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나는 말랄라: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당당히 일어섰던 소녀 그래서 탈레반의 총에 맞았던 소녀
- 저자/역자
- 말랄라 유사프자이 / 크리스티나 램 지음, 박찬원 옮김
- 펴낸곳
- 문학동네
- 발행년도
- 2014
- 형태사항
- 383p.: 23cm
- 원서명
- I am Malala I am Malala : the girl who stood up for education and was shot by the Taliban
- ISBN
- 9788954625807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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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 JG000000245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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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카페
책 소개
2014 노벨평화상 수상! 역대 최연소 수상!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_말랄라, 유엔 연설 중에서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년간 소녀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웠고, 어린이와 젊은이도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스스로 기여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것을 그녀는 가장 위험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냈다. 영웅적인 투쟁으로 말랄라는 소녀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우는 선도적인 대변자가 되었다.” _노벨평화상 선정 이유
2014년 10월 10일 영국 버밍엄의 한 여학교, 이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한 소녀에게 전 세계인의 시선이 쏠렸다. 노벨평화위원회가 “어린이와 젊은이들에 대한 억압에 맞서고 어린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운 카일라쉬 사티아르티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201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다고 발표한 것. 올해 나이 겨우 열일곱 살인 파키스탄의 한 소녀가 노벨상 전 부문을 통틀어 역대 최연소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으며, 이 상을 수상한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말랄라는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저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은 그동안의 업적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더 잘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벨평화상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2013년 7월 12일 뉴욕 유엔 본부, 열여섯 살 생일을 맞은 파키스탄 소녀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소개로 단상에 올라 전 세계를 향해 연설을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 전통 의상을 입고, 피살당한 파키스탄 첫 여성 총리 베나지르 부토의 숄을 두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이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해달라고 호소했다. “우리가 책과 펜을 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책과 펜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1년 전인 2012년 10월 9일 파키스탄 북부 밍고라, 말랄라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에서 한 괴한이 코앞에서 쏜 총알에 머리를 관통당했다. 그녀가 살아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말랄라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고 있을 때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인 탈레반은 그녀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누구든 우리에게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자는 같은 방식으로 처리될 것이다.”
이 소녀는 누구일까? 단짝 친구와 『트와일라잇』을 읽고, 남동생과 티격태격하고, 학교에서 1등을 놓고 경쟁하던 평범한 소녀가 어째서 탈레반의 표적이 되고, 어떻게 세계의 정상들이 서는 연단에 오르고,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까? 『나는 말랄라』에는 그 길고도 놀라운 여정이 담겨 있다.
『나는 말랄라』는 그저 학교에 다니는 게 꿈이었던 한 소녀의 자전적 연대기이자, 탈레반이 장악한 파키스탄 북부의 스와트밸리 지역에서 여자아이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해온 가족의 이야기,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거쳐온 질곡의 현대사에 대한 훌륭한 개괄, 나아가 21세기 세계정세의 태풍의 핵인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리즘의 실체를 폭로하는 현장의 목소리이다. 또한 무엇보다 불의와 폭압에 침묵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용기와 신념에 관한 감동적인 기록이다.
말랄라의 이야기는 그녀가 열한 살이던 2009년에 영국 공영방송 BBC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탈레반 치하의 삶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총격 사건 이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같은 각국 지도자들과 앤젤리나 졸리, 마돈나, 비욘세 등의 스타들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하고, 최연소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는 등, 전세계적으로 ‘말랄라 신드롬’이 일었다. 그리고 2014년 10월 역대 최연소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나는 말랄라』를 읽는 한국의 독자들 또한 한 소녀의 목소리가 세상에 변화를 불러오는 과정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와 깊은 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외딴 계곡 스와트에서 뉴욕 유엔 본부까지
말랄라가 말하는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997년 7월 12일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들이 태어나면 축포를 쏘고 딸이 태어나면 커튼 뒤에 숨기는 나라, 그저 요리를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이 여자의 평생 역할인 나라에서 태어난 딸이었다.”(19쪽) 말랄라가 속한 파슈툰족은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거주하며 탈레반 무장 세력의 주축이 되는 호전적인 부족으로, 특히 여성의 사회생활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파슈툰왈리’라는 특유의 규범을 따른다.
하지만 말랄라의 아버지 지아우딘 유사프자이는 여성 차별에 반대하고 스와트밸리에 여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를 세우며 교육운동을 실천해온 인물이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말랄라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학교에 다녔고,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항공기 납치에 이은 자살 테러로 무너져내릴 때, 지구 반대편의 산골 마을에 사는 말랄라의 운명도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축출당한 탈레반 세력은 파키스탄 북부로 거점을 옮겨갔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스와트밸리의 평화는 2007년 탈레반이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점령하면서 산산조각 나고 만다.
파키스탄 탈레반의 지도자 마울라나 파즐울라는 먼저 주민들의 주요 정보원인 라디오방송을 통해 지역사회에 깊숙이 침투했다. 대부분 아랍어를 모른다는 맹점을 이용해 코란을 제멋대로 해석한 이슬람 율법을 설파했다. 처음에는 CD, DVD, 텔레비전 등을 금지하고 불태웠다. 이어서 발전소, 가스관, 학교를 폭파했다. 2008년 말까지 점령 지역 내 학교 400여 곳이 파괴되었다. 급기야 2008년 말, 모든 여학교의 폐교령을 공포하고 이듬해 1월부터 여자들은 학교에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매일같이 마을 광장에 쌓이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즈음에는 하루하루가 최악의 날인 듯했고, 매 순간이 최악의 시간인 듯했다. 어디를 가나 나쁜 소식이 들렸다. 이 사람 집에서 폭탄이 터졌고, 저 학교가 폭파되었으며,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 마타에 사는 교사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 샬와르 바지를 탈레반이 입는 방식대로 끝자락이 발목 위로 올라가게 입는 것을 거절한 것이 이유였다. 그 교사는 이슬람 국가 어디에도 그런 요구는 없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그를 목매달아 죽이고 그의 아버지를 총으로 쏘았다. _본문 177쪽
모두가 공포에 떨며 숨죽이던 시기에 열한 살 말랄라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탈레반 치하의 삶에 대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한 남자가, 즉 파즐울라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면, 한 소녀가 그것을 바꾸는 건 왜 못하겠는가?”(169쪽) 이 일기에서 말랄라는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고 학교를 폐쇄하는 탈레반에 항의하며 그들이 스와트에서 저지르는 만행들을 알렸고, 이는 곧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펜과 그 펜에서 나오는 글이 기관총이나 탱크, 헬리콥터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닐 수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말을 할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배우고 있었다. _본문 186~187쪽
이후 말랄라는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와 <뉴욕 타임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스와트밸리에서 수업은 끝나다>를 통해 더욱 목소리를 높였고, 아버지와 함께 본격적으로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대사였던 리처드 홀브룩, 파키스탄군 수석 대변인 아타르 아바스 장군 등을 만난 자리에서 스와트 문제 해결에 힘써줄 것을 촉구했다. 유니세프가 주최하는 ‘스와트 지역 어린이의회’에 참가해 아동 노동착취 종식, 장애인과 노숙아동 교육 지원,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모든 학교의 재건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해 일부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12월에 제1회 파키스탄 청소년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에 탈레반은 말랄라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살해 협박을 가하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굴복하지 않았다.
2012년 10월 9일, 하굣길 스쿨버스 안에서 말랄라는 갑자기 들이닥친 탈레반 병사에게 피격되었다. 총알은 말랄라의 머리와 목을 관통해 척추 근처 어깨에 박혔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지 병원으로 옮겨진 말랄라는 부어오른 뇌 때문에 두개골 일부를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고, 집중 치료를 위해 10월 15일 영국 버밍엄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듬해인 2013년 1월에 퇴원한 뒤,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속에서 건강을 회복한 말랄라는 3월부터 영국 버밍엄에 위치한 에지배스턴 여학교에 다니고 있다. 신변 위협 때문에 그녀의 가족은 모두 고국인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국에 체류중이며 아버지 지아우딘은 버밍엄 주재 파키스탄 영사관에서 교육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후 말랄라는 유엔 본부 단상에 선 것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와 연설 및 ‘말랄라 펀드’ 조성을 통해 파키스탄은 물론 시리아, 나이지리아, 케냐 등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운동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말랄라가 전하는 전 세계 아동 교육의 실태와 현재 파키스탄 내 상황
“나는 이것이 큰 싸움이 될 것임을 안다. 세계적으로 초등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5700만 명이며, 그중 3200만 명이 여자아이들이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파키스탄이 최악의 경우여서, 헌법으로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510만 명이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들 중 5000만 명이 문맹이며, 그중 3분의 2가 우리 어머니 같은 여성이다.
여학생들은 계속해서 살해당하고 학교는 폭파당한다. 2013년 3월에는 카라치의 한 여학교가 공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상장 수여식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 폭탄과 수류탄이 운동장으로 날아들어, 교장 압두르 라시드가 사망하고 다섯 살에서 열 살 사이의 어린 학생 여덟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중 여덟 살인 한 어린이는 불구가 되었다. (…) 가장 충격적인 공격은 6월에 퀘타라는 도시에서 일어났다. 마흔 명의 학생을 태우고 여자고등학교로 가던 버스가 자살 폭탄 테러를 당해 열네 명이 사망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부상자들을 뒤따라간 테러범은 간호사들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아이들을 죽이는 탈레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때로는 무인폭격기의 공격이, 전쟁이, 굶주림이 있었고, 때로는 가족의 폭력이 있었다. 6월, 스와트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위치한 길기트에서 내 또래 소녀 두 명이 살해되었다. 전통적인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스카프를 쓴 차림으로 빗속에서 춤을 추는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두 소녀의 이복오빠가 그들을 총으로 쏘았다.”
_본문 366~367쪽
▶ 말라라 유엔 연설 내용
“오랜 시간이 흐르고 오늘 이렇게 연설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 말랄라의 날은 저를 위한 날이 아닙니다. 오늘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모든 여성과 모든 소년 소녀들을 위한 날입니다. 수많은 인권운동가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인권뿐만 아니라 교육과 평화, 그리고 평등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중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테러리스트에게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의 부상자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도 그들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오늘,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소리칠 수 있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뜻을 대신 전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려 합니다. 평화롭게 살 권리, 존귀하게 대우받을 권리,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을 권리,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2012년 10월 9일, 탈레반은 제 왼쪽 이마에 총을 쏘았습니다. 탈레반은 총으로 우리를 침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침묵을 뚫고 수많은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총으로 우리의 목표를 바꾸고 열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게서 나약함과 두려움과 절망을 빼앗아갔을 뿐입니다. 제 안에는 오히려 새로운 힘과 용기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말랄라입니다. 같은 열정, 같은 희망, 같은 꿈을 가진 말랄라입니다.
저는 그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습니다. 탈레반이나 다른 테러 집단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도 아닙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저는 탈레반과 모든 극단주의자들의 아이들 역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게 총을 쏜 탈레반원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제게 총이 있고 그가 제 앞에 있다 하더라도 저는 그를 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호메트와 예수그리스도, 부처님께 배운 연민입니다. 마틴 루서 킹과 넬슨 만델라에게서 받은 혁신의 유산이자 간디와 테레사로부터 배운 비폭력의 철학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배운 용서의 정신입니다. (…)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빛의 소중함을 깨닫고, 침묵 속에서 외침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스와트에서, 그 총부리 앞에서, 우리는 책과 펜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정말 옳습니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합니다. 교육의 힘을 두려워합니다. (…) 평등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평화와 박애의 종교인 이슬람의 이름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벌이는 테러와 전쟁으로 학교가 파괴되고 아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테러와 폭력에 맞서 싸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시고, 여성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
교육이라는 대의 아래 하나가 되어 지식의 무기로 무장한다면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빈곤과 불의 그리고 무지로 고통받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교육의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강한 무기인 책과 펜을 들고 문맹과 빈곤, 테러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선생님, 한 권의 책,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교육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감사합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부터 앤젤리나 졸리까지,
말랄라를 향한 세계인의 지지
* 말랄라의 피격 사실이 알려지며 파키스탄 전역에서 학생들이 ‘나는 말랄라다(I Am Malala)’가 적힌 피켓을 들고 말랄라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뉴스위크> 계열의 시사 웹사이트 <데일리 비스트>에 「우리는 모두 말랄라입니다」라는 글을 기고했다. “말랄라는 용감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수많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 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산 증거입니다.” 또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후원하기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지지를 천명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그녀의 용기 때문에 탈레반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랄라의 정신은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여성 교육에 대한 고무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그녀와 함께할 것입니다.”
* 영국의 전 총리이자 유엔 교육특사인 고든 브라운은 ‘내 이름은 말랄라’라는 슬로건 아래 2015년까지 이 세상 모든 어린이가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 『연금술사』로 유명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말랄라를 가리켜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그것은 책을 든 소녀다”라고 한 반기문 사무총장의 발언을 트위터에 올렸고, 말랄라 후원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피격 직후에 (탈레반이 말랄라를 공격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불쾌하며, 비극적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 또한 “그런 위협을 받으면서도 소녀들의 권리를 위해 나서다니 매우 용감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마돈나는 콘서트에서 등에 말랄라의 이름을 써 관객에게 보여주며 <Human Nature>라는 곡을 말랄라에게 바쳤다. 비욘세는 병상에 있던 말랄라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보냈고 이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 에덜먼과 경영 컨설팅 그룹 매킨지가 말랄라 펀드를 후원하고 있다.
▶ 말랄라 수상 경력
2011년 국제 아동인권평화상 후보, 파키스탄 청소년평화상 수상
2012년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 후보, 마더 테레사 메모리얼 어워드 사회적 정의 부문 수상,
로마 평화와 인도주의적 행동상 수상, 2012 올해의 아시아인 선정
2013년 시몬 드 보부아르 상 수상, 노벨평화상 최연소 후보,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티퍼러리 평화상 수상,
국제 아동인권평화상 수상, 국제 엠네스티 양심대사상 수상,
하버드대 인도주의상 수상, 사하로프 인권상 수상,
국제 평등 및 비차별상 수상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 세계어린이상(어린이 노벨상) 후보,
스콜 글로벌 트레저 어워드 수상, 캐나다 핼리팩스 킹스칼리지 대학에서 민법 명예박사 학위 수여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_말랄라, 유엔 연설 중에서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년간 소녀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웠고, 어린이와 젊은이도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스스로 기여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것을 그녀는 가장 위험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냈다. 영웅적인 투쟁으로 말랄라는 소녀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우는 선도적인 대변자가 되었다.” _노벨평화상 선정 이유
2014년 10월 10일 영국 버밍엄의 한 여학교, 이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한 소녀에게 전 세계인의 시선이 쏠렸다. 노벨평화위원회가 “어린이와 젊은이들에 대한 억압에 맞서고 어린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운 카일라쉬 사티아르티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201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다고 발표한 것. 올해 나이 겨우 열일곱 살인 파키스탄의 한 소녀가 노벨상 전 부문을 통틀어 역대 최연소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으며, 이 상을 수상한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말랄라는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저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은 그동안의 업적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더 잘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벨평화상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2013년 7월 12일 뉴욕 유엔 본부, 열여섯 살 생일을 맞은 파키스탄 소녀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소개로 단상에 올라 전 세계를 향해 연설을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 전통 의상을 입고, 피살당한 파키스탄 첫 여성 총리 베나지르 부토의 숄을 두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이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해달라고 호소했다. “우리가 책과 펜을 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책과 펜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1년 전인 2012년 10월 9일 파키스탄 북부 밍고라, 말랄라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에서 한 괴한이 코앞에서 쏜 총알에 머리를 관통당했다. 그녀가 살아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말랄라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고 있을 때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인 탈레반은 그녀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누구든 우리에게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자는 같은 방식으로 처리될 것이다.”
이 소녀는 누구일까? 단짝 친구와 『트와일라잇』을 읽고, 남동생과 티격태격하고, 학교에서 1등을 놓고 경쟁하던 평범한 소녀가 어째서 탈레반의 표적이 되고, 어떻게 세계의 정상들이 서는 연단에 오르고,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까? 『나는 말랄라』에는 그 길고도 놀라운 여정이 담겨 있다.
『나는 말랄라』는 그저 학교에 다니는 게 꿈이었던 한 소녀의 자전적 연대기이자, 탈레반이 장악한 파키스탄 북부의 스와트밸리 지역에서 여자아이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해온 가족의 이야기,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거쳐온 질곡의 현대사에 대한 훌륭한 개괄, 나아가 21세기 세계정세의 태풍의 핵인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리즘의 실체를 폭로하는 현장의 목소리이다. 또한 무엇보다 불의와 폭압에 침묵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용기와 신념에 관한 감동적인 기록이다.
말랄라의 이야기는 그녀가 열한 살이던 2009년에 영국 공영방송 BBC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탈레반 치하의 삶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총격 사건 이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같은 각국 지도자들과 앤젤리나 졸리, 마돈나, 비욘세 등의 스타들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하고, 최연소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는 등, 전세계적으로 ‘말랄라 신드롬’이 일었다. 그리고 2014년 10월 역대 최연소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나는 말랄라』를 읽는 한국의 독자들 또한 한 소녀의 목소리가 세상에 변화를 불러오는 과정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와 깊은 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외딴 계곡 스와트에서 뉴욕 유엔 본부까지
말랄라가 말하는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997년 7월 12일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들이 태어나면 축포를 쏘고 딸이 태어나면 커튼 뒤에 숨기는 나라, 그저 요리를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이 여자의 평생 역할인 나라에서 태어난 딸이었다.”(19쪽) 말랄라가 속한 파슈툰족은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거주하며 탈레반 무장 세력의 주축이 되는 호전적인 부족으로, 특히 여성의 사회생활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파슈툰왈리’라는 특유의 규범을 따른다.
하지만 말랄라의 아버지 지아우딘 유사프자이는 여성 차별에 반대하고 스와트밸리에 여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를 세우며 교육운동을 실천해온 인물이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말랄라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학교에 다녔고,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항공기 납치에 이은 자살 테러로 무너져내릴 때, 지구 반대편의 산골 마을에 사는 말랄라의 운명도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축출당한 탈레반 세력은 파키스탄 북부로 거점을 옮겨갔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스와트밸리의 평화는 2007년 탈레반이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점령하면서 산산조각 나고 만다.
파키스탄 탈레반의 지도자 마울라나 파즐울라는 먼저 주민들의 주요 정보원인 라디오방송을 통해 지역사회에 깊숙이 침투했다. 대부분 아랍어를 모른다는 맹점을 이용해 코란을 제멋대로 해석한 이슬람 율법을 설파했다. 처음에는 CD, DVD, 텔레비전 등을 금지하고 불태웠다. 이어서 발전소, 가스관, 학교를 폭파했다. 2008년 말까지 점령 지역 내 학교 400여 곳이 파괴되었다. 급기야 2008년 말, 모든 여학교의 폐교령을 공포하고 이듬해 1월부터 여자들은 학교에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매일같이 마을 광장에 쌓이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즈음에는 하루하루가 최악의 날인 듯했고, 매 순간이 최악의 시간인 듯했다. 어디를 가나 나쁜 소식이 들렸다. 이 사람 집에서 폭탄이 터졌고, 저 학교가 폭파되었으며,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 마타에 사는 교사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 샬와르 바지를 탈레반이 입는 방식대로 끝자락이 발목 위로 올라가게 입는 것을 거절한 것이 이유였다. 그 교사는 이슬람 국가 어디에도 그런 요구는 없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그를 목매달아 죽이고 그의 아버지를 총으로 쏘았다. _본문 177쪽
모두가 공포에 떨며 숨죽이던 시기에 열한 살 말랄라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탈레반 치하의 삶에 대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한 남자가, 즉 파즐울라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면, 한 소녀가 그것을 바꾸는 건 왜 못하겠는가?”(169쪽) 이 일기에서 말랄라는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고 학교를 폐쇄하는 탈레반에 항의하며 그들이 스와트에서 저지르는 만행들을 알렸고, 이는 곧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펜과 그 펜에서 나오는 글이 기관총이나 탱크, 헬리콥터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닐 수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말을 할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배우고 있었다. _본문 186~187쪽
이후 말랄라는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와 <뉴욕 타임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스와트밸리에서 수업은 끝나다>를 통해 더욱 목소리를 높였고, 아버지와 함께 본격적으로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대사였던 리처드 홀브룩, 파키스탄군 수석 대변인 아타르 아바스 장군 등을 만난 자리에서 스와트 문제 해결에 힘써줄 것을 촉구했다. 유니세프가 주최하는 ‘스와트 지역 어린이의회’에 참가해 아동 노동착취 종식, 장애인과 노숙아동 교육 지원,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모든 학교의 재건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해 일부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12월에 제1회 파키스탄 청소년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에 탈레반은 말랄라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살해 협박을 가하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굴복하지 않았다.
2012년 10월 9일, 하굣길 스쿨버스 안에서 말랄라는 갑자기 들이닥친 탈레반 병사에게 피격되었다. 총알은 말랄라의 머리와 목을 관통해 척추 근처 어깨에 박혔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지 병원으로 옮겨진 말랄라는 부어오른 뇌 때문에 두개골 일부를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고, 집중 치료를 위해 10월 15일 영국 버밍엄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듬해인 2013년 1월에 퇴원한 뒤,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속에서 건강을 회복한 말랄라는 3월부터 영국 버밍엄에 위치한 에지배스턴 여학교에 다니고 있다. 신변 위협 때문에 그녀의 가족은 모두 고국인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국에 체류중이며 아버지 지아우딘은 버밍엄 주재 파키스탄 영사관에서 교육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후 말랄라는 유엔 본부 단상에 선 것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와 연설 및 ‘말랄라 펀드’ 조성을 통해 파키스탄은 물론 시리아, 나이지리아, 케냐 등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운동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말랄라가 전하는 전 세계 아동 교육의 실태와 현재 파키스탄 내 상황
“나는 이것이 큰 싸움이 될 것임을 안다. 세계적으로 초등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5700만 명이며, 그중 3200만 명이 여자아이들이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파키스탄이 최악의 경우여서, 헌법으로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510만 명이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들 중 5000만 명이 문맹이며, 그중 3분의 2가 우리 어머니 같은 여성이다.
여학생들은 계속해서 살해당하고 학교는 폭파당한다. 2013년 3월에는 카라치의 한 여학교가 공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상장 수여식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 폭탄과 수류탄이 운동장으로 날아들어, 교장 압두르 라시드가 사망하고 다섯 살에서 열 살 사이의 어린 학생 여덟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중 여덟 살인 한 어린이는 불구가 되었다. (…) 가장 충격적인 공격은 6월에 퀘타라는 도시에서 일어났다. 마흔 명의 학생을 태우고 여자고등학교로 가던 버스가 자살 폭탄 테러를 당해 열네 명이 사망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부상자들을 뒤따라간 테러범은 간호사들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아이들을 죽이는 탈레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때로는 무인폭격기의 공격이, 전쟁이, 굶주림이 있었고, 때로는 가족의 폭력이 있었다. 6월, 스와트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위치한 길기트에서 내 또래 소녀 두 명이 살해되었다. 전통적인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스카프를 쓴 차림으로 빗속에서 춤을 추는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두 소녀의 이복오빠가 그들을 총으로 쏘았다.”
_본문 366~367쪽
▶ 말라라 유엔 연설 내용
“오랜 시간이 흐르고 오늘 이렇게 연설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 말랄라의 날은 저를 위한 날이 아닙니다. 오늘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모든 여성과 모든 소년 소녀들을 위한 날입니다. 수많은 인권운동가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인권뿐만 아니라 교육과 평화, 그리고 평등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중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테러리스트에게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의 부상자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도 그들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오늘,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소리칠 수 있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뜻을 대신 전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려 합니다. 평화롭게 살 권리, 존귀하게 대우받을 권리,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을 권리,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2012년 10월 9일, 탈레반은 제 왼쪽 이마에 총을 쏘았습니다. 탈레반은 총으로 우리를 침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침묵을 뚫고 수많은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총으로 우리의 목표를 바꾸고 열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게서 나약함과 두려움과 절망을 빼앗아갔을 뿐입니다. 제 안에는 오히려 새로운 힘과 용기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말랄라입니다. 같은 열정, 같은 희망, 같은 꿈을 가진 말랄라입니다.
저는 그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습니다. 탈레반이나 다른 테러 집단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도 아닙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저는 탈레반과 모든 극단주의자들의 아이들 역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게 총을 쏜 탈레반원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제게 총이 있고 그가 제 앞에 있다 하더라도 저는 그를 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호메트와 예수그리스도, 부처님께 배운 연민입니다. 마틴 루서 킹과 넬슨 만델라에게서 받은 혁신의 유산이자 간디와 테레사로부터 배운 비폭력의 철학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배운 용서의 정신입니다. (…)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빛의 소중함을 깨닫고, 침묵 속에서 외침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스와트에서, 그 총부리 앞에서, 우리는 책과 펜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정말 옳습니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합니다. 교육의 힘을 두려워합니다. (…) 평등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평화와 박애의 종교인 이슬람의 이름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벌이는 테러와 전쟁으로 학교가 파괴되고 아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테러와 폭력에 맞서 싸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시고, 여성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
교육이라는 대의 아래 하나가 되어 지식의 무기로 무장한다면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빈곤과 불의 그리고 무지로 고통받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교육의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강한 무기인 책과 펜을 들고 문맹과 빈곤, 테러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선생님, 한 권의 책,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교육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감사합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부터 앤젤리나 졸리까지,
말랄라를 향한 세계인의 지지
* 말랄라의 피격 사실이 알려지며 파키스탄 전역에서 학생들이 ‘나는 말랄라다(I Am Malala)’가 적힌 피켓을 들고 말랄라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뉴스위크> 계열의 시사 웹사이트 <데일리 비스트>에 「우리는 모두 말랄라입니다」라는 글을 기고했다. “말랄라는 용감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수많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 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산 증거입니다.” 또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후원하기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지지를 천명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그녀의 용기 때문에 탈레반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랄라의 정신은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여성 교육에 대한 고무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그녀와 함께할 것입니다.”
* 영국의 전 총리이자 유엔 교육특사인 고든 브라운은 ‘내 이름은 말랄라’라는 슬로건 아래 2015년까지 이 세상 모든 어린이가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 『연금술사』로 유명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말랄라를 가리켜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그것은 책을 든 소녀다”라고 한 반기문 사무총장의 발언을 트위터에 올렸고, 말랄라 후원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피격 직후에 (탈레반이 말랄라를 공격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불쾌하며, 비극적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 또한 “그런 위협을 받으면서도 소녀들의 권리를 위해 나서다니 매우 용감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마돈나는 콘서트에서 등에 말랄라의 이름을 써 관객에게 보여주며 <Human Nature>라는 곡을 말랄라에게 바쳤다. 비욘세는 병상에 있던 말랄라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보냈고 이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 에덜먼과 경영 컨설팅 그룹 매킨지가 말랄라 펀드를 후원하고 있다.
▶ 말랄라 수상 경력
2011년 국제 아동인권평화상 후보, 파키스탄 청소년평화상 수상
2012년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 후보, 마더 테레사 메모리얼 어워드 사회적 정의 부문 수상,
로마 평화와 인도주의적 행동상 수상, 2012 올해의 아시아인 선정
2013년 시몬 드 보부아르 상 수상, 노벨평화상 최연소 후보,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티퍼러리 평화상 수상,
국제 아동인권평화상 수상, 국제 엠네스티 양심대사상 수상,
하버드대 인도주의상 수상, 사하로프 인권상 수상,
국제 평등 및 비차별상 수상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 세계어린이상(어린이 노벨상) 후보,
스콜 글로벌 트레저 어워드 수상, 캐나다 핼리팩스 킹스칼리지 대학에서 민법 명예박사 학위 수여
목차
프롤로그
1부
1 딸이 태어나다...19
2 나의 아버지, 매...36
3 학교에서 자란다는 것...51
4 고향 마을...71
5 내가 귀걸이를 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파슈툰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84
6 쓰레기 산의 아이들...97
7 우리 학교를 폐쇄하려 했던 무프티...109
8 지진의 가을...123
2부 죽음의 계곡
9 라디오 물라...133
10 토피, 테니스공, 스와트의 부처...147
11 똑똑한 학생들...161
12 피바다 광장...175
13 굴 마카이의 일기...183
14 이상한 평화...196
15 계곡을 떠나다...209
3부
16 슬픔의 계곡...223
17 키가 크게 해주세요...240
18 여인과 바다...255
19 은밀한 탈레반화...265
20 말랄라가 누구냐?...276
4부
21 신이시여, 저는 이 아이를 당신께 맡기나이다...287
22 미지로의 여행...306
5부 제2의 인생
23 머리에 총을 맞은 소녀, 버밍엄에 오다...321
24 그자들이 아이의 미소를 빼앗아갔소...339
에필로그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355
용어 설명...369
파키스탄과 스와트의 주요 사건 연보...373
감사의 말...377
말랄라 펀드에 대하여...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