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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저자/역자
애덤 셰보르스키 지음 / 이기훈, 이지윤 옮김
발행년도
2024
형태사항
376 p.: 23 cm
원서명
Democracy and the limits of self-government
ISBN
9788964374610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지금 이용 불가 (1)
북카페JG0000008379대출중2025.04.07
지금 이용 불가 (1)
  • 등록번호
    JG0000008379
    상태/반납예정일
    대출중
    2025.04.07
    위치/청구기호(출력)
    북카페
책 소개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한 권밖에 읽을 시간이 없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셰보르스키가 수십 년 동안 발전시켜 온 주장을, 풍부한 역사적・현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종합한 책”(이언 샤피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셰보르스키의 방대한 지식을 요약한 작은 보석과도 같은 책”(로베르토 가르가렐라), “현재의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미래의 민주주의를 전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시작하라”(존 던)고 평가받는 책, 애덤 셰보르스키의 역작 Democracy and the Limits of Self-government가 번역・출간됐다.

애덤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 민주화 등을 주제로 평생을 연구해 온 세계적인 비교 정치학자다. 그는 민주화 과정을 합리적 선택이론으로 설명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투표를 비유한 ‘종이 돌’(paper stone),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인 ‘불확실성의 제도화’, “민주주의는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되고,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될 수 있는 체제”, 민주화 이후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어야 하는 ‘전환의 계곡’ 등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개념들은 모두 그에게 빚진 것이다. 셰보르스키는 현실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들을 사례로 비교 연구를 수행해 왔기 때문에 이론과 현실에 두루 해박한데, 그래서 이언 샤피로는 이 책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이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은,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에서 태어나 축구팀 아스날과 스웨덴 사민당을 응원하며 민주주의를 상상했던 그가 매카시즘의 분위기가 남아 있던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68혁명, 남미와 동유럽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민주화, 민주화의 역전, 혹은 민주주의 공고화 등의 역사와 함께해 온 지적 여정이 다다른 지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주주의가 할 수 없는 것

우리는 늘 현실의 민주주의에 실망한다. 인민이 스스로 통치하는 체제가 민주주의라면서, 왜 현실은 이렇게 보잘 것 없는가? 왜 시민들은 불평등하고 자유롭지 못한가? 이것이 무슨 민주주의인가? 이 책은 정확히 이런 불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책의 원제가 Democracy and the Limits of Self-government, 즉 『민주주의, 그리고 자치의 한계(limits)』이며, 한국어판 제목 『민주주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에서 ‘할 수 없는 것’이 먼저 온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이 책을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냉소적이지 않으면서도 냉철한 설명이다. 민주주의가 실제로 무엇인지,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고 적절하게 평했는데,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민주주의가 실제로 무엇인지’에 해당한다.

오늘날 우리는 대의제 정치체제에서 살고 있다. 이 체제는 18세기 후반, 세계를 뒤흔든 혁명적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른바 인민이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사상이 그것이다. [그 사상에 따르면] 평등한 시민이 자신이 따라야 할 법을 스스로 정할 때에만 그들은 자유로울 수 있다. 게다가 자유는 궁극의 정치적 가치이자,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모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국가들을 자기 통치(자치), 평등, 자유라는 이상적인 가치로 평가해 보면 우리는 현실의 민주주의가, 원래 꿈꾼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애초 꿈꿨던 것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날 자치, 평등, 자유라는 이상을 더 잘 실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이 책을 쓴 동기이자 핵심 내용이다.

이 책은 이 자치, 평등,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그런 이상에 비해 현실에서 민주주의 체제가 갖고 있는 한계를 조목조목 따져 보고(민주주의의 탈신비화), 구조적 한계(할 수 없는 것)와 조건적 한계(할 수 있는 것)를 구분한다.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할 수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 그런데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인민이 스스로 통치한다는 이상

셰보르스키는 군주정과 귀족정으로부터 대의제(현대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그것을 오늘날의 민주주의로 이끌었으며, 200여 년 동안 역사 속 주인공들에게 동기와 정당성을 부여한 이상은 바로 ‘인민의 자치’라고 말한다. 대의제를 창설한 사람들이 꿈꿨던 이 이상에 따르면 ‘인민은 스스로 통치할 때,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므로 자유롭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이런 이상과 현실을 혼동한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깨달았듯이, 모든 시민은 동시에 통치할 수 없다. 그러나 자치에 대한 애초의 개념화는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고, 실현 불가능한 가정에 기초했다. 즉, 자신들이 살고 싶어 하는 법적 질서가 무엇인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선호를 가진다는 가정 말이다.
“인민이 스스로를 통치한다.”는 이상에 따라 자신을 지배하는 법을 제정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체인 ‘인민’은 언제나 단수형이다. 그러나 단수형 인민은 이론적·이념적으로 상정되는 개념일 뿐 실제로 행동하는 실체가 아니다. 현실에서 복수로 존재하는 인민들이 모두 동일한 질서를 추구하지 않을 때 누군가의 의사는 집단적 결정에 반영되지 않으며, 어떤 질서든 강제를 수반하므로 누군가는 강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전체 인민의 의지를 대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자치는 불가능한가?

셰보르스키는 자치의 의미를 최소주의적 개념에 맞춰 수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한편 그 한계를 식별하고 실천 가능한 제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선호가 이질적인 대규모 사회에서 자치는 “누군가는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법 아래에서 살아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선호를 가장 잘 반영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가능한 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집단적 의사 결정 체계”로 재규정된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민이 당파적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해도, 인민은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준거점이다. 인민이 통치한다는 주장은 통치자가 인민의 뜻에 따라, 그리고 인민을 대신해 통치한다는 것이고, 현직자를 쫓아낼 합리적 가능성을 가진 경쟁적인 선거가 그 주장을 검증할 유일한 기준이다. 이런 관점에서 민주적 정부는 특정 시점에서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많은 이를 대표한다. 또 다수가 원하면 정부가 바뀌고, 그렇게 되면 대다수가 언젠가는 대표된다.

민주주의와, 참여에 대한 이상
현대 민주주의는 효과적인 참여에 대한 향수에 계속 사로잡혀 있지만, 만장일치를 제외한 그 어떤 집단적 의사 결정 방식도, 참여자 개개인 모두에게 평등하게 집단 결정을 바꿀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집단이 스스로 통치한다는 것은 모든 개별 유권자가 최종 결과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개인의 의사가 집계되어 집단의 결정이 내려질 때, 그 집단은 스스로 통치한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단지 “나는 A에 투표했다. 그래서 A가 이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투표하고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투표했는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뿐이다. 단순 다수제 아래에서 동등한 영향력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적 의사 결정에 참여할 때, 그 어떤 개인도 집단적 의사 결정에 인과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러므로 세계 각지에서 간헐적으로 분출하는 ‘참여 민주주의’ 프로그램은 전국적 규모에서 실현될 수 없다. 참여의 의미가, 동등한 개인이 정부의 권력 행사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참여 민주주의’라는 말은 모순이다. …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가 평등하면 어느 한 사람도 결과에 인과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참여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용감히 노력하는 이들이 있지만 동그라미가 네모가 될 순 없다.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이상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평등하지 않다. 다만 익명일 뿐이다. 익명성은,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이 그 어떤 특성(그들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특성을 포함해)에 의해서도 시민이라는 지위 면에서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부유한 사람’ 또는 ‘잘생긴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부유한 시민 또는 잘생긴 시민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개인의 모든 특성은 민주주의 정치로 입장하는 문 앞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시민으로서의 지위는 개인의 모든 특성과 무관하다. 그러나 이는 익명성이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덮는 장막에 불과하다는 의미도 된다.

정치적 평등이 기존의 상태 — 그것이 자연적이든 사회적이든 — 를 반영한다는 생각은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방어될 수 없다. 논리적으로 볼 때, 다른 영역에서 평등하다고 해서 정치적으로도 평등하다고 할 수 없다. 경험적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그들은 사회에서 불평등해진다. 또 사회가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불가피한 경향을 가진다고 해도 정치적인 처방이 필요할 정도로 이미 불평등이 만연해져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또한 법으로 제도화된 정치적 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효과적으로 침식된다. … 따라서 어떤 의미로 보든, 평등은 민주주의를 특징짓는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대의제의 창설자들이 평등이라는 용어를 썼다면, 이는 다른 무언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면, 사회적인 차이를 잊어버리겠다는 것, 즉 익명성이라 불러야 할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만의 한계일까

민주주의는 경제적 평등, 효과적 참여, 완벽한 대리인, 자유라는 네 가지 점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정치체제도 민주주의보다 나을 수 없다고 믿는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경제적 평등을 만들어 내고 유지할 수 있는 정치체제는 없다.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가 개별적으로 모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정치체제는 없다. 정부로 하여금 완벽한 시민의 대리인이 될 수 있게 하는 정치체제도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질서와 불간섭이 불편하게 공존하지만, 그 어떤 정치체제도 이 문제를 민주주의만큼 잘 해결할 수 없다. 모든 정치체제는 사회의 모습을 만들고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이건 삶의 진실이다.

그런데 왜 민주주의의 한계를 말하는가

흥미로운 것은 이 책 어디에서도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가 어떠해야 한다고 규범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선을 긋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평등을 창출할 수 있을까? 다양한 유형의 참여는 [집단적 의사 결정에] 어느 정도나 효과적일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부로 하여금 최선의 시민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끔 하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부를 통제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서로 간에, 또 정부에게서 얼마만큼 보호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민주주의에 어느 정도 기대를 해도 되는가? 꿈꾸고 실현해 볼 만한 것은 무엇이고, 꿈꿔 봐야 소용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왜 민주주의의 이상이 아니라 한계를 말할까? 셰보르스키는 자치, 평등,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민주주의의 현실을 혼동하는 것은 “환영에 불과한 기획을 하게 하는 불합리한 희망을 부추기고, 그 결과 실현 가능한 개혁 방향을 보지 못하게 하”는 유해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의 한계를 알아야 “어떤 정치체제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비난하지 않을 수 있”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의 방향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등, 참여, 대표, 자유에 대한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지적하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식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틀 속에서 인민이 다소나마 평등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참여하여, 서로 다른 희망・가치・이익에 따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화적으로 투쟁할 수 있다.”
그의 저작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은, 과잉된 가치들을 덧칠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냉정하게 바라볼 때, 민주주의 자체를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통해 수호하려는 가치들을 현실적으로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셰보르스키가 최소주의적 개념의 대표적인 논자일지라도 그의 주장이 최대주의적 주장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의 한계를 따져 봄으로써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민주주의 교과서’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규범적인 주제이며, 특히 아직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통과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더더욱 뜨거운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어떠해야 한다’는 가정에서 한발 떨어져서,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고, 민주주의가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한계선을 냉정하리만치 조목조목 따지고 있는 이 책과 같은 ‘민주주의 교과서’가 필요하다. 셰보르스키가 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을 따라, 현대 민주주의(대의제)의 역사와, 민주주의의 핵심 키워드들(민주주의와 자치, 민주주의와 평등,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와 재산권, 민주주의와 소득분배, 민주주의와 선거…), 과거에 존재했거나 현재 존재하는 국가들의 사례들이 솜씨 좋게 정리되어 있는 책이다.
목차

머리말 8

1. 서론 21
2. 인민의 자치 51
3. 대의제의 간략한 역사 99
4. 평등 135
5. 선택과 참여 191
6. 대리인 239
7. 자유 283
8. 우리 시대 자치의 구현으로서의 민주주의 307

옮긴이 후기 327 / 미주 340 / 참고문헌 349 / 찾아보기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