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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료석물의 형식과 배치에 대한 자료입니다.

분료석물의 형식과배치

조선시대 사대부가묘의 석물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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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가 묘의 석물과 그 석물을 배치하는 방법은 왕릉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면도 있다. 우선 왕릉의 경우 원장(垣墻)을 곡장(曲墻)으로 쌓는데, 사대부가에서는 ‘사성(莎城)’이라고 해서 무덤 뒤에 반달 모양으로 두둑하게 토성(土城)을 둘러 쌓는다. 사성(莎城)의 양쪽 끝 앞에, 또는 무덤 앞 좌우 끝에 망주석(望柱石)을 세운다.

왕릉의 경우 대개 정자각(丁字閣)을 따로 세우기 때문에 혼유석(魂遊石)이자 상석(床石)인 네모진 커다란 돌을 능 바로 앞에 놓는다. 그런데 사대부가의 묘는 봉분 바로 앞에 조그마하면서 네모진 ‘혼유석(魂遊石)’을 설치하고 그 앞에 네모지면서 커다란 ‘상석(床石)’을 따로 놓는다. 그러니까 왕릉에서는 혼유석이자 상석을 하나로 마련하는데, 사대부가 묘에서는 혼유석과 상석을 따로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왕릉의 경우 비각(碑閣)을 세우기 때문에 표석을 따로 세우지 않지만, 사대부가의 묘에서는 상석 오른쪽에 빗돌(碑石=表石)을 세운다. 대개 빗돌의 윗머리에 지붕 모양으로 만들어 얹은 것을 ‘비(碑: 이것을 주로 비석이라고 함)’라 하고, 그런 것을 얹지 않고 다만 머리 부분을 둥그스름하게 만든 작은 비석을 ‘갈(碣: 이것을 주로 묘갈이라고 함)’이라고 한다. 사대부가에서는 주로 묘갈(墓碣)을 쓴다.

왕릉의 경우는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丁字閣)을 세우기 때문에 따로 향로석(香爐石)을 만들지 않지만, 사대부가의 묘에서는 정자각(丁字閣)이 없으므로 상석(床石) 바로 앞에 향로석(香爐石)을 설치한다. 향안석(香案石)이라고도 하는데, 무덤의 상석(床石)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로, 주로 탁상 모양을 새긴다. 향로석 아래쪽 좌우에서 동자석(동자석, 童子石)을 서로 마주보게 세우거나, 봉분을 향하여 헌작(獻爵)하는 동자석을 세우기도 한다.

향로석 아래쪽 좌우에서 서로 마주보게 문인석(文人石)을 세운다. 왕릉과 달리 마석(馬石)을 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인석(武人石)을 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무인석은 세우는 일이 거의 없다. 대개 문인석 1쌍을 세우는데, 문인석을 위와 아래에 각 2기씩 2쌍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장명등은 향로석 아래쪽 가운데에 설치한다. 장명등은 장명대(長明臺)라고도 한다.

  • 망주석(望柱石)
  • 혼유석(魂遊石)
  • 상석(床石)과 북돌[鼓石]
  • 향로석(香爐石)ㆍ향안석(香案石)
  • 동자석(童子石)
  • 문인석(文人石)
  • 무인석(武人石)
  • 장명등(長明燈)ㆍ장명대(長明臺)
조선시대 사대부가 묘의 석물 배치도
조선시대 사대부가 묘의 석물 배치도

이 배치도는 국립민속박물관 죽은자, 또한 산자의 공간

무덤: 조선시대 묘제 자료집(2007)에서 그림을 가져와서 편집함

집필자 : 오창명 (제주대학교 학술연구 교수)
담당부서 :
제주시 정보화지원과
담당팀 :
정보지원담당
전화번호 :
Tel) 064-728-2293, Fax) 064-728-2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