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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촌유래

과거 연동 마을의 설촌 연대는 약 400여년전쯤인 조선조 33년(1600)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무렵 최초의 설촌터는 현재의 연동 서남쪽에 있는 속칭 섯동네(西洞)로 「산물낭우영」 과 「고당의 집터」 라 불리는 곳으로 추정 되고 있다. 이곳에 처음 이주해 온 성씨는 김(金)씨와 고(高)씨로 전해지고 있는데 설촌 초창기의 마을 이름은 「잇골」 또는 「연골」 이라 하였다. 그 후 타지역에서 사람들이 계속 이주하게되 마을의 형태를 이름에 따라 연골은 「연동촌」 또는 「연동」 으로 널리 불리게 된다. 이같은 지명의 유래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지형을 남조(南朝) 북서쪽 일대에 터를 잡았던데서 연유한다는 설이다.

제주성안을 중심으로 하여 자연마을의 하나로 마을을 형성했던 연동은 1730년경을 전후해서는 상동(上洞)과 도호동(道好洞)으로 분산 발전해가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이 마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후 2 백여년 세월이 흐르면서 5개의 자연마을이 형성 된다. 1800년대에도 연동에는 많은 성씨들이 입주가 계속돼 성두동(星斗洞)과 월동(月洞) 귀양동(貴襄洞,귀아랑),주수동(株樹洞), 삼동동(三董洞)등 새로운 취락이 이루어졌다.

선조시대 행정구조가 제주목 중면 연동리였던 이 마을은 1905년에는 이장제가 도입되고 1917년 6월에는 다시 구장제로 바뀌어 1951년 4월까지 계속 된다.

1948년의 4ㆍ3은 산쪽에 위치해 있던 이마을에도 상당한 인적 물적 피해를 가져왔다. 4ㆍ3 발발 이듬해인 1949년 1월 중산간마을의 소개령이 내려진후 3월에는 도호동에 성이 둘러져서 이웃마을의 주민들까지도 수용했다.

성을 쌓은 후 이마을은 두차례에 걸쳐 산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는 했는데 1955년께부터 마을은 재건되기 시작했으나 귀아랑등은 복구되지 않았다. 이후 「연동」은 1955년 9월 1일 제주읍이 시로 승격, 시제실시 하게 되면서 25개리를 40개 동으로 개편 되면서 불리게 됐다.1962년 이후 한때 연동은 오라동에 통폐합 되기도 했으나 1979년에 다시 독립되었다. 연동은 1970년대 초부터 새마을사업에 의해 도로가 개설되는가 하면 전화사업 등이 이루어 지고 마을회관과 공동창고등도 지어지는등 서서히 발전의 기지개를 펴게 된다.

그러나 연동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1979년 이지역에 이른바 「신제주」가 건설되면서 부터다. 신제주의 건설은 중산간 지역의 작은 취락들로 구성됐던 연동을 대단위 신흥도시로 발전 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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