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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산문

저자/역자
배수아 지음
펴낸곳
문학동네
발행년도
2023
형태사항
251p.: 20cm
ISBN
9788954690560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북카페JG0000007396-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JG0000007396
    상태/반납예정일
    -
    위치/청구기호(출력)
    북카페
책 소개
“그러므로 한 사람이 두 번 다시 같은 빛 속에 있지 못하리라.”
한국문학의 가장 낯선 존재, 배수아 신작
독일의 시골 정원에서 쓰인 ‘읽기-쓰기’의 생활 산문


한국문학에서 ‘배수아’라는 이름은 낯설고 이국적인, 매혹과 비밀스러움이 그득한 영토의 푯말로 쓰인다. 신작 『작별들 순간들』은 읽기와 쓰기, 작가로 존재하기에 대해 쓴 산문으로 그 영토를 여행하는 데 가장 적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 조금씩 그 땅을 디디다보면 어느 순간 빽빽한 투야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오두막을 만나게 될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그곳에는 정원의 삶과 읽고 쓰는 삶만이 있다. 목가적인 것과는 다르다. ‘벗어난 것’에 가깝다. 익숙한 고통과 근심에서, 언어에서, 나 자신에서 벗어났을 때 새로이 느낄 수 있는 순간들, 그것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화음들.
배수아 작가는 베를린 인근 한 시골 마을의 정원 딸린 오두막을 15년 가까이 오갔다. 처음에는 시차를 두고, 그러나 점점 더 오래 그곳에 머물게 되었고 마침내 살게 되었다. 자신에게 중요해지리라 짐작하지 못한 채 중요해지는 장소가 있다. 특히 배수아 작가는 한국에 체류할 때는 번역을, 독일 오두막에 머물 때는 본인의 작품을 쓰는 식으로 작업해왔기 때문에 이곳은 더욱 특별해진다. 작가는 자신이 ‘정원에 속한 사람’이 되어갔으며 그것은 자신의 글쓰기의 성분과 정신, 철학을 모두 포함한 글쓰기의 양태가 오두막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이 산문집은 특정 ‘장소’에 관한 글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장소에 있었음으로 인해 쓸 수밖에 없는 글’이라고도.
소설가의 산문을 엮어 책으로 내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여러 매체에 실은 시의적 산문들을 정리한 책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콘셉트 아래 써내려간 산문집.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읽기와 쓰기, 작가로서 존재하기에 대한 배수아 작가 특유의 세계가 베를린과 인근 시골마을의 오두막 정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긴 호흡의 산문으로, 2022년 5월부터 10월까지 문학동네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밀도 높게 연재된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연재 당시 제목은 ‘순간들 기록 없이’였다.

우리가 평화롭게 정원의 흙 위로 몸을 기울인 동안, 당신의 몸 위로 빛과 그늘이 어지럽게 얼룩지는 그 순간에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숲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가 몸을 구부리면서 당신의 목덜미 위를 느리게 기어간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집어올린다. 평화와 고요. 오직 빛과 호흡만이 있는 순간. 지금 당신이 불타고 있다는 증거인가? 글쓰기는 작별이 저절로 발화되는 현장이다.(83쪽)

가을에서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두 권의 책을 번역하기로 되어 있었다. (“모든 언어는 외국이다.”) 글쓰기는 언어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나는 무성영화와 같은 글을 쓰고 싶어.”) 나는 스스로 만든 언어 안에 거주하기를 원했다. 존재는 거주이다. 내 거주는 글쓰기 안에 있었다. (“내 언어는 무너지는 집이다.”) 어린 시절 이후 나는 어디에서 살아왔던가? 항상 나는 내 최초의 집을 생각한다. 내게 최초로 말과 글을 가르쳐준 이는 누구였을까? 글을 쓸 때, 나는 종종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화가의 아틀리에를 상상한다. (232~233쪽)

“마침내는 아마도 일생이, 오직 하나의 문장이 반복되는 한 권의 책처럼
그렇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배수아식 읽기에 대하여


『작별들 순간들』은 ‘나’와 ‘베를린 서가의 주인’ 두 인물의 생활과 여행과 대화로 채워져 있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는 “글 속의 대화체를 위한 장치이며 ‘듣는 사람’으로 위장한 ‘말하는 사람’의 역할이고, 실질적으로는 ‘말을 암시하는 사람’이자 ‘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249쪽)이다. 일평생 단 하나의 헌책방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사람이며 방은 물론 욕실과 주방까지 책과 원고들, 편지와 쪽지, 스케치와 콜라주로 그득 채운 사람이다. 여름에는 글을 쓰다가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밤에는 작은 발코니 의자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는 사람이며, 무엇보다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다. 요컨대 상상의 인물이자 한 권의 책이자 문학 그 자체인 존재가 아닐지. 언젠가 배수아 작가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 문학과 사람을 꼽으며 종종 둘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말했다. 그것이 실체화된 것이 이번 산문집 속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 짐작하는 것이 과한 해석은 아니리라. 그들의 대화가 주로 책과 글, 유년의 기억과 행복에 대한 것이기도 하기에.
세 계절에 걸쳐 쓰인 산문의 내용을 궁금해하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에게 배수아 작가는 ‘읽기에 대하여’ 쓰고 있다 말한다. 그것은 ‘읽은 책’에 대해 쓰는 것과는 다르다고. “왜냐하면 나에게 독서란 한 권의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동시성의 또다른 사건이지 책을 기억 속에 저장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250쪽)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W. G. 제발트를 비롯해 이니셜로만 표기된 여러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다수 언급되지만 배수아식 읽기란 그 내용을 기억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감상을 정리하는 것과는 다르단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그녀의 책을 읽는 방식은 물리적으로 읽거나 읽지 않는 모든 상태를 포함한다. 이미 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꾸만 같은 페이지를 되풀이해서 읽게 될까봐 무의식적으로 모든 문장에 연필로 밑줄을 그으면서, 하지만 읽은 것으로부터 빠르게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사로잡히면서. 어떤 문장은 읽기를 통해 불현듯 무한대로 확장되었고, 마치 거대한 날개에 실린 듯, 나는 읽는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심지어 망각하는 읽기를 계속한다. 어휘들의 래디컬한 배치. 혁명과 형이상학. 문장과 어휘 단위의 해체. 사랑의 해체. (…) 한 권의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나는 그 책에 담긴 모든 것을 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읽기 위하여. (30~31쪽)

자신의 몸으로 한 권의 책을 통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자신을 어떻게 확장시키는지, 어떤 자유가 그곳에 있는지, 배수아 작가의 강렬하고 인상적인 문장들을 따라 읽다보면 문학에 대한 애정과 고양된 마음들이 찬란한 빛으로 그의 땅을 감싼 것이 느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부터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 작별하는 자”(188쪽)가 되는 여정이 여기 펼쳐진다.

“우리가 일생을 맡기기로 한 그런 일들”
배수아식 쓰기에 대하여


산문 전반에 배음으로 드리워진 이국의 정취는 작가와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꾸려가는 시골생활의 구체적인 묘사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펌프로 물을 긷고 장작불을 피우고 소박하게 빵을 구워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한다. 계절에 맞게 핀 꽃과 열매로 시럽이나 잼을 만들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낙엽송 숲과 밀밭을 거닐며 도시의 그것과는 다른 고독에 자연스레 침잠한다.

우리는 서로 읽거나 쓰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가장 적절한 장소이다. 잠시 동안 빛이 넘실대는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는 밤의 정원에 있다. 밤새도록 나이팅게일이 운다. 잠 속에서도 꿈속에서도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잠시 동안 나이팅게일의 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는 수많은 세월을 늙어버린 다음일 것이다. 그것이 환희라면. (37~38쪽)

그들은 너도밤나무 숲을 통과해 걸어서 두 시간 거리의 이웃마을로 바흐 연주를 들으러 간다. 정원 낭독회를 열기도 한다. 친구들, 작가들과 교류하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투야나무 울타리 쳐진 정원 오두막에서의 고요함을 소중히 하며 그곳을 어느 곳보다 더 ‘집’ 같은 장소라 여긴다. 비밀스러운 기쁨의 순간들로 충만한 장소. 작가가 은둔에 가까운 생활방식을 취한 곳에서 밝히는 ‘작가로서 내가 원하는 글쓰기’에 대한 긴 고백은 그러므로 더욱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나는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거나 스며들거나 지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압도적인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좋은 글이나 기억에 남는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으며 심지어 매혹적이거나 독특하거나 소름 끼치거나 아찔한 글도 아니라고, 문장 단위로 이루어지는 글을 쓰고 싶지 않으며, 개념과 철학으로 쓰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체와 통일과 조화의 글도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연속성과 이야기의 문법을 피해 가기를 원하며, 구조와 플롯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나는 그 무엇도, 심지어 내용이나 아름다움조차도 완성하거나 구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은 파편이었다, 단지 속삭임, 몸에서 울려나오는 숨과 같은 속삭임, 물처럼 들어올리는 속삭임, 글이 호흡하는 속삭임, 글을 해체하는 속삭임, 몸 없이 환하고 불완전한 사물과 같은, 하지만 속삭이는 사물인, 혹은 모순되고 파편적인 몸을 가진 소리… (134쪽)

배수아 작가는 자신이 읽고 쓰는 자로서 잘 아는 어느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종종 ‘몽환적’이라는 불충분한 말로 표현되는 그의 문장들이 실은 불충분한 말로밖에 다 말해지지 못하는 그 세계를 가장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작별들 순간들』을 함께 읽을 우리. “고요. 회색. 숲에서, 우리는 비밀의 책을 가질 것이다. 우리, 깊이 매혹당했고, 아무도 알지 못했다.”(208쪽)
목차

프롤로그
연인
일곱번째 아이
낙엽을 헤치며 걷는 사람
WG, 그리고 개구리를 먹는 자
작별들
누가 우리에게 자연을 암시하는가
최초에 새를 가리킨 여인
내가 가진 넝마를 팔고
영혼의 서쪽 벽
9월의 황무지에서
고통
고요. 회색.
멀리
헝가리 화가의 그림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