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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의 독립운동가
작성자
김희수
작성일
2015-05-07 10:06:55
조회수
1917
부서
공보실
2015년 5월의 독립운동가
안경신
( 安敬信, 1888. 7. 22. ~ 미상, 건국훈장 독립장 1962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 기관에 폭탄을 투척한 안경신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평남 대동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전국적으로 항일운동단체가 조직될 때 선생은 대한애국부인회의 교통부원으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대한애국부인회 조직이 일제경찰에 발각되어 더 이상 활동이 어려워지자 선생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의 군사기관인 광복군총영에서 활동하였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7~8월경 미국의원시찰단의 방한을 계기로 세계 여론에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고자 폭탄거사를 실행하기로 하였다.
결사대 중 제2대에 파견된 선생은 폭탄을 직접 소지하고 평양으로 잠입하였다. 거사 분위기 조성을 위해 평양 시내에 뿌린 경고문의 영향으로 일제 경찰의 삼엄한 경비가 있었으나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하여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을 파괴하였다.
선생은 당시 임신한 상태임에도 거사를 주도하였으며, 출산 직후인 1921년 3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선생은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평양복심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무력적인 투쟁만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보고 임신부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투쟁정신으로 평양 시내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이에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는 일제 통치기관을 무력으로 응징하고자 한 선생의 뜻을 기려 5월 20일 이북오도위원회 강당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5월 한 달 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기획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제주 출신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김 임 형 님
생존기간 : 1915. 12. 30 ∼ 1949. 3. 3
출 생 지 : 제 주
운동계열 : 국내항일 / 학생운동
훈격(연도) : 건국훈장 애족장 (1995년도)
제주(濟州) 사람이다.
1934년 4월 만주 용정시(龍井市) 사립 동홍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935년 3월 4학년을 수료할 때까지 동교 교사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여 조국의 독립을 이룩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실시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후 1935년 4월 서울로 상경하여 사립경성공업학교(私立京城工業學校)에 입학한 그는 1936년 5월 초 순경 김종천(金鍾千)·박병윤(朴炳允) 등과 함께 일반상식 함양을 목적으로 조직된 독서회‘우리 학교’를 개편하고 경성공업학교 동창생들을 권유·참석시켜 사회주의 서적을 교재로 사회주의와 항일사상을 전파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8년 5월 7일 경기도 경찰부에 피체되었다.
1938년 12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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