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어제 그곳 오늘 여기: 아시아 이웃 도시 근대 문학 기행
- 저자/역자
- 김남일 지음
- 펴낸곳
- 학고재
- 발행년도
- 2020
- 형태사항
- 432p.: 19cm
- ISBN
- 9788956254128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16.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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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 JG000000636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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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JG0000006364
-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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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시대정신을 담은 아시아 근대문학, 여행자의 지도가 되다
“아시아는 소수, 주변, 방언의 다른 이름이었다
인구가 전 세계의 5분의 3을 차지해도 늘 소수였고
서구 문명에 토대를 두지 않은 이상 늘 주변이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늘 방언이었다.
문제는 이때의 방언이 비단 언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
그건 사실 표준의 외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발길은 시간 위를 걷고 눈길은 정신을 따라 흐른다
하늘에 비행기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절, 소설가 김남일이 가까운 나라의 여러 도시를 여행한 기록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베트남의 사이공과 하노이, 중국의 상하이와 대만의 타이베이, 일본의 교토와 도쿄와 오키나와, 그리고 서울. 모두 그가 가보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책으로 읽은 도시들이다.
저자는 스스로 이 글을 ‘기행문일 수도, 독후감일 수도, 또 어쩌면 몽상의 기록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땅 위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영락없이 글 속으로 이어진다. 혹은 거꾸로, 글 한 자락을 따라 걷기 시작한 걸음이 시간도 공간도 뛰어넘어 금세 지금의 그 도시로 내닫는다. 감정이, 욕망이, 사상이, 시대가 담기는 문학은 ‘도시’가 그러하듯 이미 그 자체로 공간인 셈이다.
중요한 건 땅이 아니라 사람이다
김남일은 뇌리에 깊이 박인 문학 작품을 지도 삼아 도시를 걸었다.
이 땅에서 소설가로 평생을 살고도 한국 문학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며 우리 근대 작가들이 숨 쉬던 세상으로 들어갔던 것처럼(『염치와 수치』), 『어제 그곳 오늘 여기』의 여행 역시 그에게는 역사의 궤 안에서 등을 기댄 이웃 나라의 ‘그때’를 더듬는 순례 길이었다.
도시를 보는 것은 곧 그곳에 사는 사람을 보는 것이다. 글을 읽는 것 역시 사람을, 삶을 읽는 것이다. 김남일이 찾은 도시들은 좋든 싫든 이방인의 흔적이 짙게 드리운 곳, 한참 뒤늦게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곳이다. 낯설 것도 없는 이 도시들의 이름이 우리 귀에 익은 것은 언제라도 쉽게 날아가 소비하고 돌아올 수 있게 된 최근 30여 년간의 경험에서 비롯됐을 뿐이다. 해묵은 더께마저 낭만적인 관광지. 그런 도시에서 저자는 포장 아래 켜켜이 쌓인 본토박이의 오래된 체취와 정념의 응어리를 읽어냈다. 여느 관광과는 시작도, 끝도 판이한 소설가의 여정은 결코 물리적인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지나간 현재’를 좇는 그의 뒤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100년 전 어느 광장과 50년 전 골목이 펼쳐지고, 이제는 글로 남은 사람들의 밭은 숨과 땀내가 공기에 맴돈다.
식민의 역사로 근대를 맞이한 동아시아의 이웃 도시들
사이공과 하노이
앙드레 말로와 조지 오웰, 헤르만 헤세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그린 아시아는 식민지라는 렌즈 안에 존재했다. 프랑스에 이어 미국까지,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침탈의 흔적이 사이공과 하노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서구 제국이 남긴 흔적 위에서 베트남은 통일이 될 때까지 흉악하기 그지없는 전쟁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앞을 보고 내달리기 시작한 베트남은 이후 50년간 대단히 변화무쌍했다. 그리고 ‘통일 베트남의 자존심’ 하노이는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로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세기 큰 전쟁을 세 번이나 끝냈다는 자부심이 ‘평화의 수도 하노이’라는 수식어로 빛을 발했다. 때마침 저자 김남일은 문학하는 동료들과 함께 그날 그곳에 있었다.
상하이
상하이의 풍경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반식민지 조계 시절의 유럽풍 건물 꼭대기마다 오성홍기가 펄럭인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를 맞은 곳은 ‘탈아입구’의 슬로건을 내걸고 과거와 단절한 도쿄였지만, 베이징과 서울과 하노이는 완강히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런 가운데 상하이는 극적인 방식으로 근대를 맞이했다. 영국이 조계를 설치한 와이탄에는 곧 프랑스가, 또 다음에는 영국과 미국이 공동 조계를 세웠다. 도로가 깔리고 은행과 극장과 양행이 쑥쑥 자라나면서 도시의 모습은 급격히 달라졌다. 이 도시 구상에는 미국도 빠지지 않았다. 대륙에 남은 제국주의의 유산은 혼돈의 기억을 품은 채 ‘중국몽 아적몽’ 구호와 더불어 천연덕스럽게 21세기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도쿄
이광수가 세계 일주를 하겠다며 건너간 상하이에서 우리는 그와 함께 망명자 홍명희를 만난다. 이후 두 사람은 도쿄에서 유학하며 함께 지낸다. 대문호 루쉰으로 하여금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게 만든 도쿄, 훗날 전쟁에서 패하고 불안과 자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미시마 유키오가 천황제 국가 재건을 외치고 롤랑 바르트가 기호화한 그 도쿄였다. 일본 유학 시절 루쉰은 나쓰메 소세키를 읽었다. 심지어 루쉰이 한때 기거한 집이 소세키가 살던 바로 그 집이었다. 그러나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라는 소세키는 실상 영국 유학에서 잔뜩 주눅이 든 터였다. 그런 소세키를 이광수 역시 중학 시절부터 애독했다.
타이베이
김남일의 아시아 목록에서 대만과 홍콩과 티베트와 오키나와는 다른 갈래로 자리한다.
그는 타이베이에서 대만의 또 다른 켜를 보았다. 한때 일본의 포장이 씌워졌던 이곳에는 중국과의 단층이 오히려 더 뚜렷하다. 대만의 근현대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배경으로 한다. 사회 인프라는 물론이고 서양의 관습과 제도, 문화예술 사조, 음악과 연극 등이 모두 일본어로 전수되고 학습되었다. 일본을 통한 서구화는 한국의 형편과 다르지 않지만 대만은 이를 ‘현대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는 양상이 달랐다. 일본이 빠진 뒤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이 권력을 차지했고, 대만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라는 2•28 사건이 일어났다.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 족군(성적) 문제가 대만 문화예술의 저변에 깔리기 시작했다. 본성인들은 “차라리 일본이 있을 때가 나았다”는 말을 가리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일제 때가 나았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이어서 그는 본섬과 구분되는 대만의 다른 토박이들, 산과 바다에서 태어난 원주민 작가들을 만난다. 타이베이를 이야기하면서 작은 섬의 부족이 입는 차별과 피해를 빠뜨리지 않는 것은 저자의 단단한 작가 정신이 발동한 결과일 것이다.
오키나와
오키나와에 남아 있는 비극의 정서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일본 본섬과는 문화도, 풍속도 달랐던 이곳에는 복속의 설움과 태평양전쟁의 상흔이 깊이 새겨졌다. 섬을 제 것으로 흡수 처리한 일본은 결정적인 순간 오키나와를 버리다시피 했다. 한때 왕국이던 섬은 군사 기지로 전락했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지촌’의 정서가 오키나와에 자리 잡았다. 패전 이후 거듭된 피해와 참혹한 희생, 나아가 왜곡되고 삭제되는 역사 속에서 오키나와는 이제 더 이상 추상적인 평화 따위를 믿지 않는다.
근대의 기억이 남지 않은 도시, 서울
그렇다면 서울은 어떤 곳일까. 소설가는 서울의 어떤 빛을 보았을까.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감격은 아득하고 눈물은 말라버린 도시.’ 그리고 연이어 이렇게 적었다. ‘회고와 향수야말로 서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서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길을 잃는’ 쪽을 택했다. 발길은 갈지자다. 소년 염상섭을 따라 골목을 걸었고, 심훈의 신혼집을 찾았다. 김동인과 김유정의 한때를 엿본 뒤에는 참담한 마음으로 이상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다시 이광수를 만난다. 메이지 시대의 나쓰메 소세키, 신해혁명과 루쉰의 시대로 연결되는 우리 근대문학의 불편한 상징 이광수. 소설가로서는 시베리아의 광야와 일본의 뒷골목을 부유하다 서울에 몸과 마음을 맡긴 춘원을 피할 길이 없다. ‘아시아의 근대’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의 당시를 이야기할 때, 이런저런 삶이 속속들이 포개진 가운데서 이광수가 갖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근대,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믿음직한 돋보기
김남일의 여정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단편적인 정보들이 그의 여행과 더불어 입체가 된다. 지금의 모습을 있게 한 과거의 공간, 우리 모두가 주연이기도 조연이기도 한 문학 작품이 그가 거닌 세상이다. 여행에서 그는 문학을 이룬 사람들,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난다. 후대 사람의 한 가지 권한으로 시대와 무대를 종횡으로 엮으면서 실재했던 사람들, 결코 남 같지 않은 작품 속 인물들을 끄집어낸다. 『어제 그곳 오늘 여기』는 그 안에 품은 풍성한 작품들과 더불어 또 하나의 행선지가 되고 지도가 된다. 담백한 목소리, 땅과 가까운 눈높이 덕분에 뚜벅뚜벅 제 발을 믿고 걸어간 여행자 김남일의 발자국은 믿음직한 이정표가 된다.
“아시아는 소수, 주변, 방언의 다른 이름이었다
인구가 전 세계의 5분의 3을 차지해도 늘 소수였고
서구 문명에 토대를 두지 않은 이상 늘 주변이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늘 방언이었다.
문제는 이때의 방언이 비단 언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
그건 사실 표준의 외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발길은 시간 위를 걷고 눈길은 정신을 따라 흐른다
하늘에 비행기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절, 소설가 김남일이 가까운 나라의 여러 도시를 여행한 기록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베트남의 사이공과 하노이, 중국의 상하이와 대만의 타이베이, 일본의 교토와 도쿄와 오키나와, 그리고 서울. 모두 그가 가보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책으로 읽은 도시들이다.
저자는 스스로 이 글을 ‘기행문일 수도, 독후감일 수도, 또 어쩌면 몽상의 기록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땅 위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영락없이 글 속으로 이어진다. 혹은 거꾸로, 글 한 자락을 따라 걷기 시작한 걸음이 시간도 공간도 뛰어넘어 금세 지금의 그 도시로 내닫는다. 감정이, 욕망이, 사상이, 시대가 담기는 문학은 ‘도시’가 그러하듯 이미 그 자체로 공간인 셈이다.
중요한 건 땅이 아니라 사람이다
김남일은 뇌리에 깊이 박인 문학 작품을 지도 삼아 도시를 걸었다.
이 땅에서 소설가로 평생을 살고도 한국 문학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며 우리 근대 작가들이 숨 쉬던 세상으로 들어갔던 것처럼(『염치와 수치』), 『어제 그곳 오늘 여기』의 여행 역시 그에게는 역사의 궤 안에서 등을 기댄 이웃 나라의 ‘그때’를 더듬는 순례 길이었다.
도시를 보는 것은 곧 그곳에 사는 사람을 보는 것이다. 글을 읽는 것 역시 사람을, 삶을 읽는 것이다. 김남일이 찾은 도시들은 좋든 싫든 이방인의 흔적이 짙게 드리운 곳, 한참 뒤늦게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곳이다. 낯설 것도 없는 이 도시들의 이름이 우리 귀에 익은 것은 언제라도 쉽게 날아가 소비하고 돌아올 수 있게 된 최근 30여 년간의 경험에서 비롯됐을 뿐이다. 해묵은 더께마저 낭만적인 관광지. 그런 도시에서 저자는 포장 아래 켜켜이 쌓인 본토박이의 오래된 체취와 정념의 응어리를 읽어냈다. 여느 관광과는 시작도, 끝도 판이한 소설가의 여정은 결코 물리적인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지나간 현재’를 좇는 그의 뒤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100년 전 어느 광장과 50년 전 골목이 펼쳐지고, 이제는 글로 남은 사람들의 밭은 숨과 땀내가 공기에 맴돈다.
식민의 역사로 근대를 맞이한 동아시아의 이웃 도시들
사이공과 하노이
앙드레 말로와 조지 오웰, 헤르만 헤세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그린 아시아는 식민지라는 렌즈 안에 존재했다. 프랑스에 이어 미국까지,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침탈의 흔적이 사이공과 하노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서구 제국이 남긴 흔적 위에서 베트남은 통일이 될 때까지 흉악하기 그지없는 전쟁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앞을 보고 내달리기 시작한 베트남은 이후 50년간 대단히 변화무쌍했다. 그리고 ‘통일 베트남의 자존심’ 하노이는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로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세기 큰 전쟁을 세 번이나 끝냈다는 자부심이 ‘평화의 수도 하노이’라는 수식어로 빛을 발했다. 때마침 저자 김남일은 문학하는 동료들과 함께 그날 그곳에 있었다.
상하이
상하이의 풍경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반식민지 조계 시절의 유럽풍 건물 꼭대기마다 오성홍기가 펄럭인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를 맞은 곳은 ‘탈아입구’의 슬로건을 내걸고 과거와 단절한 도쿄였지만, 베이징과 서울과 하노이는 완강히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런 가운데 상하이는 극적인 방식으로 근대를 맞이했다. 영국이 조계를 설치한 와이탄에는 곧 프랑스가, 또 다음에는 영국과 미국이 공동 조계를 세웠다. 도로가 깔리고 은행과 극장과 양행이 쑥쑥 자라나면서 도시의 모습은 급격히 달라졌다. 이 도시 구상에는 미국도 빠지지 않았다. 대륙에 남은 제국주의의 유산은 혼돈의 기억을 품은 채 ‘중국몽 아적몽’ 구호와 더불어 천연덕스럽게 21세기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도쿄
이광수가 세계 일주를 하겠다며 건너간 상하이에서 우리는 그와 함께 망명자 홍명희를 만난다. 이후 두 사람은 도쿄에서 유학하며 함께 지낸다. 대문호 루쉰으로 하여금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게 만든 도쿄, 훗날 전쟁에서 패하고 불안과 자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미시마 유키오가 천황제 국가 재건을 외치고 롤랑 바르트가 기호화한 그 도쿄였다. 일본 유학 시절 루쉰은 나쓰메 소세키를 읽었다. 심지어 루쉰이 한때 기거한 집이 소세키가 살던 바로 그 집이었다. 그러나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라는 소세키는 실상 영국 유학에서 잔뜩 주눅이 든 터였다. 그런 소세키를 이광수 역시 중학 시절부터 애독했다.
타이베이
김남일의 아시아 목록에서 대만과 홍콩과 티베트와 오키나와는 다른 갈래로 자리한다.
그는 타이베이에서 대만의 또 다른 켜를 보았다. 한때 일본의 포장이 씌워졌던 이곳에는 중국과의 단층이 오히려 더 뚜렷하다. 대만의 근현대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배경으로 한다. 사회 인프라는 물론이고 서양의 관습과 제도, 문화예술 사조, 음악과 연극 등이 모두 일본어로 전수되고 학습되었다. 일본을 통한 서구화는 한국의 형편과 다르지 않지만 대만은 이를 ‘현대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는 양상이 달랐다. 일본이 빠진 뒤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이 권력을 차지했고, 대만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라는 2•28 사건이 일어났다.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 족군(성적) 문제가 대만 문화예술의 저변에 깔리기 시작했다. 본성인들은 “차라리 일본이 있을 때가 나았다”는 말을 가리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일제 때가 나았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이어서 그는 본섬과 구분되는 대만의 다른 토박이들, 산과 바다에서 태어난 원주민 작가들을 만난다. 타이베이를 이야기하면서 작은 섬의 부족이 입는 차별과 피해를 빠뜨리지 않는 것은 저자의 단단한 작가 정신이 발동한 결과일 것이다.
오키나와
오키나와에 남아 있는 비극의 정서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일본 본섬과는 문화도, 풍속도 달랐던 이곳에는 복속의 설움과 태평양전쟁의 상흔이 깊이 새겨졌다. 섬을 제 것으로 흡수 처리한 일본은 결정적인 순간 오키나와를 버리다시피 했다. 한때 왕국이던 섬은 군사 기지로 전락했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지촌’의 정서가 오키나와에 자리 잡았다. 패전 이후 거듭된 피해와 참혹한 희생, 나아가 왜곡되고 삭제되는 역사 속에서 오키나와는 이제 더 이상 추상적인 평화 따위를 믿지 않는다.
근대의 기억이 남지 않은 도시, 서울
그렇다면 서울은 어떤 곳일까. 소설가는 서울의 어떤 빛을 보았을까.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감격은 아득하고 눈물은 말라버린 도시.’ 그리고 연이어 이렇게 적었다. ‘회고와 향수야말로 서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서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길을 잃는’ 쪽을 택했다. 발길은 갈지자다. 소년 염상섭을 따라 골목을 걸었고, 심훈의 신혼집을 찾았다. 김동인과 김유정의 한때를 엿본 뒤에는 참담한 마음으로 이상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다시 이광수를 만난다. 메이지 시대의 나쓰메 소세키, 신해혁명과 루쉰의 시대로 연결되는 우리 근대문학의 불편한 상징 이광수. 소설가로서는 시베리아의 광야와 일본의 뒷골목을 부유하다 서울에 몸과 마음을 맡긴 춘원을 피할 길이 없다. ‘아시아의 근대’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의 당시를 이야기할 때, 이런저런 삶이 속속들이 포개진 가운데서 이광수가 갖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근대,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믿음직한 돋보기
김남일의 여정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단편적인 정보들이 그의 여행과 더불어 입체가 된다. 지금의 모습을 있게 한 과거의 공간, 우리 모두가 주연이기도 조연이기도 한 문학 작품이 그가 거닌 세상이다. 여행에서 그는 문학을 이룬 사람들,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난다. 후대 사람의 한 가지 권한으로 시대와 무대를 종횡으로 엮으면서 실재했던 사람들, 결코 남 같지 않은 작품 속 인물들을 끄집어낸다. 『어제 그곳 오늘 여기』는 그 안에 품은 풍성한 작품들과 더불어 또 하나의 행선지가 되고 지도가 된다. 담백한 목소리, 땅과 가까운 눈높이 덕분에 뚜벅뚜벅 제 발을 믿고 걸어간 여행자 김남일의 발자국은 믿음직한 이정표가 된다.
목차
책머리를 대신하여 비행기가 ‘대체로’ 사라진 하늘 아래
1 아시아의 드문 기억 ─ 사이공
2 신화와 역사 어디쯤의 고도 ─ 교토
3 중국이 세계였을 때 ─ 상하이
4 돌이켜보면 이미 이 도시에 있지 않고 ─ 상하이
5 세 작가의 도쿄, 세 개의 근대 ─ 도쿄
6 일본의 마음, 텅 빈 중심 ─ 도쿄
7 아직 더 기억해야 하는 이름 ─ 타이베이
8 그래도 하노이는 옳았다 ─ 하노이
9 일본 ‘너머’에 있는 ─ 오키나와
10 다시 이광수를 만나는 법 ─ 서울
책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