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수런거리는 유산들
- 저자/역자
- 리디아 플렘 지음 / 신성림 옮김
- 펴낸곳
- 펜타그램
- 발행년도
- 2012
- 형태사항
- 325p.; 22cm
- 원서명
- Comment j'ai vide la maison de mes parents
- ISBN
- 9788995651384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64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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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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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카페
책 소개
부모를 떠나보낸 한 정신분석학자의 애도 심리 에세이
정신분석학자이자 작가인 지은이가 부모를 사별한 뒤에 이어진 애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심리 에세이.
지은이 리디아 플렘은 아버지를 여읜 지 2년 만에 어머니와도 영원히 작별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부모님이 살던 집을 ‘비우는’ 일을 맡을 사람은 그 집의 외동딸인 리디아뿐이다.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 있고 세 사람의 추억이 굽이굽이 서린 물건들, 혹은 그 존재조차 눈치 채지 못했던 놀라운 사물들, 그리고 그 카오스의 도가니 속에서 지은이에게 말을 걸어온 750통의 연애편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물들로 둘러싸인 리디아는 형언하기 힘든 슬픔뿐만 아니라 그리움과 원망, 은밀한 해방감과 상실감 같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다. 이런 혼란 속에서 리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터져 나왔다.” 그 말들로 지은 집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세월이 켜켜이 쌓인 부모의 물건들, 곧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들’과 나눈 기나긴 대화, 고독한 수다의 기록이다.
정신분석학 전문용어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글쓴이가 단단한 학문 배경 위에 서 있음이 자연스럽게 행간에서 느껴지고, 섬세하고 진솔한 자기성찰을 장중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승화시킨 이 에세이는 출간 당시 프랑스 문단과 출판계에서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흔쾌히 얘기하기 힘든 무거운 주제임에도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낸 데에는 지은이의 문학적 성취가 큰 몫을 담당했으리라 짐작된다. 문화적 차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한국 독자들도 가슴 뭉클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벨기에 브뤼셀 출신으로 정치학과 사회학, 심리학을 공부한 지은이는, 자크 라캉과 함께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거목으로 꼽히는 프랑수아즈 돌토가 관여하는 단체에서 일하며 아동 정신분석학을 연구했다. 이후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며 관련 도서를 여러 권 썼을 뿐 아니라 에세이, 전기, 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집필 영역을 넓혀 왔다.
이 책 《수런거리는 유산들》은 한국에 소개되는 지은이의 첫 책으로, 프랑스 쇠유(Seuil) 출판사에서 간행하는 ‘21세기 서고 총서(Collection La Librairie du XXIe si?cle)’에 수록된 지은이의 ‘가족 3부작’ 가운데 두 권을 완역하여 합본한 것이다. [1부 원제: Comment j’ai vid? la maison de mes parents (2004) / 2부: Lettres d’amour en h?ritage (2006)] 1부는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롯해 14개국 언어로, 2부는 6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주요 내용과 특징
1. 부모의 집을 비운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 특히 부모의 죽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표현하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리디아 플렘은 쉽게 건드리기 힘든 이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경험에 깊이 천착하여 부모와 자녀 관계라는 영원한 난제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특히 장례를 치른 후 남은 가족이 행해야 하는 ‘부모의 집 비우기’라는 과업에 그동안 누구도 들이대지 않았던 확대경을 가지고 낱낱이 들여다보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복잡 미묘한 감정, 언어가 되기 힘든 그 감정들에 이름을 부여한다.
혼자 남은 부모마저 잃으면, 우리는 거의 곧바로 가장 고통스럽달 수 있는 경험, 상상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다양하고 모순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과업, 바로 부모의 집을 비우는 일을 해야 한다. ……
‘비운다(vider)’라는 동사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나는 ‘정리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리하기는 그 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추려 내고 평가하고 분류하고 정돈하고 포장하는 일도 분명 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선택하고 주고 버리고 팔고 간직하는 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
비우기는 마음을 가볍게 한다. 이렇게 고백하면 너무 파렴치한가? 물론 우리는 돌아가신 소중한 부모님을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들볶고,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우리가 귀찮은 사람이나 악몽을 몰아내듯 그들을 비울 차례가 되었다.
내 말이 너무 거친가?
나는 정의로운 유령들에게 뒤쫓기며 책임을 추궁당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대가를 치르게 될까? 아니면 그것은 정신적 해방의 길, 유년기를 끝맺을 다시없는 기회가 될까? 분쟁을, 다툼을 끝내기.
비우기, 그것은 또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즉 자기를 드러내기, 마음속 털어놓기, 자기 정체 드러내기다. ―20~27쪽에서
2. 애도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이제 과거와 달리 공동체에서 맞이하는 경험이 아니며, 고인과 헤어지는 의식(儀式)을 단축하고 서둘러 그 흔적을 지워야 하는 일, 각자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애써 잠재우며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사별한 부모를 애도하는 일이 그렇게 애써 외면해야 할 과제일 뿐인가?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그것은 당사자를 성장시키는 ‘제2의 통과의례’라고 말한다. 지은이의 ‘제2의 통과의례’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먼저 부모님의 집을 비우며 그 집이 품고 있던 온갖 사물들이 건네는 말을 들어주고 그 사물들의 새 삶을 찾아주는 일이었다. 그다음에는 부모가 소중히 간직했던 그들의 연애편지를 찬찬히 읽고 그들과 보이지 않는 대화를 이어간, 특별한 시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애도의 경험은 고독 속에서 겪는다. 거기에는 고통과 슬픔만 있는 게 아니다. 적대감과 화, 분노도 찾아온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과 젖먹이들은 늘 상냥하고 정중하고 의례적인 감정만 불러일으킨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도한 것은 모조리 제거된다. 새빨간 거짓말!
인간의 마음은 훨씬 더 복잡하다. 마음은 모호한 움직임과 고뇌, 끊임없는 돌변으로 이루어지기에 결코 잔잔하거나 순수하거나 명확할 수가 없다. (질병, 만남,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등등) 탄생과 죽음을 둘러싼 감정들이 너무도 맹렬한 기세로 몰려들어서 그 힘과 무질서가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뒤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내면이 대대적으로 재조직되는 순간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탐색하고, 표지가 잘못된 활주로를 다시 열고, 장애물을 대담하게 뛰어넘는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넘어서도록 이끌어 주기도 한다.
살면서 늦게라도 고아가 되는 일은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애도라고 부르는데, 달리 말하면 통과의례, 변신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초반에 몰려오는 고통의 예리한 모서리들이 무뎌지면서, 마비되고 분개하던 마음이 천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옮겨 간다.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허전함과 결핍감, 동요의 순간들과 함께. 상냥함이 깃든 슬픔이 퍼지는 것은 더 나중이다. 부드러운 아픔이 떠난 사람의 이미지를 둘러싼다. 죽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그 흐름에는 지름길이 없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죽음은 삶에 속하며, 삶은 죽음을 껴안는다. ―118~120쪽에서
3. 인종학살의 기억과 병마를 이겨낸 감동적인 러브스토리
<2부 물려받은 연애편지>에는 지은이의 부모가 1946년 9월 말부터 1949년 12월 1일 결혼할 때까지 주고받은 편지와 지은이의 회상을 통해 그들의 삶이 재구성되어 있다. 강제 이주와 전쟁, 참혹한 강제 노동, 굶주림과 모욕과 학대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두 젊은 유대인은 굳건한 사랑으로 단단히 결합되어 헤아리기 힘든 고통과 치명적인 질병을 이겨낸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 단단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때 그곳에서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에, 그들의 상처는 자녀인 지은이에게 또 다른 억압과 상처를 남긴다. 부모의 편지 읽기를 통해 지은이는 마침내 자신을 그동안 짓눌렀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지은이의 부모가 고난 속에서 피워낸 사랑은 그 자체로서 감동적인 이야기다. 또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했던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에게 되물림된 상처는 유대인들 못지않게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보리스, 내 사랑,
좀 전에 완다 카를리에 랑베르 드 룰레의 《강제 수용소 수감원 50440》이라는 책을 몇 줄 읽었어. 내가 직접 겪었던 물고문을 묘사한 부분을 읽다 보니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어. …… 내가 정말로 그런 일을 겪었던 걸까? 하지만 난 빨리 그 모든 걸 잊고 싶어. 현재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친절한 편지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커다란 기쁨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야. 내가 ‘영혼의 반쪽’을 만나는 행운을 가졌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
사랑하는 귀여운 재키,
…… 자기는 내 영혼의 반쪽이고 난 자기 영혼의 반쪽이야. 난 자기한테서 내 어머니, 내 누이, 내 여자 친구, 내 귀여운 재키, 그 모두를 찾고 싶어,
재키, 왜 《강제 수용소 수감원 50440》 같은 책들을 읽는 거야? 사람들이 나에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자기한테 잊어버리라고 쓰진 않을래. 아니,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 절대로!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읽지 마. 자기는 너무 약하고, 그 책은 너무 무거워. 몇 달 더 기다려. 자기는 더 좋아질 테니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지 않고도 그걸 읽을 수 있을 거야. 재키, 자기는 회복해야만 해.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 자기는 나를 위해 건강을 회복하고 싶다고 했잖아! 체중을 늘려야지!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177~179쪽에서
4. 짙은 문학적 향취를 풍기는 본격 에세이
리디아 플렘의 글은 감각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은 대신 섬세하고 장중하다. 최근의 해체적이고 발랄한 문체에 비교하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가족사를 진솔하면서도 품위 있게 드러냄으로써 출간 당시 프랑스 문단과 독자들을 매료시켰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인 경험과 사물에서 그것들이 지닌 미묘한 의미를 포착하여 언어로 표현한다는 문학의 본령에 근접한 양식을 보여준다.
줄거리 요약
■ 1부 부모님 집을 비우며
“그들의 입은 줄곧 침묵을 지켰지만, 그들의 서류는 수다스러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 뒤 어머니마저 여읜 지은이 리디아 플렘은 마흔두 살에 ‘천애고아’가 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부모님의 집과 세간을 정리하는 일은 오로지 그 집의 외동딸인 그녀의 몫이 된다.
부모의 집을 비우는 일은 단번에 진행되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그녀는 혼란스러워한다. 부모님의 침실을 비롯해 지하실, 다락방에까지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데, 그것들을 볼 때마다 온갖 상념에 빠져들고 만다. 부모님과의 애틋한 추억, 기쁘고 즐겁고 자랑스러웠던 일뿐만 아니라,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며 고통스럽게 했던 기억도 다시금 뚜렷이 떠오른 것이다. 어느 날은 마음속에 그리움이 차오르다가, 어느 날은 원망과 서러움이 북받쳐 오른다. 어떤 때는 버릴 것, 기증할 것, 간직할 것을 명쾌하게 분류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작은 천 조각을 쥐고서 망연자실 앉아 있기도 한다.
강제 노동과 인종 학살, 전쟁을 겪고도 생존한 지은이의 부모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로 마음먹은 듯 여행지 카페에서 들고 온 냅킨, 딸을 낳았을 때 병원에서 치렀던 비용 영수증, 딸의 젖병까지도 버리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은이는 조금씩 부모님의 물건을 자기 집으로 가져온다. 부모님의 웨딩케이크에 꽂혀 있던 신랑신부 인형은 창틀에, 부모님의 집에 걸려 있던 그림은 그녀의 집 벽에, 부모님의 책 가운데 일부는 그녀의 책장으로 들어온다. 어머니가 치밀하고 신중하게 수집한 가계도 관련 자료들은 임시 문서고에 보관하고, 어머니가 훌륭한 솜씨로 직접 만든 맞춤복들은 친구를 불러 입혀 본다. 한편 부모님이 결혼 전 주고받았던 연애편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상자 세 개를 다락방에서 발견하는데, 그것들은 읽지 않고 덮어둔다.
부모님의 집을 서서히 비우는 동안 마침내 많은 물건들이 새 삶을 찾는다. 그녀의 집, 그녀의 친구들, 심지어 “거의 모든 것이 필요하지만 거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학생들을 불러 필요한 물건을 마음껏 가져가게 한다. 비로소 그녀는 홀가분해진다.
■2부 물려받은 연애편지
“편지는 허공에 던져진 메시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반이 흐른 뒤에야 지은이는, 스물셋의 아버지와 스물다섯의 어머니가 3년간 주고받았던 연애편지 750통이 들어 있는 상자 세 개를 다시 꺼낸다. 우편소인과 필체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 소중한 편지들을 그녀는 열 달에 걸쳐 읽어 간다. 처음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가 나눈 내밀한 편지를 읽는 일이 거북하게 느껴져 몹시 망설이지만, 나중엔 그들의 편지가 단지 사적인 기록물에 그치지 않는다는 생각에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편지를 읽으며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재확인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 부모의 삶을 상상하고 유추하며 부모를 한 개인으로서 바라보기도 하고, 그녀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지은이의 아버지 보리스는 유대인 강제 추방령으로 두 살이던 1925년에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과 함께 러시아에서 독일로 망명한다. 그 와중에 그의 아버지는 암살되었고, 어머니는 결국 강제 수용소에서 연기로 사라졌으며, 형은 네덜란드에서, 그는 벨기에에서 친척의 도움을 받으며 힘겹게 성장한다. 어머니 자클린의 가족은 독일에서 살아온 유대인이었는데, 역시 강제 추방령 때문에 프랑스로 이주했다. 자클린은 십대 때부터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동할 만큼 대범하고 정의로운 여성이었으나,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보리스는 3년 정도, 자클린은 1년 넘게 수용소에서 지냈으며, 히틀러가 몰락하자 각각 벨기에와 프랑스로 돌아온다. 자클린은 이때 심한 폐결핵에 걸려 3년 가까이 치료와 요양 생활을 하게 된다.
자클린이 스위스 요양원에서 치료받고 있을 때 보리스가 지인의 부탁으로 그 요양원의 환자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 환자의 부탁으로 자클린에게도 병문안을 하러 간다. 둘은 그렇게 만났고, 그 후 3년 동안 벨기에와 스위스를 넘나들며 일주일에 두 통 꼴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어린 시절 고아원과 친척집을 전전했던 보리스에게 자클린은 어머니 같은 존재이고, 게슈타포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아버지를 잃은 자클린에게 보리스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보리스는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지만, 자클린만은 반드시 병을 이기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클린은 보리스의 사랑으로 병을 이겨낸다. 둘은 서로에게 구원자다.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하고, 건강의 위험을 무릅쓰고 리디아를 낳는다. 결혼한 뒤로도 두 사람의 사랑은 50년 가까이 변함없이 이어졌다.
지은이의 부모님이 주고받은 편지들은 단순한 연애편지가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시련을 겪었으며,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그 위대한 영웅서사시를 감명 깊게 재구성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작가인 지은이가 부모를 사별한 뒤에 이어진 애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심리 에세이.
지은이 리디아 플렘은 아버지를 여읜 지 2년 만에 어머니와도 영원히 작별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부모님이 살던 집을 ‘비우는’ 일을 맡을 사람은 그 집의 외동딸인 리디아뿐이다.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 있고 세 사람의 추억이 굽이굽이 서린 물건들, 혹은 그 존재조차 눈치 채지 못했던 놀라운 사물들, 그리고 그 카오스의 도가니 속에서 지은이에게 말을 걸어온 750통의 연애편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물들로 둘러싸인 리디아는 형언하기 힘든 슬픔뿐만 아니라 그리움과 원망, 은밀한 해방감과 상실감 같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다. 이런 혼란 속에서 리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터져 나왔다.” 그 말들로 지은 집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세월이 켜켜이 쌓인 부모의 물건들, 곧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들’과 나눈 기나긴 대화, 고독한 수다의 기록이다.
정신분석학 전문용어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글쓴이가 단단한 학문 배경 위에 서 있음이 자연스럽게 행간에서 느껴지고, 섬세하고 진솔한 자기성찰을 장중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승화시킨 이 에세이는 출간 당시 프랑스 문단과 출판계에서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흔쾌히 얘기하기 힘든 무거운 주제임에도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낸 데에는 지은이의 문학적 성취가 큰 몫을 담당했으리라 짐작된다. 문화적 차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한국 독자들도 가슴 뭉클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벨기에 브뤼셀 출신으로 정치학과 사회학, 심리학을 공부한 지은이는, 자크 라캉과 함께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거목으로 꼽히는 프랑수아즈 돌토가 관여하는 단체에서 일하며 아동 정신분석학을 연구했다. 이후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며 관련 도서를 여러 권 썼을 뿐 아니라 에세이, 전기, 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집필 영역을 넓혀 왔다.
이 책 《수런거리는 유산들》은 한국에 소개되는 지은이의 첫 책으로, 프랑스 쇠유(Seuil) 출판사에서 간행하는 ‘21세기 서고 총서(Collection La Librairie du XXIe si?cle)’에 수록된 지은이의 ‘가족 3부작’ 가운데 두 권을 완역하여 합본한 것이다. [1부 원제: Comment j’ai vid? la maison de mes parents (2004) / 2부: Lettres d’amour en h?ritage (2006)] 1부는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롯해 14개국 언어로, 2부는 6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주요 내용과 특징
1. 부모의 집을 비운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 특히 부모의 죽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표현하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리디아 플렘은 쉽게 건드리기 힘든 이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경험에 깊이 천착하여 부모와 자녀 관계라는 영원한 난제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특히 장례를 치른 후 남은 가족이 행해야 하는 ‘부모의 집 비우기’라는 과업에 그동안 누구도 들이대지 않았던 확대경을 가지고 낱낱이 들여다보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복잡 미묘한 감정, 언어가 되기 힘든 그 감정들에 이름을 부여한다.
혼자 남은 부모마저 잃으면, 우리는 거의 곧바로 가장 고통스럽달 수 있는 경험, 상상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다양하고 모순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과업, 바로 부모의 집을 비우는 일을 해야 한다. ……
‘비운다(vider)’라는 동사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나는 ‘정리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리하기는 그 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추려 내고 평가하고 분류하고 정돈하고 포장하는 일도 분명 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선택하고 주고 버리고 팔고 간직하는 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
비우기는 마음을 가볍게 한다. 이렇게 고백하면 너무 파렴치한가? 물론 우리는 돌아가신 소중한 부모님을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들볶고,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우리가 귀찮은 사람이나 악몽을 몰아내듯 그들을 비울 차례가 되었다.
내 말이 너무 거친가?
나는 정의로운 유령들에게 뒤쫓기며 책임을 추궁당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대가를 치르게 될까? 아니면 그것은 정신적 해방의 길, 유년기를 끝맺을 다시없는 기회가 될까? 분쟁을, 다툼을 끝내기.
비우기, 그것은 또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즉 자기를 드러내기, 마음속 털어놓기, 자기 정체 드러내기다. ―20~27쪽에서
2. 애도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이제 과거와 달리 공동체에서 맞이하는 경험이 아니며, 고인과 헤어지는 의식(儀式)을 단축하고 서둘러 그 흔적을 지워야 하는 일, 각자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애써 잠재우며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사별한 부모를 애도하는 일이 그렇게 애써 외면해야 할 과제일 뿐인가?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그것은 당사자를 성장시키는 ‘제2의 통과의례’라고 말한다. 지은이의 ‘제2의 통과의례’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먼저 부모님의 집을 비우며 그 집이 품고 있던 온갖 사물들이 건네는 말을 들어주고 그 사물들의 새 삶을 찾아주는 일이었다. 그다음에는 부모가 소중히 간직했던 그들의 연애편지를 찬찬히 읽고 그들과 보이지 않는 대화를 이어간, 특별한 시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애도의 경험은 고독 속에서 겪는다. 거기에는 고통과 슬픔만 있는 게 아니다. 적대감과 화, 분노도 찾아온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과 젖먹이들은 늘 상냥하고 정중하고 의례적인 감정만 불러일으킨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도한 것은 모조리 제거된다. 새빨간 거짓말!
인간의 마음은 훨씬 더 복잡하다. 마음은 모호한 움직임과 고뇌, 끊임없는 돌변으로 이루어지기에 결코 잔잔하거나 순수하거나 명확할 수가 없다. (질병, 만남,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등등) 탄생과 죽음을 둘러싼 감정들이 너무도 맹렬한 기세로 몰려들어서 그 힘과 무질서가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뒤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내면이 대대적으로 재조직되는 순간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탐색하고, 표지가 잘못된 활주로를 다시 열고, 장애물을 대담하게 뛰어넘는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넘어서도록 이끌어 주기도 한다.
살면서 늦게라도 고아가 되는 일은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애도라고 부르는데, 달리 말하면 통과의례, 변신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초반에 몰려오는 고통의 예리한 모서리들이 무뎌지면서, 마비되고 분개하던 마음이 천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옮겨 간다.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허전함과 결핍감, 동요의 순간들과 함께. 상냥함이 깃든 슬픔이 퍼지는 것은 더 나중이다. 부드러운 아픔이 떠난 사람의 이미지를 둘러싼다. 죽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그 흐름에는 지름길이 없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죽음은 삶에 속하며, 삶은 죽음을 껴안는다. ―118~120쪽에서
3. 인종학살의 기억과 병마를 이겨낸 감동적인 러브스토리
<2부 물려받은 연애편지>에는 지은이의 부모가 1946년 9월 말부터 1949년 12월 1일 결혼할 때까지 주고받은 편지와 지은이의 회상을 통해 그들의 삶이 재구성되어 있다. 강제 이주와 전쟁, 참혹한 강제 노동, 굶주림과 모욕과 학대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두 젊은 유대인은 굳건한 사랑으로 단단히 결합되어 헤아리기 힘든 고통과 치명적인 질병을 이겨낸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 단단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때 그곳에서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에, 그들의 상처는 자녀인 지은이에게 또 다른 억압과 상처를 남긴다. 부모의 편지 읽기를 통해 지은이는 마침내 자신을 그동안 짓눌렀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지은이의 부모가 고난 속에서 피워낸 사랑은 그 자체로서 감동적인 이야기다. 또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했던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에게 되물림된 상처는 유대인들 못지않게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보리스, 내 사랑,
좀 전에 완다 카를리에 랑베르 드 룰레의 《강제 수용소 수감원 50440》이라는 책을 몇 줄 읽었어. 내가 직접 겪었던 물고문을 묘사한 부분을 읽다 보니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어. …… 내가 정말로 그런 일을 겪었던 걸까? 하지만 난 빨리 그 모든 걸 잊고 싶어. 현재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친절한 편지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커다란 기쁨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야. 내가 ‘영혼의 반쪽’을 만나는 행운을 가졌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
사랑하는 귀여운 재키,
…… 자기는 내 영혼의 반쪽이고 난 자기 영혼의 반쪽이야. 난 자기한테서 내 어머니, 내 누이, 내 여자 친구, 내 귀여운 재키, 그 모두를 찾고 싶어,
재키, 왜 《강제 수용소 수감원 50440》 같은 책들을 읽는 거야? 사람들이 나에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자기한테 잊어버리라고 쓰진 않을래. 아니,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 절대로!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읽지 마. 자기는 너무 약하고, 그 책은 너무 무거워. 몇 달 더 기다려. 자기는 더 좋아질 테니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지 않고도 그걸 읽을 수 있을 거야. 재키, 자기는 회복해야만 해.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 자기는 나를 위해 건강을 회복하고 싶다고 했잖아! 체중을 늘려야지!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177~179쪽에서
4. 짙은 문학적 향취를 풍기는 본격 에세이
리디아 플렘의 글은 감각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은 대신 섬세하고 장중하다. 최근의 해체적이고 발랄한 문체에 비교하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가족사를 진솔하면서도 품위 있게 드러냄으로써 출간 당시 프랑스 문단과 독자들을 매료시켰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인 경험과 사물에서 그것들이 지닌 미묘한 의미를 포착하여 언어로 표현한다는 문학의 본령에 근접한 양식을 보여준다.
줄거리 요약
■ 1부 부모님 집을 비우며
“그들의 입은 줄곧 침묵을 지켰지만, 그들의 서류는 수다스러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 뒤 어머니마저 여읜 지은이 리디아 플렘은 마흔두 살에 ‘천애고아’가 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부모님의 집과 세간을 정리하는 일은 오로지 그 집의 외동딸인 그녀의 몫이 된다.
부모의 집을 비우는 일은 단번에 진행되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그녀는 혼란스러워한다. 부모님의 침실을 비롯해 지하실, 다락방에까지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데, 그것들을 볼 때마다 온갖 상념에 빠져들고 만다. 부모님과의 애틋한 추억, 기쁘고 즐겁고 자랑스러웠던 일뿐만 아니라,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며 고통스럽게 했던 기억도 다시금 뚜렷이 떠오른 것이다. 어느 날은 마음속에 그리움이 차오르다가, 어느 날은 원망과 서러움이 북받쳐 오른다. 어떤 때는 버릴 것, 기증할 것, 간직할 것을 명쾌하게 분류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작은 천 조각을 쥐고서 망연자실 앉아 있기도 한다.
강제 노동과 인종 학살, 전쟁을 겪고도 생존한 지은이의 부모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로 마음먹은 듯 여행지 카페에서 들고 온 냅킨, 딸을 낳았을 때 병원에서 치렀던 비용 영수증, 딸의 젖병까지도 버리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은이는 조금씩 부모님의 물건을 자기 집으로 가져온다. 부모님의 웨딩케이크에 꽂혀 있던 신랑신부 인형은 창틀에, 부모님의 집에 걸려 있던 그림은 그녀의 집 벽에, 부모님의 책 가운데 일부는 그녀의 책장으로 들어온다. 어머니가 치밀하고 신중하게 수집한 가계도 관련 자료들은 임시 문서고에 보관하고, 어머니가 훌륭한 솜씨로 직접 만든 맞춤복들은 친구를 불러 입혀 본다. 한편 부모님이 결혼 전 주고받았던 연애편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상자 세 개를 다락방에서 발견하는데, 그것들은 읽지 않고 덮어둔다.
부모님의 집을 서서히 비우는 동안 마침내 많은 물건들이 새 삶을 찾는다. 그녀의 집, 그녀의 친구들, 심지어 “거의 모든 것이 필요하지만 거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학생들을 불러 필요한 물건을 마음껏 가져가게 한다. 비로소 그녀는 홀가분해진다.
■2부 물려받은 연애편지
“편지는 허공에 던져진 메시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반이 흐른 뒤에야 지은이는, 스물셋의 아버지와 스물다섯의 어머니가 3년간 주고받았던 연애편지 750통이 들어 있는 상자 세 개를 다시 꺼낸다. 우편소인과 필체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 소중한 편지들을 그녀는 열 달에 걸쳐 읽어 간다. 처음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가 나눈 내밀한 편지를 읽는 일이 거북하게 느껴져 몹시 망설이지만, 나중엔 그들의 편지가 단지 사적인 기록물에 그치지 않는다는 생각에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편지를 읽으며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재확인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 부모의 삶을 상상하고 유추하며 부모를 한 개인으로서 바라보기도 하고, 그녀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지은이의 아버지 보리스는 유대인 강제 추방령으로 두 살이던 1925년에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과 함께 러시아에서 독일로 망명한다. 그 와중에 그의 아버지는 암살되었고, 어머니는 결국 강제 수용소에서 연기로 사라졌으며, 형은 네덜란드에서, 그는 벨기에에서 친척의 도움을 받으며 힘겹게 성장한다. 어머니 자클린의 가족은 독일에서 살아온 유대인이었는데, 역시 강제 추방령 때문에 프랑스로 이주했다. 자클린은 십대 때부터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동할 만큼 대범하고 정의로운 여성이었으나,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보리스는 3년 정도, 자클린은 1년 넘게 수용소에서 지냈으며, 히틀러가 몰락하자 각각 벨기에와 프랑스로 돌아온다. 자클린은 이때 심한 폐결핵에 걸려 3년 가까이 치료와 요양 생활을 하게 된다.
자클린이 스위스 요양원에서 치료받고 있을 때 보리스가 지인의 부탁으로 그 요양원의 환자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 환자의 부탁으로 자클린에게도 병문안을 하러 간다. 둘은 그렇게 만났고, 그 후 3년 동안 벨기에와 스위스를 넘나들며 일주일에 두 통 꼴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어린 시절 고아원과 친척집을 전전했던 보리스에게 자클린은 어머니 같은 존재이고, 게슈타포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아버지를 잃은 자클린에게 보리스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보리스는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지만, 자클린만은 반드시 병을 이기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클린은 보리스의 사랑으로 병을 이겨낸다. 둘은 서로에게 구원자다.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하고, 건강의 위험을 무릅쓰고 리디아를 낳는다. 결혼한 뒤로도 두 사람의 사랑은 50년 가까이 변함없이 이어졌다.
지은이의 부모님이 주고받은 편지들은 단순한 연애편지가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시련을 겪었으며,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그 위대한 영웅서사시를 감명 깊게 재구성했다.
목차
1부 부모님 집을 비우며
감정의 폭풍
비운다는 것
죽음의 계단 위에
그라운드 제로
무와 과잉
염소 위에 놓인 사과처럼
침대 옆에서
백색 근친상간
어머니들의 유산
고아가 된 물건들
뒤죽박죽
애도 기간을 보내며
2부 물려받은 연애편지
애도 이후
타임머신
러브레터
만남
처음 보낸 엽서
있는 그대로
해묵은 상처
침묵
사랑약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물려받은 상처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시조 신화
불안
각혈
부모의 방
47년 봄
놀라운 자연 현상
하루하루, 나는 그들의 편지를 펼쳤다
마음의 언어
종교심
빨리, 빨리
엄마의 몸
피엡스와 팝스
의사 선생님, 제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기 자리
알베르 카뮈
일치의 욕구
자유
복화술사
없어진 편지들
백오십 번째 편지
베르바니아
임신 중절
종이 위의 키스
‘다락방의’ 문학
청첩장
내게 국경이 열렸어
무의식은 죽음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