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종합자료센터

로그인회원가입

제주시 종합자료센터

자료찾기

  1. 메인
  2. 자료찾기
  3. 통합검색

통합검색

일반자료

빵의 지구사

저자/역자
윌리엄 루벨 지음 / 이인선 옮김
발행년도
2015
형태사항
255p.; 21cm
원서명
Bread : a global history
ISBN
9788958626374 9788958624332(세트)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북카페JG0000002594-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JG0000002594
    상태/반납예정일
    -
    위치/청구기호(출력)
    북카페
책 소개
‘신의 선물’이라 불리는 서양인의 주식, 빵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필요했으며
인류 역사의 매 순간을 함께해온 빵의 역사 한 조각

1. 빵을 만드는, 빵을 좋아하는 모든 이를 위한 책
- 음식의 지구사로 읽는 빵에 관한 모든 것


빵은 인류 역사상 오래된 음식 가운데 하나로 유럽을 비롯해 세계 절반 이상의 지역에서 주식으로 먹는 음식이다. 한국인은 빵을 주식으로 먹지는 않지만, 이제는 일상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익숙한 음식이 되었다. 흔히 빵 하면 식빵, 롤빵, 바게트처럼 발효를 통해 부풀린 밀가루 반죽을 구운 것을 떠올린다. 묽은 반죽으로 만들거나 부풀지 않거나 얇은 것은 빵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난(nann)이나 팬케이크 같은 납작한 플랫브레드, 콩가루나 옥수숫가루로 만든 것, 굽지 않고 튀겨서 만든 것도 빵에 해당한다.
시중에 빵 만드는 법을 소개한 실용서는 많다. 하지만 《빵의 지구사》는 기존 실용서들과 달리 빵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빵 자체의 역사와 빵 만드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빵은 각 시대와 지역, 문화, 사회 계층에 따라 변화해왔다.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루벨은 환경에 따라 변화해온 빵을 문화인류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빵의 의미를 찾아간다. 특히 그는 역사 문헌에 등장하는 요리법에 따라 과거의 빵을 직접 만들고 먹어보며 빵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프랑스의 바게트, 멕시코의 판 둘체, 독일의 펌퍼니클, 미국의 샌드위치 빵과 같이 각 지역마다 그 사회의 문화와 정체성이 투영된 빵문화가 존재한다. 이 책에서는 지역 고유의 빵문화를 통해 각 나라의 정체성과 빵의 관계를 파헤친다. 대부분의 음식이 이동하며 변화하듯이 대항해시대 빵도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같은 제국을 통해 식민지로 전파되었고, 현지의 문화와 만나면서 새로운 빵문화를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유럽식 발효빵이 아시아에 전해지면서 아시아인의 식생활과 취향을 바꾸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할까?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가 쓴 한국어판 특집글 <한국 빵의 역사는 공장제 빵의 역사>에서는 빵을 주식을 먹지 않았던 동아시아, 특히 한국 빵의 역사를 다룬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빵은 슈퍼마켓에서 팔던 공장제 빵이 아니라, 자연의 재료를 가지고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빵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업체가 한국 제빵업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글은 19세기 말 일본에서 전해진 한반도 빵의 역사와 더불어 해방 이후 대량생산된 공장제 빵이 어떻게 시대와 조응하며 한국 사회에 확산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부록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빵 요리법>에서는 술 효모를 이용한 고대의 빵부터 공장제 이스트를 사용한 공장제 식빵까지 실제로 빵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인도한다. 특히 역사적 문헌을 인용해 소개하는 히스토리컬 레시피(historical recipe)는 빵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용어>에서는 세계의 수많은 빵과 관련 용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음으로써 빵을 좋아하고 빵에 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2. 빵, 인류 문명을 만들어내다
- 이 책의 주요 내용 1


빵의 탄생은 무려 2만 2,500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농경이 발달하기 수천 년 전에 이미 곡식의 채집과 제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농경 이전 거주지에서는 갈돌과 갈판이 발견되었으며, 보리와 밀로 추정되는 갈돌에 끼인 곡식이 발견되기도 했다.
빵은 고대 문명의 경제적.영양적 기반이었다. 세계 최초의 도시 문명지인 우루크(Uruk, 기원전 4500~기원전 3500년경)에는 빵에 관한 문자 기록이 남아 있어 이 시기부터 빵의 역사시대가 열렸음을 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후기에는 왕궁에 빵을 만드는 방을 두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빵이 제공되었을 정도로 빵을 즐겨 먹었다. 제빵소의 잔해, 제빵소 모형, 빵을 의미하는 상형문자, 그리고 미라와 함께 묻힌 빵 등 이집트에서는 고대 빵 유적과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요리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다정한 빵’, ‘여자 같은 빵’, ‘피(blood) 빵’ 등 흥미로운 빵 이름이 상형문자로 남아 있는데 이것이 어떤 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대의 빵에 관한 자료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시대의 곡물 종류와 제분․정제․제빵 기술의 수준을 파악하면 당시 빵에 대해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최초의 빵은 예술 작품이었을 수도 있고,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나 연인에게 주는 선물이었을 수도 있다. 현대인들이 먹는 빵과는 모양과 맛이 다를 수는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빵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길가메시 서사시》(기원전 2000년경)에서 엔키두는 빵을 먹고 술에 취해 반짐승에서 문명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빵과 술의 조합은 종교의식을 통해 깊어졌다. 우르(Ur) 제3왕조(기원전 2113∼기원전 2006)의 신에게 바친 제물에 대한 기록은 종종 “빵은 보기 좋았고, 보리술은 맛이 좋았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 보리술이 있는 곳에는 빵을 발효시키는 이스트가 있었다. 그렇다면 보리술과 함께 제물로 바쳤던 빵이 술 이스트로 발효시킨 빵은 아니었을까 상상해볼 수 있다. 우르의 신에게 바쳤던 빵 종류에 대해 밝힐 수 있는 이는 어쩌면 고고학자보다도 각 시대의 기술을 잘 아는 상상력이 풍부한 제빵사일 것이다.
― <1. 빵은 어떻게 탄생했는가>(39~40쪽) 중에서

고대 이집트 빵 유물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건조된 채 발견된 롤빵 크기의 무덤빵(tomb loaf)이다. 무덤빵은 삼각형처럼 기하학적인 모양이 많으며 대개 크기가 작고 반죽이 부푼 흔적이 전혀 없다. 빵에서 곡물의 껍질이 발견되는 것은 통곡물가루로 만든 단단한 반죽이었음을 의미한다. 무덤빵은 아마도 형태가 중요했던 듯하다. 색깔이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겉쪽에 광택제를 바르고 색을 칠해 사막의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반짝이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빵은 보통 상류층 무덤에 매장되었는데, 왜 겨나 모래가 섞인 거친 밀가루로 만들었는지, 실제로 사람들이 먹던 빵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 <1. 빵은 어떻게 탄생했는가>(46~47쪽) 중에서

3. 부유의 상징인 흰 빵과 가난의 상징인 갈색 빵
- 이 책의 주요 내용 2


좋고 맛있는 빵이란 무엇일까?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음식으로서의 빵은 탄수화물이 많고 칼로리가 높은 매우 단순한 음식이다. 하지만 문화적 대상으로서의 빵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16~18세기 유럽의 회화에서는 흰 빵을 부의 상징으로, 갈색 빵을 가난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오늘날 영국이나 미국 가정의 사회적 지위를 빵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부유한 집의 식탁에는 껍질이 도톰한 팽 드 캉파뉴(pain de campagne, 234쪽 참조)나 치아바타(230쪽 참조)를, 가난한 집의 식탁에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규격화된 식빵을 그려넣을 것이다.
19세기 제분이 산업화되기 전까지 흰 빵은 아주 비싼 음식이었다. 흰 밀가루는 생산과정에서 양이 줄어드는 특성상 높은 수요만큼 충분한 밀을 공급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눈처럼 새하얀’ 빵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이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주로 호밀로 만든 크고 단단한 갈색 빵을 먹었는데, 영국의 빈자들은 1600년대까지 말에게 먹이로 주는 값싼 ‘말빵’을 사먹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호밀빵 섭취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딱딱한 갈색 호밀빵에서 벗어나 흰 밀가루로 만든 폭신한 빵을 먹으려는 경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빵은 단순하지 않다. 그 시대의 유행, 문화가치에 따라 빵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빵의 질과 맛에 대한 평가 또한 시간, 장소, 사회계층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뤼뱅 보쟁의〈체스판이 있는 정물〉(1630)에는 그 시대의 사치품이 묘사되어 있고 그 가운데 오븐에서 핀 꽃과도 같은 최고급 흰 밀가루로 만든 빵이 놓여 있다. 이런 매혹적인 흰 빵과는 대조적으로 르냉 형제의 17세기 그림에는 가난한 소작농들이 커다란 호밀빵을 가운데 두고 모여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면서 소작농과 농장노동자 들은 호밀빵을 점점 멀리했다. 1795년 영국의 한 농장노동자는 정부농업위원회에서 자신의 식성이 바뀌어 이제는 호밀빵보다 밀빵이 더 좋다고 밝힌다.
― <2. 부자들의 빵, 가난한 자들의 빵>(63~64쪽) 중에서

영국에서는 1600년대까지도 줄곧 말에게 먹이로 주는 빵, 이른바 ‘말빵’이 널리 팔렸다. 말빵은 호밀가루와 기울로 만들었는데 가끔 곡물의 겉껍질이나 지푸라기, 제빵소 바닥 부스러기를 섞어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말빵은 주로 말에게 수레를 끌거나 먼 길을 달리는 힘든 일을 시킬 때 먹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빵 소매가가 빵조례에 따라 통제되었는데 말빵도 마찬가지였다. 말빵 가격은 가장 저렴한 통곡물빵 가격의 3분의 1에 불과했기 때문에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겉껍질이 덜 들어간 말빵을 사먹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빵은 굶주린 이의 배를 채워주었다. …… 사실 호밀가루와 기울로만 만든 말빵은 별미로서는 먹을 만하다. 하지만 며칠 동안 계속해서 하루에 1킬로그램씩 먹는다면 이런 빵을 주식으로 먹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2. 부자들의 빵, 가난한 자들의 빵>(67쪽) 중에서

4. 공장제 빵에서 출발한 한국의 빵
- 이 책의 주요 내용 3


한반도에서는 언제부터 빵을 먹기 시작했을까? 이 책의 특집글 <한국 빵의 역사는 공장제 빵의 역사>에서 서양인의 주식인 ‘빵’이 어떻게 한반도로 전해지고 확산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 처음 소개된 빵은 ‘카스텔라’로 추측된다. 16세기 초 타이완을 점령한 포르투갈의 무역선에 타고 있던 가톨릭 신부들이 중국과 일본에 건너가 포교활동을 하면서 ‘카스텔라’를 소개했다. 18세기 일본에서는 카스텔라를 맛본 나가사키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카스텔라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카스텔라 외에도 ‘팡パン’이라 부르는 일본식 빵들이 개발되었다.
18세기 조선에도 빵을 먹어본 사람이 있었다. 1720년 연행사인 부친 이이명을 따라 베이징을 방문한 이기지는 베이징에서 서양 선교사를 만나 처음 빵을 맛본 경험을 《일암연기(一庵燕記)》에 기록했다. 19세기 말에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늘어나면서 조선에 ‘일본식 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쌀이 일본으로 대량 유출되자 조선에서는 밀가루 소비가 증가했고 일본인들은 조선에 제분공장을 설립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인이 운영하는 제과점도 늘어났다. 단팥을 넣은 ‘안팡(あんパン)’, 계란 모양으로 구운 ‘다마고빵(卵パン)’, 현미로 만든 ‘겐마이빵(玄米パン)’ 등이 특히 인기가 있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한반도에서는 1920년대에 비로소 빵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과점에서 파는 빵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조선의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었다. 해방 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제과점을 이어받아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곳들이 있는데, 한 예로 군산의 유명한 ‘이성당’은 일본인이 운영하던 ‘이즈모야(出雲屋)’ 제과점을 구입해 새로 연 가게다.
1960년대에는 미군이 제공하는 밀가루와 설탕 덕분에 빵 양산업체가 빠르게 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상미당이라는 제과점에서 출발한 삼립산업제과주식회사(현 삼립식품)와 영일당제과로 시작한 크라운 제과다. 이들 양산업체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군대라는 대량 소비처가 있었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실시된 초등학교 급식빵 제도와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장려정책 또한 힘을 보태, 한국의 빵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렇다고 1960~70년대 한국인이 먹은 빵이 모두 양산업체에서 생산된 공장제 빵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빵업의 성장과 더불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유명 빵집이 생겨났다. 아마 많은 한국인이 뉴욕제과, 고려당, 태극당 등의 빵 맛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양산업체는 물론이고 동네 빵집까지 몰아내고 있다.
사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빵은 여전히 부식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틀에 박힌 맛과 규격화된 빵이 사람들의 입맛을 장악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빵의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수제 빵집이 등장하고 있다. 건강하고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이 수제 빵이 공장제 빵맛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 있을지 기대해볼 만하다.

일반적으로 일본식 빵의 시조는 에가와 히데타(쓰江川英龍,)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군용 식량인 ‘효료(兵糧)빵’을 개발했다. 효료빵은 전투 때 쌀밥을 짓는 것보다 미리 만들어놓은 빵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 개발된 것이다. ……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밀가루와 쌀가루에 계란 등을 배합해 맥주 이스트로 발효시킨 ‘갑면포’라는 빵이 개발되었다. 이 갑면포는 ‘간팡(乾パン)’이라고도 불렸다. 간팡은 보존과 휴대가 편리하도록 비스킷 모양으로 만든 빵이다. …… 굽는 방식은 비스킷과 같지만, 그 발상은 빵에서 나온 것이라 마른 빵이란 의미에서 ‘건’자를 붙여 간팡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한국 군대에서 지급되는 건빵이 바로 이 간팡에서 유래된 것이다.
― <특집: 한국 빵의 역사는 공장제 빵의 역사>(182~183쪽) 중에서

식민지시기 재조일본인이 운영했던 빵집의 영향이 1960년대까지 지속된 결과였다. 가령 최근에 전국에 이름이 난 군산의 ‘이성당(李姓堂)’은 1920년 일본인 히로세 야스타로(廣瀨安太郞)가 일본식 과자와 빵 기술을 가지고 와서 세운 ‘이즈모야(出雲屋)’라는 제과점이었다. 해방 이후 이즈모야 옆에서 ‘하코방(판자집)’같은 제과점을 하던 ‘이씨’가 적산가옥으로 나온 이즈모야를 구입해 ‘이성당’이란 상호로 다시 개업한 제과점이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 이후 생긴 빵집은 서양식 이름을 붙였다. 가령 독일빵집, 뉴욕빵집, 뉴시카고와 같은 빵집이 그랬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빵에 개입된 결과였다. ‘독일’ 혹은 ‘뉴욕’과 같은 빵집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에서도 번성한 지역의 이름일수록 효과가 컸다. 아마도 1960~70년대에 청소년 시기를 보낸 독자라면 아버지가 퇴근길에 빵집에서 사온 달콤한 빵맛을 추억으로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뉴욕제과·고려당·태극당 등에서 빵을 사왔다고 하면 형제자매가 서로 먹겠다고 다투기까지 했다.
― <특집: 한국 빵의 역사는 공장제 빵의 역사>(200쪽) 중에서
목차

초대의 글 : 빵 만드는 사람을 위한 역사책
0 끊임없이 변화하는 빵
1 빵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2 부자들의 빵, 가난한 자들의 빵
3 맛있는 빵이란 무엇인가
4 세계의 빵을 만나다
5 21세기, 진화하는 빵
특집 : 한국 빵의 역사는 공장제 빵의 역사

다양한 빵 요리법
용어

부록
감사의 말
본문의 주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웹사이트와 관련 단체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