「집이 집에 없다」 외 5편
이문재의 시 도처에서 우리는 사회적 죽음의 무의미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인의 풍자적이고도 비판적인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의 의미만이 찬미되는 세련되고도 화려한 세속 사회에서 인간은 생에 대한 욕망으로 혈기왕성하지만, 실상 거리에 널려 있는 무의미의 시취(屍臭)를 감각하지 못하는 속물적인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시인의 전언인 셈이다. 물론, 생소한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에 삶의 원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다소 희한하고도 역설적인 주장을 앞세우면서 세상에 널려 있는 고독한 죽음들의 흔적을 섬세한 상상력으로 부활시키려 한다. 죽음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리하여 죽음이 삶 곁에서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만든다는 말은 역사적 시간에 대한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야말로 타인의 죽음이 보존될 수 있는 시공간이자, 그 죽음을 매개로 삼아 개별적 삶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공통감각의 세속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생기를 되돌려주는 시인의 언어는 그러므로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윤리적 기억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정치적 희망이 동시에 살아 있는 자리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저 도저한 비판과 희망의 물길이 독자의 삶 쪽으로 트여 굳건한 감정의 속살로 돋아날 때, 그 감정들은 모여 분수처럼 끊이지 않을 역사의 새로운 물줄기의 원천을 이루게 될 것이다. ―강동호(문학평론가)
이수명 「칩」 외 5편
이수명 시의 매력은 쉽게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쉽게 읽히지 않음을 통해 대중문화적인 소비에 저항하고, 빨리 읽히지 않음을 통해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상품의 운명에서 벗어난다. 짧은 시간에 빨리 읽기 위해서라면 그녀의 시집을 펼쳐들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녀의 시는 어렵다. 왜냐하면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우리의 선입견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는 건조하다. 왜냐하면 시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 고루하기 때문이다. 이수명은 우리의 눈높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만족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수명의 시를 제대로 읽는 최선의 방법은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세계에 대한 감각의 새로운 지도이다. 새로운 지도는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한다. 이 새로운 눈의 하나가 바로 ‘아이’이다. 순진무구함으로 기성의 척도 바깥에서 놀이하는 아이의 시선. 그녀의 시는 낡을 대로 낡아 악취를 풍기는 우리의 감각을 치유해주는 문학적인 치료제이다. ―고봉준(문학평론가)
이원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외 5편
이원은 2차 예심에서 예심위원 전원의 추천을 받은 유일한 시인이다. 이원은 그동안 시의 형식 실험을 거쳐 새로운 시 세계로 진입했고 미학적 갱신을 거듭하여 이제는 그 새로움의 지평을 넓혀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듯하다. 그 세계는 인간의 고독과 단절감, 현실 세계와의 불화를 말하고 있지만 과잉이 없고 절제되어 있다. 그 건조하고 명징한 시 세계는 한편으로 ‘정서적’이기도 하며 소름끼치도록 분명하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의 고독을 말하고 있다. ―조용미(시인)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외 5편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로만 오로지 제 시의 특수성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인이 있다. 시는 요약될 수 없으며 단일한 해석에 갇히지 않아 어디론가 늘 빠져나가는 말이라는 것일까? 이제니의 시가 지극한 모험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은 의미에 붙들리는 대신, 낱말과 낱말, 구문과 구문이 관계를 맺어 생성된 특수한 시적 언어로, 제 고유한 호흡을 길어 올릴 순간까지 기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의미를 유보해내는 저 무한의 과정을 담아내려 하면서, 그는 삶의 수많은 결들을 순결한 문장으로 포섭해내고, 지금-여기로 끌고 와 언어의 기이한 운동처럼 우리에게 선보인다. 그는 낱말이 항시 다르게 쓰인다고 생각하는 시인, 언어로 명명될 때 사물과 우주의 실존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 시인, 그렇게 해야만 최대치의 주관성을 이 세계에 등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시인, 그렇게 해서 슬픔과 죽음, 사라짐과 울음, 덧없음과 고독의 출렁거리는 한 자락을 자신의 언어로 붙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시인이다. 관계의 사건이자, 타자라는 이름으로 나를, 나의 언어로 타자를 일깨우는, 그러니까 지금도 생성 중인 모험의 말이 우리에게 당도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구르고 또 구르는 말의 저 운동의 상태로만 표상되는 독특한 세계에 입사하게 될 것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움직이는 말이 모든 것을 삼킨, 아직 경험하지 못한 저 고독하고 외로운 바다 한가운데를 둥둥 떠다니게 될 것이다. 그는 시의 최전선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리듬의 화신이다. ―조재룡(문학평론가)
이준규 「마트료시카」 외 5편
의미(意味)의 껍질을 벗겨나간다. 사방에서 두서없이 흘러 들어오는 시간들을 서두르지 않고 헤아려 받아준다. 중얼거리며 한 겹씩 사물과 사물의 움직임을 반복하며 변주한다. 그러면 어느덧 ‘나’는 그 사물의 그림자가 되고 사물의 심연에 가깝게 다가가 있다. 그러한 이준규의 중얼거림은 생애가 끝나도록 계속될 듯한데 고독이라는 금강석이 바스러질 때를 마침내 보리라 작정한 듯하다. 고독을 짊어지고 고독의 몸짓으로 물결처럼 이어지는 이준규의 호흡을 끝내 고독을 아는 자, 좋아하게 될 것이다. ―장석남(시인)
최정례 「이 길 밖에서」 외 5편
최정례의 시는 현실의 시선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어떤 낯선 조짐들이 창궐하는 순간을 냉철하게, 산문의 언어를 빌려 응시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비현실이라 이름 붙이며 현실의 영토에서 영원히 추방하려 했던 망각의 기억들이 어느새 유령처럼, 환영처럼, 또는 피부병처럼 현실의 외피 안쪽에서부터 되살아나는 시간 경험의 중핵을 향하여 시인은 산문의 발걸음으로 천천히, 순례를 하듯 접근해 들어간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현실을 초현실주의와 혼동할 필요는 없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원래 비현실은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다른 영역으로 객관화할 수 있는 오브제라기보다는 현실을 구획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설정해놓은 현실의 경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른바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그것의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비현실이 현실을 잉태하는 일종의 현실의 격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틀이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한 인간은 현실이라는 이름의 거짓된 땅에 잠깐 더부살이하다가 결국 소멸하게 될 이방인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독자는 최정례의 시에서 낭떠러지 같은 현실의 끝이 곧 현실의 입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러한 실존적 토대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일종의 시적 현기증의 형식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강동호(문학평론가)
미당문학상이 올해로 14회를 맞이했다. 우리 현대문학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미당(未堂) 서정주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미당문학상은 지난 1년간 창작, 발표된 모든 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삼천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2014년 미당문학상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주요 문예지 30여 종에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예심심사(강동호, 고봉준, 장석남, 조용미, 조재룡)를 거쳐 추려진 시인 열 명의 작품을 대상으로 본심 심사위원들(김정환, 오생근, 이광호, 천양희, 최승호)의 심사숙고 끝에 나희덕 시인의 「심장을 켜는 사람」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시 속의 통증이 세계와 나의 부딪침에서 나온다는 것을 특별하게 표현했다”라며 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제14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수상작 「심장을 켜는 사람」을 비롯해 수상시인 나희덕이 직접 고른 자선시 「탄센의 노래」 외 28편이 실려 있다. 자선시는 나희덕 시인의 최근 발표작 및 그간 펴낸 시집 중 네 권에서 엄선한 시들로, 나희덕 시인의 시 세계 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수상시인이 쓴 연보 「어떤 말들을 기다리는 시간」, 동료 시인 문태준의 수상시인 인터뷰 「심장을 휘돌아 나가는 피처럼 저장할 수도 재생할 수도 없는 만나처럼」 등을 통해 수상시인을 다각도로 조명하여 나희덕 시인의 작품세계를 보다 세밀하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최종후보에 오른 아홉 명의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여 점점 진화하고 있는 한국 시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해당 시인들은 김이듬, 김행숙, 손택수, 이문재, 이수명, 이원, 이제니, 이준규, 최정례 시인으로, 예심을 맡은 심사위원들의 추천평과 함께 시인별로 각각 6편의 시를 소개한다.
제14회 수상작, 나희덕 「심장을 켜는 사람」
2014년 미당문학상 수상작은 나희덕 시인의 「심장을 켜는 사람」이다. 수상작 「심장을 켜는 사람」은 거리의 뮤지션, 버스커를 소재로 시가 가진 노래의 성격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특히 음악을 묘사하는 언어의 리듬과 질감이 돋보인다. 본심 심사를 맡은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심사평을 통해 “지금의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의 시가 자연의 정숙함이 아니라, 거리의 죽음과 거리의 음악으로부터 시적 모티브를 발견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밝혔다.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들이 들어 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심장을 켜는 사람」 부분
나희덕 시인은 수상시인 인터뷰를 통해 “심장을 휘돌아 나가는 피처럼, 몸의 구석구석을 통과한 시에는 저마다 고유한 심장박동수나 울음소리가 있”다며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울음이 형식을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을 우리는 시 또는 노래라고 부”른다고 자신의 시론을 밝히기도 했다.
최종 후보작 … 김이듬, 김행숙, 손택수, 이문재, 이수명, 이원, 이제니, 이준규, 최정례
김이듬 「여파」 외 5편
흘러가다가 멈추고, 흘러가다가 멈춘다. 두리번거린다. 여기가 어디지? 뭘 하고 있지? 거리를 바꾸고 싶고 때로는 얼굴을 바꾸고 싶다. 꿈을 꺼내 바라보며 시무룩하다.“자두나무는 자두를 열심히 사랑하여 익히고 떨어뜨리고/나는 사랑을 붉히고 보내야 한다/사람이니까/그리고 망설일 줄 아는 능력이 있다”(「다소 이상한 사랑」 중에서). 이렇게 노을 녘 자두나무 곁에서 자두처럼 붉어지는 영혼을, 혹은 사랑을 김이듬은 망설이며 망설이며 보고 만진다. 그 망설임이 간절하여, 아름답다. ―장석남(시인)
김행숙 「존재의 집」 외 5편
낯설고 섬세한 감각으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온 김행숙 시인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일까? 독창적인 목소리로 감각을 재현해내며, 우리 앞에 끊임없이 토해냈던 그의 물음은 이제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언저리에 자주 제 닻을 내린다. 크로키처럼, 일순간을 포착할 때의 느낌을 존중하여 세밀하게 담아낸 그의 시 마디마디에는 이렇게 소중한 삶의 결들이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다. 신체의 어느 한 부위에 찾아든 느낌을 살려내고 김행숙이 후차적으로 그 감각에 부응하는 언어를 고안하려는 것은, 다시 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지금-여기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삶의 굴곡진 모퉁이를 돌아 나오고 인간이 뱉어낸 시간을 방문하면서 그가 거기서 울려 나오는 “에코의 초상”을 우리에게 선보일 때, 누군가를 받아낸 저 메아리의 운명과도 같은 그의 시는 차츰 닳아 없어지는 삶의 자락을 비끄러매면서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그에게 시는 차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도덕률이 아니라,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되물을 언어이자 삶의 공통지대를 새로운 감각으로 횡단하고 “타인의 창”에 나를 내비추고자 내딛은 발걸음이며, “꿈이 아니라면 이제부터 진짜 악몽”인 세계에 대한 비판이다. 타자, 타자와의 차이, 그간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해왔던 존재들조차 자기 동일성에 기대어 판단할 수 없다는 사유에서 그의 시적 이행의 의지가 솟아난 것은 아닐까? 삶의 지극한 슬픔과 고통이 뿜어내는 경이로움의 미광 하나로 그가 의식의 밑바닥을 훑으며 삶의 절망을 노래할 때, 그의 시는 벌써 조용한 함성이며, 자기 자신이 조금만 존재해도 좋다고 믿어야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몸짓이다. ―조재룡(문학평론가)
손택수 「시집의 쓸모」 외 5편
우리는 지금 정체가 불분명한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서정시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심에 올라온 지난 한 해 동안 손택수의 시를 보면 그간 조금은 메말라 있던 서정적 자아가 다시 살아난 듯하다. 「물로 쓰는 왕희지체」는 그 중 가편이었다. 그것은 물이 말라가면서 한 획, 한 획이 지워져 가는 “소멸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글씨다. 바닥의 열기를 제 몸으로 식히며 허공으로 날아올라 사라짐으로써 완성되는 글씨다. 노인이 길바닥에서 쓰는 물 글씨를 보고 이런 사유를 펼칠 수 있는 것은 현실인식과 함께 삶에 대한 성찰이 한층 깊어져서일 것이다. 손택수 시의 화자들은, 한밤 “아파트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누군가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이며 “빨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흙을 뭉쳤다 푸는 동안”의 우주적 시간을 들여다볼 줄 아는 자이다. ―조용미(시인)
이문재 「집이 집에 없다」 외 5편
이문재의 시 도처에서 우리는 사회적 죽음의 무의미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인의 풍자적이고도 비판적인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의 의미만이 찬미되는 세련되고도 화려한 세속 사회에서 인간은 생에 대한 욕망으로 혈기왕성하지만, 실상 거리에 널려 있는 무의미의 시취(屍臭)를 감각하지 못하는 속물적인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시인의 전언인 셈이다. 물론, 생소한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에 삶의 원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다소 희한하고도 역설적인 주장을 앞세우면서 세상에 널려 있는 고독한 죽음들의 흔적을 섬세한 상상력으로 부활시키려 한다. 죽음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리하여 죽음이 삶 곁에서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만든다는 말은 역사적 시간에 대한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야말로 타인의 죽음이 보존될 수 있는 시공간이자, 그 죽음을 매개로 삼아 개별적 삶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공통감각의 세속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생기를 되돌려주는 시인의 언어는 그러므로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윤리적 기억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정치적 희망이 동시에 살아 있는 자리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저 도저한 비판과 희망의 물길이 독자의 삶 쪽으로 트여 굳건한 감정의 속살로 돋아날 때, 그 감정들은 모여 분수처럼 끊이지 않을 역사의 새로운 물줄기의 원천을 이루게 될 것이다. ―강동호(문학평론가)
이수명 「칩」 외 5편
이수명 시의 매력은 쉽게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쉽게 읽히지 않음을 통해 대중문화적인 소비에 저항하고, 빨리 읽히지 않음을 통해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상품의 운명에서 벗어난다. 짧은 시간에 빨리 읽기 위해서라면 그녀의 시집을 펼쳐들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녀의 시는 어렵다. 왜냐하면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우리의 선입견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는 건조하다. 왜냐하면 시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 고루하기 때문이다. 이수명은 우리의 눈높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만족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수명의 시를 제대로 읽는 최선의 방법은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세계에 대한 감각의 새로운 지도이다. 새로운 지도는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한다. 이 새로운 눈의 하나가 바로 ‘아이’이다. 순진무구함으로 기성의 척도 바깥에서 놀이하는 아이의 시선. 그녀의 시는 낡을 대로 낡아 악취를 풍기는 우리의 감각을 치유해주는 문학적인 치료제이다. ―고봉준(문학평론가)
이원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외 5편
이원은 2차 예심에서 예심위원 전원의 추천을 받은 유일한 시인이다. 이원은 그동안 시의 형식 실험을 거쳐 새로운 시 세계로 진입했고 미학적 갱신을 거듭하여 이제는 그 새로움의 지평을 넓혀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듯하다. 그 세계는 인간의 고독과 단절감, 현실 세계와의 불화를 말하고 있지만 과잉이 없고 절제되어 있다. 그 건조하고 명징한 시 세계는 한편으로 ‘정서적’이기도 하며 소름끼치도록 분명하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의 고독을 말하고 있다. ―조용미(시인)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외 5편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로만 오로지 제 시의 특수성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인이 있다. 시는 요약될 수 없으며 단일한 해석에 갇히지 않아 어디론가 늘 빠져나가는 말이라는 것일까? 이제니의 시가 지극한 모험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은 의미에 붙들리는 대신, 낱말과 낱말, 구문과 구문이 관계를 맺어 생성된 특수한 시적 언어로, 제 고유한 호흡을 길어 올릴 순간까지 기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의미를 유보해내는 저 무한의 과정을 담아내려 하면서, 그는 삶의 수많은 결들을 순결한 문장으로 포섭해내고, 지금-여기로 끌고 와 언어의 기이한 운동처럼 우리에게 선보인다. 그는 낱말이 항시 다르게 쓰인다고 생각하는 시인, 언어로 명명될 때 사물과 우주의 실존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 시인, 그렇게 해야만 최대치의 주관성을 이 세계에 등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시인, 그렇게 해서 슬픔과 죽음, 사라짐과 울음, 덧없음과 고독의 출렁거리는 한 자락을 자신의 언어로 붙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시인이다. 관계의 사건이자, 타자라는 이름으로 나를, 나의 언어로 타자를 일깨우는, 그러니까 지금도 생성 중인 모험의 말이 우리에게 당도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구르고 또 구르는 말의 저 운동의 상태로만 표상되는 독특한 세계에 입사하게 될 것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움직이는 말이 모든 것을 삼킨, 아직 경험하지 못한 저 고독하고 외로운 바다 한가운데를 둥둥 떠다니게 될 것이다. 그는 시의 최전선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리듬의 화신이다. ―조재룡(문학평론가)
이준규 「마트료시카」 외 5편
의미(意味)의 껍질을 벗겨나간다. 사방에서 두서없이 흘러 들어오는 시간들을 서두르지 않고 헤아려 받아준다. 중얼거리며 한 겹씩 사물과 사물의 움직임을 반복하며 변주한다. 그러면 어느덧 ‘나’는 그 사물의 그림자가 되고 사물의 심연에 가깝게 다가가 있다. 그러한 이준규의 중얼거림은 생애가 끝나도록 계속될 듯한데 고독이라는 금강석이 바스러질 때를 마침내 보리라 작정한 듯하다. 고독을 짊어지고 고독의 몸짓으로 물결처럼 이어지는 이준규의 호흡을 끝내 고독을 아는 자, 좋아하게 될 것이다. ―장석남(시인)
최정례 「이 길 밖에서」 외 5편
최정례의 시는 현실의 시선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어떤 낯선 조짐들이 창궐하는 순간을 냉철하게, 산문의 언어를 빌려 응시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비현실이라 이름 붙이며 현실의 영토에서 영원히 추방하려 했던 망각의 기억들이 어느새 유령처럼, 환영처럼, 또는 피부병처럼 현실의 외피 안쪽에서부터 되살아나는 시간 경험의 중핵을 향하여 시인은 산문의 발걸음으로 천천히, 순례를 하듯 접근해 들어간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현실을 초현실주의와 혼동할 필요는 없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원래 비현실은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다른 영역으로 객관화할 수 있는 오브제라기보다는 현실을 구획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설정해놓은 현실의 경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른바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그것의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비현실이 현실을 잉태하는 일종의 현실의 격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틀이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한 인간은 현실이라는 이름의 거짓된 땅에 잠깐 더부살이하다가 결국 소멸하게 될 이방인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독자는 최정례의 시에서 낭떠러지 같은 현실의 끝이 곧 현실의 입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러한 실존적 토대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일종의 시적 현기증의 형식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강동호(문학평론가)
목차
여파/김이듬. -- 존재의 집/김행숙. -- 시집의 쓸모/손택수. -- 집이 집에 없다/이문제. -- 칩/이수명. --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이원.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이제니. -- 마크료시카/이준규. -- 이 길 밖에서/최정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