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장편소설
- 저자/역자
- 로맹 가리 지음 / 이선희 옮김
- 펴낸곳
- 마음산책
- 발행년도
- 2014
- 형태사항
- 252p.; 23cm
- 원서명
- Au-del
- ISBN
- 9788960901803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63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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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 마음산책 <로맹 가리 소설> 여섯 번째 출간작
늙음에 대한 두려움, 그 너머를 향한 로맹 가리식 사랑법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음산책 <로맹 가리 소설>의 여섯 번째 출간작을 선보인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그로칼랭』을 발표한 직후 로맹 가리 이름으로 출간한 첫 작품이다. 온 세상이 로맹 가리를 이 소설의 화자 ‘자크 레니에’와 동일시하며 그를 성 불구자라고 굳게 믿는 동안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같은 해인 1975년 『자기 앞의 생』을 선보였다.
예순을 앞둔 자크 레니에는 서른다섯 살 연하의 애인 로라와 사랑하는 사이다. 레지스탕스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기도 했던 그는 출판과 관련된 사업을 하며 사랑과 일 모두 정력적으로 꾸려온 인물이다. 하지만 회사는 유럽의 경기 침체와 맞물려 금전적인 위기에 처하고, 마침 레니에의 사랑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를 맞는다. 어느 날 베네치아에서 또래로부터 사랑의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고백을 듣고부터 그 역시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 것. 사랑하는 여자를 성적으로 더는 만족시켜줄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늙고 무력해진 육체에 점점 더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성 불능”에 대한 두려움은 관계를 망치고 사랑을 퇴색시킨다. “한꺼번에 모든 것에 맞서서 싸울 수가 없”음을 자각한 뒤 결국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호텔 방에 칼을 들고 잠입한 도둑 루이스의 “동물적인 아름다움”에 홀린 그는 그 뒤 수시로 루이스와 로라의 “쓰레기 같은 배설”의 정사를 상상한다. “몸을 가동하려면 완전한 경멸의 이미지들이 바로 눈앞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적 판타지를 통해서만 사랑하는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자 결국 자살을 생각한다.
지하철 경고문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예순을 앞둔 남자의 무력한 육체와 경기 침체를 맞은 서유럽의 상황이 절묘하게 병치된다는 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비단 한 인간의 노쇠가 아닌, 한 사회, 더 나아가 한 문명의 종말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 경계를 지나면 승차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지만, 그 경계조차 넘어서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사랑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로라. 레니에는 로라 곁에서 경계 너머 가보기를 갈망한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 존재를 압박하는 강박관념을 그리는 로맹 가리의 언어는 우회적이지 않고 적나라하며 시종일관 특유의 유머를 발휘한다. 노년을 직시하게 만드는 상황 앞에서 레니에는 말장난, 동문서답식의 말 돌리기로 ‘추락하는 남성’이라는 해묵은 공포를 누그러뜨리려 하지만, 노트 형식으로 써내려간 고백의 말미에서 문제의 정면을 뚜렷하게 들여다본다. “둘 사이의 모든 것”, 곧 사랑은 육체나 자존심, 품위, 그 모든 것 너머에 있다는 사실이다.
노트 형식으로 써내려간 노쇠한 이의 고백기
음울하면서도 가차 없는 로맹 가리의 통찰과 유머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서술 도중 화자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한 독백이 불쑥 끼어든다는 점이다. 말미에 가서야 드러나지만, 고백의 형식을 띤 이 소설은 레니에가 자신의 아들에게 남기는 길고긴 한 권의 노트다. 이 고백기에서 레니에를 사로잡은 늙음에 대한 공포는 종종 로마제국의 멸망, 가라앉는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 서서히 기울어져가는 피사의 사탑으로 비유된다. 이제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이 고백기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돈과 섹스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복잡한 관계망에 속해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쉰아홉 살의 레니에는 서른다섯 살 어린 브라질 여인 로라를 사랑한다. 그는 레지스탕스의 영웅으로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은 전력이 있지만, ‘성’의 문제를 맞닥뜨리자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몸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추락하는 남성’의 공포는 경제적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죠. 정력. 당신 미쳤군요. 어린애한테 정신이 나간 데다가 발기도 안 된다 하고…….”
그녀의 눈길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것 역시 명예지요…….”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분명 돈 문제도 있겠지요. 남자가 스스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항상 돈 문제가 끼어 있어요…… 안 그래요?”
―223쪽
한때는 전능하리라 믿었던 ‘수컷’의 무능함에 대한 고백은 서유럽의 경기 침체와도 맞닿아 있다.
“유럽은 전력을 잃었다. 자체 활력이 이젠 없어. 원자재는 80퍼센트가 다른 나라에 있다. (…) 우리의 모든 에너지, 생명력의 원천은(그러니까 우리 불알 같은 거) 제3국에, 옛날 식민지에 있단 말이지.”
―46쪽
레니에는 원자재가 있는 “제3국”에서 자신의 대체자를 찾아낸다. 로라와 함께 잠자고 있던 호텔 방에 칼을 들고 잠입한 루이스다. 그는 “젊음으로 윤기가 흐르는” 남자다. 레니에는 그를 보자마자 “나는 그렇게 동물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뒤 몸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성적 판타지 속으로 루이스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레니에는 말한다. “마치 야생의 삶이 나에게 다가와 미래의 약속,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것만 같았”다고. 레니에의 판타지에 등장하는 루이스는 로맹 가리가 자신의 또 다른 삶으로 삼은 에밀 아자르의 육체적 재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을 발표한 뒤 로맹 가리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성 불능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자크 레니에가 바로 작가 자신의 현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의 화자는 로맹 가리와 닮은 점이 많다. 당시 로맹 가리의 나이는 예순하나였고 스물네 살 연하의 아름다운 연인 진 세버그가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레니에와 마찬가지로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하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은 전력 또한 있다. 하지만 로맹 가리는 성을 주제로 한 텔레비전 문학 대담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Apostrophes>에 출연해 사람들의 추측에 이렇게 응수했다. “제가 소설을 쓰는 것은 제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만큼 등장인물의 절실함이 빚어낸 적나라한 언어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너무 늙어버린 육체에 깃든 젊은 마음
상처받기 쉬운 존재의 연약함
자크 레니에에게 냉소는 일종의 도피처다. 그는 냉소 속으로 몸, 상처받기 쉬운 존재의 연약함을 숨긴다. 냉소로 도피해버린 뒤 본래의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백하지만 결국 그는 뚜렷하게 자신을 들여다본다. 두려움을 직시하고 고백하는 행위는 분명 힘을 갖는다. 이는 글쓰기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레니에가 남긴 노트 외에도 중간중간 삽입된 로라의 편지와 메모 또한 같은 역할을 한다. 로라는 순수하고 명철한 사랑을 품은 여인이다. 몸이 늙는데 마음만은 너무 젊다는 데 절망하는 레니에를 잡아 일으키는 건 로라의 사랑과 신뢰가 가진 힘이다.
“모든 걸 다 넘어서 당신과 함께 계속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런데 누가 당신에게 행복을 운운하나요? 난 당신에게 오로지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180쪽
누구나 좋았던 시절만을 떠올리며 살 수는 없다. 유효하지 않은 승차권을 쥐고 저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도피처가 아닌, 지지대가 필요하다. 모든 걸 넘어서 동행해줄 사랑과 신뢰라는 지지대. 그 경계를 넘어서고 나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고 로맹 가리는 이 소설에서 넌지시 이야기한다. 마치 작가로서의 생명이 이미 끝났다고 단언했던 세상의 무수한 말을 넘어, 또 하나의 자신인 에밀 아자르를 창조해낸 자신의 일화를 빗대기라도 하듯이.
늙음에 대한 두려움, 그 너머를 향한 로맹 가리식 사랑법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음산책 <로맹 가리 소설>의 여섯 번째 출간작을 선보인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그로칼랭』을 발표한 직후 로맹 가리 이름으로 출간한 첫 작품이다. 온 세상이 로맹 가리를 이 소설의 화자 ‘자크 레니에’와 동일시하며 그를 성 불구자라고 굳게 믿는 동안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같은 해인 1975년 『자기 앞의 생』을 선보였다.
예순을 앞둔 자크 레니에는 서른다섯 살 연하의 애인 로라와 사랑하는 사이다. 레지스탕스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기도 했던 그는 출판과 관련된 사업을 하며 사랑과 일 모두 정력적으로 꾸려온 인물이다. 하지만 회사는 유럽의 경기 침체와 맞물려 금전적인 위기에 처하고, 마침 레니에의 사랑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를 맞는다. 어느 날 베네치아에서 또래로부터 사랑의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고백을 듣고부터 그 역시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 것. 사랑하는 여자를 성적으로 더는 만족시켜줄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늙고 무력해진 육체에 점점 더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성 불능”에 대한 두려움은 관계를 망치고 사랑을 퇴색시킨다. “한꺼번에 모든 것에 맞서서 싸울 수가 없”음을 자각한 뒤 결국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호텔 방에 칼을 들고 잠입한 도둑 루이스의 “동물적인 아름다움”에 홀린 그는 그 뒤 수시로 루이스와 로라의 “쓰레기 같은 배설”의 정사를 상상한다. “몸을 가동하려면 완전한 경멸의 이미지들이 바로 눈앞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적 판타지를 통해서만 사랑하는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자 결국 자살을 생각한다.
지하철 경고문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예순을 앞둔 남자의 무력한 육체와 경기 침체를 맞은 서유럽의 상황이 절묘하게 병치된다는 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비단 한 인간의 노쇠가 아닌, 한 사회, 더 나아가 한 문명의 종말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 경계를 지나면 승차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지만, 그 경계조차 넘어서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사랑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로라. 레니에는 로라 곁에서 경계 너머 가보기를 갈망한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 존재를 압박하는 강박관념을 그리는 로맹 가리의 언어는 우회적이지 않고 적나라하며 시종일관 특유의 유머를 발휘한다. 노년을 직시하게 만드는 상황 앞에서 레니에는 말장난, 동문서답식의 말 돌리기로 ‘추락하는 남성’이라는 해묵은 공포를 누그러뜨리려 하지만, 노트 형식으로 써내려간 고백의 말미에서 문제의 정면을 뚜렷하게 들여다본다. “둘 사이의 모든 것”, 곧 사랑은 육체나 자존심, 품위, 그 모든 것 너머에 있다는 사실이다.
노트 형식으로 써내려간 노쇠한 이의 고백기
음울하면서도 가차 없는 로맹 가리의 통찰과 유머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서술 도중 화자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한 독백이 불쑥 끼어든다는 점이다. 말미에 가서야 드러나지만, 고백의 형식을 띤 이 소설은 레니에가 자신의 아들에게 남기는 길고긴 한 권의 노트다. 이 고백기에서 레니에를 사로잡은 늙음에 대한 공포는 종종 로마제국의 멸망, 가라앉는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 서서히 기울어져가는 피사의 사탑으로 비유된다. 이제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이 고백기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돈과 섹스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복잡한 관계망에 속해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쉰아홉 살의 레니에는 서른다섯 살 어린 브라질 여인 로라를 사랑한다. 그는 레지스탕스의 영웅으로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은 전력이 있지만, ‘성’의 문제를 맞닥뜨리자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몸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추락하는 남성’의 공포는 경제적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죠. 정력. 당신 미쳤군요. 어린애한테 정신이 나간 데다가 발기도 안 된다 하고…….”
그녀의 눈길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것 역시 명예지요…….”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분명 돈 문제도 있겠지요. 남자가 스스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항상 돈 문제가 끼어 있어요…… 안 그래요?”
―223쪽
한때는 전능하리라 믿었던 ‘수컷’의 무능함에 대한 고백은 서유럽의 경기 침체와도 맞닿아 있다.
“유럽은 전력을 잃었다. 자체 활력이 이젠 없어. 원자재는 80퍼센트가 다른 나라에 있다. (…) 우리의 모든 에너지, 생명력의 원천은(그러니까 우리 불알 같은 거) 제3국에, 옛날 식민지에 있단 말이지.”
―46쪽
레니에는 원자재가 있는 “제3국”에서 자신의 대체자를 찾아낸다. 로라와 함께 잠자고 있던 호텔 방에 칼을 들고 잠입한 루이스다. 그는 “젊음으로 윤기가 흐르는” 남자다. 레니에는 그를 보자마자 “나는 그렇게 동물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뒤 몸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성적 판타지 속으로 루이스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레니에는 말한다. “마치 야생의 삶이 나에게 다가와 미래의 약속,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것만 같았”다고. 레니에의 판타지에 등장하는 루이스는 로맹 가리가 자신의 또 다른 삶으로 삼은 에밀 아자르의 육체적 재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을 발표한 뒤 로맹 가리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성 불능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자크 레니에가 바로 작가 자신의 현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의 화자는 로맹 가리와 닮은 점이 많다. 당시 로맹 가리의 나이는 예순하나였고 스물네 살 연하의 아름다운 연인 진 세버그가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레니에와 마찬가지로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하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은 전력 또한 있다. 하지만 로맹 가리는 성을 주제로 한 텔레비전 문학 대담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Apostrophes>에 출연해 사람들의 추측에 이렇게 응수했다. “제가 소설을 쓰는 것은 제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만큼 등장인물의 절실함이 빚어낸 적나라한 언어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너무 늙어버린 육체에 깃든 젊은 마음
상처받기 쉬운 존재의 연약함
자크 레니에에게 냉소는 일종의 도피처다. 그는 냉소 속으로 몸, 상처받기 쉬운 존재의 연약함을 숨긴다. 냉소로 도피해버린 뒤 본래의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백하지만 결국 그는 뚜렷하게 자신을 들여다본다. 두려움을 직시하고 고백하는 행위는 분명 힘을 갖는다. 이는 글쓰기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레니에가 남긴 노트 외에도 중간중간 삽입된 로라의 편지와 메모 또한 같은 역할을 한다. 로라는 순수하고 명철한 사랑을 품은 여인이다. 몸이 늙는데 마음만은 너무 젊다는 데 절망하는 레니에를 잡아 일으키는 건 로라의 사랑과 신뢰가 가진 힘이다.
“모든 걸 다 넘어서 당신과 함께 계속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런데 누가 당신에게 행복을 운운하나요? 난 당신에게 오로지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180쪽
누구나 좋았던 시절만을 떠올리며 살 수는 없다. 유효하지 않은 승차권을 쥐고 저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도피처가 아닌, 지지대가 필요하다. 모든 걸 넘어서 동행해줄 사랑과 신뢰라는 지지대. 그 경계를 넘어서고 나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고 로맹 가리는 이 소설에서 넌지시 이야기한다. 마치 작가로서의 생명이 이미 끝났다고 단언했던 세상의 무수한 말을 넘어, 또 하나의 자신인 에밀 아자르를 창조해낸 자신의 일화를 빗대기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