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인생은 뜨겁게: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
- 저자/역자
-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송은경 옮김
- 펴낸곳
- 사회평론
- 발행년도
- 2014
- 형태사항
- 596p.; 23cm
- 원서명
- Bertrand Russel Autobiography
- ISBN
- 9788964356142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164.5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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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 JG000000238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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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JG0000002386
-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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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가슴 뛰는 삶을 꿈꾸는 청춘을 위한 인생 교과서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청춘의 멘토
영국 웨일스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일생 덕분에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러셀은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10년에 걸쳐 집필한 『수학원리』를 펴내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20세기 영미철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분석철학의 기초를 다지는 업적을 남겼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거부해 케임브리지 강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반전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레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노르웨이로 가는 수상비행기가 사고 났을 당시 흡연 칸에 탄 덕분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그의 삶은 인류의 파국을 막는 일에 집중된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세계 각국에 핵무기 위험성과 전쟁 회피의 중요성을 알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 불복종 운동을 선도해 89세의 나이에 1주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케네디 암살 진상 조사를 후원하는가 하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반대해 94세의 나이에 ‘베트남 연대 운동’을 시작했다. 죽기 전날까지도 중동 지역의 평화를 당부하는 글을 쓰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러셀은 1964년과 1971년 두 차례에 걸쳐 마하트마 간디, 존 F. 케네디, 마틴루터 킹, 알버트 슈바이처 등과 함께 ‘미국 대학생이 뽑은 1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평화주의, 비폭력, 피압박층에 대한 도움, 열패자에 대한 관심 등을 주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의 지성,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암 촘스키 역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러셀을 꼽는다.
러셀에 대한 흠모와 관심은 국내에서도 이에 못지않았다. 한국 법학계에서 형법의 대가로 첫손을 꼽혔던 서울대 김형두 교수는 고교시절 식민지 소년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접한 버트런드 러셀의 책이 낙천적 성격을 가져오게 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으며, 통섭의 전도사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어린시절 러셀의 빛나는 지성과 유려한 글에 이끌려 러셀처럼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삶을 꿈꾸었노라고 고백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이상묵 교수도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사로 버트런드 러셀을 꼽았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세계적인 명성과 존경을 얻으며 아흔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던 버트런드 러셀이기에 그의 삶의 궤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청춘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길을 찾는 청춘을 위한 인생 교과서
1950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입증하듯이, 러셀은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셀 자신이 말년에 완성한 자서전은 수학 공식처럼 명쾌하고 깔끔한 문체, 재기 넘치는 표현, 위대한 학자치고는 너무나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성으로 가득 차 있다. 러셀의 일생을 거쳐 간 수많은 폭풍우와 일화들이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회고되고 있는 자서전은, 비범한 사람의 비범한 인생을 그린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자화상이자 20세기 지성사를 꿰뚫는 자서전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과 철학, 사회학, 교육, 종교, 정치, 과학 분야의 저서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 아인슈타인, T. S. 엘리엇, 디킨슨, 케인스, 화이트헤드, 조지프 콘래드, 비트겐슈타인 등 20세기의 거인들과의 교류한 이야기는 러셀의 인생이 20세기 지성사 그 자체임을 실감케 한다. 또한 전쟁으로 치닫는 불행한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던 러셀의 삶을 통해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 핵 철폐운동,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 등의 근원들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이 두 가지의 목적에 헌신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이 과연 어떤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였으며, 또 하나는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그리고 당당히 말한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라고.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러셀이 자서전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아름다운 연인들과 수확의 확실성을 사랑했고, 고통 받는 세계를 아파했다. 극단의 시대에 개인의 탁월함과 사회에 대한 기여를 조화시키고자 노력하고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녕을 함께 고민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러셀은 개인의 자유를 믿는 동시에 사회가 약자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과 사회 모두를 지키고자 했고 어느 한 쪽을 희생하는 어떤 방안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보의 선두주자였지만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이러한 러셀의 인생은 오늘날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참여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셀의 파란만장한 백 년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인생은 뜨겁게』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에게 가슴 뛰는 삶을 꿈꾸게 하면서도 인생을 긴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인생 교과서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책이 될 것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청춘의 멘토
영국 웨일스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일생 덕분에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러셀은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10년에 걸쳐 집필한 『수학원리』를 펴내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20세기 영미철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분석철학의 기초를 다지는 업적을 남겼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거부해 케임브리지 강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반전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레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노르웨이로 가는 수상비행기가 사고 났을 당시 흡연 칸에 탄 덕분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그의 삶은 인류의 파국을 막는 일에 집중된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세계 각국에 핵무기 위험성과 전쟁 회피의 중요성을 알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 불복종 운동을 선도해 89세의 나이에 1주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케네디 암살 진상 조사를 후원하는가 하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반대해 94세의 나이에 ‘베트남 연대 운동’을 시작했다. 죽기 전날까지도 중동 지역의 평화를 당부하는 글을 쓰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러셀은 1964년과 1971년 두 차례에 걸쳐 마하트마 간디, 존 F. 케네디, 마틴루터 킹, 알버트 슈바이처 등과 함께 ‘미국 대학생이 뽑은 1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평화주의, 비폭력, 피압박층에 대한 도움, 열패자에 대한 관심 등을 주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의 지성,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암 촘스키 역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러셀을 꼽는다.
러셀에 대한 흠모와 관심은 국내에서도 이에 못지않았다. 한국 법학계에서 형법의 대가로 첫손을 꼽혔던 서울대 김형두 교수는 고교시절 식민지 소년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접한 버트런드 러셀의 책이 낙천적 성격을 가져오게 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으며, 통섭의 전도사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어린시절 러셀의 빛나는 지성과 유려한 글에 이끌려 러셀처럼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삶을 꿈꾸었노라고 고백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이상묵 교수도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사로 버트런드 러셀을 꼽았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세계적인 명성과 존경을 얻으며 아흔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던 버트런드 러셀이기에 그의 삶의 궤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청춘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길을 찾는 청춘을 위한 인생 교과서
1950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입증하듯이, 러셀은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셀 자신이 말년에 완성한 자서전은 수학 공식처럼 명쾌하고 깔끔한 문체, 재기 넘치는 표현, 위대한 학자치고는 너무나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성으로 가득 차 있다. 러셀의 일생을 거쳐 간 수많은 폭풍우와 일화들이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회고되고 있는 자서전은, 비범한 사람의 비범한 인생을 그린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자화상이자 20세기 지성사를 꿰뚫는 자서전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과 철학, 사회학, 교육, 종교, 정치, 과학 분야의 저서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 아인슈타인, T. S. 엘리엇, 디킨슨, 케인스, 화이트헤드, 조지프 콘래드, 비트겐슈타인 등 20세기의 거인들과의 교류한 이야기는 러셀의 인생이 20세기 지성사 그 자체임을 실감케 한다. 또한 전쟁으로 치닫는 불행한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던 러셀의 삶을 통해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 핵 철폐운동,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 등의 근원들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이 두 가지의 목적에 헌신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이 과연 어떤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였으며, 또 하나는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그리고 당당히 말한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라고.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러셀이 자서전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아름다운 연인들과 수확의 확실성을 사랑했고, 고통 받는 세계를 아파했다. 극단의 시대에 개인의 탁월함과 사회에 대한 기여를 조화시키고자 노력하고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녕을 함께 고민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러셀은 개인의 자유를 믿는 동시에 사회가 약자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과 사회 모두를 지키고자 했고 어느 한 쪽을 희생하는 어떤 방안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보의 선두주자였지만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이러한 러셀의 인생은 오늘날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참여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셀의 파란만장한 백 년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인생은 뜨겁게』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에게 가슴 뛰는 삶을 꿈꾸게 하면서도 인생을 긴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인생 교과서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책이 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제1부 / 1872~1914
1. 유년기
2. 청년기
3. 케임브리지 시절
4. 약혼
5. 첫 결혼
6. 『수학 원리』
7. 다시 케임브리지로
제2부 / 1914~1944
8. 제1차 세계대전
9. 러시아
10. 중국
11. 두 번째 결혼
12. 텔레그래프 하우스 시절
13. 미국: 1938~1944년
제3부 / 1944~1967
제3부 머리말
14. 영국으로 돌아오다
15. 국내외 활동
16. 트라팔가 광장
17. 재단
저자 후기: 내가 믿는 것들
역자 후기: 러셀, 휴머니즘으로 세상을 깨우치다
주요 사건과 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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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나는 매우 우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