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봄날의책 세계 산문선
(그리스의 끝) 마니: 펠레폰네소스 남부 여행기
- 저자/역자
- 패트릭 리 퍼머 지음 / 강경이 옮김
- 펴낸곳
- 봄날의책
- 발행년도
- 2014
- 형태사항
- 515p.: 22cm
- 총서사항
- 봄날의책 세계 산문선
- 원서명
- Mani : travels in the Southern Peloponnese
- ISBN
- 9788996997979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4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북카페 | JG0000002568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JG0000002568
- 상태/반납예정일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여행이란 삶이 작은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을 열망하는 것이다. 무릇 좋은 여행서라면 그런 느낌을 강렬히 일으켜야 한다. 독자가 머물든, 떠나든에 상관없이.
1 ‘크레타의 게릴라 대장’이라 불리는,
이 책의 지은이이자 주인공, 패트릭 리 퍼머
이처럼 매력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 좌중을 웃고 울리는 말솜씨에 낭만적이면서도 웃음기 가득한 눈빛, 명석한 두뇌와 기억력, 뛰어난 언어 감각과 노래 솜씨, 거기다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까지. ‘패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이자 20세기 최고의 여행작가 중 한 사람인 패트릭 리 퍼머는 모닥불 가에 둘러앉은 양치기들부터 오래된 유럽 왕가의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손을 끌어 옆에 앉히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18살이던 1933년 그는 네덜란드에서부터 지금의 이스탄불인 터키의 콘스탄티노플까지 도보여행에 나섰다. 무전여행이나 다름없었던 여행 초기에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다시피 했지만 그는 곧 농가의 헛간과 빈 방을 거쳐 지방 귀족과 영주의 손님용 침실에 머무를 수 있었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기꺼이 잠자리와 음식을 내주고 떠나는 그의 손에 지인의 주소와 소개장을 쥐어준 덕분이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서재에 꽂힌 책들을 게걸스럽게 읽어가며 유럽을 종단했다. 14개월 만에 목적지에 닿은 그는 내처 그리스로 향했는데, 그 길에서 16살 연상의 루마니아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전쟁에서도 그의 매력은 유효했다. 그는 독일군에게 점령된 크레타 섬에서 섬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저항운동을 조직했고 크레타 섬의 독일군 군정장관을 생포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생포한 적장을 이송하는 사이에 친구가 되었으니 그의 매력은 적군에게도 통한 셈이다. 한마디로 인디애나 존스와 제임스 본드, 그레이엄 그린을 합쳐놓은 유쾌하고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다. 게다가 글솜씨마저 일품이다. 리 퍼머의 글은 현재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이 시기에서 저 시기로, 이 세기에서 저 세기로 넘나들며 즐거워하는 정신 속으로, 모든 시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은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런 그에게 ‘그리스’는 딱이었다.
2 ‘그리스’라는 익숙한 나라, 그리고 ‘마니’라는 아주 낯선 도시
하필, 왜 마니였을까?
1) 우선, ‘그리스’
그리스는 모든 곳이 흥미진진하고 어디에나 이야깃거리가 깃들어 있다. 어느 바위건 개울이건 전투나 신화, 기적, 이름 모를 어느 농부의 이야기, 미신이 얽히지 않은 곳이 없다. 여행자가 내걷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기억할 만한 기이한 이야기와 사건이 무성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 넓고 깊은 그리스를 일필휘지로 묘사하기는 퍼머에게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아니, 불가능했으리라. 하여, ‘마니’라는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를 취해서 우회한다. 퍼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댄다. “그리스에 대한 여행기를 제대로 쓰려면 어느 한 곳을 정해 할 수 있는 한 깊숙이 침투해야 한다. …… 그 편이 독자들도 ……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그리스의 훨씬 넓은 지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이다. 그러니 퍼머에게 마니는 하데스의 입구가 아니라 그리스의 너른 지평으로 인도하는 입구인 셈이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그는 “통신이 조악하고 외진 곳에 사는 탓에 환경과 역사의 오랜 관계가 그다지 훼손되지 않은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자취를 감추기 전에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쓴다.
2) 그다음, ‘마니’
마니는 이런 곳이다. 유럽의 최남단 심장부의 마니는 그리스에서 가장 동떨어지고 황량하며 고립된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우뚝 솟은 타이게토스 산맥으로 나머지 그리스와 단절되어 있고, 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에 둘러싸인 마니는 과거로부터의 오랜 전통이 일상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다. 곧 고대 세상과 20세기가 공존하는 곳. 마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산악지대는 마니인들의 조상인 스파르타인들이 스파르타 몰락 이후 피신한 곳이다. 분명 이곳은 깎아지른 듯 가파르고 황량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수 세기 동안 다른 지역의 삶으로부터 단절된 마니에는 과거의 유물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예외가 풍부하다.
그리스 문명이 피워낸 꽃으로, 그 황금기로 그리스를 규정하지 않고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이민족 융합과 디아스포라를 거듭하며 땅속으로 뻗어나간 투박하고 뒤틀리고 옹이 진 뿌리를 따라가 보는 것, 책으로 배운 그리스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 그리고 독자에게 그리스를 안내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인은 누구인가?”라고 묻게 하는 것. 그렇게 스스로 발견한 그리스는 “온갖 통합과 분산의 기나긴 여정을 거친 그리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규칙을 거스르는 예외의 기이함이 끝도 없이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이다.”
3)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 ‘마니’의 속살
마니의 지배층이던 니클리아노스의 전쟁, 고르곤과 켄타우로스, 비잔티움의 종교미술에 대한 묘사는 당연하고, 도나우공국에서 쓰던 희한한 모자를 세세히 묘사하고 코르시카의 카쥬스로 이주한 마니 공동체의 역사까지 집요하게 추적해 묘사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떠올리고, 길가 예배당의 성화를 보면서 헬레니즘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과 동서방 종교화의 차이를 논하며, 통발을 엮는 어부와 우조를 들이켜면서 비잔티움제국의 부활을 상상한다.
게다가, 많은 독자에게 《마니》는 생경한 이름이 넘치는 책으로 보일 것이다. 터키에 대항한 마니의 반란을 이끌었으며 ‘현대 그리스라는 눈부신 불사조의 부활’을 도왔다는 페트로베이 마브로미칼리스에 대해서도, 자넷베이에 대해서도, 니클리아노스라 불리는 마니의 유명 인사들이나 10세기에 마니인들을 어르고 달래 고대 신들을 버리고 개종하게 했던 회개자 성 니콘, 크레타의 시인 비센티오스 코르나로스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왈라키아-몰다비아공국의 ‘호스파다르의 궁정의 다양한 고관대작들의 놀라운 직함’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무릇 여행이란 낯선 이름,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과의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만남에서 느끼는 짜릿함의 몫이 의외로 크지 않나? 유쾌한 여행가 리 퍼머라면 더더욱.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맘에 드는 장면들을 두엇씩은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리 퍼머가 우조를 마시는 어부를 보면서 비잔티움의 적법한 황위 계승자를 발견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불가능한 가정의 빛나는 안개’ 부분, 리 퍼머가 마니의 남단을 여행하다가 배에서 뛰어내려 고대에 타이나로스라 불리던 동굴로 헤엄쳐 가는 장면, 죽은 자를 애도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부른 절절한 만가(輓歌)에 마음을 빼앗겨 모두가 눈물짓는 그 지점 등등.
4) ‘마니’와 작가들
마니의 쓸쓸한 자연 풍경, 그리고 본토로부터 떨어져 어느 정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마을 풍경에는 일급 작가들을 매혹하는 힘이 있었던 듯하다. 카잔차키스도 한동안 마니의 카르다밀리 근처 작은 만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모델이 된 ‘진짜’ 조르바와 같이 지내며 갈탄광산을 운영했다. 어쩌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많은 부분이 이곳에서 잉태되었는지 모른다. 여행문학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파타고니아》의 저자 브루스 채트윈도 마니를 즐겨 찾았으며 자신이 죽은 뒤에 화장한 유골을 마니에 뿌려달라고 했다. 브루스 채트윈의 유골을 마니에 뿌린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패트릭 리 퍼머이다. ‘마니’는 억세고 거친 스파르타인의 후예가 사는 쓸쓸하고 황량한 곳이라는 통념과 달리, 가장 정 많고 환대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그곳의 풍광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그곳의 사람들이 지닌 매력이 그 작가들을 기꺼이 매혹시키고 이끌었을 것이다.
3 그리스에 어울리는 문체
퍼머에게 낯선 이름들은 아주 각별하다. 그의 글은 무엇보다 낯선 이름을 쫓는 설렘,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묘미를 전해준다. 그의 비범한 문체는 특히 ‘그리스’라는 주제와 잘 맞는다. 그의 산문에서 펼쳐지는 눈부신 화려한과 아름다운 굴곡은 그리스의 매혹적인 바위투성이 풍경과 특히 잘 어울린다. 그 누구도 한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에 이토록 해박한 지식과 감수성으로 반응하지 못할 것이다. 무릇, 좋은 글이란 낯선 이름,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가장 비범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낯선 것을 가장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내는 마술.
한편, “가지를 치며 어지러이 덩굴손을 뻗어가는” 담쟁이처럼 퍼머의 문장은 뻗어간다. 집요한 생명력을 지닌, 이파리가 무성한 덩굴처럼 화려한 문장이 산맥을 넘고 협곡을 건너 외딴 마을과 폐허를 돌아 신화와 종교, 역사, 예술, 구비설화, 환상을 넘나들며 내달린다. 웬만하면 멈출 만도 한데 그는 멈추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면 펜을 내려놓을 곳에서 퍼머의 펜은 집요하게 전진한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4 덧붙임: 이후 나올 ‘봄날의책’의 여행기
패트릭 리 퍼머, 《침묵을 위한 시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서 깊은 수도원에 고여 있는 깊고 깊은 침묵, 그리고 느닷없이 그 침묵에 닿아버린 마음의 변화. 이 아름다운 작은 책은 ‘수도원’이라는 비밀스럽고 낯선 장소로 이끄는 지도이자, 현대인의 삶에서 침묵과 고독에 갖는 의미를 구하는 명상록이다.
팀 매킨토시-스미스, 《탕헤르인과 함께한 여행》. 조금 비딱하고 많이 웃기는 이 사내, 이븐 바투타에게 사로잡혀 탕헤르부터 콘스탄티노플까지 700년 전 여정을 되짚는 파란만장한 여행을 시작한다. 전설적인 14세기 여행가와 이 박학다식한 21세기 작가는 시간을 뛰어넘는 완벽한 짝이 되어 유장한 대지를 가로지른다.
무함마드 아사드, 《메카로 가는 길》.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대인 지식인의 영적 여행기. 이 책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모험과 진리를 추구했던 한 탁월한 남자의 초상을 보여준다.
1 ‘크레타의 게릴라 대장’이라 불리는,
이 책의 지은이이자 주인공, 패트릭 리 퍼머
이처럼 매력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 좌중을 웃고 울리는 말솜씨에 낭만적이면서도 웃음기 가득한 눈빛, 명석한 두뇌와 기억력, 뛰어난 언어 감각과 노래 솜씨, 거기다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까지. ‘패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이자 20세기 최고의 여행작가 중 한 사람인 패트릭 리 퍼머는 모닥불 가에 둘러앉은 양치기들부터 오래된 유럽 왕가의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손을 끌어 옆에 앉히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18살이던 1933년 그는 네덜란드에서부터 지금의 이스탄불인 터키의 콘스탄티노플까지 도보여행에 나섰다. 무전여행이나 다름없었던 여행 초기에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다시피 했지만 그는 곧 농가의 헛간과 빈 방을 거쳐 지방 귀족과 영주의 손님용 침실에 머무를 수 있었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기꺼이 잠자리와 음식을 내주고 떠나는 그의 손에 지인의 주소와 소개장을 쥐어준 덕분이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서재에 꽂힌 책들을 게걸스럽게 읽어가며 유럽을 종단했다. 14개월 만에 목적지에 닿은 그는 내처 그리스로 향했는데, 그 길에서 16살 연상의 루마니아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전쟁에서도 그의 매력은 유효했다. 그는 독일군에게 점령된 크레타 섬에서 섬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저항운동을 조직했고 크레타 섬의 독일군 군정장관을 생포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생포한 적장을 이송하는 사이에 친구가 되었으니 그의 매력은 적군에게도 통한 셈이다. 한마디로 인디애나 존스와 제임스 본드, 그레이엄 그린을 합쳐놓은 유쾌하고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다. 게다가 글솜씨마저 일품이다. 리 퍼머의 글은 현재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이 시기에서 저 시기로, 이 세기에서 저 세기로 넘나들며 즐거워하는 정신 속으로, 모든 시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은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런 그에게 ‘그리스’는 딱이었다.
2 ‘그리스’라는 익숙한 나라, 그리고 ‘마니’라는 아주 낯선 도시
하필, 왜 마니였을까?
1) 우선, ‘그리스’
그리스는 모든 곳이 흥미진진하고 어디에나 이야깃거리가 깃들어 있다. 어느 바위건 개울이건 전투나 신화, 기적, 이름 모를 어느 농부의 이야기, 미신이 얽히지 않은 곳이 없다. 여행자가 내걷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기억할 만한 기이한 이야기와 사건이 무성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 넓고 깊은 그리스를 일필휘지로 묘사하기는 퍼머에게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아니, 불가능했으리라. 하여, ‘마니’라는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를 취해서 우회한다. 퍼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댄다. “그리스에 대한 여행기를 제대로 쓰려면 어느 한 곳을 정해 할 수 있는 한 깊숙이 침투해야 한다. …… 그 편이 독자들도 ……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그리스의 훨씬 넓은 지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이다. 그러니 퍼머에게 마니는 하데스의 입구가 아니라 그리스의 너른 지평으로 인도하는 입구인 셈이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그는 “통신이 조악하고 외진 곳에 사는 탓에 환경과 역사의 오랜 관계가 그다지 훼손되지 않은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자취를 감추기 전에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쓴다.
2) 그다음, ‘마니’
마니는 이런 곳이다. 유럽의 최남단 심장부의 마니는 그리스에서 가장 동떨어지고 황량하며 고립된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우뚝 솟은 타이게토스 산맥으로 나머지 그리스와 단절되어 있고, 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에 둘러싸인 마니는 과거로부터의 오랜 전통이 일상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다. 곧 고대 세상과 20세기가 공존하는 곳. 마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산악지대는 마니인들의 조상인 스파르타인들이 스파르타 몰락 이후 피신한 곳이다. 분명 이곳은 깎아지른 듯 가파르고 황량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수 세기 동안 다른 지역의 삶으로부터 단절된 마니에는 과거의 유물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예외가 풍부하다.
그리스 문명이 피워낸 꽃으로, 그 황금기로 그리스를 규정하지 않고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이민족 융합과 디아스포라를 거듭하며 땅속으로 뻗어나간 투박하고 뒤틀리고 옹이 진 뿌리를 따라가 보는 것, 책으로 배운 그리스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 그리고 독자에게 그리스를 안내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인은 누구인가?”라고 묻게 하는 것. 그렇게 스스로 발견한 그리스는 “온갖 통합과 분산의 기나긴 여정을 거친 그리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규칙을 거스르는 예외의 기이함이 끝도 없이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이다.”
3)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 ‘마니’의 속살
마니의 지배층이던 니클리아노스의 전쟁, 고르곤과 켄타우로스, 비잔티움의 종교미술에 대한 묘사는 당연하고, 도나우공국에서 쓰던 희한한 모자를 세세히 묘사하고 코르시카의 카쥬스로 이주한 마니 공동체의 역사까지 집요하게 추적해 묘사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떠올리고, 길가 예배당의 성화를 보면서 헬레니즘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과 동서방 종교화의 차이를 논하며, 통발을 엮는 어부와 우조를 들이켜면서 비잔티움제국의 부활을 상상한다.
게다가, 많은 독자에게 《마니》는 생경한 이름이 넘치는 책으로 보일 것이다. 터키에 대항한 마니의 반란을 이끌었으며 ‘현대 그리스라는 눈부신 불사조의 부활’을 도왔다는 페트로베이 마브로미칼리스에 대해서도, 자넷베이에 대해서도, 니클리아노스라 불리는 마니의 유명 인사들이나 10세기에 마니인들을 어르고 달래 고대 신들을 버리고 개종하게 했던 회개자 성 니콘, 크레타의 시인 비센티오스 코르나로스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왈라키아-몰다비아공국의 ‘호스파다르의 궁정의 다양한 고관대작들의 놀라운 직함’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무릇 여행이란 낯선 이름,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과의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만남에서 느끼는 짜릿함의 몫이 의외로 크지 않나? 유쾌한 여행가 리 퍼머라면 더더욱.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맘에 드는 장면들을 두엇씩은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리 퍼머가 우조를 마시는 어부를 보면서 비잔티움의 적법한 황위 계승자를 발견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불가능한 가정의 빛나는 안개’ 부분, 리 퍼머가 마니의 남단을 여행하다가 배에서 뛰어내려 고대에 타이나로스라 불리던 동굴로 헤엄쳐 가는 장면, 죽은 자를 애도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부른 절절한 만가(輓歌)에 마음을 빼앗겨 모두가 눈물짓는 그 지점 등등.
4) ‘마니’와 작가들
마니의 쓸쓸한 자연 풍경, 그리고 본토로부터 떨어져 어느 정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마을 풍경에는 일급 작가들을 매혹하는 힘이 있었던 듯하다. 카잔차키스도 한동안 마니의 카르다밀리 근처 작은 만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모델이 된 ‘진짜’ 조르바와 같이 지내며 갈탄광산을 운영했다. 어쩌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많은 부분이 이곳에서 잉태되었는지 모른다. 여행문학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파타고니아》의 저자 브루스 채트윈도 마니를 즐겨 찾았으며 자신이 죽은 뒤에 화장한 유골을 마니에 뿌려달라고 했다. 브루스 채트윈의 유골을 마니에 뿌린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패트릭 리 퍼머이다. ‘마니’는 억세고 거친 스파르타인의 후예가 사는 쓸쓸하고 황량한 곳이라는 통념과 달리, 가장 정 많고 환대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그곳의 풍광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그곳의 사람들이 지닌 매력이 그 작가들을 기꺼이 매혹시키고 이끌었을 것이다.
3 그리스에 어울리는 문체
퍼머에게 낯선 이름들은 아주 각별하다. 그의 글은 무엇보다 낯선 이름을 쫓는 설렘,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묘미를 전해준다. 그의 비범한 문체는 특히 ‘그리스’라는 주제와 잘 맞는다. 그의 산문에서 펼쳐지는 눈부신 화려한과 아름다운 굴곡은 그리스의 매혹적인 바위투성이 풍경과 특히 잘 어울린다. 그 누구도 한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에 이토록 해박한 지식과 감수성으로 반응하지 못할 것이다. 무릇, 좋은 글이란 낯선 이름,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가장 비범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낯선 것을 가장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내는 마술.
한편, “가지를 치며 어지러이 덩굴손을 뻗어가는” 담쟁이처럼 퍼머의 문장은 뻗어간다. 집요한 생명력을 지닌, 이파리가 무성한 덩굴처럼 화려한 문장이 산맥을 넘고 협곡을 건너 외딴 마을과 폐허를 돌아 신화와 종교, 역사, 예술, 구비설화, 환상을 넘나들며 내달린다. 웬만하면 멈출 만도 한데 그는 멈추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면 펜을 내려놓을 곳에서 퍼머의 펜은 집요하게 전진한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4 덧붙임: 이후 나올 ‘봄날의책’의 여행기
패트릭 리 퍼머, 《침묵을 위한 시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서 깊은 수도원에 고여 있는 깊고 깊은 침묵, 그리고 느닷없이 그 침묵에 닿아버린 마음의 변화. 이 아름다운 작은 책은 ‘수도원’이라는 비밀스럽고 낯선 장소로 이끄는 지도이자, 현대인의 삶에서 침묵과 고독에 갖는 의미를 구하는 명상록이다.
팀 매킨토시-스미스, 《탕헤르인과 함께한 여행》. 조금 비딱하고 많이 웃기는 이 사내, 이븐 바투타에게 사로잡혀 탕헤르부터 콘스탄티노플까지 700년 전 여정을 되짚는 파란만장한 여행을 시작한다. 전설적인 14세기 여행가와 이 박학다식한 21세기 작가는 시간을 뛰어넘는 완벽한 짝이 되어 유장한 대지를 가로지른다.
무함마드 아사드, 《메카로 가는 길》.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대인 지식인의 영적 여행기. 이 책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모험과 진리를 추구했던 한 탁월한 남자의 초상을 보여준다.
목차
서문
1. 스파르타에서 남쪽으로
2. 흉측한 우상
3. 카르다밀리: 비잔티움의 부활
4. 아레오폴리스, 전쟁 신의 도시
5. 애도
6. 안쪽 마니로
7. 어두운 탑
8. 호전적인 귀족과 코르시카의 마니 사람들
9. 변화와 쇠락, 그리고 마타판의 수탉들
10. 지옥의 문
11. 나쁜 산맥, 사악한 권고, 가마솥 사람들
12. 바다의 요정 네레이데스의 샘
13. 고르곤과 켄타우로스
14. 라이아에서의 담소: 키프로스와 글래드스톤 부인
15. 성상
16. 반농반어촌의 여자 가장과 마니의 시인
17. 라코니아 만 상류로: 동물과 바람
18. 짧은 여름밤
19. 성과 바다
20. 라케다이모니아의 항구
주석
옮긴이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