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미친 항해: 바타비아 호 좌초사건
- 저자/역자
- 마이크 대쉬 지음 / 김성준, 김주식 [공]옮김
- 펴낸곳
- 혜안
- 발행년도
- 2012
- 형태사항
- 415p.: 23cm
- 원서명
- Batavia's graveyard
- ISBN
- 9788984944558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923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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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 JG000000130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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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JG0000001309
-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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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파리대왕>의 성인판!
하지만 온전히 실화라서 더 섬뜩한 이야기!
1628년 10월 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신조선 ‘바타비아 호’가 총 332명을 태우고 암스테르담에서 자바의 네덜란드 상관을 향해 출항하였다. 배수량 1200톤, 길이 48m, 4층 갑판선, 돛대 3개, 포 30문, 길이 9m의 대형 보트를 장착하고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이 배는 수면에서 올려다보면 거대한 성채를 떠올리게 하는 초대형 상선이었다(이 배는 1995년, 10년의 세월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완벽히 복제되어 공개중이다). 자바까지의 항해에 소요될 예상시간은 약 8개월. 그러나 목적항까지 30일 정도를 남겨놓은 1629년 6월 4일 새벽, 배는 오스트레일리아 부근 해역에서 암초(이 암초는 1960년대에 아브롤요스 군도의 아침 암초임이 확인되었다)와 충돌하여 좌초한다.
생존자는 320여 명. 아직 해도에도 표시된 적 없던 미지의 해역에서 본체가 두 동강나는 좌초였음을 염두에 두면 대단히 높은 생존율이었다. 이들을 살린 것은 근방에 흩어져 있던 작은 산호섬. 좌초된 배 위에서 공포에 떨다가 산호섬에 올라선 사람들은 일단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살린 이 섬이 끔찍한 무덤으로 변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구조 요청을 위해 선장과 대상인을 포함한 48명이 보트에 초과탑승한 채 1500마일의 험난한 항해에 나섰고, 나머지 250여 명 이상은 산호섬에 남았다. 대상인과 선장이 부재한 산호섬의 생존자들의 미래는 이제 부상인인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의 손으로 옮겨갔다. 전직 약제사 출신으로 약방 운영에 실패하여 파산하고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인생의 패배자가 되었으며, 어쩌면 기독교 이단이었을지도 모를 그가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9월 중순, 기적처럼 자바 항해에 성공한 대상인이 구조선을 이끌고 좌초지점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생존자 중 120여 명이 이미 무참히 살해된 후였다. 나중에 ‘바타비아 호의 무덤’(이는 원서의 제목이기도 하다)으로 불리게 될 이 섬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국의 역사저술가 마이크 대쉬의 역작 <미친 항해>(Batavia’s Graveyard, 2002)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해난 참사로까지 불리는 바타비아 호 좌초사건의 전말과 ‘살인’을 오락으로까지 즐기며 대량살육을 행한 ‘코르넬리스’라는 인물의 감정 저변에 흐르는 정신병의 핵심을 기독교적 이단의 가능성과 함께 날카롭게 파헤쳤다. 책은 발표되자마자 “<파리대왕>의 성인판! 더군다나 이 이야기는 전부 진실이다” “빨려들어갈 것 같다, <보물섬(Treasure)>과 <서바이벌게임(Deliverance)>의 조우!”라고 평한 Evening Standard를 비롯하여 무수한 언론으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세심하고 심도 깊은 조사를 바탕으로 한 섬뜩하고도 탁월한 역사서. 마이크 대쉬는 모든 탐험사의 저변에 깔려 있는 주제, 즉 인간 감정에 대한 완벽한 조망을 보여준다.” Star-Tribune (Minneapolis)
“향료무역에 대한 방대한 이해와 소름돋는 특정 사건들을 결합시켜 권력과 탐욕, 극적인 살인에 대한 욕망을 다룬 매혹적인 이야기.” Outside
이 책은 담고 있는 내용 중에 허구는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 섬뜩하다. 저자는 사건의 핵심인물인 코르넬리스 같은 스타일이 당시에는 극히 드물었고, <한국어판 저자 서문>에서는 역사상 그런 인물을 다시 찾아볼 수 없다는 데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우리 현재를 돌아보면, 과연 그렇게 감사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도양의 조그만 산호섬에서 한달 반 동안 벌어진
공포의 ‘17세기판 묻지마 살인!’
죽어야 하는 이유 같은 건 묻지 마.
살고 싶은가? 그럼 네 옆의 동료를 죽여!
산호섬의 생존자들은 약제사 출신의 인텔리로 뛰어난 언변을 갖춘 인기남인 부상인 코르넬리스를 기꺼이 자신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난파선에서 가져온 엄청난 보화와 식수와 식량, 무기가 모두 그의 손에 떨어졌다. 구조 요청차 떠난 대상인과 선장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처럼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 생존자들을 위해 코르넬리스가 준 것은 생존을 위한 분투가 아닌, 처참한 살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산호섬의 식수와 식량은 조그만 섬에 가득찬 생존자들에 의해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것이었다. 코르넬리스가 지도자로서 처음 내린 지시는 식수를 찾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원정대들을 근처 섬들로 보낸 것이었다. 사실 좌초 직후 선장과 대상인이 이미 주변 섬들을 돌아보았으나 식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코르넬리스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트도 없이 원정대를 섬에 부려놓고 돌아와 버린 코르넬리스의 의도는 자명하였다. 합법적으로 먹을 입을 줄이자였다! 그가 기대한 것은 식수와 먹거리를 발견하지 못한 원정대가 오지 않는 보트를 기다리며 갈증과 기아로 죽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정대들을 내보낸 후에도 섬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구조선이 올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사람 수를 더 줄여야 했다. 게다가 그 즈음 누군가의 입을 통해 좌초 전 기도된 선상 반란음모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대상인과 사사건건 부딪히던 선장을 부추겨 배와 보물을 탈취하자는 음모를 꾸민 것이 코르넬리스였다. 하지만 이 은밀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반란음모의 전모가 드러나기 전에 배는 그만 좌초해 버렸다. 만약 반란음모자로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다면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던 회사충성파들의 추궁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당연히 지도자 자리도 박탈당하게 될 위험이 있었다. 좌초 후 내린 비와 섬 근처 바다생물들이 식량 사정을 개선시켜 주었음에도 사람 수를 계속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이러한 압박도 작용하였다.
코르넬리스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반란음모 때부터 자신에게 가담한 자들과 권력자에 붙어 이익을 누리려는 자들을 친위대로 편성하여 적극적으로 사람 수를 줄여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급품 절도 같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공개적으로 처형을 행하다 그에 대한 반발이 보이기 시작하자 장악하고 있던 무기를 이용하여 노골적으로 살인을 자행하였다. 살인은 주야를 가리지 않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섬은 이제 생존이 아닌 죽음의 장소로 바뀌어 갔다. 코르넬리스들에게 반항을 기도할 가능성이 있는 강건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살해되고(사실 강건한 남자들의 상당수는 이미 죽음의 원정대로 많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폭도들의 수가 충성파보다 우세를 점하게 되어 더 이상의 살인이 필요없어지게 된 후에도 살인은 계속되었다. 절대권력자로 군림하게 된 코르넬리스는 ‘살인’을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는 방법으로, 또는 폭도들의 지루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위한 오락거리로 허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수의 친위대를 제외하면 누구도 살해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락처럼 행해지는 살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한 동료에게도 서슴없이 칼을 겨누었다. 그렇게 약 한달 반에 걸쳐 120여 명이 살해되었다. 선교를 위해 일가족이 함께 탑승하였던 바스티안스 목사는 자신과 장녀를 뺀 여섯 자녀와 아내, 하녀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다. 폭도 중 한 명의 구애를 받아들인 목사의 장녀 유딕이나, 살해위협 속에서 코르넬리스의 구애를 받아들인 미모의 크레이숴는 목숨을 건지고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나 모든 여성이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살해되고, 살아남은 젊은 여인들도 폭도들의 집단강간에 시달려야 했다.
섬의 절대권력자가 된 코르넬리스는 이제 구조선이 도착하면 부하들을 시켜 구조선을 탈취한 후 그 배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떠나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게 될 것이라 믿었다. 이 과도하게 낙천적인 전망에 기댄 그의 감언에 폭도들 역시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의 이 낙천성이 얼마나 근거없고 황당한 것이고, 그가 세운 계획들이 얼마나 엉성하기 짝이 없었는가는 오래지 않아 철저하게 드러난다.
저자 마이크 대쉬의 본격적인 물음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대량살육을 자행한 폭도들은 정말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지휘자 코르넬리스는 이들의 굳건한 충성심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또 코르넬리스는 120여 명의 살해에 직접 책임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놀랍게도 단 한명도 직접 살해해 본 적이 없다. 비록 막바지에 딱 한 번 직접 제조한 독약으로 갓태어난 어린아이의 실해를 시도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는 다른 사람을 시켜 목졸라 죽였다. 그는 왜 직접 손에 피를 묻히려 하지 않았을까? 살해당한 사람들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갖지 않았다는 것은, 잔인한 살해 과정을 아무 감정의 동요 없이 지켜보았다는 생존자들의 수많은 증언이 확인시켜 준다. 살해당한 자들은 허약자, 환자, 여자, 아이가 많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가 죽어가는 자들의 고통에 공감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도, 구원을 간구하지도 않았다. 명백한 범죄의 증거 앞에서도 최대한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했으며, 심지어 최후의 순간까지 “난 복수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이런 최후를 지켜본 생존자들이 그를 서슴없이 기독교적 의미에서 “악마”라고 묘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분명 보통의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심성을 파괴하여 괴물로 바꿔놓는 데 쾌감을 느끼고 거기에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하였다.
종교적 이단인가, 소시오패스인가
코르넬리스의 ‘악마’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코르넬리스의 장밋빛 미래가 근거없는 낙관이었고, 그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한 계획과 판단력이 놀라울 정도로 엉성했다는 것은 먼저 동인도회사 소속의 일반 병사 위이버 헤이스가 이끄는 방어대에 의해 판명났다. 이 방어대는 얌전히 죽어주기를 바라며 코르넬리스가 다른 섬으로 쫓아낸 원정대 중 하나였다. 그들은 코르넬리스의 희망과는 달리 식수, 그것도 꽤 유용한 우물을 몇 개씩이나 발견하고 식량도 섬에서 뛰어다니는 생물(토착 캥거루의 일종)들을 통해 해결하였다. 잘 마시고 잘 먹은 이들은 불을 피워 식수 발견 사실을 알렸으나 자신들을 데리러 올 보트가 보이지 않자 뭔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눈치챘고, 죽음의 섬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온 일부 사람들에 의해 대량살육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게 된다. 아마도 위이버 헤이스가 일반 병사 출신임에도 탁월한 지휘력과 판단력을 갖춘 인물이었던 것은 원정대에게는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좌초선에서 흘러든 유목들로 보트를 만들고 주변의 온갖 사물들을 이용하여 무기를 만들어 무장한 방어대는 자신들을 없애기 위해 건너올 폭도들을 기다렸다. 코르넬리스는 너무도 허무하게 방어대에게 사로잡혔다. 그동안의 끔찍한 악행을 생각하면 너무도 허망한 최후지만 저자도 지적하듯이 이는 그의 특성에 기인한 당연한 결과였다. 도망친 폭도들이 새로운 지휘자를 세워 코르넬리스와는 달리 치밀한 계획 하에 전열을 정비한 후 제대로 된 무기를 집중시켜 총공세를 폈을 때는 방어대가 자칫 패배할 위험에 처하였다. 바로 그때 마치 드라마처럼 대상인이 이끄는 구조선이 수평선 너머로 등장했다. 9월 16일 정오 즈음이었다.
10월 2일 코르넬리스를 비롯한 폭도들 상당수가 산호초 군도에서 재판 후 교수형에 처해지고, 12월 5일 자바로 귀환했을 때 구조된 사람들은 74명이었다. 보트로 항해하여 살아남았던 사람들까지 합치면 110여 명이니 좌초사건 후 탑승객의 2/3가 사망한 셈이다.
이로써 사건은 우선 일단락된다. 대상인은 사건을 정리하면서 코르넬리스에게서 풍기는 불길한 종교적 이단의 향기를 살짝 언급하면서도 그 이상은 파고들지 못한다. 마이크 대쉬는 17세기 유럽을 경악시킨 코르넬리스의 악행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그의 사상적 배경을 차분하게 추적해 나간다. 먼저 그의 출생지인 프리슬란트가 천년왕국 신봉자들을 육성하여 군대를 만들고 도시를 공격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재세례파의 중심지였다는 것, 약제사가 되기 위해 라틴어 학교를 다닐 때 인문주의와 고전철학, 특히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접했을 것이라는 점,하알렘에서 약방을 운영하며 가깝게 지낸 화가 토렌티우스가 네덜란드 당국에 의해 반율법주의자로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감옥에 수감되었던 사실 등을 자세히 분석하고는 그의 이단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특히 반율법주의란 “기독교인이 구원받은 것은 은혜에 의한 것이지 행위나 도덕적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구원받은 자는 도덕적 의무나 원리들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교리로, 코르넬리스는 지인들에게 “나의 정신은 내적으로 신에 완전히 동화되었으므로 외적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못한다”, “나의 모든 행동은 바로 신에 의해 영감을 받은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악행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않았던 것이나 다른 폭도들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이러한 성향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간접 증거만을 들어 그가 종교적 이단이자 광신자였다고 확신할 수 없으며 그것으로 그의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도 없다. 저자 역시 코르넬리스라는 인물을 완전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고백하였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지적한 다음 지적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인간성의 다른 면들은 일지에 나와 있지 않지만, 추론은 해볼 수 있다. 코르넬리스는 충동적이고 쉽게 지루해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아브롤요스에서 발생한 수많은 살인 중 다수는, 특히 후반부에 저질러진 살인은 그의 변덕스러운 명령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는 고통 같은 것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살려달라는 간청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서서 지켜보았다. 배가 난파하면서 일상적인 제약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관리들이 배를 떠나자, 코르넬리스는 자신의 도덕적인 규약에 따라 살았다. 그가 자유사상론자의 신조를 받아들였던 것은 어떤 종교적 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갖고 있던 정서를 그 신조들이 반영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코르넬리스는 분명 정신병자였다.… 진짜 정신병자란 자제 불가능한 사악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항상 냉정하고 마음대로 사용한다. 그들에게 진정 부족한 것은 공감 능력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이해한다거나 신경을 쓸 능력이 없다.… 정신병자는 옳고 그름의 구분을 이해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결과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고 상해를 입히고 살해를 한다. 따라서 유죄선고를 받은 정신병자가 가야 할 곳은 정신병원이 아니라 감옥이다.”
저자는 정신질환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정신병자에게서 보이는 특징들, 예컨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탁월한 언변, 천박함, 충동적인 태도, 책임감 결여, 남을 잘 속이는 능력과 뛰어난 사교성과 설득력, 현실적인 단기 목표보다는 웅장한 환상을 선호하고 미리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는 능력이 결여된 점이 코르넬리스에게서 확인된다고 지적한다.그리고 이런 정신병은 개인의 자유와 순간적인 만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더 번창한다는 점에서, 순종과 훌륭한 시민의 개념이 강력히 강조된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에서는 코르넬리스 같은 유형은 드물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요즘 우리 사회는 매일 매일이 흉악한 범죄 기사들로 넘쳐난다. 어떤 죄책감도 없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상처 입히고 살인을 저지른다. 이런 사람들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통합해서 진단하는데, 흔히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저자가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았지만 코르넬리스는 분명 소시오패스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존재가 자유와 순간적인 만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더 번창한다는 지적이나, 우리와 가까운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코르넬리스 같은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다. 이 이야기를 17세기를 산 공포스러운 한 개인에 대한 옛날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오늘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처럼
생생하게 재현해 낸 탁월한 저술가, 마이크 대쉬
저자 마이크 대쉬는 런던 출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사학위, 런던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대하고 탄탄한 역사적 자료들에 근거하여 과거의 역사를 마치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건처럼 그대로 재현해 내는 탁월한 저술가로 이름이 높다. 영국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고정 출연하고 있으며, <가디언>, <데일리 메일>, <포턴 타임스> 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국내에는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은 17세기의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광기에 가까운 튤립 열풍과 이 열기의 급작스러운 소멸을 통해 인간의 사치와 허영, 욕망, 그리고 한탕주의에 기인한 투기 문제를 극도로 세밀하고 꼼꼼하게 묘사하여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었다.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 능력은 <미친 항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바타비아 호의 출항과 배의 탑승자들을 면면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동양과의 향료무역으로 17세기 유럽 최고의 부자국가로 발돋움한 네덜란드 사회의 실상과 다양한 인간군상들, 그리고 이 무역으로 거부를 축적하여 하나의 왕국을 건설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발전 과정과 구조 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촘촘히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항해 동안 바타비아 호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주 전반에 걸친 일상생활에 대한 정밀하고도 꼼꼼한 묘사에서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몸을 똑바로 펼 수도 없을 만큼 낮은 천장에 수면과 같은 높이에 위치하여 최소한의 통풍장치와 현창마저 없는 숨막히는 공간에서 하루 두 차례 30분씩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용변을 보기 위해서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최하층 갑판의 병사들의 고충, 고위 탑승객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벌레를 털어내고 안에 든 유충과 함께 건빵을 태연히 씹어넘긴다든가 하루에 1.5리터씩 배급된 초록빛으로 변한 식수는 치아로 벌레를 걸러내며 마신다든가 하는 묘사는 너무도 생생하다.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한 후 소설처럼 엮어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솜씨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에 감탄하면서도 이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방대하고도 세밀한 자료들의 존재에 다시 한 번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본성에 관심이 있는 독자만이 아니라 역사, 특히 17세기 유럽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분명 마이크 대쉬가 안겨주는 선물 같은 이러한 생생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실화라서 더 섬뜩한 이야기!
1628년 10월 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신조선 ‘바타비아 호’가 총 332명을 태우고 암스테르담에서 자바의 네덜란드 상관을 향해 출항하였다. 배수량 1200톤, 길이 48m, 4층 갑판선, 돛대 3개, 포 30문, 길이 9m의 대형 보트를 장착하고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이 배는 수면에서 올려다보면 거대한 성채를 떠올리게 하는 초대형 상선이었다(이 배는 1995년, 10년의 세월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완벽히 복제되어 공개중이다). 자바까지의 항해에 소요될 예상시간은 약 8개월. 그러나 목적항까지 30일 정도를 남겨놓은 1629년 6월 4일 새벽, 배는 오스트레일리아 부근 해역에서 암초(이 암초는 1960년대에 아브롤요스 군도의 아침 암초임이 확인되었다)와 충돌하여 좌초한다.
생존자는 320여 명. 아직 해도에도 표시된 적 없던 미지의 해역에서 본체가 두 동강나는 좌초였음을 염두에 두면 대단히 높은 생존율이었다. 이들을 살린 것은 근방에 흩어져 있던 작은 산호섬. 좌초된 배 위에서 공포에 떨다가 산호섬에 올라선 사람들은 일단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살린 이 섬이 끔찍한 무덤으로 변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구조 요청을 위해 선장과 대상인을 포함한 48명이 보트에 초과탑승한 채 1500마일의 험난한 항해에 나섰고, 나머지 250여 명 이상은 산호섬에 남았다. 대상인과 선장이 부재한 산호섬의 생존자들의 미래는 이제 부상인인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의 손으로 옮겨갔다. 전직 약제사 출신으로 약방 운영에 실패하여 파산하고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인생의 패배자가 되었으며, 어쩌면 기독교 이단이었을지도 모를 그가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9월 중순, 기적처럼 자바 항해에 성공한 대상인이 구조선을 이끌고 좌초지점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생존자 중 120여 명이 이미 무참히 살해된 후였다. 나중에 ‘바타비아 호의 무덤’(이는 원서의 제목이기도 하다)으로 불리게 될 이 섬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국의 역사저술가 마이크 대쉬의 역작 <미친 항해>(Batavia’s Graveyard, 2002)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해난 참사로까지 불리는 바타비아 호 좌초사건의 전말과 ‘살인’을 오락으로까지 즐기며 대량살육을 행한 ‘코르넬리스’라는 인물의 감정 저변에 흐르는 정신병의 핵심을 기독교적 이단의 가능성과 함께 날카롭게 파헤쳤다. 책은 발표되자마자 “<파리대왕>의 성인판! 더군다나 이 이야기는 전부 진실이다” “빨려들어갈 것 같다, <보물섬(Treasure)>과 <서바이벌게임(Deliverance)>의 조우!”라고 평한 Evening Standard를 비롯하여 무수한 언론으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세심하고 심도 깊은 조사를 바탕으로 한 섬뜩하고도 탁월한 역사서. 마이크 대쉬는 모든 탐험사의 저변에 깔려 있는 주제, 즉 인간 감정에 대한 완벽한 조망을 보여준다.” Star-Tribune (Minneapolis)
“향료무역에 대한 방대한 이해와 소름돋는 특정 사건들을 결합시켜 권력과 탐욕, 극적인 살인에 대한 욕망을 다룬 매혹적인 이야기.” Outside
이 책은 담고 있는 내용 중에 허구는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 섬뜩하다. 저자는 사건의 핵심인물인 코르넬리스 같은 스타일이 당시에는 극히 드물었고, <한국어판 저자 서문>에서는 역사상 그런 인물을 다시 찾아볼 수 없다는 데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우리 현재를 돌아보면, 과연 그렇게 감사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도양의 조그만 산호섬에서 한달 반 동안 벌어진
공포의 ‘17세기판 묻지마 살인!’
죽어야 하는 이유 같은 건 묻지 마.
살고 싶은가? 그럼 네 옆의 동료를 죽여!
산호섬의 생존자들은 약제사 출신의 인텔리로 뛰어난 언변을 갖춘 인기남인 부상인 코르넬리스를 기꺼이 자신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난파선에서 가져온 엄청난 보화와 식수와 식량, 무기가 모두 그의 손에 떨어졌다. 구조 요청차 떠난 대상인과 선장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처럼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 생존자들을 위해 코르넬리스가 준 것은 생존을 위한 분투가 아닌, 처참한 살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산호섬의 식수와 식량은 조그만 섬에 가득찬 생존자들에 의해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것이었다. 코르넬리스가 지도자로서 처음 내린 지시는 식수를 찾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원정대들을 근처 섬들로 보낸 것이었다. 사실 좌초 직후 선장과 대상인이 이미 주변 섬들을 돌아보았으나 식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코르넬리스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트도 없이 원정대를 섬에 부려놓고 돌아와 버린 코르넬리스의 의도는 자명하였다. 합법적으로 먹을 입을 줄이자였다! 그가 기대한 것은 식수와 먹거리를 발견하지 못한 원정대가 오지 않는 보트를 기다리며 갈증과 기아로 죽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정대들을 내보낸 후에도 섬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구조선이 올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사람 수를 더 줄여야 했다. 게다가 그 즈음 누군가의 입을 통해 좌초 전 기도된 선상 반란음모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대상인과 사사건건 부딪히던 선장을 부추겨 배와 보물을 탈취하자는 음모를 꾸민 것이 코르넬리스였다. 하지만 이 은밀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반란음모의 전모가 드러나기 전에 배는 그만 좌초해 버렸다. 만약 반란음모자로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다면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던 회사충성파들의 추궁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당연히 지도자 자리도 박탈당하게 될 위험이 있었다. 좌초 후 내린 비와 섬 근처 바다생물들이 식량 사정을 개선시켜 주었음에도 사람 수를 계속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이러한 압박도 작용하였다.
코르넬리스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반란음모 때부터 자신에게 가담한 자들과 권력자에 붙어 이익을 누리려는 자들을 친위대로 편성하여 적극적으로 사람 수를 줄여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급품 절도 같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공개적으로 처형을 행하다 그에 대한 반발이 보이기 시작하자 장악하고 있던 무기를 이용하여 노골적으로 살인을 자행하였다. 살인은 주야를 가리지 않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섬은 이제 생존이 아닌 죽음의 장소로 바뀌어 갔다. 코르넬리스들에게 반항을 기도할 가능성이 있는 강건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살해되고(사실 강건한 남자들의 상당수는 이미 죽음의 원정대로 많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폭도들의 수가 충성파보다 우세를 점하게 되어 더 이상의 살인이 필요없어지게 된 후에도 살인은 계속되었다. 절대권력자로 군림하게 된 코르넬리스는 ‘살인’을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는 방법으로, 또는 폭도들의 지루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위한 오락거리로 허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수의 친위대를 제외하면 누구도 살해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락처럼 행해지는 살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한 동료에게도 서슴없이 칼을 겨누었다. 그렇게 약 한달 반에 걸쳐 120여 명이 살해되었다. 선교를 위해 일가족이 함께 탑승하였던 바스티안스 목사는 자신과 장녀를 뺀 여섯 자녀와 아내, 하녀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다. 폭도 중 한 명의 구애를 받아들인 목사의 장녀 유딕이나, 살해위협 속에서 코르넬리스의 구애를 받아들인 미모의 크레이숴는 목숨을 건지고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나 모든 여성이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살해되고, 살아남은 젊은 여인들도 폭도들의 집단강간에 시달려야 했다.
섬의 절대권력자가 된 코르넬리스는 이제 구조선이 도착하면 부하들을 시켜 구조선을 탈취한 후 그 배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떠나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게 될 것이라 믿었다. 이 과도하게 낙천적인 전망에 기댄 그의 감언에 폭도들 역시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의 이 낙천성이 얼마나 근거없고 황당한 것이고, 그가 세운 계획들이 얼마나 엉성하기 짝이 없었는가는 오래지 않아 철저하게 드러난다.
저자 마이크 대쉬의 본격적인 물음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대량살육을 자행한 폭도들은 정말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지휘자 코르넬리스는 이들의 굳건한 충성심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또 코르넬리스는 120여 명의 살해에 직접 책임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놀랍게도 단 한명도 직접 살해해 본 적이 없다. 비록 막바지에 딱 한 번 직접 제조한 독약으로 갓태어난 어린아이의 실해를 시도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는 다른 사람을 시켜 목졸라 죽였다. 그는 왜 직접 손에 피를 묻히려 하지 않았을까? 살해당한 사람들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갖지 않았다는 것은, 잔인한 살해 과정을 아무 감정의 동요 없이 지켜보았다는 생존자들의 수많은 증언이 확인시켜 준다. 살해당한 자들은 허약자, 환자, 여자, 아이가 많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가 죽어가는 자들의 고통에 공감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도, 구원을 간구하지도 않았다. 명백한 범죄의 증거 앞에서도 최대한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했으며, 심지어 최후의 순간까지 “난 복수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이런 최후를 지켜본 생존자들이 그를 서슴없이 기독교적 의미에서 “악마”라고 묘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분명 보통의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심성을 파괴하여 괴물로 바꿔놓는 데 쾌감을 느끼고 거기에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하였다.
종교적 이단인가, 소시오패스인가
코르넬리스의 ‘악마’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코르넬리스의 장밋빛 미래가 근거없는 낙관이었고, 그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한 계획과 판단력이 놀라울 정도로 엉성했다는 것은 먼저 동인도회사 소속의 일반 병사 위이버 헤이스가 이끄는 방어대에 의해 판명났다. 이 방어대는 얌전히 죽어주기를 바라며 코르넬리스가 다른 섬으로 쫓아낸 원정대 중 하나였다. 그들은 코르넬리스의 희망과는 달리 식수, 그것도 꽤 유용한 우물을 몇 개씩이나 발견하고 식량도 섬에서 뛰어다니는 생물(토착 캥거루의 일종)들을 통해 해결하였다. 잘 마시고 잘 먹은 이들은 불을 피워 식수 발견 사실을 알렸으나 자신들을 데리러 올 보트가 보이지 않자 뭔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눈치챘고, 죽음의 섬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온 일부 사람들에 의해 대량살육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게 된다. 아마도 위이버 헤이스가 일반 병사 출신임에도 탁월한 지휘력과 판단력을 갖춘 인물이었던 것은 원정대에게는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좌초선에서 흘러든 유목들로 보트를 만들고 주변의 온갖 사물들을 이용하여 무기를 만들어 무장한 방어대는 자신들을 없애기 위해 건너올 폭도들을 기다렸다. 코르넬리스는 너무도 허무하게 방어대에게 사로잡혔다. 그동안의 끔찍한 악행을 생각하면 너무도 허망한 최후지만 저자도 지적하듯이 이는 그의 특성에 기인한 당연한 결과였다. 도망친 폭도들이 새로운 지휘자를 세워 코르넬리스와는 달리 치밀한 계획 하에 전열을 정비한 후 제대로 된 무기를 집중시켜 총공세를 폈을 때는 방어대가 자칫 패배할 위험에 처하였다. 바로 그때 마치 드라마처럼 대상인이 이끄는 구조선이 수평선 너머로 등장했다. 9월 16일 정오 즈음이었다.
10월 2일 코르넬리스를 비롯한 폭도들 상당수가 산호초 군도에서 재판 후 교수형에 처해지고, 12월 5일 자바로 귀환했을 때 구조된 사람들은 74명이었다. 보트로 항해하여 살아남았던 사람들까지 합치면 110여 명이니 좌초사건 후 탑승객의 2/3가 사망한 셈이다.
이로써 사건은 우선 일단락된다. 대상인은 사건을 정리하면서 코르넬리스에게서 풍기는 불길한 종교적 이단의 향기를 살짝 언급하면서도 그 이상은 파고들지 못한다. 마이크 대쉬는 17세기 유럽을 경악시킨 코르넬리스의 악행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그의 사상적 배경을 차분하게 추적해 나간다. 먼저 그의 출생지인 프리슬란트가 천년왕국 신봉자들을 육성하여 군대를 만들고 도시를 공격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재세례파의 중심지였다는 것, 약제사가 되기 위해 라틴어 학교를 다닐 때 인문주의와 고전철학, 특히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접했을 것이라는 점,하알렘에서 약방을 운영하며 가깝게 지낸 화가 토렌티우스가 네덜란드 당국에 의해 반율법주의자로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감옥에 수감되었던 사실 등을 자세히 분석하고는 그의 이단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특히 반율법주의란 “기독교인이 구원받은 것은 은혜에 의한 것이지 행위나 도덕적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구원받은 자는 도덕적 의무나 원리들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교리로, 코르넬리스는 지인들에게 “나의 정신은 내적으로 신에 완전히 동화되었으므로 외적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못한다”, “나의 모든 행동은 바로 신에 의해 영감을 받은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악행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않았던 것이나 다른 폭도들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이러한 성향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간접 증거만을 들어 그가 종교적 이단이자 광신자였다고 확신할 수 없으며 그것으로 그의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도 없다. 저자 역시 코르넬리스라는 인물을 완전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고백하였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지적한 다음 지적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인간성의 다른 면들은 일지에 나와 있지 않지만, 추론은 해볼 수 있다. 코르넬리스는 충동적이고 쉽게 지루해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아브롤요스에서 발생한 수많은 살인 중 다수는, 특히 후반부에 저질러진 살인은 그의 변덕스러운 명령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는 고통 같은 것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살려달라는 간청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서서 지켜보았다. 배가 난파하면서 일상적인 제약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관리들이 배를 떠나자, 코르넬리스는 자신의 도덕적인 규약에 따라 살았다. 그가 자유사상론자의 신조를 받아들였던 것은 어떤 종교적 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갖고 있던 정서를 그 신조들이 반영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코르넬리스는 분명 정신병자였다.… 진짜 정신병자란 자제 불가능한 사악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항상 냉정하고 마음대로 사용한다. 그들에게 진정 부족한 것은 공감 능력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이해한다거나 신경을 쓸 능력이 없다.… 정신병자는 옳고 그름의 구분을 이해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결과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고 상해를 입히고 살해를 한다. 따라서 유죄선고를 받은 정신병자가 가야 할 곳은 정신병원이 아니라 감옥이다.”
저자는 정신질환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정신병자에게서 보이는 특징들, 예컨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탁월한 언변, 천박함, 충동적인 태도, 책임감 결여, 남을 잘 속이는 능력과 뛰어난 사교성과 설득력, 현실적인 단기 목표보다는 웅장한 환상을 선호하고 미리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는 능력이 결여된 점이 코르넬리스에게서 확인된다고 지적한다.그리고 이런 정신병은 개인의 자유와 순간적인 만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더 번창한다는 점에서, 순종과 훌륭한 시민의 개념이 강력히 강조된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에서는 코르넬리스 같은 유형은 드물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요즘 우리 사회는 매일 매일이 흉악한 범죄 기사들로 넘쳐난다. 어떤 죄책감도 없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상처 입히고 살인을 저지른다. 이런 사람들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통합해서 진단하는데, 흔히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저자가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았지만 코르넬리스는 분명 소시오패스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존재가 자유와 순간적인 만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더 번창한다는 지적이나, 우리와 가까운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코르넬리스 같은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다. 이 이야기를 17세기를 산 공포스러운 한 개인에 대한 옛날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오늘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처럼
생생하게 재현해 낸 탁월한 저술가, 마이크 대쉬
저자 마이크 대쉬는 런던 출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사학위, 런던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대하고 탄탄한 역사적 자료들에 근거하여 과거의 역사를 마치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건처럼 그대로 재현해 내는 탁월한 저술가로 이름이 높다. 영국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고정 출연하고 있으며, <가디언>, <데일리 메일>, <포턴 타임스> 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국내에는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은 17세기의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광기에 가까운 튤립 열풍과 이 열기의 급작스러운 소멸을 통해 인간의 사치와 허영, 욕망, 그리고 한탕주의에 기인한 투기 문제를 극도로 세밀하고 꼼꼼하게 묘사하여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었다.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 능력은 <미친 항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바타비아 호의 출항과 배의 탑승자들을 면면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동양과의 향료무역으로 17세기 유럽 최고의 부자국가로 발돋움한 네덜란드 사회의 실상과 다양한 인간군상들, 그리고 이 무역으로 거부를 축적하여 하나의 왕국을 건설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발전 과정과 구조 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촘촘히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항해 동안 바타비아 호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주 전반에 걸친 일상생활에 대한 정밀하고도 꼼꼼한 묘사에서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몸을 똑바로 펼 수도 없을 만큼 낮은 천장에 수면과 같은 높이에 위치하여 최소한의 통풍장치와 현창마저 없는 숨막히는 공간에서 하루 두 차례 30분씩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용변을 보기 위해서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최하층 갑판의 병사들의 고충, 고위 탑승객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벌레를 털어내고 안에 든 유충과 함께 건빵을 태연히 씹어넘긴다든가 하루에 1.5리터씩 배급된 초록빛으로 변한 식수는 치아로 벌레를 걸러내며 마신다든가 하는 묘사는 너무도 생생하다.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한 후 소설처럼 엮어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솜씨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에 감탄하면서도 이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방대하고도 세밀한 자료들의 존재에 다시 한 번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본성에 관심이 있는 독자만이 아니라 역사, 특히 17세기 유럽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분명 마이크 대쉬가 안겨주는 선물 같은 이러한 생생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목차
일러두기 4
한국어판 저자 서문 6
머리말 10
주요 등장 인물 13
바타비아 호의 항로 15
바타비아 호 복원선 16
바타비아 호 선실 배치도 17
서장 아침 암초 19
제1장 이단자 41
제2장 17인 신사회 77
제3장 바다의 여인숙 105
제4장 미지의 남방대륙 146
제5장 야수들 173
제6장 대형 보트 231
제7장 누가 칼에 찔려 죽고 싶으냐? 256
제8장 유죄 판결 288
제9장 수레바퀴에 온 몸이 으스러지다 313
에필로그:남방대륙 해안에서 355
노트 388
참고문헌 398
옮긴이 후기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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