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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각 시선 050

한라산에 기대어

저자/역자
이영균 시 / 이도헌 사진
펴낸곳
발행년도
2022
형태사항
231p.: 21cm
총서사항
각 시선; 050
ISBN
9791188339839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북카페JG0000006872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JG0000006872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북카페
책 소개
시인 이영균은 엄밀한 의미의, 소위 등단코스를 밟은 전문 시인이 아니다. 그의 시들은 생활인으로서 고희에 이른 한 인간의 시들이다. 그러기에 그의 시에서 특별한 시적 기교나 신진 시인의 색다른 맛을 찾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특별한 시적 기교 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생활 속에 삶에 대한 지극한 성찰이 닮긴 그의 글들은 담담하지만, 삶의 지혜와 진솔한 감정이 잘 녹아있다. 시는 시인의 삶에서 우러나온다. 시 속에는 시인의 삶이 녹아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생활인으로서의 그의 삶의 궤적은 이 시집 말미에 실려 있는 “내 삶의 궤적” 속에 잘 낱카나 있다.

내 삶의 궤적
-고희(古稀)에 들다

화면 밝아지니 굴렁쇠 소리 맑고 청아하다
소년은 소리 따라 굴렁쇠 굴리는데
그 모습 유심히 지켜보는
젊은 사내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린 사내는 굴렁쇠 굴리며 달동네 골목을 누빈다
20수 년을 거슬러 60년대
모두 굶주렸고 희망이 없었다
어린 사내는 굶주린 배 움켜지고
굴렁쇠 굴리며 혼자만의 분노를 삭이며 무작정 달렸다
가난에 대한 분노와 설움이었다

늙은 사내는 정자에 앉아 전설 같은 옛 모습에 눈을 감는다
백록담이 눈앞에서 웅장하고 태평양이 눈 아래서 잔잔하다
산업화 초기 가발공장과 눈썹공장
청년은 홀치기공장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어린 여공들의 손놀림을 초점 잃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청년은 문경 탄광에서 등어리에 각목을 지고
좁은 굴을 오르고 있다
사내의 청소년기는 굶주림과 설움의 시기였다
유신독재의 서막이 오르고 대학은 최루탄 냄새에 찌들었다
청년은 갈등 속에 입영을 했고 한 달 모자라는 3년을 복무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복학생으로 현실의 길을 걸었다
조선소 도크에서 용접봉 불길이 불꽃놀이만큼 요란하다
중화학 경제개발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청년은 거대한 배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자동차 부품 계열화사업은 청년을 자동차 부품공장으로
데려가서 수많은 부품과 금속에 대한 지식을 제공했다

장년이 된 청년
민주화보다 산업화의 방향으로 산업현장에서 10년을 전진했다
늙은 사내는 숲속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쥐었던 주먹을 편다
사내의 나이 30대 중반이다
이제 가슴을 열고 야망을 도전으로 하늘을 날아야 한다
중공업은 너무 무겁고 금속은 전자보다 단순했다.
배운 지식 총동원해서 전자소재로 가자
굴렁쇠소리 끝나고 메달소식에 나라가 들끓었다
젊은 사내의 야망과 도전은 올림픽과 함께 시작 되었다
모험 도전 극복
모험하고 도전하면 응전하였고
마침내 극복하여 수많은 전자소재가
국산화 되었고 회사는 성장하였다
회사는 상장되었고 젊은 사내는 가난의 한을 떨어내고
문명사회에서 부자가 되었다
반도체소재 중 몇 가지 제품은 세계일등 제품이다
모두 같이한 임직원들의 힘이다
사내의 장년기는 모험과 도전 그리고 극복의 시간이었다

어린 사내가 늙은 사내가 되었다
어린 사내는 배가 고팠고
청년은 민주화와 산업화 중간에서 혼란스러웠고
장년은 중화학과 전자소재 중간에서 갈등하였고
늙은 사내는 문명과 자연 중간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혼란과 갈등의 시간들
훌훌 털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한 사내의 생을 들여다보면
한 나라의 압축된 현대사가 녹아있다
GDP 300에서 30,000까지
홀치기공장에서 중공업 반도체소재까지
꼴찌에서 3050 7위까지
어린 사내가 늙은 사내가 되기까지
문명사회에서 60년은 밖으로 부자가 되었고
자연에서 10년은 안으로 부자가 되었다
늙은 사내가 한라산 중턱에서
그리움 찾아 밤하늘 쳐다본다.


이 글 속에는 그의 70년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두 굶주리고 헐벗었던 60년대, 시인은 ‘가난에 대한 분노와 설움’속에 굶주린 배 움켜쥐고 굴렁쇠 굴리듯 무작정 달려 온 인생을 반추하고 있다.

가발공장 눈썹공장 탄광막장을 거쳐 유신독재의 시대 군복무를 마치고 중공업 공장에서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전자소재산업의 현장에 뛰어들어 모험과 도전과 응전의 시기를 거치며, 마침내 반도체 소재 개발의 성공을 통해 부를 일구었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사 자체가 한국 산업화의 역사이기도 하며, 반도체산업의 산증인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게 이 지구라는 행성에 뿌리내리고 성공적인 삶을 일군 그는 어느 날 제주섬에 기어들어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았다. 60의 나이에 한라산과 태평양이 마주 보는 중산간 지대에 거처를 마련했고, 이제 자연과 함께 하는, 한라산에 기대어 사는 생활 속의 감성들을 한 줄 한 줄 시편으로 다듬었다.

대한민국은 동족상잔의 폐허 위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거머쥔 동아시아의 특별한 나라라는 평가도 있다. 그의 삶에도 이 두 개의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한국의 역사가 배어있는 듯, 그 역시 민주화와 산업화의 간극 어디쯤에서 길을 찾아 헤매기도 했고, 산업화의 길을 선택한 후에도 중화학과 전자소재산업의 어디쯤에서 방황하기도 했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문명과 자연의 어디쯤에서 선택의 순간은 늘 있었으나, 이제 그는 모든 걸 훌훌 털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지구별의 한 생명이 태어나 살아 낸 생로병사의 한 주기가 그러하듯, 흡사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떠올리게 한다. 폭풍 같은 삶의 여정을 끝내고 이제 한라산자락에 앉아 강산이 한번쯤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지낸 제주의 자연에 귀의한(?) 한 사내의 고백록 같은 시집이기도 하다.

그의 시편들은 제주의 메밀로 만든 ‘빙떡’의 맛과 같다. 밍밍한 무(無)맛이지만, 그 자체를 맛이라고 불리는 빙떡 같은 시구들... 얼핏 간이 되지 않은 빙떡의 맛처럼, 그의 시어들, 시편들은 훨씬 자연스러운 글쓰기의 맛을 담고 있다. 특별하지 않지만, 그러기에 특별한 감수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어! 이런 맛도 있네!!!”라는.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늦둥이 그의 아들이 폰카로 찍은 제주의 사계가 담긴 사진들을 보는 맛은 덤이다.

발 문
높고 외롭고 자유로운 영혼의 제주살이

김수열(시인)



1.

시 쓰는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시 원고를 보낼 테니 한번 읽어보라는 내용이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시집들을 읽기에도 버거운데 책으로 묶이지도 않은 원고 뭉치를 돋보기 너머로 꼼꼼하게 읽어내는 일이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 부탁했으리라 여기면서 일단 보내보라 했다.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대충 읽어본 다음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그만 접고 원고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적당히 나이가 들면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를 담은 글을 한데 묶어 책으로 엮어내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온 터라 그저 그런 정도의 원고일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어본 사람은 안다. 몇 편을 읽다보면 끝까지 읽지 않고 그만 접어도 될 글이 있는가 하면, 읽을수록 글의 매력에 끌려 차마 중간에 끊지 못해 다음 글이 더욱 궁금해지고 그러다가 끝까지 읽게 되고 결국 무릎을 치게 된다는 걸 말이다.
적지 않은 분량의 원고였지만, 이영균 선생의 첫 시집 『한라산에 기대어』는 내가 지금껏 읽은 많은 시집 중에 한 호흡에 읽어 내려간 시집 가운데 하나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2.

그의 시편들은 온통 제주의 이야기고 한라산의 이야기다. 동어반복이 되는 것 같아 지루할 법도 한데 읽다보면 또 그게 아니다. 그만의 묘한 매력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된다. 시편들을 접하면서 새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제주가 마냥 아름답다고 한라산이 그냥 수려하다고 괜한 칭찬을 늘어놓지 않는다. 또한 시의 언어가 화려하지도 않고 돋보이지도 않는다. 수수하고 담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그의 시편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는, 섬사람들이 그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나무 혹은 숲을 통해서 바람을 보고, 바람의 끝을 가늠하면서 미래를 예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웅숭깊음이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바람이 자유로운 숲은 나무가 건강하다
나무가 건강하면 인간이 건강하고
모든 생명이 건강하다

아득한 옛날
문명이 일어나기 전
숲은 바람이 자유로웠고
인간은 불편하지 않았다
대지는 주인이 없었고
배고프지 않았으니 욕심이 없었다
계절의 변화는 생명의 신비와
종족보존의 본능을 이어왔다
문명은 바람이 자유로운 숲의 길을 막고
대지의 생명들을 병들게 하였다

하늘 높고 바람 맑은 날
바람이 자유로운 숲을 걸어보라
- 「바람이 자유로운 숲」 전문

그는 나무를 통해 바람을 만났고 바람의 숨소리를 통해 문명 이전과 이후를 사유한다. ‘문명이 일어나기 전/숲은 바람이 자유로웠고/인간은 불편하지 않았다’는 통찰과 함께 ‘문명은 바람이 자유로운 숲의 길을 막고/대지의 생명들을 병들게 하였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하늘 높고 바람 맑은 날/바람이 자유로운 숲을 걸어보라’고. 당연히 지금 우리는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하늘 높고 바람 맑은 날’인 ‘문명 이전’ 즉 ‘자연’ 으로 들어가서 ‘바람이 자유로운 숲을 걸어보라’고 권한다. 비록 몸은 문명에 얽매여 있지만 영혼만큼은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함께하자는 것이다. 그런 그가 선택한 자연이 바로 제주이고 한라산이다.
그의 하루 일과는 한라산 남쪽마을 사백고지 즈음에 위치한 그의 거처에서 나무가 낸 길을 걸어 숲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즈넉한 길을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나무가 들려주는 조근조근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나무에 깃들어 사는 새들의 지저귐에 눈길을 주면서, 나무 끝에 남아 있는 바람의 흔적을 예의 주시하다가 해질 무렵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서귀포 수평선에 하나둘 집어등(集魚燈)이 켜지면 옷깃에 어둠을 바르고 남루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다.

언젠가 초대를 받고 그의 거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와 함께 숲길을 걸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희의 문턱에 선 그의 곡진한 삶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시집의 끄트머리에 실린 <내 삶의 궤적>을 들여다본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혼자만의 분노를 삭이면서 무작정 굴렁쇠를 굴리고 있는 어린 사내가 보인다. 모두가 굶주렸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절이었다. 어린 사내는 청년이 되어 가발공장과 눈썹공장을 전전하였고, 홀치기공장에서 어린 여공들의 현란한 손놀림을 초점 잃은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경 탄광에서 등어리에 몸집보다 크고 무거운 갱목을 지고 좁은 갱도를 힘겹게 오르내리는 청년이 보인다. 설움과 굶주림의 연속인 시절이었다. 유신독재, 대학이 온통 최루가스에 찌들어 있을 무렵 고민 끝에 청년은 군 입대를 선택하고 3년 만에 복학생으로 돌아온다. 조선소 도크에서 불꽃같은 삶을 사는 용접공청년은 산더미 같은 선박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독학 끝에 알게 되었고, 다시 청년은 자동차 부품에 눈을 돌려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필요한 각종 기술을 학습하고 몸에 익힌다.
어느새 장년이 된 그는 너무 무거운 중공업과 너무 단순한 금속을 뒤로 하고 전자소재에 주목을 한다. 수많은 시련과 도전을 극복하면서 전자소재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하였고 반도체분야까지 영역을 넓힌 굴렁쇠소년은 마침내 문명사회에서 부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공든 탑을 쌓아올린 그가 문명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을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듯 훌훌 벗어던지고 세속을 떠나 어머니의 품성을 지닌 대자연으로 귀의한 것이다. 한라산의 넉넉한 품안에 둥지를 튼 것이다.


3.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새들의 조잘거림에 눈을 떴다

지하철 출근길 잠깐 졸다 깨어났다
숲속을 산책하고 있다

일하다 실수하여 상사에게 꾸지람 듣고 기죽었다
과수원에 잡초 뽑았다 큰 뿌리 깊이 박혀 낑낑 뽑았다
한여름 에어컨 바람 쐬며 쌀밥 한 그릇 설렁탕에 말아먹었다
안뜰 밭고랑에서 상추 뽑고 풋고추 따서
반지기밥 한 그릇 조선된장에 푹푹 찍어 먹었다

점심 후 식곤증에 풀리는 눈꺼풀
의자에 앉은 채 잠깐 몸을 푼다
남북으로 뚫린 대청마루
큰 대자로 누워 쌓인 피로 풀릴 때까지 한숨 푹 잔다

다시 지하철 타고 집에 온다
강아지 앞세우고 파인 바위 속 고인 물에 멱 감고 집에 온다

인생 육십 고갯마루
그 길 대신 나는 이 길을 걸어왔다
- 「이 길을 걸어 왔다」 전문

앞에서 언급한 그의 문명적 삶과 지금의 자연적 삶을 대련(對聯)으로 배치해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쓴 시편이다. 전체가 7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5연까지의 내용이 다름 아닌 문명의 ‘그 길’과 자연의 ‘이 길’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지하철 출근길 잠깐 졸다 깨어’ 출근하고 ‘일하다 실수하여 상사에게 꾸지람 듣고 기죽’다가 ‘한여름 에어컨 바람 쐬며 쌀밥 한 그릇 설렁탕에 말아먹’고 ‘점심 후 식곤증에 풀리는 눈꺼풀/의자에 앉은 채 잠깐 몸을’ 풀고 ‘다시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오는 문명적인 삶을 60년 넘게 살았다.
그런 그가 10년 전부터는 ‘새들의 조잘거림에 눈을’ 뜨고 ‘숲속을 산책하고 있다’가 ‘과수원에 잡초 뽑았다 큰 뿌리 깊이 박혀 낑낑 뽑’고는 ‘안뜰 밭고랑에서 상추 뽑고 풋고추 따서/반지기밥 한 그릇 조선된장에 푹푹 찍어 먹’는다. 그러고는 ‘남북으로 뚫린 대청마루/큰 대자로 누워 쌓인 피로 풀릴 때까지 한숨 푹’ 자다가 ‘강아지 앞세우고 파인 바위 속 고인 물에 멱 감고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래도록 이렇게 머물고 싶다」라는 시편에서 그는, 젊었을 때는 탈출의 기회만 엿보는 ‘현실도피주의자’였고, 중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만 하는 ‘충실한 현실주의자’였으며, 인생 칠십에 그는 나무와 돌 바람 구름 벗 삼아 삶을 즐기는 ‘한가한 자연주의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용등루에 앉으면 정복자가 된다
태평양과 한라산이 앞에서 펼쳐지고 뒤에서 지켜준다
역사의 어느 영웅이
나처럼 넓고 높은 이곳에 앉아 보았던가
좌홍송은 삼지창 높게 세우고
우해송은 밀착경호 겹겹이 에워싸고
어느 문명이 이곳에 환한 등 밝힌 적 있던가
그 옛날 돈키호테가 온다 한들 이 허세 당할손가
오늘은 찬바람 불어
목도리 마스크에 두터운 장갑 끼고
소털벌립까지 눌러쓴 완전군장 대장군 되어
용등루 높이 앉아 돈키호테 능가하는 허장성세 부려본다
- 「용등루에 앉아」 전문

처음 원고를 읽었을 때 이 ‘용등루’가 참 궁금했다. 뜻을 풀이하자면 ‘용이 하늘로 오르는 누각’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는데 일찍이 ‘등용문’은 들어봤어도 ‘용등루’는 처음이라 궁금하던 차에 그의 거처를 방문하고 같이 걸어서 마침내 ‘용등루’에 오를 수 있었다. 서너 평 될까 말까한 나무정자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용이 승천할 것 같지는 않은 소박한 정자였다. 그에게 물으니 벗들이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다.
물론 그곳에 앉아 있으면 발아래 저만치 서귀포 바다가 보이니 그게 태평양이고, 정자 뒤로는 아득하게 한라산이 위치해 있다. 그러니 한라산이 지켜주고 있다고 해도 빈말은 아니다. ‘좌홍송’과 ‘우해송’도 그렇다. 정자에 앉으면 왼쪽으로 붉은 소나무가 하늘 향해 가지를 뻗은 채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해송들이 정자를 둘러싸고 있어 밀착경호 한다는 표현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앉아 있는 ‘대장군’의 모습은 마치 소설 속의 돈키호테마냥 궁색하기 그지없다. 진정한 대장군이라면 아무리 추워도 목도리 마스크는 물론이고 장갑도 사양했어야 한다. 더군다나 우시장에 소 팔러 가는 시골 노인양반들이 즐겨 쓰는 소털벌립의 경우 대장군이 쓰는 모자치곤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그런 허장성세가 오히려 좋다. 용등루 오르는 길에 그를 따라나서는 ‘얼룩이’와 ‘곰돌이’ 그리고 ‘황돌이’와 ‘깜순이’를 시 속으로 불러들여 사대천왕에 임명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4.

산속에 집이 있어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수십 년을 출근했으니 제 버릇 어찌할 수 없는지라
아침 천천히 먹고는 집을 나와야 한다
봄 지나 여태까지
숲속 높은 곳에 서너 평 마루 깔고 지붕 이어
직장이라 생각하고 출퇴근 하였는데
10월 가고 찬바람 부니 사방에 한기가 들어
이직을 결심하고 14칸 겨울집을 지었다

2칸은 마루 깔아
탁자 놓고 소파 놓아 따듯한 차 준비하고
2칸은 겨울꽃들 심어
백설이 하얀 세상 만들 때 조그만 꽃세상 준비하고
2칸은 옆집 젊은 부부 겨울 준비하라 내어주고

나머지 8칸은
오일장에 나와 있는 모종이란 모종은
한 아름씩 사서 빽빽하게 파종하고
오가는 사람들 한겨울 야채가 그리운 사람들
한 움큼씩 따 가게 하련다
- 「14칸 겨울집」 전문

‘숲속 높은 곳에 서너 평 마루 깔고 지붕 이어’ 지은 집이 다름 아닌 용등루다. 용등루까지의 산책을 출근이라 여겨 지내왔는데 찬바람 불고 한기가 드니 어쩔 수 없이 ‘이직’을 결심하고 새로 지은 집이 바로 ‘14칸 겨울집’이라는 것이다.
14칸 겨울집의 구조가 참 남다르다. 2칸은 마루 깔아 차실로 쓰고, 2칸은 하얀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게 화단을 조성하고, 2칸은 옆집 젊은 부부에게 거저 내준다.
그런데 나머지 8칸의 쓰임새가 아름답고 눈부시다. ‘오일장에 나와 있는 모종이란 모종은/한 아름씩 사서 빽빽하게 파종하고/오가는 사람들 한겨울 야채가 그리운 사람들/한 움큼씩 따 가게’ 하려고 14칸짜리 집을 지은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비닐하우스를 짓고 또 한 번 허세를 부리고 있는데 그 허세가 참 고맙고 여유롭게 다가온다. 그곳에 앉아 한겨울에 꽃을 피운 것들을 바라보면서 따듯한 차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의 시편들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일종의 사랑시라고 해도 좋을 법한 시편들이 몇 편 눈에 띄는데, 「사랑」,「생일」, 「순이는 별이 되어 하늘에서 빛나더라」에서는 생전에 마음고생만 하시다 일찍 별이 되신 어머니에 대한 곡진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숲은 어머니 품속」에서는 제주에 내려와 만나게 된 숲과 생전의 어머니를 둘이 아닌 하나로 일치시키는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두고두고」에서는 아내에 대해 미안함과 애절한 사랑이 돋보이고 「가을 단비」에서는 이웃 농부들에 대해 따뜻하고 애틋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는 시편들도 눈에 띈다. ‘뿌리가 있다 고로/함성 지르던 날 같이 질렀고/촛불 켜던 날 같이 켰고/행진하던 날 같이 걸었다’(「고로 뿌리가 있다」)라는 표현이 그렇고, 그가 거처하는 곳의 역사를 꿰고 있는 듯 그는 제주4·3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있다.

슬픈 역사 되어 가슴가슴 상처 깊은 날
푸른 동백나무 붉은 가지에
몽월몽월 매달린 짙붉은 동백꽃 봉오리
슬픔이 더 커져 통째로 눈물처럼 떨어진다
봄비 오는 이맘때쯤이면
- 「봄비」 부분

깊은 산속에 길고 높은 돌담이 있다
밑에도 있고 위에도 있다
사람이 살다 간 흔적들이다
밭 갈다 쌓아 올린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다
밭 갈던 농부 떠난 지 얼마인가
밭은 보이지 않고 숲들만 보인다
돌담은 흘러간 칠십 년 슬픔을
구멍 난 가슴으로 흘려보내고
새들은 저마다 사연을 담아 슬픈 노래 부른다
바람은 돌담 달래려 구름 부르고
구름은 빗물 되어 돌담을 안고 흐른다
나뭇가지 잎들은 저마다 슬픈 사연 묻어두고
새잎으로 거듭난다

묻어둔 사연들은 역사가 된다
눈물과 슬픔은 마르지 않는 샘이 된다
잃어버린 마을은 잊히지 않고
흔적은 숲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
돌담은 산속에 있어도 산담이 아니라 밭담이다
잃어버린 마을의 슬픈 흔적이다
- 「슬픈 흔적」 전문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그가 사는 곳은 행정적으로 영남동에 해당이 된다. 제주4·3 당시에는 영남마을이 그 근처에 있었는데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이 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5.

내 몸에 병이 깊어온다
졸지에 대학병원 응급실, 장에 탈이 났다 한다
삼일 밤낮 차도가 없어 육지 더 큰 대학병원으로
결국 다시 문명으로 돌아가 병원에 누워 눈만 껌벅껌벅
한 달 지나는 동안 한라산을 잊었다
퇴원하라는 주치의 말씀이 있기까지
망각인지 침묵인지 머릿속에도 가슴속에도
눈 덮인 한라산 풍경이 사라졌다 한 점 티끌도 없이
아, 나는 결국 문명으로 돌아갈 사람인가

제주에게도 한라산에게도 매일 걷던 산책길에도
숲속의 모든 생명들에게도 죄인 되어 고개 숙인다
내 몸 스스로 움직이는 날 여기 문명 밀치고
한라산 향기 찾아 나서리
- 「한라산 향기 찾아 나서리」 부분

그는 얼마 전에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와 싸워야 했지만, 결국 문명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라산 풍경 안으로 향기를 찾아 다시 돌아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가 한라산자락 거처에 머물면서 오늘도 어제처럼 용등루에 올라 제주의 자연과 한라산을 조망하면서 바람소리도 듣고 빗소리도 듣고 때로는 몰아치는 태풍에 잔뜩 움츠리기도 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계절의 주인으로, 아웨나무와 산딸나무와 산수국과 치자꽃을 벗 삼아 하루하루를 숲과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바람소리 거센 어느 날 삶과 시를 안주 삼아 저 멀리 떠 있는 집어등을 바라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중국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그의 시, 곡강(曲江)에서 ‘人生七十古來稀’라 노래했다. ‘칠십까지 사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오래 전 이야기에 불과하다. 오늘날은 의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생 칠십은 초로(初老)에 불과하고 팔십이 되어서야 중노인(中老人) 소리를 들으며 구십을 지나야 비로소 망백(望百)의 황혼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제야 초로에 갓 입문한 이영균 선생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의 시, 「바람소리 거세어진다」를 읊조리면서 이만 총총 글을 접는다.

태풍 속에 시를 쓴다
바람과 빗물 마음속 깊은 뜨란 휘젓고 노닌다
바람소리 거세어진다
상념 깊어지고 술병 비어간다
나는 언제쯤 이 얇디얇은 속마음 비워내고
저 바람 저 빗소리 닮아갈까

금년 여름 모질고 힘든 더위 다 이겨내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앞에 앉아
이 저녁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있다마는
아무튼 무탈하게 내일이 밝았으면 좋겠네

소주병 점점 비워가고 처마 밑에 빗물이
바람 타고 뚝뚝 내 술잔에 떨어진다
바람소리 거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