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문학동네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장편소설
- 저자/역자
- 윤대녕 지음
- 펴낸곳
- 문학동네
- 발행년도
- 2016
- 형태사항
- 249p.; 20cm
- 총서사항
- 문학동네 장편소설
- ISBN
- 9788954639637
- 분류기호
- 한국십진분류법->813.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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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북카페 | JG0000003492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JG0000003492
- 상태/반납예정일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북카페
책 소개
우리는 세상의 난민 같은 존재들
외롭게 헤매는 마음 위로 첫눈처럼 내리는 ‘가족’이라는 말
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로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탐색해온 작가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이 출간되었다.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고요히 찾아드는 희망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2005) 이후 꼭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당시 제목은 ‘피에로들의 밤’이었다)되었던 이 작품은 본연의 얼굴을 잃은 채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바로 그 ‘피에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듯, 윤대녕은 수년 전부터 ‘도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해왔다. 가족의 해체를 비롯,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을 주시해왔던 터이다. 결국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됨으로써 심각하게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이들을 통해 작가가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물이 바로 『피에로들의 집』이다. 인물들이 입은 상처가 너무도 깊어서 도저히 상대를 향해 열릴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슬며시 그 빗장을 풀 때쯤, 우리는 이 황폐한 세계 안에서 고유의 의미와 어감이 휘발되어버린 “가족”이라는 말이 어느덧 새로운 의미와 감각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절대적인 타인이 존재하지 않듯이, 절대적인 자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아.
다만 관계라는 게 존재할 뿐이지.”
실패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김명우가 ‘마마’의 제안으로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입주하면서 피에로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곳에는 수난의 현대사를 외롭게 통과해온 마마(‘대비마마’의 줄임말로 설명되지만, 상처 입은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거처 안으로 불러들인 ‘어머니’로서의 마마이기도 하다)와 그녀의 조카로 생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남의 집 정원에 심어놓은 나무”처럼 위태롭게 살아가는 김현주, “남들보다 조금 더 안정적이고 조금 더 기득권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그동안 경쟁적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살아왔”음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진작가 박윤정,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충격적인 죽음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휴학생 윤태와 고등학생 정민이 입주해 있다.
사랑했던 여자 난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후, 관계를 끝낼 수도 그렇다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김명우는 그녀의 자취를 좇는 한편, 일층에 위치한 북카페 ‘아몬드나무’를 운영하며 무너져버린 삶의 리듬을 차츰 되찾아간다. 또한 그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모인 존재들의 상처를 돌보고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문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돕는 방법이 달라 마마와 대립하기도 하고, 침몰중인 배에 탑승한 채 질식해가는 악몽을 꾼다는 윤태의 고백을 들으며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의식을 깨닫기도 한다.
이렇듯 그는 점차 “실제적인 감각으로 순수한 타인에 대한 감정을 회복”하게 된다. 언제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연결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유대감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함께 그는 ‘줄리’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난희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저녁이 되면 다들 돌아올 겁니다.”
혈연이나 제도가 아닌 오로지 상처의 유대만으로 세워진 이 집에서 유독 눈여겨보게 되는 행위는 바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밖에서 헤매던 그들은 어찌되었건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고, 긴 여행을 떠나면서 곧 돌아오겠노라 약속하며, 오랫동안 집을 비우려는 이에게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까닭에 어쩌면, 『피에로들의 집』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 바로 ‘아몬드나무 하우스’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유대감을 잃어버린 채 홀로 남았다고 여기는 이들을 한데 모으고 품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이며 제 호흡을 찾도록 돕는 바흐의 <평균율>이 흐르고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의미가 담긴 고흐의 <꽃 핀 아몬드나무>가 걸린 일층의 북카페. 마마, 현주, 윤정, 윤태, 정민, 명우 여섯 명이 모두 둘러앉아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누는 긴 목제식탁이 놓인 이층 마마의 집. 각자의 방이 위치한 삼층과 사층, 그리고 유리로 만든 온실을 갖춘 옥상까지.
윤대녕이 11년 만에 내놓는 이번 작품에는 여전히 작가 특유의 배경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빛나고 있다.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내부와 이를 둘러싼 외부 성북동의 모습이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져가는 지금 여기의 풍경을 영원히 남기려는 의지처럼. 이와 함께 유독 이번 작품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작가의 모습이다. “소설의 상상력으로는 미처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재난들을 지켜보면서 그때마다 무력한 화자(話者)로 전락한 느낌이 들어 매번 진저리를 쳤다”(‘작가의 말’)는 고백처럼,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로들의 집』 안에 사회적 재난, 그 참혹한 광경의 조각과 동시대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새겨넣었다. “삶은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존속되게 마련이므로 다시 또 쓸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감”을 말하는 윤대녕의 이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외롭게 헤매는 마음 위로 첫눈처럼 내리는 ‘가족’이라는 말
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로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탐색해온 작가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이 출간되었다.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고요히 찾아드는 희망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2005) 이후 꼭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당시 제목은 ‘피에로들의 밤’이었다)되었던 이 작품은 본연의 얼굴을 잃은 채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바로 그 ‘피에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듯, 윤대녕은 수년 전부터 ‘도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해왔다. 가족의 해체를 비롯,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을 주시해왔던 터이다. 결국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됨으로써 심각하게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이들을 통해 작가가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물이 바로 『피에로들의 집』이다. 인물들이 입은 상처가 너무도 깊어서 도저히 상대를 향해 열릴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슬며시 그 빗장을 풀 때쯤, 우리는 이 황폐한 세계 안에서 고유의 의미와 어감이 휘발되어버린 “가족”이라는 말이 어느덧 새로운 의미와 감각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절대적인 타인이 존재하지 않듯이, 절대적인 자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아.
다만 관계라는 게 존재할 뿐이지.”
실패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김명우가 ‘마마’의 제안으로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입주하면서 피에로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곳에는 수난의 현대사를 외롭게 통과해온 마마(‘대비마마’의 줄임말로 설명되지만, 상처 입은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거처 안으로 불러들인 ‘어머니’로서의 마마이기도 하다)와 그녀의 조카로 생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남의 집 정원에 심어놓은 나무”처럼 위태롭게 살아가는 김현주, “남들보다 조금 더 안정적이고 조금 더 기득권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그동안 경쟁적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살아왔”음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진작가 박윤정,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충격적인 죽음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휴학생 윤태와 고등학생 정민이 입주해 있다.
사랑했던 여자 난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후, 관계를 끝낼 수도 그렇다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김명우는 그녀의 자취를 좇는 한편, 일층에 위치한 북카페 ‘아몬드나무’를 운영하며 무너져버린 삶의 리듬을 차츰 되찾아간다. 또한 그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모인 존재들의 상처를 돌보고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문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돕는 방법이 달라 마마와 대립하기도 하고, 침몰중인 배에 탑승한 채 질식해가는 악몽을 꾼다는 윤태의 고백을 들으며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의식을 깨닫기도 한다.
이렇듯 그는 점차 “실제적인 감각으로 순수한 타인에 대한 감정을 회복”하게 된다. 언제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연결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유대감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함께 그는 ‘줄리’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난희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저녁이 되면 다들 돌아올 겁니다.”
혈연이나 제도가 아닌 오로지 상처의 유대만으로 세워진 이 집에서 유독 눈여겨보게 되는 행위는 바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밖에서 헤매던 그들은 어찌되었건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고, 긴 여행을 떠나면서 곧 돌아오겠노라 약속하며, 오랫동안 집을 비우려는 이에게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까닭에 어쩌면, 『피에로들의 집』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 바로 ‘아몬드나무 하우스’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유대감을 잃어버린 채 홀로 남았다고 여기는 이들을 한데 모으고 품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이며 제 호흡을 찾도록 돕는 바흐의 <평균율>이 흐르고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의미가 담긴 고흐의 <꽃 핀 아몬드나무>가 걸린 일층의 북카페. 마마, 현주, 윤정, 윤태, 정민, 명우 여섯 명이 모두 둘러앉아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누는 긴 목제식탁이 놓인 이층 마마의 집. 각자의 방이 위치한 삼층과 사층, 그리고 유리로 만든 온실을 갖춘 옥상까지.
윤대녕이 11년 만에 내놓는 이번 작품에는 여전히 작가 특유의 배경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빛나고 있다.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내부와 이를 둘러싼 외부 성북동의 모습이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져가는 지금 여기의 풍경을 영원히 남기려는 의지처럼. 이와 함께 유독 이번 작품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작가의 모습이다. “소설의 상상력으로는 미처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재난들을 지켜보면서 그때마다 무력한 화자(話者)로 전락한 느낌이 들어 매번 진저리를 쳤다”(‘작가의 말’)는 고백처럼,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로들의 집』 안에 사회적 재난, 그 참혹한 광경의 조각과 동시대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새겨넣었다. “삶은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존속되게 마련이므로 다시 또 쓸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감”을 말하는 윤대녕의 이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