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자료4.3 연구총서 1
4.3과 미국
- 저자/역자
- 허상수 지음
- 펴낸곳
- 다락방
- 발행년도
- 2015
- 형태사항
- 559p.; 23cm
- 총서사항
- 4.3 연구총서; 1
- ISBN
- 9788978580687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911.071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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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자료센터 보존서고 | JG000000351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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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JG0000003515
- 상태/반납예정일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종합자료센터 보존서고
책 소개
<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 발생 70년이 되었다. 제주 사람들에게 4월은 기억하기 괴로운 계절로 다가온다.
무려 3만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이 엄청난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찌하여 이토록 확대된 것일까?
민간인 대학살의 광풍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날개짓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왜 하필이면 조그만 제주 섬에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리고 시작과 전개과정에 이르는 원인은 무엇이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저자는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누구에 의해 제주 섬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게 되고 대비극으로 치닫게 되었는지를 당시의 자료들을 분석하며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밝히고 그 책임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주도로 그어진 38선 남북분단으로 시작된 미군정의 통치과정에서의 미국의 남한점령정책 실패가 비극의 시작이고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그리고 준비 안된 미국의 남한 점령정책을 이용하여 민족의 운명보다는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만을 추구한 이승만, 조병옥 등 당시의 국내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도 큰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무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소수의 인원으로 중무장한 대규모의 군사력에 무모하게 대항한 항쟁지도부의 책임도 크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제주 섬에서 일어난 4.3 사건을 기준점으로 삼아 미군의 한반도 점령과 분단, 이념 대립을 둘러 싼 정치 갈등, 그리고 전쟁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해석과 평가와 분석 그리고 종합적 판단의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미.소.영.중 4대 강대국의 대한(對韓) 정책의 흐름과 영토 분할, 점령 과정에서의 특정국가의 정책과 군대, 정치인과 군대, 경찰과 민간인의 말과 행동의 취사선택에 따라 크게 보면 전쟁과 대립, 갈등의 길과 상생과 평화라는 두 갈래 길이 나누어져 있었다.
만약 이 연쇄고리의 어느 것과 어느 것이 결락되었더라면,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이 연결되었다면 우리 민족의 운명과 동아시아 국가와 세계정치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제주 섬과 미군정, 4.3에 관한 것으로서 미군의 38선 이남 점령과 민족 분단, 미군정의 대탄압, 제주 섬에서의 무장봉기, 미군정과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의 민간인 대학살에 관한 것이다.
둘째, <1948년 체제>의 기원을 밝혀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기승을 부리며 지배이념으로 작동하고 있는 보수우익의 금과옥조는 언제부터 발원하여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암흑 상자를 열어보자’ 에서
저자 허상수, 이제야 털어 놓을 수 있다
왜 이 두꺼운 책을 쓰게 되었나?
- 2014년 10월, 제주4·3평화재단의 의뢰로 4·3관련 외국사료를 수집하기 위해 미 기록문서관리청(NARA)을 다녀왔다. 귀국길에 뉴욕시 한인교사회장 김은주 박사의 초청으로 강정국제평화운동을 담은 레지스 트렘블레이 감독의 <제주의 영혼> 시사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 4·3이 소개되어 청중들과 토론하게 되었다. 그때 브룩클린에서 찾아 온 한 주부는 ‘이런 역사적 사실이 한국에서 일어난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자책하는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나도 이런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은퇴한 재미 정치학자는 이런 한국현대사에 대한 책을 직접 써 보라고 강권하였다. 본인은 1988년 4월, 사건 발생 40년 뒤에서야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제주사회문제협의회 주최 학술토론회를 준비하고 사회까지 맡았었다. 그동안 4·3에 관해 몇 편의 글을 쓰긴 했지만 책까지 쓰지는 못했다. 어떤 논문은 영어와 일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더욱이 미국은 4·3에 관한 한 움직일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고 생각해 왔다. 더 늦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고 작심하고 썼다. 이미 제민일보사특별취재팀의 4·3항쟁실록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고창훈·양정임·허호준 박사의 작업들이 선행되어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미국의 학자 커밍스의 일본 도쿄 강연이 중요한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이 있는가?
- 그동안 조사 작업에서는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간접적이고 수동적인 것으로 보아 왔던 것 같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결론은 미국은 4·3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나는 이런 우회적 서술보다도 미국이 4·3전후의 사건 원인 제공뿐만 아니라 전개과정, 결과에 미친 직접적 관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들었다. 무엇보다도 미군의 남한 직접 점령과 분단, 민족 재결합의 좌절 등이 제주도민학살을 가져 온 구조적 원인이라고 보았고, 1947년 3월 1일 미군정 휘하 경찰의 무차별 발포치사사건, 이후 제주도민에 대한 대탄압과 대학살과정에 미군정과 전술부대의 직접 개입과 명령, 통제 사실을 들춰내려고 했다.
좀 구체적으로 예시를 해 볼 수 있나?
- 4·3봉기가 일어났을 때 미군정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단순한 ‘치안상황’으로 판단했다. 5·10선거를 앞두고 국제연합조선임시위원단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우려하기 시작하자 미군정이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48년 4월 16일부터 본격적인 군사조치로서 병력이동명령이 하달되었다. 이 작전 명령서를 검토해 보면 미군정의 군사적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전쟁지도체계는 대통령의 군사통수권 아래 맥아더 사령관의 통제권, 하지장군의 작전권, 미 육군 보병 제24군단 제6사단장과 그 휘하 제20연대장 브라운 대령으로 연결된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부터 미군정 휘하 경찰병력과 함께 군대가 직접 강경진압작전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미 육군 제6사단 제20연대 휘하 전술부대가 주기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제주섬에 투입되고, 이동하고 있음을 미군정 보고서는 빠트리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그 외의 이 책의 특징은?
-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결론을 넘어서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인권과 정의의 시각, 이행기 정의의 시각에서 이 4·3사건을 해석하는 일이었다.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를 한국에서는 ‘과거청산’으로 단순화시켜 버리고 말았는데 너무 순진한 접근이었다. 이행기 정의 실현은 구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과거 민간인학살이나 국가기관에 의한 고문치사 등 불미스런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여 사실을 인정받는 것(recognition), 그에 따라 책임을 묻는 것(responsibility), 피해배상(reparation), 공동체 재건(reconstruction)과 재발 방지, 제도 개혁(reform), 기억(remember) 등을 모두 거치는 상호작용하는 일련의 과정과 절차를 의미한다. 2000년 제정, 시행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특별법은 국민 화합과 인권 신장 등을 입법 목적으로 했으나 피해 구제나 책임 추궁이라는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그래서 진상조사는 해 놓고도 아무런 후속조치를 별도 추진하지 못한 입법적 한계가 있다. 이걸 넘어서려면 사건 해석에 보다 적극적으로 인권과 정의의 시각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책하지 않는 사회는 선진사회의 자격이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문화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책을 쓰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 제주4·3평화재단 출판지원 공모에 지원하기 위해 서두르다보니 자료 검토가 충분히 되지 못한 게 아쉽다. 워낙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보니 연표 기재사항조차 확인할 게 많았다. 초고 이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바로잡느라 온몸이 온통 쑤실 만큼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이번에 이만큼이라도 쓸 수 있게 지원해 준 재단 이사장과 세 분의 익명 심사위원, 재단 관계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 서울을 시작으로 이런 시각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책잔치를 이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제주뿐만 아니라 광주와 여수 등지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연구공동체를 구성해 보려고 한다. 나아가 미국 시민과 해외동포를 상대로 북콘서트 투어를 시도해 볼 계획이다. 미국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 댈러스와 시카고, 뉴욕과 보스톤, 워싱턴 D.C 등지에서 미국 시민과 동포들에게 직접 이 중대한 사건의 진실을 공유하고,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 9월초에 한미일 공동학술세미나를 미국에서 열 계획인데 비용 확보가 성공의 관건이다.
제주 4·3 사건 발생 70년이 되었다. 제주 사람들에게 4월은 기억하기 괴로운 계절로 다가온다.
무려 3만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이 엄청난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찌하여 이토록 확대된 것일까?
민간인 대학살의 광풍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날개짓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왜 하필이면 조그만 제주 섬에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리고 시작과 전개과정에 이르는 원인은 무엇이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저자는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누구에 의해 제주 섬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게 되고 대비극으로 치닫게 되었는지를 당시의 자료들을 분석하며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밝히고 그 책임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주도로 그어진 38선 남북분단으로 시작된 미군정의 통치과정에서의 미국의 남한점령정책 실패가 비극의 시작이고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그리고 준비 안된 미국의 남한 점령정책을 이용하여 민족의 운명보다는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만을 추구한 이승만, 조병옥 등 당시의 국내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도 큰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무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소수의 인원으로 중무장한 대규모의 군사력에 무모하게 대항한 항쟁지도부의 책임도 크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제주 섬에서 일어난 4.3 사건을 기준점으로 삼아 미군의 한반도 점령과 분단, 이념 대립을 둘러 싼 정치 갈등, 그리고 전쟁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해석과 평가와 분석 그리고 종합적 판단의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미.소.영.중 4대 강대국의 대한(對韓) 정책의 흐름과 영토 분할, 점령 과정에서의 특정국가의 정책과 군대, 정치인과 군대, 경찰과 민간인의 말과 행동의 취사선택에 따라 크게 보면 전쟁과 대립, 갈등의 길과 상생과 평화라는 두 갈래 길이 나누어져 있었다.
만약 이 연쇄고리의 어느 것과 어느 것이 결락되었더라면,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이 연결되었다면 우리 민족의 운명과 동아시아 국가와 세계정치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제주 섬과 미군정, 4.3에 관한 것으로서 미군의 38선 이남 점령과 민족 분단, 미군정의 대탄압, 제주 섬에서의 무장봉기, 미군정과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의 민간인 대학살에 관한 것이다.
둘째, <1948년 체제>의 기원을 밝혀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기승을 부리며 지배이념으로 작동하고 있는 보수우익의 금과옥조는 언제부터 발원하여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암흑 상자를 열어보자’ 에서
저자 허상수, 이제야 털어 놓을 수 있다
왜 이 두꺼운 책을 쓰게 되었나?
- 2014년 10월, 제주4·3평화재단의 의뢰로 4·3관련 외국사료를 수집하기 위해 미 기록문서관리청(NARA)을 다녀왔다. 귀국길에 뉴욕시 한인교사회장 김은주 박사의 초청으로 강정국제평화운동을 담은 레지스 트렘블레이 감독의 <제주의 영혼> 시사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 4·3이 소개되어 청중들과 토론하게 되었다. 그때 브룩클린에서 찾아 온 한 주부는 ‘이런 역사적 사실이 한국에서 일어난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자책하는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나도 이런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은퇴한 재미 정치학자는 이런 한국현대사에 대한 책을 직접 써 보라고 강권하였다. 본인은 1988년 4월, 사건 발생 40년 뒤에서야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제주사회문제협의회 주최 학술토론회를 준비하고 사회까지 맡았었다. 그동안 4·3에 관해 몇 편의 글을 쓰긴 했지만 책까지 쓰지는 못했다. 어떤 논문은 영어와 일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더욱이 미국은 4·3에 관한 한 움직일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고 생각해 왔다. 더 늦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고 작심하고 썼다. 이미 제민일보사특별취재팀의 4·3항쟁실록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고창훈·양정임·허호준 박사의 작업들이 선행되어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미국의 학자 커밍스의 일본 도쿄 강연이 중요한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이 있는가?
- 그동안 조사 작업에서는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간접적이고 수동적인 것으로 보아 왔던 것 같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결론은 미국은 4·3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나는 이런 우회적 서술보다도 미국이 4·3전후의 사건 원인 제공뿐만 아니라 전개과정, 결과에 미친 직접적 관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들었다. 무엇보다도 미군의 남한 직접 점령과 분단, 민족 재결합의 좌절 등이 제주도민학살을 가져 온 구조적 원인이라고 보았고, 1947년 3월 1일 미군정 휘하 경찰의 무차별 발포치사사건, 이후 제주도민에 대한 대탄압과 대학살과정에 미군정과 전술부대의 직접 개입과 명령, 통제 사실을 들춰내려고 했다.
좀 구체적으로 예시를 해 볼 수 있나?
- 4·3봉기가 일어났을 때 미군정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단순한 ‘치안상황’으로 판단했다. 5·10선거를 앞두고 국제연합조선임시위원단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우려하기 시작하자 미군정이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48년 4월 16일부터 본격적인 군사조치로서 병력이동명령이 하달되었다. 이 작전 명령서를 검토해 보면 미군정의 군사적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전쟁지도체계는 대통령의 군사통수권 아래 맥아더 사령관의 통제권, 하지장군의 작전권, 미 육군 보병 제24군단 제6사단장과 그 휘하 제20연대장 브라운 대령으로 연결된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부터 미군정 휘하 경찰병력과 함께 군대가 직접 강경진압작전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미 육군 제6사단 제20연대 휘하 전술부대가 주기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제주섬에 투입되고, 이동하고 있음을 미군정 보고서는 빠트리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그 외의 이 책의 특징은?
-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결론을 넘어서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인권과 정의의 시각, 이행기 정의의 시각에서 이 4·3사건을 해석하는 일이었다.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를 한국에서는 ‘과거청산’으로 단순화시켜 버리고 말았는데 너무 순진한 접근이었다. 이행기 정의 실현은 구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과거 민간인학살이나 국가기관에 의한 고문치사 등 불미스런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여 사실을 인정받는 것(recognition), 그에 따라 책임을 묻는 것(responsibility), 피해배상(reparation), 공동체 재건(reconstruction)과 재발 방지, 제도 개혁(reform), 기억(remember) 등을 모두 거치는 상호작용하는 일련의 과정과 절차를 의미한다. 2000년 제정, 시행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특별법은 국민 화합과 인권 신장 등을 입법 목적으로 했으나 피해 구제나 책임 추궁이라는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그래서 진상조사는 해 놓고도 아무런 후속조치를 별도 추진하지 못한 입법적 한계가 있다. 이걸 넘어서려면 사건 해석에 보다 적극적으로 인권과 정의의 시각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책하지 않는 사회는 선진사회의 자격이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문화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책을 쓰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 제주4·3평화재단 출판지원 공모에 지원하기 위해 서두르다보니 자료 검토가 충분히 되지 못한 게 아쉽다. 워낙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보니 연표 기재사항조차 확인할 게 많았다. 초고 이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바로잡느라 온몸이 온통 쑤실 만큼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이번에 이만큼이라도 쓸 수 있게 지원해 준 재단 이사장과 세 분의 익명 심사위원, 재단 관계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 서울을 시작으로 이런 시각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책잔치를 이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제주뿐만 아니라 광주와 여수 등지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연구공동체를 구성해 보려고 한다. 나아가 미국 시민과 해외동포를 상대로 북콘서트 투어를 시도해 볼 계획이다. 미국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 댈러스와 시카고, 뉴욕과 보스톤, 워싱턴 D.C 등지에서 미국 시민과 동포들에게 직접 이 중대한 사건의 진실을 공유하고,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 9월초에 한미일 공동학술세미나를 미국에서 열 계획인데 비용 확보가 성공의 관건이다.
목차
암흑상자를 열어보자
제1장 미군의 직접점령
제2장 분단과 재결합의 길
제3장 대탄압
제4장 반란의 '부재 증명'
제5장 대학살
제6장 대학살과 무장봉기의 후폭풍
제7장 '1948년 체제'의 기원과 진실
4.3 연표
미주
연표의 주
첨고문헌
찾아보기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