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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김수영 아내가 쓴 김수영論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날카롭고 깊은 눈매, 짙은 눈썹, 흰 반소매 옷에 오른팔로 턱을 괸 채 무언가를 골똘히 응시하는 한 사내……. 1968년 6월 어느 날, 급전이 필요해 출판사에 번역료 선불을 부탁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끝내 풀잎처럼 쓰러졌던 시인 김수영. 어느 시대에나 ‘진짜’는 누구나 알아보는 법. 그는 한국 시사의 ‘풀잎’ 아닌 ‘거인’이었다. ‘진짜’ 시인이었다. 얼마나 많은 김수영의 작품과 시론에 관한 연구서와 단행본들이 시중에 나와 있는가. 김수영을 학문적·문학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왔고, 그의 작품과 그가 썼던 산문들은 어느새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전범같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시대마다 그의 시들은 다르게 호출되어 모든 이들이 애송할 만큼 국민 시인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가 떠난 지 올해로 45년. 우리는 인간 김수영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 없이 그동안 그의 문학에만 맹목적으로 조명해왔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그리고 시대를 온몸으로 감내한 지식인 민초였지만, 그런 김수영은 세간에 온데간데없이 밀봉되어 있었다. 이 책은 아내 김현경 여사의 80여 년의 삶의 독백으로부터 수영과의 일들을 회고한 에세이집이다. 그동안 문학의 그늘에만 가려져 있던 시인 김수영을 인간 김수영의 자리로 옮겨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그의 면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My soul is dark…”위대한 시인에서 한 여인의 남자로
한국 현대시사의 한 획을 긋고 문학인의 혼이 된 시인 김수영, 그가 생전 사랑했던 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한 번쯤 그의 시 애독자라면 생각해보았을 물음이지만, 그동안 이 궁금증은 김수영 문학의 자기장에 가려 있었다. 수영도 시인이기 전 분명 한 여인의 남자였다. 그는 한 남자로서 이성에게 은유적으로 이렇게 사랑을 고백했다. “My soul is dark.” 이 고도의 은유적 프러포즈를 받은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김현경 여사이다.
김수영 시인은 그녀를 가리켜 “보석 같은 아내, 애처로운 아내, 문명된 아내” 등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불렀다. 그렇게 시시각각 다르게 부른 데에는 그의 작품을 보면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수영의 ‘연인’은 시 작품에서 종종 ‘여편네’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돈에 치를 떠는 여편네”(「도적」)로, 길에서 우산대로 때려 맞는 ‘여편네’(「죄와 벌」)로, 다른 이와 몸을 섞은 후의 섹스에서 연민을 느끼는 ‘여편네’(「성」) 등 ‘애증’의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저자는 서문 격인 「수영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그와 “아직 동거 중”이라 할 만큼, 그의 모든 시가 “인생의 버팀목”이었고, 그런 삶이 “결코 허무하지 않”다고 술회한다. 실제로 저자는 15번의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생전 그가 사용하던 물품(테이블, 의자, 하이데거 전집, 손거울, 만년필 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집 안 한쪽에 그의 서재를 재현해놓고 살고 있다.
김수영의 표현대로 저자 김현경은 당시 “문명된” 여인이었다.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시절, 그곳에서 정지용 시인에게 『시경』을 배우기도 했고, 당시 오촌 오빠인 김순남의 집에 드나들던 임화, 오장환 등의 문인들과도 자연스레 교류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김수영과는 연애 시절, “폴 발레리 시집이나 올더스 헉슬리 『가자에서 눈이 멀어(Eyeless in Gazza)』와 같은 소설”을 즐겨 읽으며 그와 책에 대한 감상을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이런 그들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신혼살림을 차린 이야기, 김수영이 인민군에 징집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이야기, 번역일과 양계일, 양장점일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야기, 그리고 한국 문단 가장 큰 슬픔을 안겨주었던 갑작스런 교통사고 이야기 들을 담담히 풀어내었다.
내 인생의 버팀목, 김수영
이 책은 김현경의 눈으로 바라본 시인 김수영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사뭇 의미가 남다르다. 총 5장으로 구성하여, 각 장 사이사이에 그동안 저자가 간직해온 김수영 관련 사진을 실었다. 김수영의 강의록과 사용하던 만년필, 손거울, 해외 잡지사와 주고받은 서신 자료들, ‘시여 침을 뱉어라’ 문학 강연회 사진 등을 공개하였다.
1장 <나는 시인의 아내다>에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실었다. 특히 2장 <내가 읽은 김수영의 시>에서는 시인의 아내로서 저자만이 알고 있는 해당 시의 시작 배경이나 그와 관련된 일화 등을 소개하여 김수영의 시의 이해를 돕고 있다. 3장 <가슴에 누운 풀잎 그리고>는 저자가 예전에 잡지에 기고했던 2편의 에세이를 발굴해 재수록하였다. 4장 <내가 뽑은 아포리즘>에서는 김수영의 어록을 저자가 직접 선별하여 꾸렸고, 5장 <기억의 삽화들>에서는 김수영과의 일화, 내지는 그와 함께한 기억의 편린들을 짤막한 산문 형식으로 정리하여 실었다.
특히, <발문>을 쓴 시인 고은은 생전 김수영 시인과의 특별했던 인연과 일화들을 소개하며 “제가 아는 한 한국문학사에서 이 같은 고도의 문예미학의 넓이를 함께하는 부부는 이례적이었”다고, 이들 부부가 특별한 예술혼으로 맺어진 인연이었음을 언급했다. 더불어 이 책이 에세이로서뿐 아니라 김수영의 시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날카롭고 깊은 눈매, 짙은 눈썹, 흰 반소매 옷에 오른팔로 턱을 괸 채 무언가를 골똘히 응시하는 한 사내……. 1968년 6월 어느 날, 급전이 필요해 출판사에 번역료 선불을 부탁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끝내 풀잎처럼 쓰러졌던 시인 김수영. 어느 시대에나 ‘진짜’는 누구나 알아보는 법. 그는 한국 시사의 ‘풀잎’ 아닌 ‘거인’이었다. ‘진짜’ 시인이었다. 얼마나 많은 김수영의 작품과 시론에 관한 연구서와 단행본들이 시중에 나와 있는가. 김수영을 학문적·문학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왔고, 그의 작품과 그가 썼던 산문들은 어느새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전범같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시대마다 그의 시들은 다르게 호출되어 모든 이들이 애송할 만큼 국민 시인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가 떠난 지 올해로 45년. 우리는 인간 김수영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 없이 그동안 그의 문학에만 맹목적으로 조명해왔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그리고 시대를 온몸으로 감내한 지식인 민초였지만, 그런 김수영은 세간에 온데간데없이 밀봉되어 있었다. 이 책은 아내 김현경 여사의 80여 년의 삶의 독백으로부터 수영과의 일들을 회고한 에세이집이다. 그동안 문학의 그늘에만 가려져 있던 시인 김수영을 인간 김수영의 자리로 옮겨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그의 면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My soul is dark…”위대한 시인에서 한 여인의 남자로
한국 현대시사의 한 획을 긋고 문학인의 혼이 된 시인 김수영, 그가 생전 사랑했던 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한 번쯤 그의 시 애독자라면 생각해보았을 물음이지만, 그동안 이 궁금증은 김수영 문학의 자기장에 가려 있었다. 수영도 시인이기 전 분명 한 여인의 남자였다. 그는 한 남자로서 이성에게 은유적으로 이렇게 사랑을 고백했다. “My soul is dark.” 이 고도의 은유적 프러포즈를 받은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김현경 여사이다.
김수영 시인은 그녀를 가리켜 “보석 같은 아내, 애처로운 아내, 문명된 아내” 등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불렀다. 그렇게 시시각각 다르게 부른 데에는 그의 작품을 보면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수영의 ‘연인’은 시 작품에서 종종 ‘여편네’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돈에 치를 떠는 여편네”(「도적」)로, 길에서 우산대로 때려 맞는 ‘여편네’(「죄와 벌」)로, 다른 이와 몸을 섞은 후의 섹스에서 연민을 느끼는 ‘여편네’(「성」) 등 ‘애증’의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저자는 서문 격인 「수영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그와 “아직 동거 중”이라 할 만큼, 그의 모든 시가 “인생의 버팀목”이었고, 그런 삶이 “결코 허무하지 않”다고 술회한다. 실제로 저자는 15번의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생전 그가 사용하던 물품(테이블, 의자, 하이데거 전집, 손거울, 만년필 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집 안 한쪽에 그의 서재를 재현해놓고 살고 있다.
김수영의 표현대로 저자 김현경은 당시 “문명된” 여인이었다.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시절, 그곳에서 정지용 시인에게 『시경』을 배우기도 했고, 당시 오촌 오빠인 김순남의 집에 드나들던 임화, 오장환 등의 문인들과도 자연스레 교류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김수영과는 연애 시절, “폴 발레리 시집이나 올더스 헉슬리 『가자에서 눈이 멀어(Eyeless in Gazza)』와 같은 소설”을 즐겨 읽으며 그와 책에 대한 감상을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이런 그들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신혼살림을 차린 이야기, 김수영이 인민군에 징집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이야기, 번역일과 양계일, 양장점일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야기, 그리고 한국 문단 가장 큰 슬픔을 안겨주었던 갑작스런 교통사고 이야기 들을 담담히 풀어내었다.
내 인생의 버팀목, 김수영
이 책은 김현경의 눈으로 바라본 시인 김수영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사뭇 의미가 남다르다. 총 5장으로 구성하여, 각 장 사이사이에 그동안 저자가 간직해온 김수영 관련 사진을 실었다. 김수영의 강의록과 사용하던 만년필, 손거울, 해외 잡지사와 주고받은 서신 자료들, ‘시여 침을 뱉어라’ 문학 강연회 사진 등을 공개하였다.
1장 <나는 시인의 아내다>에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실었다. 특히 2장 <내가 읽은 김수영의 시>에서는 시인의 아내로서 저자만이 알고 있는 해당 시의 시작 배경이나 그와 관련된 일화 등을 소개하여 김수영의 시의 이해를 돕고 있다. 3장 <가슴에 누운 풀잎 그리고>는 저자가 예전에 잡지에 기고했던 2편의 에세이를 발굴해 재수록하였다. 4장 <내가 뽑은 아포리즘>에서는 김수영의 어록을 저자가 직접 선별하여 꾸렸고, 5장 <기억의 삽화들>에서는 김수영과의 일화, 내지는 그와 함께한 기억의 편린들을 짤막한 산문 형식으로 정리하여 실었다.
특히, <발문>을 쓴 시인 고은은 생전 김수영 시인과의 특별했던 인연과 일화들을 소개하며 “제가 아는 한 한국문학사에서 이 같은 고도의 문예미학의 넓이를 함께하는 부부는 이례적이었”다고, 이들 부부가 특별한 예술혼으로 맺어진 인연이었음을 언급했다. 더불어 이 책이 에세이로서뿐 아니라 김수영의 시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목차
수영에게 띄우는 편지 |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
1장 나는 시인의 아내다
2장 내가 읽은 김수영의 시
3장 가슴에 누운 풀잎 그리고
4장 내가 뽑은 아포리즘
5장 기억의 삽화들
발문 | 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