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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장편소설
- 저자/역자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 민은영 옮김
- 펴낸곳
- 문학동네
- 발행년도
- 2024
- 형태사항
- 459 p.; 20 cm
- 원서명
- Vremeubezhishte
- ISBN
- 9791141607876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92.91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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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북카페 | JG0000008229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JG0000008229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나는 기억한다,
과거를 과거에 묶어두기 위해.”
시적 언어와 신랄한 유머, 매혹적인 전개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단 한 편의 급진적인 사고실험
2023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스> <뉴요커> 선정 올해의 책
2021 스트레가 유러피언 프라이즈 수상
“이 책을 언제든 다시 읽고 또 읽을 수 있도록,
‘절대 질리지 않는 책’을 보관하는 책장에 꽂아두었다.” 올가 토카르추크(소설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어로 번역·출판된 문학작품에 주어지며 작가와 번역가가 공동 수상한다.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 최초 수상의 영예를 안은 뒤, 『저주 토끼』 『대도시의 사랑법』 『철도원 삼대』 등이 후보에 오르며 어느덧 부커상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최종 후보에 올라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2023년, 이 영광스러운 상은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에 돌아갔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유럽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불가리아 작가로, 독특한 유머와 아름다운 문장이 특징적인 ‘동유럽의 프루스트’라고도 불린다. 그가 불가리아 작가 최초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자 불가리아의 여러 언론사에서는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에서 독일을 꺾은 이후 불가리아의 최대 쾌거”라는 헤드라인이 쏟아져나왔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와 공동 수상한 번역가 앤절라 로델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현재 불가리아에 거주하며 문학 번역가이자 배우, 음악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스포디노프의 전작 『슬픔의 물리학』을 포함해 불가리아의 다양한 현대문학 작품을 영미권에 소개하고 있는 앤절라 로델은 2014년, 불가리아 문화에 공로한 바를 인정받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타임 셸터』는 한 남성이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를 완벽히 재현한 클리닉을 만들게 되며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미래와 현재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타임 셸터, 즉 ‘시간 대피소’를 만든다는 일면 SF적이기도 한 설정 속에서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시적인 문장들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시계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브렉시트라는 충격 이후, ‘위대한 과거’를 들먹이는 보수적 포퓰리즘이 만연한 세태 속 공중에 떠다니는 불안의 냄새를 맡으며 그는 세계가 이미 과거라는 팬데믹을 겪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변화를 감지하는 이토록 날선 감각에서, 영원한 과거와 노스탤지어를 향한 그릇된 욕망이 불러올 위험에 대한 한 편의 놀랍도록 시의적인 사고실험은 시작되었다.
과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람은 얼마만큼의 과거를 감당할 수 있나? 기억을 잃은 자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는가? 시간이라는 새로운 국경이 생긴다면, 그것을 어떻게 통제하고 배치할 것인가? 『타임 셸터』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묵직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며 사유를 촉발한다. 펀치를 날리는 문장, 비밀스럽고 매혹적인 인물, 독창적인 문학적 실험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아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개념을 전복시키고 ‘시간’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고찰하게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낄낄 웃다가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 작품으로 그는 우리 시대의 대체 불가능한 작가이자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부커상 심사위원단의 평이 보여주듯,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타임 셸터』를 통해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태연하게 아름다운, 다시는 닫지 못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
과거는 한 가지 본질적인 점에서 현재와 다르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는 것
노인정신의학과 의사이자 시간의 부랑자라 불리는 남자, 가우스틴. 그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를 세밀히 재현한 ‘과거 요법 클리닉’을 고안한다. 그리고 취리히에 있는 한 살구색 건물에 층마다 각기 다른 십 년을 완벽히 재현한 최초의 클리닉을 만든다. 소설가인 화자는 가우스틴의 조수로서 과거의 물건과 이야기를 모아 클리닉을 꾸미는 임무를 맡게 된다. 타자기와 초콜릿, 담배와 포스터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과거 이야기, 때로는 향기와 빛까지도 수집의 대상이다. 과거에 다시 살 수 있다는 개념은 나이나 병의 여부와 무관하게 점점 더 많은 이를 사로잡는다. 현재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 과거로 대피하겠다는 욕망은 점차 유럽 전역에 퍼진다.
꿈을 꾸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단 한 문구뿐이다. 과거라는 천진한 괴물, 꿈은 잊었지만 그 문구는 남았다. (427쪽)
클리닉을 찾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 기억은 때론 연속성 없는 시간의 뭉텅이다. 대학교 3학년 파티 때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20년이 흘러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 부부, 날마다 도서관에 가서 1979년 신문의 최신호를 읽는 남자, 과거 자신을 감시했던 비밀요원을 찾아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듣는 남자…… 생생한 일화, 단어의 나열, 누군가 남긴 짧은 메모나 처방전의 형태로 변형되고 반복되며 묘사되는 환자들의 삶을 읽는 것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 속에서 함께 헤매어보는 체험과도 닮아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로 밝혀지는 화자는 우리가 뭔가를 기억할 때 그러하듯, 불분명한 부분을 임의로 채우기도 하고 또 비워내기도 한다. 어쩌면 『타임 셸터』라는 소설 전체를 파편화된 기억의 모음이라고, 화자가 소설 속에서 글을 쓰는 행위를 기억의 행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차별적이고 비선형적이며 생생한 소설-기억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는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기억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구성한다면, 과거를 붙잡으려 애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망일 것이다. 화자가 기억할 수 있는 최후의 순간까지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과거를, 기억을, 나아가 ‘나’라는 존재를 붙잡으려 손을 뻗는 것이다.
탄환이 되어 날아오는 공포의 웃음소리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낸 희비극
한편, 유럽에서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점점 더 거세지고 국가 전체가 함께 회귀할 과거의 특정한 시대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각기 다른 시대를 주장하는 정당이 설립되고, 집회가 벌어진다. 고국인 불가리아를 찾은 화자는 나라가 두 개의 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60~70년대의 국가사회주의 시기를 주장하는 세력과 오스만제국에 대항했던 19세기 말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국가주의 세력. 화자는 두 세력의 집회를 모두 찾아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학창 시절의 친구를 만난다. 친구 뎀비는 집회를 위한 엑스트라 배우들을 고용해 행사를 연출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조금 기이한 점이 있다면 그가 두 세력을 모두 돕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와 민족, 여기 이렇게 진지한 주제가 있다. 역사의 혹은 자연의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민족은 먼지 한 점, 진화 시계의 미세한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파리보다도 덧없다. (210쪽)
『타임 셸터』는 익숙한 부분부터 잘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 다각도로 유럽의 역사를 조명하는 동시에 그 속의 개인이 느꼈던 기쁨과 환멸을 생생히 포착한다. 1차대전의 발단이 되었던 사라예보 사건을 재연하는 행사 도중 소품 총에서 실탄이 발사되며 페르디난트 대공 역의 배우가 실제로 사망하는 장면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지고, 어딘가 예언적이기까지 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기억의 의미를 역설하는 듯했던 전반부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소설가면서 극작가이자 시인인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작품 속에서 텍스트로 가능한 모든 형식을 실험하는 듯 이 입체적인 세계를 자유로이 가로지른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소설과 현실의 경계, 인물과 인물의 경계는 흐려지며 서로를 침범하고, 또 확장하며 다층적으로 공포를 더한다. 그러나 『타임 셸터』가 진정으로 놀라운 점은 그 모든 진지한 질문과 문학적 실험을 아름다운 문장과 고유하게 뛰어난 유머 속에 녹여냈다는 것이다. 유려한 만큼 날카로운 풍자의 목소리, 삶을 진정으로 깊게 통찰해본 목소리만이 자아낼 수 있는 충격과 실소의 희비극은 이 소설을 전에 없이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만의 장르로 더욱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과거를 과거에 묶어두기 위해.”
시적 언어와 신랄한 유머, 매혹적인 전개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단 한 편의 급진적인 사고실험
2023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스> <뉴요커> 선정 올해의 책
2021 스트레가 유러피언 프라이즈 수상
“이 책을 언제든 다시 읽고 또 읽을 수 있도록,
‘절대 질리지 않는 책’을 보관하는 책장에 꽂아두었다.” 올가 토카르추크(소설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어로 번역·출판된 문학작품에 주어지며 작가와 번역가가 공동 수상한다.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 최초 수상의 영예를 안은 뒤, 『저주 토끼』 『대도시의 사랑법』 『철도원 삼대』 등이 후보에 오르며 어느덧 부커상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최종 후보에 올라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2023년, 이 영광스러운 상은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에 돌아갔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유럽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불가리아 작가로, 독특한 유머와 아름다운 문장이 특징적인 ‘동유럽의 프루스트’라고도 불린다. 그가 불가리아 작가 최초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자 불가리아의 여러 언론사에서는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에서 독일을 꺾은 이후 불가리아의 최대 쾌거”라는 헤드라인이 쏟아져나왔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와 공동 수상한 번역가 앤절라 로델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현재 불가리아에 거주하며 문학 번역가이자 배우, 음악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스포디노프의 전작 『슬픔의 물리학』을 포함해 불가리아의 다양한 현대문학 작품을 영미권에 소개하고 있는 앤절라 로델은 2014년, 불가리아 문화에 공로한 바를 인정받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타임 셸터』는 한 남성이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를 완벽히 재현한 클리닉을 만들게 되며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미래와 현재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타임 셸터, 즉 ‘시간 대피소’를 만든다는 일면 SF적이기도 한 설정 속에서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시적인 문장들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시계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브렉시트라는 충격 이후, ‘위대한 과거’를 들먹이는 보수적 포퓰리즘이 만연한 세태 속 공중에 떠다니는 불안의 냄새를 맡으며 그는 세계가 이미 과거라는 팬데믹을 겪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변화를 감지하는 이토록 날선 감각에서, 영원한 과거와 노스탤지어를 향한 그릇된 욕망이 불러올 위험에 대한 한 편의 놀랍도록 시의적인 사고실험은 시작되었다.
과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람은 얼마만큼의 과거를 감당할 수 있나? 기억을 잃은 자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는가? 시간이라는 새로운 국경이 생긴다면, 그것을 어떻게 통제하고 배치할 것인가? 『타임 셸터』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묵직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며 사유를 촉발한다. 펀치를 날리는 문장, 비밀스럽고 매혹적인 인물, 독창적인 문학적 실험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아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개념을 전복시키고 ‘시간’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고찰하게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낄낄 웃다가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 작품으로 그는 우리 시대의 대체 불가능한 작가이자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부커상 심사위원단의 평이 보여주듯,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타임 셸터』를 통해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태연하게 아름다운, 다시는 닫지 못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
과거는 한 가지 본질적인 점에서 현재와 다르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는 것
노인정신의학과 의사이자 시간의 부랑자라 불리는 남자, 가우스틴. 그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를 세밀히 재현한 ‘과거 요법 클리닉’을 고안한다. 그리고 취리히에 있는 한 살구색 건물에 층마다 각기 다른 십 년을 완벽히 재현한 최초의 클리닉을 만든다. 소설가인 화자는 가우스틴의 조수로서 과거의 물건과 이야기를 모아 클리닉을 꾸미는 임무를 맡게 된다. 타자기와 초콜릿, 담배와 포스터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과거 이야기, 때로는 향기와 빛까지도 수집의 대상이다. 과거에 다시 살 수 있다는 개념은 나이나 병의 여부와 무관하게 점점 더 많은 이를 사로잡는다. 현재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 과거로 대피하겠다는 욕망은 점차 유럽 전역에 퍼진다.
꿈을 꾸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단 한 문구뿐이다. 과거라는 천진한 괴물, 꿈은 잊었지만 그 문구는 남았다. (427쪽)
클리닉을 찾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 기억은 때론 연속성 없는 시간의 뭉텅이다. 대학교 3학년 파티 때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20년이 흘러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 부부, 날마다 도서관에 가서 1979년 신문의 최신호를 읽는 남자, 과거 자신을 감시했던 비밀요원을 찾아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듣는 남자…… 생생한 일화, 단어의 나열, 누군가 남긴 짧은 메모나 처방전의 형태로 변형되고 반복되며 묘사되는 환자들의 삶을 읽는 것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 속에서 함께 헤매어보는 체험과도 닮아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로 밝혀지는 화자는 우리가 뭔가를 기억할 때 그러하듯, 불분명한 부분을 임의로 채우기도 하고 또 비워내기도 한다. 어쩌면 『타임 셸터』라는 소설 전체를 파편화된 기억의 모음이라고, 화자가 소설 속에서 글을 쓰는 행위를 기억의 행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차별적이고 비선형적이며 생생한 소설-기억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는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기억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구성한다면, 과거를 붙잡으려 애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망일 것이다. 화자가 기억할 수 있는 최후의 순간까지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과거를, 기억을, 나아가 ‘나’라는 존재를 붙잡으려 손을 뻗는 것이다.
탄환이 되어 날아오는 공포의 웃음소리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낸 희비극
한편, 유럽에서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점점 더 거세지고 국가 전체가 함께 회귀할 과거의 특정한 시대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각기 다른 시대를 주장하는 정당이 설립되고, 집회가 벌어진다. 고국인 불가리아를 찾은 화자는 나라가 두 개의 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60~70년대의 국가사회주의 시기를 주장하는 세력과 오스만제국에 대항했던 19세기 말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국가주의 세력. 화자는 두 세력의 집회를 모두 찾아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학창 시절의 친구를 만난다. 친구 뎀비는 집회를 위한 엑스트라 배우들을 고용해 행사를 연출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조금 기이한 점이 있다면 그가 두 세력을 모두 돕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와 민족, 여기 이렇게 진지한 주제가 있다. 역사의 혹은 자연의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민족은 먼지 한 점, 진화 시계의 미세한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파리보다도 덧없다. (210쪽)
『타임 셸터』는 익숙한 부분부터 잘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 다각도로 유럽의 역사를 조명하는 동시에 그 속의 개인이 느꼈던 기쁨과 환멸을 생생히 포착한다. 1차대전의 발단이 되었던 사라예보 사건을 재연하는 행사 도중 소품 총에서 실탄이 발사되며 페르디난트 대공 역의 배우가 실제로 사망하는 장면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지고, 어딘가 예언적이기까지 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기억의 의미를 역설하는 듯했던 전반부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소설가면서 극작가이자 시인인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작품 속에서 텍스트로 가능한 모든 형식을 실험하는 듯 이 입체적인 세계를 자유로이 가로지른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소설과 현실의 경계, 인물과 인물의 경계는 흐려지며 서로를 침범하고, 또 확장하며 다층적으로 공포를 더한다. 그러나 『타임 셸터』가 진정으로 놀라운 점은 그 모든 진지한 질문과 문학적 실험을 아름다운 문장과 고유하게 뛰어난 유머 속에 녹여냈다는 것이다. 유려한 만큼 날카로운 풍자의 목소리, 삶을 진정으로 깊게 통찰해본 목소리만이 자아낼 수 있는 충격과 실소의 희비극은 이 소설을 전에 없이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만의 장르로 더욱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목차
Ⅰ 과거 요법 클리닉―13
Ⅱ 결정―177
Ⅲ 본보기로 선택된 한 나라―205
Ⅳ 과거회귀 국민투표―327
Ⅴ 신중한 괴물들―379
에필로그―447
감사의 말―453
옮긴이의 말: ‘그리운 옛날’의 아늑하고도 두려운 위안―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