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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14 런던도서전 ‘오늘의 작가’ 황선미의 신작
올해로 마흔세 번째를 맞는 2014 런던도서전이 4월 8일부터 10일까지 영국 런던 얼 스코트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는 주빈국 개념인 ‘마켓 포커스’ 국가로 선정되었고, 런던도서전 조직위원회에서 선정한 ‘오늘의 작가’(주빈국 작가 대표)는『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다. 『마당을 나온 암탉』(영문제목 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은 일본, 중국, 프랑스, 그리스, 스웨덴 등 25개국에 판권을 수출한 책으로 2013년 겨울,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펭귄출판사에서 일반소설로 번역, 소개되어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최근에는 영국의 전통 있는 출판사 원월드(One World)에서 나왔다. 이 책은 도서전 기간 동안 런던 서점가에서 ‘오늘의 작가’ 대표도서로 특별 진열되고,『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런던도서전에서 작가의 신작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갖게 될 동화 같은 이야기
황선미는 사소한 것에서 보편적 정서를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는 작가다. 그 사소함이란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친 아버지에게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며 쓴 작품이라면『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역시 오랜만에 들른 아버지의 빈집에서 숱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아버지의 물건들을 보며 떠올린 이야기다.『마당을 나온 암탉』이 우화 형식으로 우리의 삶을 보여줬다면,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한 노인과 그 집의 뒤뜰에 모여드는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에 대해 곱씹게 한다.
이 책은 작가가 2010년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가 한 꼭지만 쓰고 계속 묵혀 둔 원고를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관하는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지난 해 넉 달을 오스트리아 빈에 머무르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늘 쫓기듯이 바쁜 일상을 보내던 작가에게 주어진 이국에서의 휴식은 오히려 작품에 매진하는 치열한 시간이 되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동화로 출간되었으나 일반 독자들의 폭 넓은 사랑을 받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소설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황선미의 작품들은 성년 층까지 아우르는 우물물처럼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에 소박하고 단순한 내용이지만 자신을 돌볼 시간 없이 기계처럼 쉼 없이 자신을 굴려야 하는 바쁜 어른들에게 한번쯤 숨 고를 여유를 준다.
뒤통수에 골칫거리를 단 노인의 귀향
65세 강 노인은 결혼도 하지 않은 싱글남이지만, 미래건설 회장이자 수석 디자이너로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부를 거머쥔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다. 냉철한 기업가로서 매사가 정확하고 모든 일을 전문가에게 맡겨 완벽하게 처리하는 그에게 유일한 골칫거리라고는 자기 뒤통수에 자리 잡은 암 덩어리다.
강 노인은 뒤통수에 혹을 단 채 어린 시절 추억과 상처가 남아 있는 산동네로 들어온다. 동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저택인 백 번지 집은 삼십 년 전부터 강 노인 소유가 되면서 ‘그 상태 그대로’ 관리되어 왔다. 드넓은 야산을 빙 둘러친 철책 곳곳에 ‘사유지 출입 금지. 엄벌에 처함. 주인 백’ 이라는 표지판을 세워놓고 말이다.
여기는 이름만 버찌마을이지 마지막 버찌나무 한 그루까지 밀어내고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벌레가 초록을 갉아먹듯 야금야금 그렇게 됐다. 100번지 일대만 개발되지 않은 건 워낙 언덕배기인 데다 드넓은 야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야산자락의 오래된 빈집. 큰 나무들에 둘러싸인 그 집의 주인이 고집불통이라서. 고집불통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아무도 집주인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 -23쪽
비상 버튼만 누르면 의사를 비롯해 회사 경영진이 총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춘 이 집은 강 노인의 충직한 비서 미스터 박이 강 노인의 지시에 따라 삼십 년 전 사들였던 당시 ‘그대로’ 관리하고 있다. 강 노인은 그 집에서 전문가들의 세심한 관찰 속에 관리를 받고 있다. 물론 강 노인 자신은 모르지만.
강 노인은 이 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그동안 일하느라 바빠서 미루기만 한 사소한 것들을 하면서 이제라도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먹고 싶은 것 요리해 먹기, 악기 배워서 연주하기 등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며 실천에 옮기려는 강 노인에게 뜻하지 않은 또 다른 골칫거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뒤뜰의 골칫거리들
백 번지 집에서 첫날 밤을 보낸 강 노인은 아침에 수탉의 기상나팔 소리에 잠이 깨고, 강아지 짖는 소리를 듣고, 조그만 여자애가 뒤뜰로 가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분명 강 노인 소유의 집이고, 집 주인 허락 없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말이다.
집 주인인 자신을 제외하고 버찌마을 사람들은 이 집 뒤뜰을 통해 마을 뒷산을 오르내리고, 아이들은 뒤뜰에 닭을 키우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한 분은 텃밭을 가꾼다. 강 노인은 그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이지만 정작 앞뜰에서 뒤뜰로 나가는 방법조차 몰라 길을 헤맨다. 실은 강 노인이 어릴 적 살던 곳은 창고다. 해당화 무더기와 대나무 숲이 덮어버린 뒤뜰 너머에 있는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다시피 한 창고.
강 노인은 이 집과 근처 땅들을 사들일 때부터 가겟집 장 영감이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동네 아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백 번지 집이 아이들 사이에선 ‘거인의 집’으로 불리고, 자기만의 소유인 줄 알았던 곳이 마을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 주는 뒷산과 연결되어 자신의 뒤뜰을 모두가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주인이랍시고 서류에 도장만 찍었지, 아무것도 모르는 강 노인은 집안 구석구석과 주변을 탐색하며 조금씩 백 번지 집을 알아 간다. 아무 준비 없이 슬리퍼 차림으로 뒤뜰에 나섰다 산에까지 오르게 된 강 노인은 우리말을 능숙하게 하는 흑인 남자와 마주치고, 그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까지 돌아온다. 프랑스 사람이지만 영어를 가르치고, 아들 때문에 고향에도 못 가고, 여기서도 이방인으로 지내는 그는 혼혈아 피엘의 아버지고, 피엘은 자신이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되는 상훈이와 한 반 친구다. 강 노인 역시 아버지를 잃고 미국으로 입양되어 그곳에서 온갖 수모와 설움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상처가 이곳에서 되살아나 강 노인은 몹시 괴롭다. 특히나 강 노인을 못 견디게 하는 건 상훈이라는 동네 아이의 적대적인 태도다.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 창문도 없는 창고 방에서 쥐처럼 살던 아이, 다른 아이들은 모두 드나들 수 있는 뒤뜰에 금지당한 아이. 뒤뜰에 오려면 공주에게 절하듯 고개를 숙이라던 주인집 딸. 그 애의 그네를 매 주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뒤 앓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잠자리에서 안아 주는 것밖에 할 수 없던 아버지였다. 그 모든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이가 깨어나고 말았다. -73∼74쪽
강 노인이 자기 집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를 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 역시 강 노인이 백 번지 집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강 노인은 전문가에게 맡겨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차단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강 노인의 뒤뜰은 엉망이 되고 만다. 여기저기 널린 달걀에, 닭과 병아리를 노리는 고양이와 청설모, 푸성귀가 쇠어버린 텃밭은 그야말로 질서가 무너진 세상이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철저히 끊어 보려는 강 노인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피엘 아버지를 도와 그가 일일교사로 동시 통역사 역할을 훌륭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하고, 피엘의 후견인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이 상훈이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온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강 노인은 자기가 유치하게 어린애를 상대로 감정싸움을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물론 백 번지 집을 사들일 때 복수심이 적잖이 작용했고, 그 마음은 어린 시절 자신에 대한 보상 같은 거라고 여겼는데, 결국 자신이 당한 그대로 상훈이라는 아이에게 퍼붓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욕심쟁이 거인」처럼 자신이 울타리를 높게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수록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 노인은 장 영감에게 자신이 어릴 적 그 강대수임을 밝히고, 동네 아이들에게도 다시 뒤뜰 출입을 허락한다. 강 노인은 피엘이 어린 시절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이경수의 손자이며, 유리는 주인 집 딸 송이의 손녀이고, 그 송이가 바로 치매에 걸린 무단 경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자신이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어린 시절 자신과 똑 닮은 상훈이는 유리 오빠이자 송이의 손자라는 것도.
언제든 거칠게 터지고야 말 무서운 힘으로 뭉쳐진 남자애의 눈을 강 노인은 잠자코 바라보았다. 자기를 지켜 줄 사람은 저뿐이고, 밀리지 않으려면 강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아이다. 치매 걸린 할머니와 머리를 다친 아버지,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니는 엄마, 어린 여동생이 이 작은 아이를 이렇게 무장시키고 만 것이다. 오래전 강대수처럼. -210쪽
나의 뒤뜰이 누군가의 앞뜰이 되어줄 수 있다면
서민들이 모여 사는 소도시 버찌마을은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서로 다 아는 사이다. 재개발 반대 현수막을 걸어놓은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은 주변 도시처럼 아파트가 들어서면 곧 쫓겨날 인생들이다. 버찌마을 개발 계획을 맡고 있는 미래건설 회장 강 노인은 지역 개발 공모에 피엘 부자가 공모 안을 낸 것을 알게 된다. 피엘과 아버지는 독거노인과 결손 가정 아이들이 많은 이 지역 특성을 고려해 혼자 된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공동 주택 설계도를 제출했다. 강 노인은 이것 역시 전문가들의 손에 맡길 테지만, 아마 예전처럼 모든 것을 냉철하게 처리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강 노인은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뒤뜰을 탐색하며 사소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깨닫고, 그토록 철저하게 막아내고 싶었던 이웃들과의 소통을 통해 결국엔 삶의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벽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편지와 사진은 강 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기억이 오롯이 진실일 수 있는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작은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어린애들이 겪은 일만도 이렇듯 다른데. 오해와 착각이 그대로 굳어져 평생 어긋나 버린 게 바로 자신의 삶이었다는 것을 강 노인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233쪽
강 노인이 변호사를 불러 수정하기로 한 문서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독자들은 예상할 수 있다. 강 노인이 상훈이와 유리네 가족, 더 나아가서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든든한 앞뜰이 되어줄 거라는 것을.
당신의 뒤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강 노인은 뒤뜰을 통해 아이들과 이웃, 그리고 여전히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고, 그것이 오롯한 진실은 아니었음을, 각자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오해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좀 더 일찍 자신의 어린 시절과 화해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만, 결국엔 그것이 인생임을 깨닫는다.
누구나 남들에게는 철저히 감추고 싶은 자신만의 뒤뜰이 있다. 아무도 들이고 싶지 않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누가 알까 꽁꽁 숨기며 자신만의 상처로 평생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골칫거리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상처는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 수도 있고, 자기 안에서 상처를 키우며 곪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 노인처럼.
조금 늦긴 했지만 강 노인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덜 자란 아이, ‘내면아이’를 불러내었고, 결국엔 그것과 화해했다. 이제 백 번지 집에서 맞는 하루하루는 나머지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대수야! 강대수!”
송이가 그를 불렀다. 손짓하며. 백발의 송이가 마치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그 모습이 하도 눈부시고 놀라워서 강 노인은 차마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다가가 허리를 조금 굽히고 송이를 보았다. 기적처럼, 송이의 시간이 강 노인의 어린 시절을 지나가고 있나 보다. 어쩌면 다시 엇갈려 영원히 다른 곳으로 달려갈지도 모를 송이의 시간 기차.
지금은 생각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다만 이 순간을 영원처럼 붙잡는 수밖에.
“대수야, 우리 이제부터 놀자!”
송이가 그네에 앉으며 자기 옆자리를 탁탁 쳤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고 그녀 옆에 앉았다. -241∼242쪽
황선미 작가 특유의 따듯함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뒤뜰, 벽장, 다락방, 창고 등 오래된 집에 비밀스레 숨어 있는 공간들을 통해, 오히려 타인은 알지만 정작 자신은 모르는 우리네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작가에게 그 옛날 아버지의 남루한 의자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주었던 것처럼 강 노인의 뒤뜰은 버찌마을 사람들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
아마 나에게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이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는 차마 끊어 내지 못한 두레박줄이 여전히 드리워져 있고 거기 어디쯤엔가 걸려 있던 풍경 하나를 건져 올린 건 목까지 차올라 삼켜지지 않던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커다란 나무 아래서 빈 의자를 보고 발이 묶여 버린 그날, 왜 하필 아버지의 집에 남아 있던 기울어진 의자가 떠올랐는지. -「작가의 말」에서
올해로 마흔세 번째를 맞는 2014 런던도서전이 4월 8일부터 10일까지 영국 런던 얼 스코트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는 주빈국 개념인 ‘마켓 포커스’ 국가로 선정되었고, 런던도서전 조직위원회에서 선정한 ‘오늘의 작가’(주빈국 작가 대표)는『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다. 『마당을 나온 암탉』(영문제목 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은 일본, 중국, 프랑스, 그리스, 스웨덴 등 25개국에 판권을 수출한 책으로 2013년 겨울,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펭귄출판사에서 일반소설로 번역, 소개되어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최근에는 영국의 전통 있는 출판사 원월드(One World)에서 나왔다. 이 책은 도서전 기간 동안 런던 서점가에서 ‘오늘의 작가’ 대표도서로 특별 진열되고,『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런던도서전에서 작가의 신작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갖게 될 동화 같은 이야기
황선미는 사소한 것에서 보편적 정서를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는 작가다. 그 사소함이란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친 아버지에게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며 쓴 작품이라면『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역시 오랜만에 들른 아버지의 빈집에서 숱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아버지의 물건들을 보며 떠올린 이야기다.『마당을 나온 암탉』이 우화 형식으로 우리의 삶을 보여줬다면,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한 노인과 그 집의 뒤뜰에 모여드는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에 대해 곱씹게 한다.
이 책은 작가가 2010년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가 한 꼭지만 쓰고 계속 묵혀 둔 원고를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관하는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지난 해 넉 달을 오스트리아 빈에 머무르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늘 쫓기듯이 바쁜 일상을 보내던 작가에게 주어진 이국에서의 휴식은 오히려 작품에 매진하는 치열한 시간이 되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동화로 출간되었으나 일반 독자들의 폭 넓은 사랑을 받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소설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황선미의 작품들은 성년 층까지 아우르는 우물물처럼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에 소박하고 단순한 내용이지만 자신을 돌볼 시간 없이 기계처럼 쉼 없이 자신을 굴려야 하는 바쁜 어른들에게 한번쯤 숨 고를 여유를 준다.
뒤통수에 골칫거리를 단 노인의 귀향
65세 강 노인은 결혼도 하지 않은 싱글남이지만, 미래건설 회장이자 수석 디자이너로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부를 거머쥔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다. 냉철한 기업가로서 매사가 정확하고 모든 일을 전문가에게 맡겨 완벽하게 처리하는 그에게 유일한 골칫거리라고는 자기 뒤통수에 자리 잡은 암 덩어리다.
강 노인은 뒤통수에 혹을 단 채 어린 시절 추억과 상처가 남아 있는 산동네로 들어온다. 동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저택인 백 번지 집은 삼십 년 전부터 강 노인 소유가 되면서 ‘그 상태 그대로’ 관리되어 왔다. 드넓은 야산을 빙 둘러친 철책 곳곳에 ‘사유지 출입 금지. 엄벌에 처함. 주인 백’ 이라는 표지판을 세워놓고 말이다.
여기는 이름만 버찌마을이지 마지막 버찌나무 한 그루까지 밀어내고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벌레가 초록을 갉아먹듯 야금야금 그렇게 됐다. 100번지 일대만 개발되지 않은 건 워낙 언덕배기인 데다 드넓은 야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야산자락의 오래된 빈집. 큰 나무들에 둘러싸인 그 집의 주인이 고집불통이라서. 고집불통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아무도 집주인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 -23쪽
비상 버튼만 누르면 의사를 비롯해 회사 경영진이 총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춘 이 집은 강 노인의 충직한 비서 미스터 박이 강 노인의 지시에 따라 삼십 년 전 사들였던 당시 ‘그대로’ 관리하고 있다. 강 노인은 그 집에서 전문가들의 세심한 관찰 속에 관리를 받고 있다. 물론 강 노인 자신은 모르지만.
강 노인은 이 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그동안 일하느라 바빠서 미루기만 한 사소한 것들을 하면서 이제라도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먹고 싶은 것 요리해 먹기, 악기 배워서 연주하기 등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며 실천에 옮기려는 강 노인에게 뜻하지 않은 또 다른 골칫거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뒤뜰의 골칫거리들
백 번지 집에서 첫날 밤을 보낸 강 노인은 아침에 수탉의 기상나팔 소리에 잠이 깨고, 강아지 짖는 소리를 듣고, 조그만 여자애가 뒤뜰로 가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분명 강 노인 소유의 집이고, 집 주인 허락 없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말이다.
집 주인인 자신을 제외하고 버찌마을 사람들은 이 집 뒤뜰을 통해 마을 뒷산을 오르내리고, 아이들은 뒤뜰에 닭을 키우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한 분은 텃밭을 가꾼다. 강 노인은 그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이지만 정작 앞뜰에서 뒤뜰로 나가는 방법조차 몰라 길을 헤맨다. 실은 강 노인이 어릴 적 살던 곳은 창고다. 해당화 무더기와 대나무 숲이 덮어버린 뒤뜰 너머에 있는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다시피 한 창고.
강 노인은 이 집과 근처 땅들을 사들일 때부터 가겟집 장 영감이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동네 아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백 번지 집이 아이들 사이에선 ‘거인의 집’으로 불리고, 자기만의 소유인 줄 알았던 곳이 마을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 주는 뒷산과 연결되어 자신의 뒤뜰을 모두가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주인이랍시고 서류에 도장만 찍었지, 아무것도 모르는 강 노인은 집안 구석구석과 주변을 탐색하며 조금씩 백 번지 집을 알아 간다. 아무 준비 없이 슬리퍼 차림으로 뒤뜰에 나섰다 산에까지 오르게 된 강 노인은 우리말을 능숙하게 하는 흑인 남자와 마주치고, 그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까지 돌아온다. 프랑스 사람이지만 영어를 가르치고, 아들 때문에 고향에도 못 가고, 여기서도 이방인으로 지내는 그는 혼혈아 피엘의 아버지고, 피엘은 자신이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되는 상훈이와 한 반 친구다. 강 노인 역시 아버지를 잃고 미국으로 입양되어 그곳에서 온갖 수모와 설움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상처가 이곳에서 되살아나 강 노인은 몹시 괴롭다. 특히나 강 노인을 못 견디게 하는 건 상훈이라는 동네 아이의 적대적인 태도다.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 창문도 없는 창고 방에서 쥐처럼 살던 아이, 다른 아이들은 모두 드나들 수 있는 뒤뜰에 금지당한 아이. 뒤뜰에 오려면 공주에게 절하듯 고개를 숙이라던 주인집 딸. 그 애의 그네를 매 주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뒤 앓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잠자리에서 안아 주는 것밖에 할 수 없던 아버지였다. 그 모든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이가 깨어나고 말았다. -73∼74쪽
강 노인이 자기 집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를 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 역시 강 노인이 백 번지 집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강 노인은 전문가에게 맡겨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차단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강 노인의 뒤뜰은 엉망이 되고 만다. 여기저기 널린 달걀에, 닭과 병아리를 노리는 고양이와 청설모, 푸성귀가 쇠어버린 텃밭은 그야말로 질서가 무너진 세상이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철저히 끊어 보려는 강 노인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피엘 아버지를 도와 그가 일일교사로 동시 통역사 역할을 훌륭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하고, 피엘의 후견인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이 상훈이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온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강 노인은 자기가 유치하게 어린애를 상대로 감정싸움을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물론 백 번지 집을 사들일 때 복수심이 적잖이 작용했고, 그 마음은 어린 시절 자신에 대한 보상 같은 거라고 여겼는데, 결국 자신이 당한 그대로 상훈이라는 아이에게 퍼붓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욕심쟁이 거인」처럼 자신이 울타리를 높게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수록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 노인은 장 영감에게 자신이 어릴 적 그 강대수임을 밝히고, 동네 아이들에게도 다시 뒤뜰 출입을 허락한다. 강 노인은 피엘이 어린 시절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이경수의 손자이며, 유리는 주인 집 딸 송이의 손녀이고, 그 송이가 바로 치매에 걸린 무단 경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자신이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어린 시절 자신과 똑 닮은 상훈이는 유리 오빠이자 송이의 손자라는 것도.
언제든 거칠게 터지고야 말 무서운 힘으로 뭉쳐진 남자애의 눈을 강 노인은 잠자코 바라보았다. 자기를 지켜 줄 사람은 저뿐이고, 밀리지 않으려면 강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아이다. 치매 걸린 할머니와 머리를 다친 아버지,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니는 엄마, 어린 여동생이 이 작은 아이를 이렇게 무장시키고 만 것이다. 오래전 강대수처럼. -210쪽
나의 뒤뜰이 누군가의 앞뜰이 되어줄 수 있다면
서민들이 모여 사는 소도시 버찌마을은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서로 다 아는 사이다. 재개발 반대 현수막을 걸어놓은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은 주변 도시처럼 아파트가 들어서면 곧 쫓겨날 인생들이다. 버찌마을 개발 계획을 맡고 있는 미래건설 회장 강 노인은 지역 개발 공모에 피엘 부자가 공모 안을 낸 것을 알게 된다. 피엘과 아버지는 독거노인과 결손 가정 아이들이 많은 이 지역 특성을 고려해 혼자 된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공동 주택 설계도를 제출했다. 강 노인은 이것 역시 전문가들의 손에 맡길 테지만, 아마 예전처럼 모든 것을 냉철하게 처리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강 노인은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뒤뜰을 탐색하며 사소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깨닫고, 그토록 철저하게 막아내고 싶었던 이웃들과의 소통을 통해 결국엔 삶의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벽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편지와 사진은 강 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기억이 오롯이 진실일 수 있는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작은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어린애들이 겪은 일만도 이렇듯 다른데. 오해와 착각이 그대로 굳어져 평생 어긋나 버린 게 바로 자신의 삶이었다는 것을 강 노인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233쪽
강 노인이 변호사를 불러 수정하기로 한 문서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독자들은 예상할 수 있다. 강 노인이 상훈이와 유리네 가족, 더 나아가서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든든한 앞뜰이 되어줄 거라는 것을.
당신의 뒤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강 노인은 뒤뜰을 통해 아이들과 이웃, 그리고 여전히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고, 그것이 오롯한 진실은 아니었음을, 각자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오해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좀 더 일찍 자신의 어린 시절과 화해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만, 결국엔 그것이 인생임을 깨닫는다.
누구나 남들에게는 철저히 감추고 싶은 자신만의 뒤뜰이 있다. 아무도 들이고 싶지 않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누가 알까 꽁꽁 숨기며 자신만의 상처로 평생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골칫거리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상처는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 수도 있고, 자기 안에서 상처를 키우며 곪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 노인처럼.
조금 늦긴 했지만 강 노인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덜 자란 아이, ‘내면아이’를 불러내었고, 결국엔 그것과 화해했다. 이제 백 번지 집에서 맞는 하루하루는 나머지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대수야! 강대수!”
송이가 그를 불렀다. 손짓하며. 백발의 송이가 마치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그 모습이 하도 눈부시고 놀라워서 강 노인은 차마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다가가 허리를 조금 굽히고 송이를 보았다. 기적처럼, 송이의 시간이 강 노인의 어린 시절을 지나가고 있나 보다. 어쩌면 다시 엇갈려 영원히 다른 곳으로 달려갈지도 모를 송이의 시간 기차.
지금은 생각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다만 이 순간을 영원처럼 붙잡는 수밖에.
“대수야, 우리 이제부터 놀자!”
송이가 그네에 앉으며 자기 옆자리를 탁탁 쳤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고 그녀 옆에 앉았다. -241∼242쪽
황선미 작가 특유의 따듯함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뒤뜰, 벽장, 다락방, 창고 등 오래된 집에 비밀스레 숨어 있는 공간들을 통해, 오히려 타인은 알지만 정작 자신은 모르는 우리네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작가에게 그 옛날 아버지의 남루한 의자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주었던 것처럼 강 노인의 뒤뜰은 버찌마을 사람들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
아마 나에게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이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는 차마 끊어 내지 못한 두레박줄이 여전히 드리워져 있고 거기 어디쯤엔가 걸려 있던 풍경 하나를 건져 올린 건 목까지 차올라 삼켜지지 않던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커다란 나무 아래서 빈 의자를 보고 발이 묶여 버린 그날, 왜 하필 아버지의 집에 남아 있던 기울어진 의자가 떠올랐는지. -「작가의 말」에서
목차
작가의 말-모든 것은 기울어진 의자에서 시작되었다
버찌고개 악동들
뒤뜰의 침입자들
왜요 꼬맹이
당돌한 녀석
뒤뜰로 첫 나들이
또 하나의 문
헛소리 할망구
모든 문이 닫히고
거인은 힘이 세다
새장을 찾아서
장 영감의 방문
또 하나의 열쇠
뒤로 가는 기차
오래된 편지
간이역에서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