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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 일상에 깃든 시적인 순간강윤미 산문

저자/역자
강윤미 지음
펴낸곳
정미소
발행년도
2023
형태사항
251p.; 19cm
ISBN
9791196769499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북카페JG0000007507-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JG0000007507
    상태/반납예정일
    -
    위치/청구기호(출력)
    북카페
책 소개
두 아이의 엄마로,
타향살이 중인 제주민으로,
무엇보다 영화, 여행,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시인의 감각적인 시선이 닿은 일상의 이야기.


2010년 신춘문예 당선자인 시인이 두 딸을 낳고 기르며 느꼈던 감정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야기, 시를 쓰기 위해 육지로 나온 이후의 삶의 흔적들, ‘자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일컫는 남편과의 일화들, 육아라는 긴 터널 속에서 위로받았던 영화, 음악에 대한 소회와 감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시를 잃지 않기 위해 적어온 많은 메모들을 엮어 책으로 담아냈다.

‘시는 상식적인 데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삶의 체험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 강윤미의 앞날에 신뢰가 갔다’고 이미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에 대해 황동규, 정호승 시인이 평가한 것처럼 그의 눈길이 닿은 삶의 체험을 고스란히 그만의 감성으로 녹여냈다.

제주에서 보낸 어린 날의 기억에서부터, 여행을 다녀오며 모은 각국의 어린 왕자 책, 어린 딸아이와 피렌체에서 보냈던 시간 등을 서랍에 담듯 차곡차곡 정리한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을 뿐인데 그의 언어에 설렌다. 그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알아갈수록 오랜 친구처럼 그의 취향에 물들고 만다. ‘구닥다리이고 서툴고 촌스러워서 세련되게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시인’이라 자신을 표현하는 그이지만, 내밀한 이야기의 다정함에 공감하게 되고 때로는 눈가가 뜨거워진다.

흘러가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시간을 다채롭고 영롱한 언어로 붙잡아 둔 시적인 순간에 당신을 초대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름은 필요한 법이니까.
나를 나로서 빛나게 하는 소중한 것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 눈앞의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과는 점점 헤어져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얼마나 절망적인 일인가. 많은 여성이 출산과 육아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 동안 겪는 다분히 평범한 일이지만, 그 시간은 도무지 평탄한 일일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름은 필요한 법이니까. 그 불안과 좌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잃고 싶지 않은 것을 끝내 잃지 않는 법밖에는 없다. 다행히 강윤미 시인은 그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책으로 엮인 일상이 이미 시 그 자체만큼 빛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제주 중산간마을에서
커트머리를 한 아이는 분교를 다녔다. ‘열 명의 아이들로 시작해서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 연결되는 이 끈을 붙잡고 성장한’ 나날 어딘가에는 뱀이 나타나는 길도, 어두운 골목길도, 일로만 여겨져 사랑할 수 없었던 귤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을 하러 온 배우들을 위해 추운 겨울 뜨끈한 국수를 끓여주던 엄마에 대한 기억, 언니 같던 고모에 대한 기다림, 이렇게 밤을 사랑했던 어린 날도 있었다.

낭만을 낭만으로만 생각해버리기엔 조금 헛헛했던 감정들이 옥상에 남아 있었다. 누구에게 그 헛헛함을 고백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별들을 보고 밤바다를 보고 음악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밤공기는 누가 사랑했을까)

시를 사랑하는 아이는 육지로 나온다. 제주에서의 기억은 이제는 귤처럼 그리움으로 남았고, 두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지금 많은 것이 변하고 달라졌다.

엄마가 되고부터 밤에 밤 곁으로 홀로 나가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밤은 잠들면 완성되었지만, 나의 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거실을 괜히 서성거렸다. 잠은 오지 않을 때가 많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밤에 혼자 나가보지 못한 탓에 밤에 혼자 나간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다. 떠올리지 못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켜내야 하는 삶으로 돌아앉은 나는 이제 밤은 조금 무서운 것이 되었다. (밤공기는 누가 사랑했을까)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시인은 이제는 시를 놓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고 그래도 괜찮다고 위안하기도 한다. 엄마로 빛나는 것 또한 빛나는 것이기에.(소제목의 제목이 ‘빛나면서 빛나야 한다’인 것의 서술어가 취하는 주어가 서로 다를 것이라는 추측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우리 모두가 가장 잘 아는 일이 아니었던가.

‘단어를 넣고
오물오물 씹는 아이의 입에서 소화되고 남은 아이의 기분이 고스란히 만져진다’며 소소한 감상에 젖는 모습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이기에, 지난 인연에게 긴 문자를 보내고 싶어지는 새벽이 있다. ‘널 떠올리면 늘 내가 외로워져.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장 익숙한 것을 떠나보내는 일 같아.’ 하지만 ‘견딘다. 후배에게 안부를 묻는 대신 하늘의 구름을 한 번 더 올려다본다.’ 그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으니까. 그리고 살아간다.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중고 거래를 위해 물건을 닦아 준비하거나, 남편,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산책한다. 우리도 똑같이 살아가는 풍경 속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잔잔한 행복이 묻어 있다.

딸로 바라보는
엄마의 삶은 우울의 근원지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엄마가 되었다. 한 인간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경험은 엄마가 되고 난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뒤늦게 깨닫곤 한다. 일찍 철이 든 딸이었던 그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을 슬프다고 느꼈지만, 이제 스스로 딸을 키우면서 그 시선이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지 않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늙음이나 낡음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를 일찍 낳은 엄마 덕분에 나는 친구들보다 젊은 엄마를 가질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성장하는 동안 좋으면서 무거웠다. 젊은 엄마여서, 젊고 어여쁜 엄마여서 좋았지만, 나를 낳고 엄마의 청춘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 엄마의 꿈은 아이를 키우며 낡아가고 멀어져갔다. 맏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엄마의 청춘을 앗아가 버린 시작점인 것만 같았다. (혼자 가는 먼 집)

세 아이를 먹이고 기르느라, 농사를 짓고 아버지 성미 맞추느라 젊었던 엄마는 젊은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줄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다 자라서 어른이 됐지만, 어머니는 더 자랄 데가 없어서 외로웠을 것이다. (...)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음식을 하면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 (드라마와 국수)

친정에 쉽게 왕래하지 못하는 딸의 삶은, 왕래하지 못해도 괜찮을 만큼 겉으로는 아주 단단해 보여야 한다. 단단한 상자 속에 감춰진 여러 갈래의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말하다 보면 가고 싶고, 말하다 보면 내 딸들을 보여 주고 싶고, 말하다 보면 나도 ‘엄마’라는 것을 잊고 당신의 딸로만 머물고 싶다고 다 쏟아부어 버릴까 봐 목소리를 잊기로 했다. (엄마의 택배)

영화와 여행,
음악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그의 취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다시 보게 된 영화에 대한 새로운 느낌이나 여행지에서의 소소한 일화들은 그 자체로도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시인의 생각에 꿰어 펼쳐 놓으니 한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 취향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이 궁금해진다. 그가 모으고 있다는 어린 왕자의 판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된다.

시인은
시를 쓰지 못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음을 끊임없이 고백한다. 시를 쓰는 일이 ‘내가 내 존재로 빛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 안 쓴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시를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 시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나라는 인간을 피해 도망쳐버린 것 같았다. (패터슨)

그런 불안은 사람을 안에서부터 갉아 내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 겪어내는 당시에는 아마도 절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견디어냄으로 그에게는 어른의 사유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시를 잃어감에 침잠했던 나날이 지나고 난 후 남은 깨달음은 담담하다.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당장 필요해 보이진 않지만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른이 되어 보면 아는 것이다. (겨울, 코트 생각)

포도알들이 모여 송이가 되는 일처럼 책상에 자주 앉는 일이 내가 ‘쓰는 사람’의 길에 가까워져 가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포도송이의 시간)

결국 그는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인생을 관통하는 절실한 마음에 마음이 동해 울컥하고 눈가가 뜨거워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용기를 지닌 그에게, 그리고 꿈이 깃든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다채롭고 영롱한 시적인 순간을 위해.
목차

추천사 ─ 5
시작하는 글 ─ 9

1부•우는 방법을 잊은 외로운 사람
Out of Island ─ 19
겨울의 질량 ─ 22
커트 머리 아이 ─ 26
열 명의 아이들 ─ 29
뱀, 뱀, 뱀 ─ 32
고모 이야기 ─ 37
드라마와 국수 ─ 40
귤이 나에게 건네는 말 ─ 43
동문 시장 떡볶이 ─ 47
애기구덕 ─ 50
오늘 잡았다 ─ 53
밤공기는 누가 사랑했을까 ─ 57
스무 살의 기숙사 ─ 61
사투리는 잊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것 ─ 65

2부•빛나면서 빛나야 한다
아이의 생각에서 샴푸 냄새가 난다 ─ 71
건방지고 다정하며 귀중한 오늘 ─ 72
다름 왕국 ─ 74
구닥다리 엄마 ─ 76
가구는 변덕쟁이 ─ 82
살았던 곳의 시차 ─ 85
천변에 간다 ─ 88
식물과 함께하는 낮과 밤 ─ 92
윤미네 집 ─ 96
중고거래하기 좋은 날 ─ 102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 109
봄에게 닿다 ─ 114
엄마의 택배 ─ 117
시외버스터미널 ─ 122

3부•가장 오래 걸었던 여름
만삭의 등단 ─ 127
토토와 알프레도 ─ 130
교토에 두고 온 신발 한 짝 ─ 136
내가 사랑해서 밤은 아침이 되는 것을 잊고 ─ 139
해금 소리 ─ 144
셰이프 오브 워터 ─ 146
오래 걸어야 닿는 당신의 집 ─ 150
라디오가 있는 곳에 어김없이 내가 있다 ─ 153
어린 왕자 ─ 157
클래식은 귀여워 ─ 163
빨강 머리 앤 ─ 167
음악은 저쪽에서 흘러나와 이쪽으로 숨어들었다 ─ 171
세 살의 피렌체 ─ 176

4부•내 것이 아닌 것처럼
오늘의 감정 ─ 187
메르시! ─ 190
예술이라는 물질 ─ 194
서랍은 서럽다 ─ 197
랭보와 그녀 ─ 202
그곳에 두고 온 시 ─ 206
카페 유랑자 ─ 209
패터슨 ─ 214
문장에 기댄 시간 ─ 219
포도송이의 시간 ─ 224
겨울, 코트 생각 ─ 229
겨울은 가고 겨울은 남고 ─ 234
혼자 가는 먼 집 ─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