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문학동네 장편소설
리틀 시카고: 정한아 장편소설
- 저자/역자
- 정한아 지음
- 펴낸곳
- 문학동네
- 발행년도
- 2012
- 형태사항
- 233p.; 21cm
- 총서사항
- 문학동네 장편소설
- ISBN
- 9788954618977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13.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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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 JG000000168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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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JG0000001685
-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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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반짝반짝 빛나는……
따뜻한 눈길로, 묵묵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삶 속으로
2007년 만 스물다섯의 나이로,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을 때, 『달의 바다』를 본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은 먼저 그 상큼하고 따뜻한 긍정의 매력에 반했다. 어둡고 핍진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각자 독특한 개성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소설들은 드물지 않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그 따뜻한 힘에 빙그레 미소짓게 하는 작품은 흔치 않았다.
이후 한 편씩 차근차근 발표한 단편들에서, 저마다 상실과 결핍에서 비롯된 아픔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는 인물들을 그리면서도, 정한아는 역시, 그 아픔을 호들갑스럽게 내보이지 않고, 떠나는 것들을 붙잡으려 질기게 애원하지 않았다. 그의 인물들은 다만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고, 때로는 마음을 다잡고 깨끗하게 포기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크게 되는 것만이 나의 의지”라고 자신에게 속삭이고(「나를 위해 웃다」), 주머니 속 ‘아프리카’를 만지작거릴 뿐이고(「아프리카」), 다른 이를 마음에 품고 있는 엄마를 질책하는 대신 보조석이 달린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가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댄스댄스」), 허밍과 함께 돌아간 과거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이해했다(「휴일의 음악」). 정한아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이러한 모습들은 그저 현실에 대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혼자 힘으로 발 딛고 서서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묵묵한 발걸음으로 읽혔다.
제 아픔과 슬픔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감싸안은 채 의연하고 태연하게 웃고 있는 얼굴 뒤에서, 작가의 인물들은,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된 지 오 년 만에, 첫 작품집을 묶은 지 삼 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장편소설 『리틀 시카고』. 이 작품에서 이제 갓 서른이 된 작가는, 지금 현재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이 작품은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mhdn.cafe 에 연재되었다.
차마 흘리지 못한 눈물, 보이지 않는 슬픔과 아픔까지 들여다보는 속 깊은 눈길
『자기 앞의 생』의 모모,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 『새의 선물』의 진희……
그리고 『리틀 시카고』의 선희!
이제 남은 것은 침묵뿐이다. 나는 뒤를 돌아 골목을 바라본다. 부대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 두꺼운 침묵이 깔린 것만 같다. 어쩌면 이 순간이 두려워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도망치듯 골목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줄곧 이때를 기다려왔다. 끝에서부터 시작하기 위해서. 이제 나는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일 테니까.
(……)
내가 태어나 자란 골목은 ‘리틀 시카고’라 불렸다. 미군들이 지은 그 이름은 마피아와 갱단이 활약하던 범죄의 도시 시카고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노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빨간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 회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 갈색 얼굴을 가진 사람, 검정색 얼굴을 가진 사람…… 그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면 꼭 무지개가 뜨는 것 같았다. 그 골목은 갖가지 색깔을 품고서 오십 년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_본문에서(이하 인용문은 모두 본문에서 편집)
‘리틀 시카고’에서 (이 골목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미군들을 상대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아빠와 살고 있는 열두 살 선희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자기 앞의 생』의 모모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 『새의 선물』의 진희 등이 떠오른다. 이야기 속엔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른보다 더 속 깊은 아이로 자라는 시간이 녹아 있다. 게다가 『리틀 시카고』엔 그 독특한 공간으로 인해, 선희를 그 누구보다 더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고 있다.
나는 종종 혼자 걸어서 숲으로 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애들이 자다 깨어 ‘엄마!’ 하듯이,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하듯이, 또 심심해서 ‘엄마!’ 하듯이, 나에게도 삶의 순간순간 빈칸을 메울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선희는, 제 삶의 공동(空洞)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 그 빈칸을 채울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다.
“전쟁터에서는 아이들도 죽나요?”
“……그렇단다.”
“목사님은 신을 믿으세요?”
“……그래.”
“기가 막히네요”
“신은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분이란다. (……) 거기에 대답하는 게 우리 삶이고.”
존 목사에게 선희가 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에 오히려 잊고 있었던 어떤 사실들에 맞닥뜨리고 당황한다. 전쟁터에서는, 아이들도, 죽.는.다. 우리에게 질문만 하실 뿐 답을 주지 않는 ‘그분’이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신다는 사실 또한.
누구나 운다는 게, 누구나 밥을 먹고, 누구나 사랑을 하고, 누구나 잠을 잔다는 것보다 신기하다. 왜냐하면 다른 때 사람들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울 때만은 서로 비슷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눈은 왜 그렇게 물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여자들의 눈물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골목을 추천하리라. 여기서는 여자의 눈물이 공기처럼 흔한데다가, 국적도 다양하고 값도 쌌으니까.
나는 등을 둥글게 말고 바닥에 쪼그려앉았다. 몸이 조금 아프기도 했고, 울고 싶기도 했고, 오줌을 누고 싶기도 했다.
눈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선희는, 이렇게 다양한 눈물들에 대해, 각각의 눈물들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다. 사랑과 삶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열두 살 선희(/정한아)의 눈과 가슴은, 때로 천친한 아이의 것이었다가, 어른의 것이었다가, 엄마의 것이었다가, 때로 여자의 것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어른들도 의지할 데를 찾아 아이들의 손을 잡는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아빠의 손길을 뿌리쳤을 때, 그 커더란 몸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휘청거렸던 것도 기억한다.
선희야, 부모한테 자식은 다 혹덩어리란다. 내 몸도 아니면서, 내 몸처럼 아픈 게 혹덩어리 아니겠니.
선희야, 어떤 사이든, 아니 특별히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남자는 여자를 절대 알 수 없는 거란다.
그냥 내버려둬. 시간이 필요한 거야. 뭐든지 시간이 지나면 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돼 있어.
사랑하는 사람한테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단다.
그럼 아저씨는 우리 골목 때문에 숨도 못 쉬게 마음이 아픈가요? 제가 아는 할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자기 몸처럼 아파야, 진짜 꿈이라고요.
사람과 사람의 눈이 마주칠 때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모든 빛에는 소리가 없듯이.
“사춘기 우울하고 절망하던 시절 저를 일으켜 세운 게 소설이었어요. 그래서 빛을 얘기하고 싶어요. ‘인간으로 살고 있어서 참 좋다’, 이런 소설을 쓰는 게 제 바람입니다.”
첫 소설집을 묶은 후,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소설 속 문장처럼, 사람과 사람의 눈이 마주칠 때, 그것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담고 있을 때,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모든 빛에는 소리가 없듯이. 한 빛이 다른 빛을 만나 하나가 되듯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또한 말한다. “문제는 죽는 게 아니라 사는 거야.”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되는 기분, 그에 비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소설의 말미, 골목이 곧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던 어른들, 그 안에서 함께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의 모든 슬픔과 아픔들을 들여다보고 보듬어주던 선희는 제 슬픔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슬픔을 모두 제 것으로 받아들인 후 선희는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된다.
미군들이 이 골목을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혼비백산 놀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땅은 어둠과 고요 속에 빠져버렸다.
사람들은 비로소 깊은 잠에 빠져, 제대로 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나는 미군들을 따라 이곳을 떠난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빤히 그려볼 수 있다. 진짜로 이 골목을 떠난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여기 남은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이 어둠과 고요가 끝난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우리가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을까? 언젠가 나는 이 골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자, 지금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정한아씨?
『달의 바다』를 수상작으로 결정한 후, 인터뷰에서 조경란은 이렇게 물었다.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이는 질문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였다. 당시 스물다섯이던 작가는 이제 서른이 되었고, 세 권째의 책을 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녀 자신이 원하던 어떤 것들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내가 읽었던 소설과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이해할 수 없는 삶, 조각난 풍경, 말할 수 없는 감정 들을 밝히 비추어주는 소설들. 좋은 소설은 빛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따뜻한 눈길로, 묵묵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삶 속으로
2007년 만 스물다섯의 나이로,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을 때, 『달의 바다』를 본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은 먼저 그 상큼하고 따뜻한 긍정의 매력에 반했다. 어둡고 핍진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각자 독특한 개성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소설들은 드물지 않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그 따뜻한 힘에 빙그레 미소짓게 하는 작품은 흔치 않았다.
이후 한 편씩 차근차근 발표한 단편들에서, 저마다 상실과 결핍에서 비롯된 아픔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는 인물들을 그리면서도, 정한아는 역시, 그 아픔을 호들갑스럽게 내보이지 않고, 떠나는 것들을 붙잡으려 질기게 애원하지 않았다. 그의 인물들은 다만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고, 때로는 마음을 다잡고 깨끗하게 포기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크게 되는 것만이 나의 의지”라고 자신에게 속삭이고(「나를 위해 웃다」), 주머니 속 ‘아프리카’를 만지작거릴 뿐이고(「아프리카」), 다른 이를 마음에 품고 있는 엄마를 질책하는 대신 보조석이 달린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가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댄스댄스」), 허밍과 함께 돌아간 과거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이해했다(「휴일의 음악」). 정한아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이러한 모습들은 그저 현실에 대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혼자 힘으로 발 딛고 서서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묵묵한 발걸음으로 읽혔다.
제 아픔과 슬픔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감싸안은 채 의연하고 태연하게 웃고 있는 얼굴 뒤에서, 작가의 인물들은,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된 지 오 년 만에, 첫 작품집을 묶은 지 삼 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장편소설 『리틀 시카고』. 이 작품에서 이제 갓 서른이 된 작가는, 지금 현재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이 작품은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mhdn.cafe 에 연재되었다.
차마 흘리지 못한 눈물, 보이지 않는 슬픔과 아픔까지 들여다보는 속 깊은 눈길
『자기 앞의 생』의 모모,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 『새의 선물』의 진희……
그리고 『리틀 시카고』의 선희!
이제 남은 것은 침묵뿐이다. 나는 뒤를 돌아 골목을 바라본다. 부대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 두꺼운 침묵이 깔린 것만 같다. 어쩌면 이 순간이 두려워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도망치듯 골목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줄곧 이때를 기다려왔다. 끝에서부터 시작하기 위해서. 이제 나는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일 테니까.
(……)
내가 태어나 자란 골목은 ‘리틀 시카고’라 불렸다. 미군들이 지은 그 이름은 마피아와 갱단이 활약하던 범죄의 도시 시카고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노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빨간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 회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 갈색 얼굴을 가진 사람, 검정색 얼굴을 가진 사람…… 그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면 꼭 무지개가 뜨는 것 같았다. 그 골목은 갖가지 색깔을 품고서 오십 년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_본문에서(이하 인용문은 모두 본문에서 편집)
‘리틀 시카고’에서 (이 골목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미군들을 상대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아빠와 살고 있는 열두 살 선희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자기 앞의 생』의 모모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 『새의 선물』의 진희 등이 떠오른다. 이야기 속엔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른보다 더 속 깊은 아이로 자라는 시간이 녹아 있다. 게다가 『리틀 시카고』엔 그 독특한 공간으로 인해, 선희를 그 누구보다 더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고 있다.
나는 종종 혼자 걸어서 숲으로 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애들이 자다 깨어 ‘엄마!’ 하듯이,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하듯이, 또 심심해서 ‘엄마!’ 하듯이, 나에게도 삶의 순간순간 빈칸을 메울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선희는, 제 삶의 공동(空洞)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 그 빈칸을 채울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다.
“전쟁터에서는 아이들도 죽나요?”
“……그렇단다.”
“목사님은 신을 믿으세요?”
“……그래.”
“기가 막히네요”
“신은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분이란다. (……) 거기에 대답하는 게 우리 삶이고.”
존 목사에게 선희가 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에 오히려 잊고 있었던 어떤 사실들에 맞닥뜨리고 당황한다. 전쟁터에서는, 아이들도, 죽.는.다. 우리에게 질문만 하실 뿐 답을 주지 않는 ‘그분’이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신다는 사실 또한.
누구나 운다는 게, 누구나 밥을 먹고, 누구나 사랑을 하고, 누구나 잠을 잔다는 것보다 신기하다. 왜냐하면 다른 때 사람들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울 때만은 서로 비슷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눈은 왜 그렇게 물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여자들의 눈물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골목을 추천하리라. 여기서는 여자의 눈물이 공기처럼 흔한데다가, 국적도 다양하고 값도 쌌으니까.
나는 등을 둥글게 말고 바닥에 쪼그려앉았다. 몸이 조금 아프기도 했고, 울고 싶기도 했고, 오줌을 누고 싶기도 했다.
눈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선희는, 이렇게 다양한 눈물들에 대해, 각각의 눈물들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다. 사랑과 삶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열두 살 선희(/정한아)의 눈과 가슴은, 때로 천친한 아이의 것이었다가, 어른의 것이었다가, 엄마의 것이었다가, 때로 여자의 것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어른들도 의지할 데를 찾아 아이들의 손을 잡는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아빠의 손길을 뿌리쳤을 때, 그 커더란 몸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휘청거렸던 것도 기억한다.
선희야, 부모한테 자식은 다 혹덩어리란다. 내 몸도 아니면서, 내 몸처럼 아픈 게 혹덩어리 아니겠니.
선희야, 어떤 사이든, 아니 특별히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남자는 여자를 절대 알 수 없는 거란다.
그냥 내버려둬. 시간이 필요한 거야. 뭐든지 시간이 지나면 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돼 있어.
사랑하는 사람한테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단다.
그럼 아저씨는 우리 골목 때문에 숨도 못 쉬게 마음이 아픈가요? 제가 아는 할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자기 몸처럼 아파야, 진짜 꿈이라고요.
사람과 사람의 눈이 마주칠 때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모든 빛에는 소리가 없듯이.
“사춘기 우울하고 절망하던 시절 저를 일으켜 세운 게 소설이었어요. 그래서 빛을 얘기하고 싶어요. ‘인간으로 살고 있어서 참 좋다’, 이런 소설을 쓰는 게 제 바람입니다.”
첫 소설집을 묶은 후,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소설 속 문장처럼, 사람과 사람의 눈이 마주칠 때, 그것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담고 있을 때,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모든 빛에는 소리가 없듯이. 한 빛이 다른 빛을 만나 하나가 되듯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또한 말한다. “문제는 죽는 게 아니라 사는 거야.”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되는 기분, 그에 비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소설의 말미, 골목이 곧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던 어른들, 그 안에서 함께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의 모든 슬픔과 아픔들을 들여다보고 보듬어주던 선희는 제 슬픔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슬픔을 모두 제 것으로 받아들인 후 선희는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된다.
미군들이 이 골목을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혼비백산 놀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땅은 어둠과 고요 속에 빠져버렸다.
사람들은 비로소 깊은 잠에 빠져, 제대로 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나는 미군들을 따라 이곳을 떠난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빤히 그려볼 수 있다. 진짜로 이 골목을 떠난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여기 남은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이 어둠과 고요가 끝난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우리가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을까? 언젠가 나는 이 골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자, 지금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정한아씨?
『달의 바다』를 수상작으로 결정한 후, 인터뷰에서 조경란은 이렇게 물었다.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이는 질문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였다. 당시 스물다섯이던 작가는 이제 서른이 되었고, 세 권째의 책을 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녀 자신이 원하던 어떤 것들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내가 읽었던 소설과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이해할 수 없는 삶, 조각난 풍경, 말할 수 없는 감정 들을 밝히 비추어주는 소설들. 좋은 소설은 빛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목차
프롤로그
리틀 시카고
에필로그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