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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

내 이웃의 안녕: 표명희 소설집

저자/역자
표명희 지음
펴낸곳
발행년도
2014
형태사항
251p.; 20cm
ISBN
9788982181887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북카페JG0000002011-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JG0000002011
    상태/반납예정일
    -
    위치/청구기호(출력)
    북카페
책 소개
표명희의 세번째 소설집 『내 이웃의 안녕』

2001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표명희의 세번째 소설집. 수록된 7편의 단편은 그간 정확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고립과 소외의 일상을 묘사하면서 미미하지만 참신하고 강렬한 인간 소통의 드라마를 다채롭게 발굴해온 작가의 행보가 이제 모종의 품격과 밀도로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립된 개인들의 또 다른 분신이자 ‘타자’의 얼굴일 ‘이웃’에 대한 7편의 이야기들은 ‘이웃’이라는 존재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물음을 통해 ‘미세한 교감과 연대의 파장’을 증언하고 지켜내는 ‘훈기’의 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우리가 결코 닫지 말아야 할 자리, 이웃의 탄생

‘독신자’라기보다 ‘독거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이들의 세계를 주로 다룬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집의 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위태로운 삶을 혼자 감당한다. 이들이 소통의 무의미를 절감하여 단호히 고립을 결단했거나 남달리 문제적인 자질로 인해 세계와 화해하기 힘든 예외적 인물이었다면, 혼자일망정 단독자가 되기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표명희의 소설은 인물들에게 그와 같은 독특한(달리 말하면 과장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며, 오히려 단독자란 결국 소외된 자의 다른 이름임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은 이렇듯 ‘타자’라는 이름마저 어색하지 않을 “희미하고 불안정”(14쪽)한 사람들에게 ‘이웃’이란 누구이며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다.
대형마트 계산대에 놓인 남의 장바구니를 집어 그것으로 자신의 쇼핑을 대신해 버릇하던(계산은 자신이 치름으로써) 「쇼핑 좋아하세요?」의 학원강사 지영은 마치 “누군가의 식사에 초대받은”(98쪽) 것 같은 기분에 중독되기에 이른다. 남의 장바구니를 소비하는 상상의 이웃 순례는 여행 디자인 일을 하는 일주라는 여성과의 실제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때 두 ‘독거’ 여성의 처지는 서로 어금지금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표제작 「내 이웃의 안녕」에서 화자인 시간강사 빈이 같은 연립 아래층에 사는 107호의 남자를 주목하는 이유 역시 같은 처지에서 오는 공감이다. 표명희의 소설에서 이웃은 무엇보다 같은 처지라는 사실에서 변별력을 얻는 존재인 것이다.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번 소설집에서 ‘이웃’은 그저 가까이 사는 이들을 지칭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다가다 마주치거나 우연히 발견되지도 않는다. 여기서 이웃이란 누군가 공감을 발원함으로써 호명되는 존재, 더 정확히는 주체의 공감을 통해 비로소 탄생되는 어떤 자리이다. 따라서 이웃의 자리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채워지는가 하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같은 처지’라는 짐짓 객관적인 조건마저 일정하게는 공감의 심정에서 소급된 결과다.
그런데 같은 처지라는 데서 비롯되기도 하고 또 그런 처지를 형성하기도 하는 이런 공감, 그리고 이를 통해 탄생한 이웃이라는 것이 그리 대수인가? 여기서 같은 처지가 뜻하는 바가 대체로 어떤 무력함이라면, 하나의 무력함이 다른 하나와 만난다는 것이 더 큰 무력함 말고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질문 자체가 시대적 징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집에 그려진 이웃의 탄생은 바로 그렇듯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제된 통념적 타산에 저항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 보이는 것’이 만드는 미세한 파동을 한사코 증언하려 하기 때문이다. 「달팽이를 길러야 할 때」의 화자 ‘길’이 달팽이를 관찰하고 차츰 알아가는 과정은 사실상 ‘약자’에 대한 통념을 깨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길은 “뼈도 핏줄도 없는 몸이 무슨 힘으로”인지 그렇듯 “유연하면서도 힘 있게, 잔잔한 파도가 밀려들 듯 조금씩”(50~51쪽) 나아가는 달팽이의 위엄에 매료된다. 수조에 얌전히 기식하는 달팽이 ‘복’에 비해 틈만 나면 온 아파트를 탐험하는 다른 달팽이 ‘쩜’의 안녕은 번번이 길의 걱정을 사지만, 두 달팽이 중에 정작 살아남는 것은 오히려 쩜이다. 수조가 그들에게 “최적의 환경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음을(64쪽) 깨달은 길은 사람의 분비물과 곤충 시체와 음식 부스러기가 널린 아파트 전체가 달팽이 먹이로 가득하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한다. 이 단편에서 길과 달팽이의 ‘미니멀’한 관계가 만들어낸 의외의 역동성은 다소 상투적인 동거인 zz와의 만남과 이별의 대목을 압도한다.
「씨에로」 역시 ‘세계의 변혁’은 고사하고 서로의 무력함을 나눌 뿐이라도 그 나눔이 ‘아무것도 아닌 것’일 리 없다는 진실을 전한다. 이 작품은 친구인 ‘규’와 ‘나’, 그리고 이들의 초등학교 은사 김선생의 연례행사인 A시로의 여행을 그린다. 16년 된 고물 씨에로를 버리지 못하는 규에 대한 김선생의 타박은 기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규를 설득해 치료를 받게 하려는 마음의 우회로다. 김선생이 짐짓 화를 내며 떠난 후 오래도록 어긋난 인연이던 ‘규’와 ‘나’ 두 사람은 둘만의 설레는 여행을 한다. 사흘째 되는 날, 두 사람은 차 안에서 “길고 황홀한 스킨십”을 나눈다. 그러나 16년 된 고물 씨에로의 의자가 결정적인 순간 침대로의 변신을 거부하는 바람에 둘의 인연은 이번에도 고비를 넘지 못한다. 이때 씨에로의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 않았던 것은 단지 낡은 차의 운명이었겠지만, 여기에 ‘규’의 의지가 섞여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이 김선생이 찍은 사진 속에서 “그토록 다채로울”(36쪽) 수 있는 것처럼, 서로를 향한 세 사람의 이런 마음들의 어느 것도 규의 죽음을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또 그중 어느 것도 그저 덧없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 사실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들의 “또 하나의 애틋한 기억”(38쪽)을 그린 「씨에로」 역시 그 자체로 ‘애틋한’ 기억이 된다.
이번 소설집이 보여주는 미미한 공감의 효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어떤 일을 실제로 도모한다는 기준에서 볼 때 그것은 대수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무력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곧잘 놓치는 대목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이다. 이웃을 만들어가고 그의 안녕을 염려하는 일이 곧 연대의 구축이라 말한다면 분명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연대의 영도(零度) 지점을 보존하고 장차 어찌될지 모를 파동의 미세한 원천을 지키는 행위이다. 서로의 욕망에 진저리치든 아니면 무력함에 좌절하든 표명희의 소설은 우리가 결코 닫지 말아야 할 자리를 거듭 일깨운다.
목차

씨에로
달팽이를 길러야 할 때
쇼핑 좋아하세요?
내 이웃의 안녕
바닥
소품
고흐의 침실

작품해설 이웃의 탄생, 혹은 영도(零度) 지점의 연대 황정아(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수록 작품 발표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