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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제는 전설처럼 여겨지는 잡지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이자 편집자였으며,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창립자이자 경영인으로 우리 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故 한창기 선생(1936~1997).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십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삶과 행적을 돌아본 추모글 모음 《특집! 한창기》가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창기라는 한국 현대문화사의 비범한 인물을 기리는 다양한 장르의 글과 화보로 꾸며진 잡지의 특집 형식으로 기획된 단행본이다. 사진가 강운구, 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 윤구병과 김형윤, 전 <샘이깊은물> 편집장 설호정, 디자이너 이상철 등 뿌리깊은나무 사람들이 엮은 이 책에는 그 두 잡지사의 기자, 편집위원, 그리고 필자로 참여했던 많은 이들, 이 땅의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창기와 통했던 이들, 또 이런저런 사연으로 그와 우정을 나누었던 쉰아홉 사람이 필자로 참여했다.
한창기는 법학을 전공하고도 법조계에 뜻을 두지 않고, 현대적 쎄일즈 기법을 도입해 서적 판매인으로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며 자신의 사회적 이력을 시작한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출판-언론인으로서 한국어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착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이 개발논리에 치우쳐 제 것을 소홀히 여기던 시대에, 빠르게 사라져가는 옛것들을 되살리고 보존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을 보였다. 그가 이끈 뿌리깊은나무를 통한 다양한 문화사업은 많은 부분이 그러한 열정으로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각 지방의 토박이 언어를 민중의 삶과 함께 책으로 남겼고, 판소리와 민요를 음반과 책으로 집대성했다. 차 마시는 풍속과 더불어 전통 생활문화를 새롭게 되살리는 일도 그가 심혈을 기울인 사업이었다.
한창기가 생전에 한 일들은 시류를 거스르는 무모하고 외로운 도전이었으나, 오늘 그것들은 이 시대 척박한 한국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남다른 미의식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의 한 생애를 되새기는 일은 오늘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문화적 실험정신을 새삼 일깨운다.
한창기란 사람은....
미국의 전 부통령 험프리가 ‘이제까지 만나본 동양 사람 중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꼽기도’ 했던 이였고(천재석: 그 유명한 광화문...), 직원들을 불러모아놓고 반 시간에 걸쳐서 “‘사람다운’이라는 표현은 있는데 왜 ‘사람스런’이라는 표현은 없는가에 대한 강의로 열을 올리던 사람이었지만(안정효: 키보이스의 한글 탐험), 그런 강력하고도 전방위적인 한글 사랑의 노력으로 우리 문화계가 한자와 왜색 잔재를 청산하고 한글에 기반한 인프라를 수용하게 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정보화의 큰 시대적 흐름에 좌초하지 않고 인터넷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이만재: 생동하는 광고 카피...)는 평가를 받는다.
호텔 변기에 빠진 손톱깎기를 오물 탱크를 뒤져 찾아낼 만큼 집요하고(이연상: 현대적인 쎄일즈 기법...), 마침표 위치가 정상에서 0.2밀리미터 떨어졌다고 노발대발하던 좀팽이였으나 호연지기가 나라 다 망친다고 주장하던 ‘위대한 좀팽이’였고(강운구: 한창기 사진), 판사나 변호사는 엘리뜨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서울법대를 나오고도 남들이 다 보는 고시에는 관심이 없었다(박오규: 중앙우체국 사서함...). 그가 한국 잡지사에 끼친 가장 큰 공헌은 필자와의 마찰을 감수하면서도 이른바 편집권을 제대로 실천한 일이고(손세일: 그 정열과 안목...), 뿌리깊은나무라는 이름은 그후 우리말 잡지 이름들을 짓게 만든 자극제가 되었다(유재천: 한국 잡지사를 새로 썼다). 한창기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줏대있는 열린 한국 사람’(이명현: 관찰자 그리고...)이었고, ‘세계화가 지방화, 민족화와 상대 개념이 아님을 명확히 인식했던 가장 앞선 세계인’이었다(좌담: 군더더기를 증오했던...)고 기억된다.
눈썰미로 말하자면, 그는 그림 안 그리는 화가나 마찬가지였고(송영방: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자연이든 한번 보면 그 조형적 특징을 핀셋처럼 집어내는 눈을 지닌 사람이었다(설호정: 가정 잡지 또는...). 그가 생전에 인정한 유일한 디자이너 이상철을 통해 보여준 뿌리깊은나무의 디자인은 이른바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을 실현한 뛰어난 사례였고(김신: 디자인, “잘하거나 아예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나를 지배하는 감각적, 시각적 기준이란 것이 분명 있는데 그게 바로 ‘뿌리 스타일’이고... 한창기 사장님의 스타일이었다”는 고백으로 이어진다(이영미: 디자인이 살아야...), 죽음이 지척에 다가온 마지막 몇날까지 골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가 세상을 뜬 침대 밑에서는 만지작거리다 둔 백자가 발견되었다고 한다(좌담: 다시보고 싶은 한창기의 골동).
책의 구성과 각 글의 내용
한국 잡지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뿌리깊은나무>와 신군부가 그 잡지를 폐간하고 나서 4년 만에 ‘사람의 잡지’를 표방하고 나온 <샘이깊은물>, 그 두 잡지의 탄생에서부터 절명까지를 되짚어본 유재천, 강준만의 글을 시작으로, △ 두 잡지의 편집장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이 시대별로 쓴 ‘나의 편집장 시절’ △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쎄일즈맨 시절에 “독도에서도 판다”는 신화를 남겼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브리태니커 쎄일즈맨 출신들이 생생한 일화와 함께 털어놓은 ‘한창기와 브리태니커’ △ 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한국 고미술 수집가였던 한창기 컬렉션의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를 담은 좌담 △ 사진가 강운구가 찍은 한창기의 첫 사진과 마지막 사진, 그리고 그 스스로 고른 영정 사진을 담은 ‘한창기 사진’ △ ‘고도원의 아침편지’ 발행인인 고도원, 전 문화부장관 배우 김명곤, 오마이뉴스 정치부장 김당 등 그 두 잡지 기자 출신들과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등이 쓴 ‘정말 특별한 사장’과 ‘별난 우리 발행인’의 추억 △ <뿌리깊은나무 민중 자서전> <한국의 발견> 같은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의 빼어난 성과물들의 기록 △ 판소리 감상회와 판소리 전집, 산조 전집들로 다 죽어가는 한국 전통음악을 되살린 사연 △ 한창기의 유언 집행인 박원순 변호사, 그의 임종을 지켰던 홍기석 주치의 등이 쓴 ‘회한 또는 그리움' △ “동무들이 리영희를 읽을 때 나도 리영희를 읽었지만 동무들이 <사상계>를 읽을 적에 나는 뿌리깊은나무를 읽었다”는 칼럼니스트 김규항, 그것은 표절이 아니라 공감이었지만, 한창기를 벤치마킹한 빚이 많다는 출판인 박영률 들이 기리는 ‘불온한’ 한창기 △ 1980년의 육칠월 합병호 광고, 그리고 한달 뒤에 “독자와 필자 그리고 광고주와 책방 주인들께” 낸 뿌리깊은나무 폐간 광고 등과 함께 뿌리깊은나무 광고 이야기 들이 실려 있다. △ 본문 가운데 실린 한창기의 ‘한산 모시’ 관련 취재기사, 권말에 실린 한창기 연보와 <뿌리깊은나무> 쉰세 권의 표지 원색 사진 등은 이 책의 자료적 가치를 더해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서문에서 설호정(전 샘이깊은물 편집장)이 적었듯이, “한창기에 대한 쉰아홉 명의 낡은 기억의 편린으로 짜맞추어진 퍼즐”이요, “흥미로운 집체 창작물”이다. 설호정은 이렇게 당부한다. “한창기의 사진이 아니라 한창기의 그림을 본다고 생각하기 바란다. 그러나 어쩌면 이 그림은 사진보다 더 강력하게 한창기의 체취를 느끼게 해줄지도 모른다.”
목차
편집자의 말 : 기억에 대하여
특집! 한창기
뿌리깊은나무 - 한국 잡지사를 새로 썼다 / 유재천
샘이깊은물 - 당돌하고 발칙한 잡지 / 강준만
한창기 사진 - 글과 사진 / 강운구
한창기의 잡지
그 정열과 안목과 집념이 산파였다 / 손세일
나의 편집장 시절
열여섯 가지 금기를 무시하고 태어난 위험한 잡지 / 윤구병
베고 자기에는 불편한 잡지의 그 편함과 불편함 / 김형윤
가정 잡지 또는 여성 잡지? 아니... / 설호정
뿌리깊은나무 창간사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하고
샘이깊은물 창간사
사람의 잡지
한창기와 브리태니커
한국 직판사업의 아비―설득의 천재 / 윤석금
현대적인 쎄일즈 기법의 틀을 세웠다 / 이연상
쎄일즈 전도사의 선창에 따라 외치던 '브리태니커 사람의 신조' / 박태술
"석달 안에 못 뽑으면 당신이 해야 해" / 김길용
그 유명한 광화문 영어학교의 탄생 / 천재석
중앙우체국 사서함 690호에서 시작한 사업 / 박오규
다시 보고 싶은 한창기의 골동
좌담 - 곽소진, 송영방, 양의숙, 장종민, 설호정
회한 또는 그리움
그를 생각하며,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일 / 곽소진
그 민족의 보배들은 지금 어디에? / 카테꼬 카즈시게
미안함, 그리움, 아쉬움 / 박원순
끝내 나를 울린 그 환자 / 홍기석
그리운 한창기 - 바람 부는 날, 또는 잠깐 이성을 놓아버린 날 / 서화숙
뿌리깊은나무-샘이깊은물 - 전설로만 떠돌게 할 것이냐? / 장경식
최일남이 만난 사람
토박이 문화는 우리 삶의 뿌리 / 최일남
정말 특별한 사장
가야 토기 한 점과 상아색 필통 / 김정배
관찰자, 그리고 합리주의자 앵보 선생 / 이명현
짧은'두드러기'의 긴 추억 / 이광훈
내가 그분 제삿날 굶는 까닭 / 송현
별난 우리 발행인
닫힌 세상을 열어젖힌 외톨이 / 강창민
'곽씨 부인 상여 나가는 대목'을 언제 다시 불러드리나 / 김명곤
꿈 너머 꿈이 된 그분의 말 -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 /고도원
"걱정 마, 죽을 때까지 먹여살릴 테니까" 안혜령
'출판사'뿌리깊은나무
<뿌리깊은나무 민중 자서전> 스무 권 - 한국 출판계의 '오래된 미래' / 이상룡
<한국의 발견> 열한 권의 탄생 / 김형윤
우리 현대사가 기억해야 할 이름 / 김형국
푸른 입술의 '반중'―지켜지지 못한 그와의 약속 / 윤후명
하필이면 그분 고향 '전라남도'를 맡았던고 / 이성남
한국 전통음악을 살렸다
다 죽어가는 판소리를 되살린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 백 회 / 이재성
다시 만나고 싶구나, 활짝 열린 그 비개비 / 백대웅
'불온한' 그를 기린다
천상천하 유아독종의 편집자 / 김당
보편적 불온성의 추억 / 김규항
아직도 안 풀린 세 가지 수수께끼 / 박영률
다시 보는 샘이깊은물
'하고'짜는 한산 모시 - 한창기 글 / 강운구 사진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멋쟁이
'패션 한복' 바람에 맞섰던 '잘 입은 한복' / 임선근
일찍이 뜰에 소나무를 옮겨 심은 그 큰 '죄인'을 기리며 / 이덕희
일습을 티없는 전통으로 되살리기 / 목수현
눈이 보배였던 사람
한국 출판문화의 자존심 / 박암종
디자인이 살아야 글이 산다는 상식 / 이영미
디자인, "잘하거나 아예 하지 않아야 한다" / 김신
군더더기를 증오했던 디자인 감시자(좌담) / 강운구, 김형국, 김형윤, 이상철
말과 글
입으로, 글로 국어를 따지고 파고들었다 / 남영신
'키보이스'의 한글 탐험 / 안정효
생동하는 광고 카피의 원조 / 이만재
한국 현대성의 랜드마크 / 선완규
한창기, 십 년 만의 재회(서평) / 장석주
남달랐던 생각, 남달랐던 영어 / 정성희
한창기의 한평생
한창기(1936-1997)
장례를 끝내고 독자들께 / 설호정
우리는 잊지 않으리 / 프랭크 비 기브니
한창기에게 띄우는 그림 엽서
서세옥
송영방
김종학
윤명로
한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