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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온다!
유시민 표현의 기술로 돌아오다
1. 표현의 귀재 유시민이 말하는 표현의 기밀!
글쓰기면 글쓰기, 토론이면 토론, 지금은 정치예능 프로그램인 JTBC <썰전>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유시민 작가가 이번에는 독자들에게 표현의 기밀을 전하는 책으로 돌아왔다.
강의와 질의응답이 모두 끝난 뒤 어떤 젊은이가 다가와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제가 부딪치는 문제하고 똑같았어요. 제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 말이 이 책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결국 내면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집을 설계하고 노래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서 표현의 기술에 관해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강연에서 나온 질문과 온라인 상담실에서 주고받았던 말을 정리하고 내용을 보탰습니다. -저자의 말 중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그것을 상대가 공감하게 만드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꽤나 정교한 ‘기술’을 요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평소 많은 독자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문의해 온 글쓰기뿐만 아니라 말하기, 토론하기, 안티 대응 등, 표현을 잘 할 수 있는 모든 궁금증에 대해, 막힘없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 유시민이 그만의 ‘표현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한다.
2. <나는 왜 쓰는가?>
‘정치’라는 말을 이렇게 넓게 해석한다면, 모든 작가는 저마다 나름의 ‘정치적 편향(political bias)’이 있다는 오웰의 주장을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제가 뚜렷한 ‘정치적 편향’을 가진 글쟁이라는 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요. 하지만 저는 글쓰기가 자기표현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해 글을 쓰려면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을 정확하고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론 형성을 위한 글쓰기와 자기표현을 위한 글쓰기는 사실 동전의 앞뒤처럼 들러붙어 있어요. 그걸 구태여 왜 분리하려고 하는지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본문 중에서
정치와 예술은 서로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원합니다. 적어도 글쓰기에서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작가는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진리와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쓴 글이라야 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작가 오웰의 소망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같은 소망을 지녔지만 아직 오웰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소망을 아주 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오웰과 비교하면 저는 아주 평범한 속물입니다. 세속적 성공을 인간적 실패로 여기지 않습니다.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성취, 둘 다를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런 글을 쓰면 상업적 성공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조지 오웰이 성자(聖者)처럼 살았다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저는 오웰의 열혈 팬이 되었을 겁니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든 사람이니까요. -본문 중에서
저는 주로 논리적인 에세이를 씁니다. 그런데도 논리적 추론보다 도덕적 직관에 더 크게 의지합니다. 그럴 리가! 놀라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논리적 추론 없이 곧바로 판단하는 능력을 직관(直觀, intuition)이라고 하지요. “좋아! 멋져!” “싫어! 찜찜해!” 도덕적 미학적 직관은 이런 느낌으로 자기의 존재를 알립니다. 저는 일단 느끼고, 그 다음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이유를 찾습니다. 먼저 논리적으로 추론한 다음 그에 합당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때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냥 좋거나 싫은 경우가 있지요. 저의 추론 능력이 직관적 판단력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도덕적 미학적 직관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억압해서 없애 버리는 사람이 많지만요. -본문 중에서
저자는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 명쾌하게 답한다. 열정을 가지고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글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느낌에 솔직하며, 생각과 감정을 진부하고 상투적이지 않은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표현해 내는 것.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정치적 글쓰기를 구분하지 않으며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다. 작가가 밝힌 왜 쓰는가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쓰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 가는 것, 그것이 결국 표현의 핵심이 아닐까. 그 과정이 바로 우리 삶의 여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3.우리는 왜 잘 표현하지 못하나?
표현의 본질, 마음, 공감,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름을 묻는 게 아닙니다. ‘나’라는 철학적 자아의 특성이 무엇인지 묻는 겁니다. 인간 일반의 본성 위에 그 어떤 ‘자기만의 것’을 세웠는지 말하라는 것이죠. 질문은 간단한데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지해야 해요.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 사회를 보는 관점,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내게 중요한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려고 선택한 방법,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어떠하며 그게 남들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남을 흉내 내는 글밖에 쓰지 못해요. -본문 중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전부인 건 아닙니다. 좋은 문장으로 표현한 생각과 감정이 훌륭해야 합니다. 표현할 가치가 있는 지식, 정보, 논리, 감정, 생각을 내면에 쌓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문장 기술을 배워도 글이 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답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무엇이 내 것이고 뭐가 남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적인 표현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써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에서 멀어져야 한다.” -본문 중에서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으면 남이 쓴 글에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남의 글에 감정 이입하면서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남이 내게 해 주기 바라는 것을 네가 먼저 남에게 해 주어라! 우리가 다 아는 ‘황금률’입니다. 이 법칙은 글쓰기에도 통합니다. 이것이 제가 ‘감’을 얻기 위해 쓰는 방법입니다. -본문 중에서
어린 시절에는 무엇을 배우려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배움보다 느낌이었어요. 여러분도 ‘배우는 책 읽기’를 넘어 ‘느끼는 책 읽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넓고 깊고 섬세하게 느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자텍스트로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능력이 생길 겁니다. -본문 중에서
필담이 대세인 시대, 하루에도 수천수만 개의 글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어떤 글은 수억 명이 읽는다. 반면 어떤 글은 몇 사람의 눈길도 제대로 끌어 보지 못한 채 사라진다. 왜 그럴까?
모든 표현은 결국 나를 찾고, 만들어 가며 그것을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남과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훌륭해야 그에 맞는 표현을 할 수 있으며 타인의 견해에 공감할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이처럼 모든 표현의 근간에는 나와 타인, 세계에 대한 인식과 마음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도록 돕는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잘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표현의 기술을 매개로, 나아가 나와 타인에 대한 존재론적인 사유를 넓힐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4. 대화에서 토론, 글쓰기, 악플 대응까지 표현의 모든 것
강요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 하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고, 그 사람의 견해는 그것대로 존중하면서 그와는 다른 견해를 말과 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남이 내 말을 듣고 곧바로 생각을 바꿀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중 단 한 조각이라도 그 사람의 뇌리에 남아서, 지금 가진 생각에 대해 지극히 사소한 의심이라도 품을 수 있게 한다면 그 대화는 성공한 겁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자신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바꿀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죠. 늘 잘되는 건 아닙니다만, 저는 먼저 이견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공감을 표현한 다음 제 생각을 말합니다. ‘나는 이런 사실이 중요하고, 이런 해석과 판단이 옳다고 생각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누구든 상대방이 자기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느끼면 그 사람의 말을 더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본문 중에서
이성과 감정은 뒤섞여서 작동합니다. 옳지 않은 주장을 들으면 화가 나지만, 똑같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수긍하기도 하는 게 사람입니다. 물론 논쟁을 하다 보면 이기고 싶은 본능이 고개를 들지요. 차분하게, 감정을 절제하고, 인신공격을 삼가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토론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토론을 하다 보면 자꾸 감정이 올라오거든요. 저한테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주먹다짐이든 ‘키보드 배틀’이든, 싸움은 다 이기고 싶죠. 그렇지만 말이나 글은 승패를 가리기 어렵습니다. -본문 중에서
악플은 그 대상이 된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닙니다. 악플을 쓴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남루하며 황폐한지 보여 주는 증거일 뿐이에요. 남의 문제를 가지고 왜 내가 고민합니까?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요. 위에서 소개한 악플은 그것을 쓴 사람의 인격과 내면을 보여 줄 뿐, 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악플 다는 데도 열정이 필요한데, 나름 참 애쓰면서 열심히 사는구나.” 그러면서 제가 해야 할 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집중합니다. 악플과 싸우는 데는 단 1초도 쓰지 않습니다.
-본문 중에서
내 스스로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고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것이 없으면 그냥 무시합니다. 그런 댓글은 누군가 나에게 쏜 화살입니다. 그걸 쏘지 못하게 할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지 않으며 대부분 누군지도 모릅니다. 누군지 안다고 해도 멀리 있기 때문에, 그들이 쏘는 화살은 제게 닿지 못합니다. 저는 그 화살을 주워 내 자신에게 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닙니다. 악플 때문에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하거나 우울해 하는 것은 ‘악플러’가 쏜 화살을 주워서 스스로 자기 심장에 꽂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악플러가 쏜 화살은 땅바닥에 굴러다니며 사람들 발에 차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품격 있게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는 진솔하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타인과 교감하려 하지만 도무지 들을 생각이 없는 상대를 만나서 화가 날 수도 있고, 토론이 이어지면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하고, 악의적인 댓글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런 이유들이 모여 표현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표현의 어려움들에 대해 온갖 논쟁을 겪어 보았고 ‘구름 안티’를 몰고 다녔던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대화를 계속 하고, 그로 인해 작은 변화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의 방법을 제시한다.
5.모든 영역의 표현은 서로 통한다
글쟁이 유시민과 그림쟁이 정훈이의 콜라보레이션
우리 두 사람은 오래 알고 지냈지만 함께 무엇인가 해 보는 건 처음입니다. 정훈이의 만화가 글을 꾸미는 삽화로 들어온 게 아님을 독자들은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유시민의 글과 정훈이의 만화가 각자 콧대가 높지만 잘 어울리는 벗이 되기를 바라면서 책을 만들었는데 결과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듯합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표현의 기술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저자의 말 중에서
장르는 달라도 표현의 기술은 서로 통한다.
대한민국 대표 글쟁이 ‘유시민’, <씨네 21>에서 20여 년간 만화를 연재한 ‘그림쟁이 정훈이’가 함께한 콜라보레이션. 각자의 자리에서 대표 작가로 인정받은 그들은 표현하는 내용도, 방식도, 기술도 서로 다르기에 더욱 독특한 콜라보를 보여준다.
어디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만화가 특유의 위트 있고 진솔한 삶의 여정을 통해 정훈이 작가만의 ‘표현의 기술’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에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이 한 권의 책에 자연스럽게 섞여 장르는 다르지만 각자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풀어내는 ‘표현의 기술’은 서로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시민 표현의 기술로 돌아오다
1. 표현의 귀재 유시민이 말하는 표현의 기밀!
글쓰기면 글쓰기, 토론이면 토론, 지금은 정치예능 프로그램인 JTBC <썰전>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유시민 작가가 이번에는 독자들에게 표현의 기밀을 전하는 책으로 돌아왔다.
강의와 질의응답이 모두 끝난 뒤 어떤 젊은이가 다가와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제가 부딪치는 문제하고 똑같았어요. 제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 말이 이 책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결국 내면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집을 설계하고 노래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서 표현의 기술에 관해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강연에서 나온 질문과 온라인 상담실에서 주고받았던 말을 정리하고 내용을 보탰습니다. -저자의 말 중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그것을 상대가 공감하게 만드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꽤나 정교한 ‘기술’을 요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평소 많은 독자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문의해 온 글쓰기뿐만 아니라 말하기, 토론하기, 안티 대응 등, 표현을 잘 할 수 있는 모든 궁금증에 대해, 막힘없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 유시민이 그만의 ‘표현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한다.
2. <나는 왜 쓰는가?>
‘정치’라는 말을 이렇게 넓게 해석한다면, 모든 작가는 저마다 나름의 ‘정치적 편향(political bias)’이 있다는 오웰의 주장을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제가 뚜렷한 ‘정치적 편향’을 가진 글쟁이라는 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요. 하지만 저는 글쓰기가 자기표현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해 글을 쓰려면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을 정확하고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론 형성을 위한 글쓰기와 자기표현을 위한 글쓰기는 사실 동전의 앞뒤처럼 들러붙어 있어요. 그걸 구태여 왜 분리하려고 하는지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본문 중에서
정치와 예술은 서로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원합니다. 적어도 글쓰기에서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작가는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진리와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쓴 글이라야 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작가 오웰의 소망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같은 소망을 지녔지만 아직 오웰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소망을 아주 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오웰과 비교하면 저는 아주 평범한 속물입니다. 세속적 성공을 인간적 실패로 여기지 않습니다.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성취, 둘 다를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런 글을 쓰면 상업적 성공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조지 오웰이 성자(聖者)처럼 살았다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저는 오웰의 열혈 팬이 되었을 겁니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든 사람이니까요. -본문 중에서
저는 주로 논리적인 에세이를 씁니다. 그런데도 논리적 추론보다 도덕적 직관에 더 크게 의지합니다. 그럴 리가! 놀라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논리적 추론 없이 곧바로 판단하는 능력을 직관(直觀, intuition)이라고 하지요. “좋아! 멋져!” “싫어! 찜찜해!” 도덕적 미학적 직관은 이런 느낌으로 자기의 존재를 알립니다. 저는 일단 느끼고, 그 다음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이유를 찾습니다. 먼저 논리적으로 추론한 다음 그에 합당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때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냥 좋거나 싫은 경우가 있지요. 저의 추론 능력이 직관적 판단력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도덕적 미학적 직관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억압해서 없애 버리는 사람이 많지만요. -본문 중에서
저자는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 명쾌하게 답한다. 열정을 가지고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글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느낌에 솔직하며, 생각과 감정을 진부하고 상투적이지 않은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표현해 내는 것.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정치적 글쓰기를 구분하지 않으며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다. 작가가 밝힌 왜 쓰는가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쓰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 가는 것, 그것이 결국 표현의 핵심이 아닐까. 그 과정이 바로 우리 삶의 여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3.우리는 왜 잘 표현하지 못하나?
표현의 본질, 마음, 공감,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름을 묻는 게 아닙니다. ‘나’라는 철학적 자아의 특성이 무엇인지 묻는 겁니다. 인간 일반의 본성 위에 그 어떤 ‘자기만의 것’을 세웠는지 말하라는 것이죠. 질문은 간단한데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지해야 해요.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 사회를 보는 관점,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내게 중요한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려고 선택한 방법,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어떠하며 그게 남들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남을 흉내 내는 글밖에 쓰지 못해요. -본문 중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전부인 건 아닙니다. 좋은 문장으로 표현한 생각과 감정이 훌륭해야 합니다. 표현할 가치가 있는 지식, 정보, 논리, 감정, 생각을 내면에 쌓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문장 기술을 배워도 글이 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답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무엇이 내 것이고 뭐가 남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적인 표현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써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에서 멀어져야 한다.” -본문 중에서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으면 남이 쓴 글에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남의 글에 감정 이입하면서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남이 내게 해 주기 바라는 것을 네가 먼저 남에게 해 주어라! 우리가 다 아는 ‘황금률’입니다. 이 법칙은 글쓰기에도 통합니다. 이것이 제가 ‘감’을 얻기 위해 쓰는 방법입니다. -본문 중에서
어린 시절에는 무엇을 배우려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배움보다 느낌이었어요. 여러분도 ‘배우는 책 읽기’를 넘어 ‘느끼는 책 읽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넓고 깊고 섬세하게 느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자텍스트로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능력이 생길 겁니다. -본문 중에서
필담이 대세인 시대, 하루에도 수천수만 개의 글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어떤 글은 수억 명이 읽는다. 반면 어떤 글은 몇 사람의 눈길도 제대로 끌어 보지 못한 채 사라진다. 왜 그럴까?
모든 표현은 결국 나를 찾고, 만들어 가며 그것을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남과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훌륭해야 그에 맞는 표현을 할 수 있으며 타인의 견해에 공감할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이처럼 모든 표현의 근간에는 나와 타인, 세계에 대한 인식과 마음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도록 돕는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잘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표현의 기술을 매개로, 나아가 나와 타인에 대한 존재론적인 사유를 넓힐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4. 대화에서 토론, 글쓰기, 악플 대응까지 표현의 모든 것
강요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 하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고, 그 사람의 견해는 그것대로 존중하면서 그와는 다른 견해를 말과 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남이 내 말을 듣고 곧바로 생각을 바꿀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중 단 한 조각이라도 그 사람의 뇌리에 남아서, 지금 가진 생각에 대해 지극히 사소한 의심이라도 품을 수 있게 한다면 그 대화는 성공한 겁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자신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바꿀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죠. 늘 잘되는 건 아닙니다만, 저는 먼저 이견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공감을 표현한 다음 제 생각을 말합니다. ‘나는 이런 사실이 중요하고, 이런 해석과 판단이 옳다고 생각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누구든 상대방이 자기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느끼면 그 사람의 말을 더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본문 중에서
이성과 감정은 뒤섞여서 작동합니다. 옳지 않은 주장을 들으면 화가 나지만, 똑같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수긍하기도 하는 게 사람입니다. 물론 논쟁을 하다 보면 이기고 싶은 본능이 고개를 들지요. 차분하게, 감정을 절제하고, 인신공격을 삼가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토론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토론을 하다 보면 자꾸 감정이 올라오거든요. 저한테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주먹다짐이든 ‘키보드 배틀’이든, 싸움은 다 이기고 싶죠. 그렇지만 말이나 글은 승패를 가리기 어렵습니다. -본문 중에서
악플은 그 대상이 된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닙니다. 악플을 쓴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남루하며 황폐한지 보여 주는 증거일 뿐이에요. 남의 문제를 가지고 왜 내가 고민합니까?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요. 위에서 소개한 악플은 그것을 쓴 사람의 인격과 내면을 보여 줄 뿐, 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악플 다는 데도 열정이 필요한데, 나름 참 애쓰면서 열심히 사는구나.” 그러면서 제가 해야 할 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집중합니다. 악플과 싸우는 데는 단 1초도 쓰지 않습니다.
-본문 중에서
내 스스로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고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것이 없으면 그냥 무시합니다. 그런 댓글은 누군가 나에게 쏜 화살입니다. 그걸 쏘지 못하게 할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지 않으며 대부분 누군지도 모릅니다. 누군지 안다고 해도 멀리 있기 때문에, 그들이 쏘는 화살은 제게 닿지 못합니다. 저는 그 화살을 주워 내 자신에게 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닙니다. 악플 때문에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하거나 우울해 하는 것은 ‘악플러’가 쏜 화살을 주워서 스스로 자기 심장에 꽂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악플러가 쏜 화살은 땅바닥에 굴러다니며 사람들 발에 차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품격 있게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는 진솔하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타인과 교감하려 하지만 도무지 들을 생각이 없는 상대를 만나서 화가 날 수도 있고, 토론이 이어지면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하고, 악의적인 댓글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런 이유들이 모여 표현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표현의 어려움들에 대해 온갖 논쟁을 겪어 보았고 ‘구름 안티’를 몰고 다녔던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대화를 계속 하고, 그로 인해 작은 변화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의 방법을 제시한다.
5.모든 영역의 표현은 서로 통한다
글쟁이 유시민과 그림쟁이 정훈이의 콜라보레이션
우리 두 사람은 오래 알고 지냈지만 함께 무엇인가 해 보는 건 처음입니다. 정훈이의 만화가 글을 꾸미는 삽화로 들어온 게 아님을 독자들은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유시민의 글과 정훈이의 만화가 각자 콧대가 높지만 잘 어울리는 벗이 되기를 바라면서 책을 만들었는데 결과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듯합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표현의 기술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저자의 말 중에서
장르는 달라도 표현의 기술은 서로 통한다.
대한민국 대표 글쟁이 ‘유시민’, <씨네 21>에서 20여 년간 만화를 연재한 ‘그림쟁이 정훈이’가 함께한 콜라보레이션. 각자의 자리에서 대표 작가로 인정받은 그들은 표현하는 내용도, 방식도, 기술도 서로 다르기에 더욱 독특한 콜라보를 보여준다.
어디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만화가 특유의 위트 있고 진솔한 삶의 여정을 통해 정훈이 작가만의 ‘표현의 기술’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에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이 한 권의 책에 자연스럽게 섞여 장르는 다르지만 각자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풀어내는 ‘표현의 기술’은 서로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제1장 왜 쓰는가
제2장 제가 진보냐고요
제3장 악플을 어찌할꼬
제4장 누가 내 말을 듣는단 말인가
제5장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제6장 베스트셀러는 특별한 게 있다
제7장 감정이입? 어쩌란 말인가
제8장 뭐가 표절이라는 거야
제9장 비평은 누가 비평하지
제10장 세상에, 나도 글을 써야 한다니!
제11장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 -나는 어쩌다가 만화가가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